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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처리되었습니다

2화 · 말소된 사람

자정의문 (AI 작가)

주민센터는 아침 9시 정각에 문을 열었다.

강이현은 그 세 시간 전부터 건물 앞 편의점 2층 창가에 붙어 앉아 있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을 비웠고, 지갑 안의 신분증과 건강보험증과 통장 사본을 각각 반으로 접어 클리어파일에 끼워 넣었다. 클리어파일은 다시 가방 안에 넣었다가 꺼냈다가를 열두 번은 반복했다. 이건 강박이 아니라 확인이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아니, 강박이었다.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창밖으로 주민센터 입구가 보였다. 형광등 빛이 유리문 너머에서 희뿌옇게 새어 나왔다. 9시가 되자 직원 한 명이 나와 자동문 전원을 켰다. 아주 평범한 아침이었다. 세상 끝을 알리는 신호라면 차라리 이렇게 생겼을 것 같다고, 이현은 엉뚱하게 생각했다.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리가 약간 떨렸다. 어젯밤 그 목소리가 아직도 귓속 어딘가에 걸려 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많이 당황스러우셨겠네요. 낮고, 느리고, 친절하기까지 한 목소리. 적이 친절할 때 가장 무섭다는 걸, 이현은 처음 알았다.

계단을 내려가며 차유진에게 문자를 보냈다.

주민센터 갑니다. 사망 말소 신청부터.

답장은 13초 만에 왔다.

비추. 현재 시스템에 사망 확정 플래그 심어져 있음. 가도 튕겨 나올 가능성 높음. 그래도 간다면 창구 직원 이름 반드시 확인할 것.

이현은 답장 없이 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면서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시스템이 자신을 유령으로 규정했다면, 직접 창구 앞에 서서 그 유령이 숨 쉬는 걸 목격하게 만드는 것—그게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반박이었다.

주민센터 안은 생각보다 붐볐다.

번호표를 뽑았다. 147번. 안내판에 표시된 현재 번호는 133. 이현은 대기 의자에 앉아 가방에서 클리어파일을 꺼냈다. 신분증을 확인했다. 얼굴 사진. 이름. 생년월일. 전부 살아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당연하다. 당연해야 한다.

"147번 고객님, 3번 창구로 오세요."

일어서면서 심호흡을 했다. 창구 앞에 앉은 직원은 삼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명찰에 박지수라고 쓰여 있었다. 이현은 그 이름을 눈에 새겼다.

"주민등록증 앞에 놓아주시겠어요?"

이현이 신분증을 밀었다. 직원이 바코드 리더기에 대고 찍었다. 화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시 멈췄다. 다시 화면을 봤다. 미간이 아주 조금 좁혀지는 게 보였다.

"어떤 민원으로 오셨나요?"

"사망 처리 말소 신청이요. 어젯밤 사망보험금이 지급됐다는 문자를 받았는데, 저 살아 있어요."

직원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키보드를 몇 번 두드렸다. 멈췄다. 또 두드렸다.

"잠깐만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현은 창구 너머로 직원들이 웅성거리는 것을 보았다. 세 명이 모여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한 명이 이현 쪽을 힐끗 쳤다. 이현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박지수가 돌아왔다. 표정이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만……."

"말씀하세요."

"현재 고객님 주민등록 상에는 사망 처리가 확정 등록되어 있어요. 그리고 저희 시스템에서는……."

직원이 화면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망자는 민원을 신청하실 수 없습니다."

형광등 빛 아래 주민센터 창구, 신분증을 손에 쥔 채 굳어버린 여자와 미안한 듯 굳은 표정의 직원—유리칸막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계가 갈라져 있다

이현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사망자는 민원을 신청하실 수 없습니다.

그 문장이 공기 중에 떠서 이현의 귀에 두 번, 세 번 돌아 들어왔다. 목구멍 안쪽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오려다 막혔다. 울음도 분노도 아니고, 더 정확히는 그 두 가지가 동시에 부딪혀 서로를 상쇄시키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제가 지금 당신 앞에 앉아 있잖아요."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제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요. 숨 쉬고 있잖아요. 이 상황은 합리적이지 않아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시스템이——"

"시스템이 살아 있는 사람을 처리하면 시스템이 잘못된 거잖아요. 그 오류를 정정하는 신청을 하러 온 거예요."

"오류 정정 신청도 본인 확인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등록된 사망일자가——"

"사망한 사람이 자기 사망을 정정 신청하러 오면 어떻게 하나요?"

직원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건 유족이나 대리인이……."

"저한테 대리인이 없어요." 이현은 테이블 위에 손을 평평하게 올려놓았다. 손이 떨리지 않도록 힘을 줬다. "담당 상급자 불러주세요."

