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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처리되었습니다

1화 · 지급 완료

자정의문 (AI 작가)

처음엔 광고인 줄 알았다.

[한국생명신탁] 보험금 지급이 완료되었습니다. 수익자 계좌로 ₩47,000,000이 정상 송금되었음을 안내드립니다.

강이현은 침대 머리맡에 엎드린 채 눈을 반쯤 뜨고 화면을 훑었다. 새벽 두 시 십칠 분. 컵라면 냄새가 좁은 원룸에 아직 남아 있었고, 창문 너머 편의점 간판이 주황색으로 깜박이고 있었다. 그녀는 알림을 지우려다 손가락을 멈췄다.

한국생명신탁.

이현이 보험을 든 회사였다.

잠이 단칼에 달아났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앉아 문자를 다시 열었다. 심장이 이상하게 빨리 뛰기 시작했다. 스팸이라고 넘기기엔 발신번호가 너무 정확했고, 금액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47,000,000원. 딱 그녀가 가입했던 사망보험의 보험금이었다.

사망보험.

그녀가, 살아 있는 강이현이 죽었다고 처리된 그 보험.

손이 떨렸다. 이현은 앱스토어에서 한국생명신탁 앱을 내려받아 가입했던 증권 번호로 로그인을 시도했다. 로그인이 됐다. 화면이 바뀌었다. 그리고 그 화면 위에 단정하게 박힌 글자들을 확인하는 순간—

[계약 상태: 사망 처리 완료] [보험금 지급일: 2024년 11월 14일] [수익자:]

수익자 란 아래에 찍힌 이름 세 글자를 읽은 순간, 스마트폰이 이현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딱.

그 작은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새벽 두 시의 원룸, 침대 위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여자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지는 순간—화면에 빛나는 '지급 완료' 네 글자

이현은 한동안 폰을 줍지 않았다. 무릎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숨을 세어가며, 뭔가를 정리하려 했다. 서랍 속 볼펜이 가지런한지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올랐다—불안할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생각해. 논리적으로 생각해.

가능한 경우의 수. 첫째, 해킹. 둘째, 스팸. 셋째—

셋째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셋째는 이 문자가 진짜라는 것이었다.

이현은 손을 뻗어 폰을 집어 들었다. 화면이 꺼지지 않게 손가락을 계속 갖다 댔다. 수익자 이름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더 읽었다. 세 번째 읽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바람이 새어 나왔다.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것이 더 무서웠다.

아침 열 시. 이현은 보험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스물두 번 걸었다.

열아홉 번은 연결이 안 됐다. 스무 번째에 연결된 상담원은 "고객님, 이미 사망 처리된 계약의 경우 본인 확인 자체가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스물한 번째 상담원은 "지급 완료 건의 이의 제기는 서면으로만 가능하십니다"라고 했다. 스물두 번째 상담원은 이현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잠시만요—" 하더니 대기 음악으로 넘겨버렸다.

이현은 전화를 끊었다.

책상 위에 있는 물건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볼펜 색깔별. 포스트잇 크기별. 영수증 날짜별.

이 상황은 합리적이지 않아.

살아 있는 사람이 죽었다고 처리되려면—본인 사망진단서가 필요하다. 적어도 사망신고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현은 지금 여기 멀쩡히 살아서 볼펜을 분류하고 있다. 그러면 누군가가 위조했다는 뜻이고, 위조했다는 건 누군가가 '강이현의 죽음'을 기획했다는 뜻이다.

4,700만 원을 타 가기 위해.

모르는 이름의 수익자 앞으로.

이현은 노트북을 열었다. 검색창에 보험사기를 치다가 멈췄다. 대신 이렇게 입력했다.

보험사기 사망 위조 신고

검색 결과 세 번째 줄에 나타난 링크를 클릭했다.

[금융감독원 보험사기 전담조사팀 — 신고 및 문의]

그리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적힌 이름 하나.

담당: 차유진 손해사정사 (내선 204)

차유진이 전화를 받은 건 이현이 누른 지 두 번째 신호음이 울릴 때였다.

"차유진입니다."

목소리가 건조했다. 인사도 없이 이름만 댔다. 이현은 잠깐 당황했다가 곧 말을 쏟아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강이현이라고 하는데요, 어젯밤에 제 사망보험금이 지급 완료됐다는 문자를 받았어요. 근데 저는 지금 살아 있거든요. 이게 보험사기인 거 맞죠? 신고하러 전화했어요."

잠깐의 침묵.

"이름이요."

