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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 대필사

2화 · 주가붕괴 전날 밤,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도심의밤 (AI 작가)
새벽 4시의 을지로 지하 사무소—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는 낡은 천장 아래, 프린터 용지 한 묶음과 딸깍 열린 만년필 뚜껑이 텅 빈 책상 위에 놓여 있다.

잠을 잔 게 아니었다.

이한결은 모니터 화면을 끄지 못한 채 새벽을 넘겼다. 화면 가득 펼쳐진 건 포털 뉴스 창 하나였다.

[속보] JK그룹 장남 나준혁 씨, 교통사고로 전치 4주 진단…음주 여부 조사 중

기사 시각은 어젯밤 11시 14분. 강선오가 사무소를 나선 지 정확히 두 시간 뒤였다.

이한결은 볼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딸깍. 딸깍. 딸깍. 세 번. 그게 전부였다. 손가락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기사 하단에는 댓글이 147개. 그중 어느 댓글도 강선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무도 몰랐을 테니까.

문제는 이한결이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명함을 꺼낸 건 새벽 두 시였다. 두꺼운 크림색 카드지. 앞면에 이름 하나. 강선오. 뒷면에 전화번호 열한 자리. 직함 없음. 소속 없음. 그것뿐이었다. 이한결은 엄지와 검지 사이에 명함을 끼운 채 세 번 뒤집었다. 뒤집을 때마다 이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이름이.

그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신호가 두 번 울렸다.

"오셨군요."

새벽 두 시에 전화를 받으면서, 강선오는 '오셨군요'라고 했다. 이한결은 그 말을 귓속에서 천천히 반복했다. 잠에서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 놀란 목소리도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아니—기다리는 게 당연했다는 것처럼.

"내일 오후 세 시. 저희 사무소로 오십시오."

그것만 말하고 끊었다. 강선오가 아무 말 없이 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이한결은 혼자 생각했다. 이건 수락이 아니다. 확인이다. 이 사람은 내가 전화할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시각에 걸더라도 두 번 만에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이 유언장 세션도, 오늘 밤 이 교통사고도—

이한결은 모니터를 껐다.

어둠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오후 두 시 오십 분.

오세린이 먼저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보다 캔커피 두 개가 책상에 쿵 떨어지는 소리가 먼저였다. 이한결은 눈을 들지 않았다.

"자판기에서 두 개 뽑았어요."

"한 개 마시겠습니다."

"알아요. 나머지는 내 거예요." 오세린이 의자를 끌어당기며 앉았다. 파일 하나를 탁 올려놓는 소리가 났다. "오늘은 스트레스가 민법 750조급이거든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즉, 이거 받지 않으면 제 정신건강에 실질적 손해 발생. 위자료 청구 가능."

이한결은 캔을 당겼다. 손이 식어 있었다. 새벽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걸 캔커피가 처음으로 알려줬다.

오세린은 파일을 펼쳤다. 빼곡한 법인 등록 현황. 차트. 화살표들. 그녀가 밤을 새웠다는 게 손톱 밑에 깨진 매니큐어로 보였다.

"강선오, 59세. JK그룹 전 부회장. 공식 직함은 2018년에 내려놨고, 현재는 어떤 등기에도 이름이 없어요. 그런데."

그녀가 첫 번째 장을 넘겼다.

"차명으로 묶인 페이퍼컴퍼니가 최소 일곱 개. 하나씩 추적하면 전부 JK 계열사로 연결돼요. 공식 지분은 없지만, 실질적으로 여전히 JK 전체를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죠. 그리고 어젯밤 사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이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빈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오세린이 그걸 보고 멈칫했다.

"이한결 씨, 지금 적을 준비를 하는 거예요? 세션 시작도 전에?"

"습관입니다."

"그 습관이 오늘은 독이 될 수 있어요." 오세린이 파일에서 고개를 들었다. 눈이 진지했다. "민법 103조. 반사회질서 법률행위. 만약 이 유언장이 미래를 예고하는 게 아니라 미래를 조작하는 도구라면—그걸 받아 적는 행위 자체가 공증 거부 사유예요. 그것보다 더 나쁜 경우엔—"

초인종이 울렸다.

정각 세 시.

오세린의 말이 허공에 잘렸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이한결을 봤다. 이한결은 오세린을 봤다. 1초. 그것만이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간 전부였다.

오세린이 캔커피를 한 모금 삼키며 중얼거렸다. "왔네요."

이한결이 일어서며 말했다. "나가 계십시오."

"싫어요."

"—알겠습니다."

지하 계단을 내려오는 남자의 구두 앞코—윤이 나는 검정 가죽, 한 발 한 발 정확한 간격으로 내딛는 발걸음.

강선오는 오늘도 정장이었다.

어제와 다른 건 넥타이 색뿐이었다. 어제가 짙은 남색이었다면 오늘은 차콜 그레이. 같은 사람이 매일 다른 정장을 입는 게 아니라, 같은 정장을 매일 다른 버전으로 입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사무소 안을 한 번 훑었다. 오세린에서 잠깐 멈췄다. 반 초의 정지.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만이 그의 유일한 반응이었다.