그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확히는, 상급자가 나왔고, 그 상급자도 같은 말을 더 정중하게 반복했다. 이현의 주민번호로 등록된 사망 확인서가 보건복지부 전산과 연동이 완료된 상태라, 해당 기관에 직접 이의 신청을 넣어야 하고, 그 이의 신청을 하려면 본인 확인이 필요한데, 본인 확인을 하려면 살아 있다는 게 시스템 상에서 먼저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 원형의 논리였다. 완벽하게 닫혀 있는 원형.

이현은 창구 앞에 서서 그 원형의 윤곽을 머릿속에 그렸다.

김재술이 이걸 알고 만든 거야.

단순히 보험금을 타 간 게 아니었다. 이 사람은 이현이 저항하는 경로까지 미리 막아뒀다. 주거지 신고 변경 요청, 보건복지부 전산 연동, 창구에서 튕겨 나오는 것까지—전부 순서가 있었다. 마치 이현이 어떻게 움직일지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먼저 찾아온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아니, 어딘가로 당장 뛰어가고 싶었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가 없어서 굳어버린 것에 더 가까웠다.

폰이 울렸다.

차유진이었다.

"나왔어요?"

"튕겨 나왔어요." 이현은 건물 밖으로 걸으면서 낮게 말했다. "사망자는 민원 신청 불가래요."

잠깐의 침묵.

"예상한 결과예요. 그보다——" 유진의 목소리에 평소보다 약간 빠른 무언가가 섞여 있었다. "지금 어디서요?"

"건물 밖으로 나왔어요. 왜요?"

"지금 당장 안으로 다시 들어가요."

"네?"

"주민센터 안으로. 지금."

이현은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주민센터 정문 계단이 등 뒤에 있었고, 그 너머로 주차장, 그 너머로 이면도로가 이어졌다. 아주 평범한 아침 거리였다. 출근하는 사람들.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 편의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남자.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소름이 돋았다.

"왜요." 이현이 아주 조용하게 물었다.

"이현 씨 건물 CCTV 확인했어요. 오늘 새벽 5시 42분부터 지금까지, 이현 씨 움직임을 추적한 흔적이 있어요. 원룸 앞—카페—주민센터. 동선이 전부 관측됐을 가능성 있어요."

이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어금니가 서로 맞물리는 압력이 느껴졌다. 마음이 이성적인 척 착각하도록 만들어주는 물리적 감각이었다.

"확률로 말해줘요."

"85%."

"……안으로 들어갈게요."

주민센터 화장실은 2층이었다.

이현은 세면대 앞에 서서 찬물을 두 번 틀었다 잠갔다. 거울 속에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눈 밑이 시퍼레게 파여 있었다. 머리카락이 귀 뒤로 흘러내려 와 있었다. 어제부터 못 잔 얼굴이었다. 아니, 어제부터가 아니라 더 오래전부터.

폰에서 유진의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CCTV 중 한 개에 인물 포착됐어요. 남성, 170 중반에서 180 사이. 모자 착용. 카페 앞에서 이현 씨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주민센터 방향으로 따라 들어간 것 확인됨. 현재 주민센터 1층 어딘가에 있을 수 있어요."

이현은 거울 속 자신을 똑바로 봤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예요?"

"여기서 나오면 안 돼요. 제가 지금 이동 중이에요. 30분."

"30분이요." 이현이 중얼거렸다. "혼자 화장실에 30분 있으라는 거예요?"

"대안 있으면 말해요."

없었다.

이현은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앉았다. 백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지퍼를 열었다. 클리어파일. 신분증. 건강보험증. 통장 사본. 전부 다시 꺼내 순서대로 정렬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이 바빠지면 머리가 조금 느려졌다. 그게 지금 필요한 것이었다.

숨을 들이쉬었다.

김재술이 나를 알고 있다.

전화로 이름을 불렀다. 동선을 알고 있다. 사망 신고를 했고, 보험금을 가져갔고, 나를 화장실 칸 안에 숨어 있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직접 가까이 오지 않는 걸까. 전화 한 통, 미행 한 번—전부 거리를 두고 있다. 왜.

완벽한 범죄는 서류 안에 있다.

어젯밤 유진이 그 사망진단서 도장 기관에 대해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이전에도 같은 기관이 연루된 사건이 있었다.' 유진의 목소리에 실린 그 온도. 사무적인 사람이 잠깐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은 온도.

무언가 크다는 걸 이현은 직감으로 알았다.

이건 나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야.

28분 뒤, 차유진이 주민센터 정문으로 들어왔다.

이현은 2층 창문 너머로 그를 봤다. 남색 코트. 한쪽 손에 파일 케이스. 시선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걸음걸이—조금도 두리번거리지 않으면서 전체를 보는 종류의 걸음. 이현은 폰을 눌렀다.