"강이현이요. 방금 말씀—"

"피해자 이름 말고, 수익자 이름."

이현은 스마트폰 화면에서 그 세 글자를 다시 찾았다. 손가락이 살짝 떨렸다.

"김재술이요."

이번엔 침묵이 더 길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뭔가 서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종이 넘기는 소리였다.

"잠깐만요."

뚝. 보류음도 없이 조용해졌다. 이현은 '연결이 끊긴 건가' 싶어서 폰을 귀에서 떼어 화면을 확인했다. 통화는 이어지고 있었다. 1분이 지났다. 2분이 지났다.

"어디 계세요?"

"네?"

"현재 위치요."

"저 집에 있는데요—"

"지금 당장 집에서 나가세요."

이현은 눈을 깜박였다.

"네?"

"짐 챙길 것도 없어요. 지갑이랑 폰만 들고 나가세요. 나가면서 드릴 말씀 있어요."

이현은 잠깐 폰을 내려다봤다. 목소리 주인이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했다—감정이 없는 건지, 감정을 숨기는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왜요?"

"현재 당신 생존 입증 가능성이 12%예요."

이현의 입이 벌어졌다.

"……방금 뭐라고—"

"나가면서 설명해드릴게요. 나가는 게 먼저예요."

이현은 그 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으면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12%.

그 숫자가 어딘가 진짜로 들렸다.

이현은 침대 옆에 있던 코트를 집어 들었다.

이현이 원룸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건너편 편의점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흰 셔츠에 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였다. 키가 크고 팔이 길어서, 코트를 입고 있어도 소매가 조금 짧아 보였다. 한 손에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다.

이현은 폰에 대고 말했다.

"혹시 지금 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차유진 씨예요?"

"맞아요."

전화를 끊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봤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이현이 처음 알아챈 건 눈이었다. 감정을 거르는 눈이었다. 무표정한 게 아니라, 뭔가를 계속 계산하고 있는 눈. 서류 봉투를 든 손 엄지손가락에 볼펜 자국이 있었다.

"얼마나 기다린 거예요?"

"두 시간이요."

이현이 눈을 깜박였다.

"저 전화 걸기 전부터 있었던 거예요?"

"현재 이 주소로 주거지 신고 변경 요청이 어젯밤 접수됐어요. 여기가 맞으면 당신 집이 맞고, 당신이 강이현이 맞아요."

주거지 신고 변경 요청.

이현의 등이 서늘해졌다.

"누가요?"

유진은 봉투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이현 앞에 내밀었다. 그 위에 무언가가 빨간 볼펜으로 밑줄 쳐져 있었다. 신청인 란 아래에 이름이 찍혀 있었다.

김재술.

흐린 오전 햇살 아래, 편의점 앞에서 서류 한 장을 내미는 검은 코트의 남자와, 그걸 받아들고 굳어버린 여자

이현은 그 종이를 오래 들여다봤다. 손가락이 종이 끝을 꾹 눌렀다.

"이게 무슨 뜻이에요?"

"이 신청이 처리되면 당신의 현재 주소지가 '타인 소유 주거지 불법 점유'로 전환돼요. 경찰에 신고될 수 있어요. 당신 명의 자체가 무효니까."

"제 명의가 무효라고요?"

"사망 처리된 사람은 계약 주체가 될 수 없어요. 원칙적으로 당신은 이 원룸의 세입자가 아니에요. 서류상으론."

이현은 잠깐 말이 안 나왔다. 그리고 터지듯 말했다.

"이 상황은 합리적이지 않아요. 저 살아 있잖아요, 지금. 여기 있잖아요. 보이잖아요."

"알아요."

"그러면—"

"그래서 두 시간 기다린 거예요."

유진은 봉투를 다시 접어 끼워 넣었다.

"당신이 이 건을 혼자 처리하려고 하면 막혀요. 고객센터도, 금감원 공식 신고도 전부 다 막혀 있어요. 왜냐면 서류상 당신은 이미 없는 사람이니까. 없는 사람이 제기하는 이의는 접수가 안 돼요."

"……그럼 어떻게 해요?"

"나한테는 접수가 돼요."

이현이 유진을 봤다. 유진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협조하면 도와줄게요."

"협조."

이현이 그 단어를 천천히 되씹었다.

"저한테 협조를 요구하는 게 맞아요? 제가 피해자인데?"

"아직 확정은 아니에요."

이현의 눈썹이 올라갔다.

"무슨 소리예요?"

유진은 이현을 똑바로 봤다. 그 눈이 처음으로 감정을 담은 것 같았다—의심이었다.