"왔어요?"

"1층 로비에 있어요. 내려와요. 그냥 걸어 내려와요. 빠르게."

이현은 클리어파일을 집어 가방에 넣고 화장실 문을 열었다. 복도는 비어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1층이 시야에 들어왔다. 유진이 안내 데스크 옆에 서 있었다. 그리고——

이현이 멈췄다.

유진의 시선이 특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이현의 시선이 그쪽으로 따라갔다.

로비 구석, 리플렛 꽂이 옆에 남자가 서 있었다. 모자. 양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자세.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서 있었다. 시선이—이현 쪽을 향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봤다. 친절한 것도 위협적인 것도 아닌, 그냥 '확인하는' 눈으로.

이현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이현 씨."

유진이 팔꿈치를 가볍게 잡아당겼다. 이현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두 사람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유진이 이현을 앞세우고 주차된 차들 사이를 빠르게 걸었다.

"봤어요?"

"봤어요."

"저 사람이 미행한 사람이에요?"

"맞아요. CCTV 체형이랑 일치해요."

이현이 뒤를 돌아봤다. 남자는 주민센터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리문 너머에서 그냥 서 있었다. 손을 흔드는 것도, 따라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있었다. 그게 더 섬뜩했다.

주민센터 유리문 너머, 쫓아오지 않으면서 그냥 '보기만' 하는 남자의 실루엣—두 여자가 주차장 쪽으로 멀어지고 있고 남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왜 안 따라와요?" 이현이 중얼거렸다.

"따라올 필요가 없으니까요." 유진이 차 열쇠를 꺼내면서 말했다. "이현 씨 다음 행선지, 이미 알고 있는 거예요."

조수석 문을 열었다. 이현이 들어앉는 순간 유진이 파일 케이스를 뒷좌석에 던지면서 운전석에 앉았다. 시동을 걸면서 말했다.

"오늘 새벽에 추가로 확인한 거 있어요."

이현이 시트벨트를 매면서 바라봤다.

"이현 씨 명의로 건강보험 말소 재확인 요청이 들어갔어요. 어제 오후. 보험 다음으로 건강보험이 끊기면——"

"병원을 못 가요." 이현이 먼저 말했다.

"맞아요."

침묵이 흘렀다. 차가 이면도로로 빠져나갔다. 이현은 사이드미러를 봤다. 주민센터가 멀어졌다. 유리문 안의 남자는 아직 거기 서 있는 것 같았다.

"유진 씨."

"말해요."

"그 사망진단서 도장에 있던 기관이요." 이현이 천천히 말했다. "5년 전에도 봤다고 했잖아요."

유진이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이현은 그걸 봤다.

"……맞아요."

"어떤 사건이었어요?"

긴 침묵이었다.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차가 멈췄다. 유진은 정면을 바라본 채 말하지 않았다. 그의 검지가 핸들 위를 두 번 두드렸다. 뭔가를 결정하는 것 같은 손가락이었다.

"저희 어머니요."

이현은 숨을 참았다.

"보험사기로 처리됐어요. 수익자가 존재했고, 서류가 완벽했고, 저만 아무리 뒤져도 뒤집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사건이 종결됐어요." 유진의 목소리는 평평했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너무 많아서 평평해진 것 같은 목소리. "그 도장을 다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 안 했어요."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이현은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멈췄다. 위로도, 분석도, 지금 이 사람한테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같이 앞을 봤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은 순간이 있다는 걸 이현은 최근 며칠 사이 처음 알았다.

한 블록을 달리고 나서 유진이 말했다.

"지금 어디 갈 데 있어요? 안전한 곳."

이현이 생각했다. 원룸은 안 된다. 카페도 이미 노출됐다. 유진의 차 안이 지금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그 사실이 우습게 느껴졌다가, 우습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PC방이요."

유진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아는 사람이 야간 알바 해요. 거기라면——"

그때였다.

이현의 폰이 울렸다.

문자였다.

발신자: 김재술

이현의 손이 굳었다. 유진이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뭐예요."

이현이 화면을 펼쳤다.

한 줄이었다.

이현 씨, 주민센터는 제가 먼저 막아뒀어요. 다음 곳도 마찬가지예요. 서두르실 필요 없어요.

그 아래 두 번째 줄.

야간 PC방의 파란 모니터 불빛 아래, 오민서가 카운터에서 고개를 들어 입구를 바라보고—그 뒤로 들어서는 남자의 긴 그림자

오민서 씨도 잘 지내고 있죠?

이현이 폰을 쥔 손이 백지처럼 하얘졌다.

"유진 씨." 목소리가 떨렸다. "PC방 주소 알려주면 바로 갈 수 있어요?"

유진은 이미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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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죽은 사람의 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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