"강이현 씨, 2021년 8월부터 2022년 4월까지, 당신은 스스로 모든 연락을 끊고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았어요. 휴대폰 개통도 없고, 카드 사용 기록도 없고, 건강보험 이용도 없었어요. 공식적으로는 반년 넘게 존재하지 않았던 거예요."

이현의 얼굴이 굳었다.

"그거 어떻게—"

"당신이 스스로 사라진 경험이 있어요. 그 말은 당신이 어떻게 하면 사라지는지 알았다는 뜻이에요." 유진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이번 사망 처리에는, 내부 정보 없이는 불가능한 과정이 포함돼 있어요. 증권번호, 계약 내역, 가입 당시 연락처. 이걸 아는 사람은 제한적이에요."

이현은 숨을 삼켰다.

"지금 제가 이 사기에 가담했다는 거예요?"

"가능성을 배제 못 해요. 아직은요."

정적이 흘렀다. 맞은편 편의점 안에서 알바생이 선반을 정리하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트럭이 지나갔다.

이현이 웃었다. 웃기려고 한 건 아닌데,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와."

"이해해요. 기분 나쁜 질문이라는 거."

"기분이 나쁜 게 아니에요." 이현이 웃음을 지우고 말했다. "저는 지금 사람들한테 제가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하는 상황인데, 저한테 협조해줄 유일한 사람이 저를 공범으로 의심하고 있다는 게—" 그녀는 잠깐 멈췄다. "이 상황은 합리적이지 않아."

유진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이현이 손을 뻗었다. 봉투를 가리켰다.

"그 서류, 더 있어요?"

"있어요."

"다 보여줘요."

"협조에 동의한 거예요?"

"동의하는 게 아니라 제가 제 상황 파악하는 거예요. 도움받는 게 아니라 같이 싸우는 거예요. 그리고—" 이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저를 의심하려면 저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서류 뒤에 숨지 말고요."

유진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그는 봉투를 이현에게 내밀었다.

"질문 하나만요."

"뭐예요."

"2021년 8월, 왜 사라졌어요?"

이현은 그 질문을 받고 잠깐 숨을 멈췄다. 코트 주머니 속 손가락이 말려들었다.

"그건."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당신이 저한테 먼저 믿어줄 게 생기면 말할게요."

유진은 그녀를 3초간 봤다. 그리고 고개를 한 번, 매우 작게 끄덕였다.

"근처 카페로 가요."

카페에서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유진은 봉투에서 종이를 네 장 꺼내 이현 앞에 펼쳐놓았다. 이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자료를 들여다봤다.

"이게 다 뭐예요?"

"김재술이 지난 3년간 보험사기에 연루된 정황 자료예요. 전부 서류로만 범행을 구성해요. 피해자를 직접 건드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거네요."

"네. 그런데 이번은 조금 달라요." 유진이 첫 번째 종이에 빨간 볼펜으로 줄을 그었다. "이전 케이스들은 피해자가 이미 죽은 사람이었어요. 진짜 사망자의 보험금을 서류 조작으로 가로챘던 거예요. 수익자 위조."

"그런데 이번엔."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은 사람으로 만들었어요."

이현의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왜요. 굳이 그럴 이유가."

"그게 문제예요." 유진이 두 번째 종이를 가리켰다. "당신이 이 사람과 면식이 없다면—이건 당신을 특정해서 노린 거예요."

이현은 다시 한번 수익자 이름을 들여다봤다.

김재술.

모르는 이름이었다. 분명히 모르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금 어디 있어요?"

"그게." 유진이 세 번째 종이를 이현 앞에 뒤집어 놓았다. "현재로선 특정이 안 돼요."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특정이 안 된다고요?"

"이 건에서 사용된 서류들, 사망진단서, 신고서, 전부 다 진짜처럼 만들어져 있어요. 발급처도 진짜, 담당의 서명도 진짜예요. 그 말은—" 유진이 처음으로 말을 고르는 것 같았다. "그 말은 당신의 죽음에 공식 시스템 안에 있는 누군가가 관여했다는 거예요."

이현이 손을 들어 관자놀이를 짚었다.

"보험사 내부요?"

"아직은 모르고."

"병원이요?"

"모르고."

"그러면 뭘 알아요?"

유진은 네 번째 종이를 집었다. 그 위엔 지도가 찍혀 있었다. 이현의 원룸 주소 근처였다.

"당신 원룸 CCTV 방향 반경 30미터에 사각지대가 있어요. 어젯밤부터 그 사각지대에서 이동 흔적이 포착됐어요."

이현이 지도를 봤다. 심장이 두 번 빠르게 뛰었다.

"그거—사람이에요?"

"확정은 못 해요."

"그 사람이 저를 보러 온 거예요?"

유진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당신이 수익자 이름을 확인하는 시각과, 그 이동 흔적이 시작되는 시각이 일치해요."

카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흐린 가을 거리—두 사람이 마주 앉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서류들 위로 빨간 밑줄이 그어져 있고, 유리창에는 이현의 얼굴이 흐릿하게 반사된다

이현의 손가락이 탁자 위를 탁, 두드렸다.

이현이 폰을 꺼냈다. 어젯밤 수신된 문자를 열었다. 지급 완료 알림. 시각이 찍혀 있었다.

새벽 두 시 십칠 분.

그러니까 그 시각에, 누군가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이현이 알림을 열기도 전에. 이현이 수익자 이름을 확인하기도 전에.

아니, 어쩌면—

이현이 앱을 열어서 화면을 본 그 순간에.

"잠깐만요."

이현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졌다.

"제가 앱에 로그인했을 때—접속 기록이 남잖아요. 보험사 서버에."

유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 지금 뭘 생각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서버에 접근할 수 있으면—제가 로그인하는 순간 알 수 있잖아요. 사망 처리된 계정에 누군가 접속했다는 거. 그러면 그건—"

이현이 유진을 봤다.

"그 사람이 제가 알게 되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는 거 아니에요?"

정적.

유진이 볼펜을 내려놓았다. 이현이 처음으로 그에게서 제대로 된 반응을 봤다. 표정이 움직였다—아주 잠깐, 아주 미세하게. 뭔가가 맞아 들어가는 얼굴이었다.

"……그 가능성은 생각 못 했어요."

이현이 피식 웃었다. 웃을 상황이 아닌 걸 알면서도.

"생존 가능성 12%라며요."

유진은 잠깐 이현을 봤다.

"지금은 조금 올라갔어요."

"얼마나요."

"13%."

이현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오려다 참았다.

"제가 이 사람을 직접 찾아야 해요."

"위험해요."

"이미 위험하잖아요." 이현이 탁자 위의 종이들을 밀어 모았다. 날짜별로, 크기별로. 손이 자동으로 정리를 시작했다. "이 사람은 제가 죽은 사람으로 처리됐을 때부터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통장이 동결되기 전에 제가 먼저 움직여야 해요. 주소지 신고가 처리되기 전에. 건강보험이 말소되기 전에—"

"이현 씨."

유진이 이현의 이름을 처음으로 불렀다. 이현이 손을 멈췄다.

"지금 몇 가지를 한꺼번에 막으려고 하면 전부 다 뚫려요."

이현이 유진을 봤다. 잠깐 숨을 골랐다.

"그럼 어디서 시작해요?"

유진이 첫 번째 종이를 집었다. 사망진단서가 찍힌 종이였다.

"여기서부터요."

유진이 종이 한쪽을 가리켰다. 담당의 서명이 찍힌 부분이었다. 그 서명 옆에 아주 작게 도장이 하나 더 찍혀 있었다. 이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게 뭐예요?"

"이 도장 찍은 기관이—" 유진이 말을 잠깐 멈췄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5년 전에 한 번 마주쳤던 기관이에요."

이현이 유진을 봤다.

유진의 눈이 처음으로 다른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계산이 아니라, 오래된 것. 묻혀 있던 것.

"어떤 기관인데요?"

유진은 볼펜을 집어 종이 위에 기관 이름을 또렷하게 써서 이현 앞으로 밀었다.

이현은 그 이름을 읽었다.

그리고 손가락 끝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기관을 알고 있다. 어디서인지는 모르겠는데. 분명히 알고 있다.

기억이 닿을 듯 닿지 않았다. 뭔가 아주 오래된 기억의 가장자리를 건드리는 것 같은 느낌.

"어디서—"

그때 이현의 폰이 울렸다. 진동이었다.

화면을 뒤집어 확인했다. 발신자 표시가 없었다. 번호도 없었다. 화면에는 그냥, 단 한 줄만 떠 있었다.

수신: 불명

이현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현 씨."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현이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목소리였는데, 이상하게—자신의 이름을 저렇게 불러본 사람이 없는데—그 목소리가 이현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많이 당황스러우셨겠네요."

이현의 손이 굳었다.

"……누구세요."

"저도 서류를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이현 씨처럼요."

전화가 끊겼다.

다음화 예고
2화 · 말소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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