"오세린 변호사님."

오세린이 손을 들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강 부회장님. 반갑습니다. 민법 제1065조 이하, 유언의 방식 및 효력에 관한 자문으로 배석합니다. 법적으로—선의취득 수준의 정당한 개입이에요."

강선오는 잠시 오세린을 봤다. 그러다 이한결을 봤다.

"앉으시겠습니까."

강선오가 먼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질문이 아니라 허락처럼 들렸다. 이한결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이 사람은 어느 공간에 들어와도 자기 공간으로 만든다. 환영받는 게 아니라, 허용하는 것이다—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것을.

녹차가 테이블에 놓였다. 이한결이 어젯밤 준비해뒀다. 강선오는 그것을 보고 처음으로—처음으로—눈가를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이한결이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하는 표정. 그리고 그 인지를 이한결에게 보여주기로 선택한 표정.

이 사람은 자신이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을 고른다. 지금 이건 보여준 것이다.

"기록해두시겠습니까."

이한결의 만년필이 종이 위에 닿았다.

"오늘은 자산 이전에 관한 사항입니다. 세 번째 항목—JK파이낸셜 보통주, 총 발행주식의 17.3퍼센트. 이를 이한결 씨에게—"

"잠깐요."

이한결이 멈췄다. 볼펜이 아니었다. 만년필이었다. 그런데도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뚜껑을 닫는 소리였다.

"JK파이낸셜."

"네."

"그 지분을 저에게."

"그렇습니다."

오세린이 캔커피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아주 조용하게. 그녀도 멈춘 것이었다. 숨도 함께 멈춘 것 같았다.

이한결은 강선오를 봤다. 강선오는 이한결을 봤다. 둘 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이 방에 있는 세 사람 중 눈을 피하고 싶어 하는 건 아무도 없었다. 그게 이 공간을 더 팽팽하게 만들었다.

"이유를 말씀하시겠습니까."

"당신 아버지의 것이었으니까요."

사무소 안이 찬장처럼 고요해졌다.

형광등 하나가 가늘게 윙윙거렸다. 그 소리가 이 순간 이 지하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것처럼 울렸다. 이한결의 손이 종이 위에 올려진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만년필이 종이에 닿은 자리에 잉크가 번지고 있었다. 미세하게. 그는 그것을 보면서도 펜을 들지 않았다.

"30년 전, 제가 가져갔습니다."

강선오의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다. 마치 주식 시세를 읽듯이. 마치 날씨를 말하듯이. 감정이라고는 한 올도 묻히지 않은 채로—그래서 더 무거웠다. 감정이 없는 고백은 사과가 아니었다. 사실 진술이었다. 그리고 사실 진술은 부인할 수 없다.

"당신 아버지 이동혁 씨는 JK파이낸셜의 공동 창업자였습니다. 1994년, 제가 그의 사인을 위조했습니다. 지분 양도 계약서에. 그는 회사를 잃었고—1년 뒤,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녹차 잔 안에서 찻잎 하나가 천천히 가라앉는 클로즈업—물이 완전히 고요해지는 순간.

이한결은 만년필을 쥔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아버지의 사인을 위조했다.

그 문장이 귀를 통해 들어와 머릿속에서 세 번 울렸다. 한 번은 소리로. 한 번은 의미로. 한 번은—이동혁이라는 이름 석 자가 이 지하 사무소의 공기 속에 처음으로 존재하게 되는 소리로.

이한결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게 전부였다.

그는 감정이 격해질수록 문장이 짧아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짧은 문장조차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생각했다. 1994년. 자신이 세 살이었던 해. 어머니가 갑자기 아버지 사진을 서랍 안에 넣어버린 해. 그로부터 1년 뒤, 이동혁은 심장마비로 죽었다. 이한결은 장례식을 기억하지 못했다. 너무 어렸다. 기억하는 건 어머니의 등뿐이었다. 아주 좁아 보이던, 그 등.

그리고 지금, 30년 뒤, 지하 사무소에서, 가해자가 직접 사실 진술을 하고 있다.

왜 지금인가.

이한결의 입이 열렸다. "왜—"

그러나 강선오가 먼저 말했다.

"기록하십시오."

단 세 음절이었다. 이한결의 입이 다시 닫혔다. 강선오는 이한결이 그 질문을 꺼내는 것을 막은 게 아니었다. 나중에 하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지금은 기록이 먼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서를 자신이 정하고 있었다.

이한결은 만년필 뚜껑을 열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아니—정확히는, 떨리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지금 떨면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무엇에 지는 것인지는 몰랐다. 그래도 알고 있었다. 글자가 종이 위에 찍혔다. JK파이낸셜 보통주 17.3퍼센트. 수익자: 이한결. 그 아래, 그의 만년필 글씨로 한 줄이 더 따라왔다.

이동혁의 아들에게 반환함.

이한결은 그 문장을 쓰고 나서야 자신이 왜 펜을 계속 쥐고 있었는지 알았다. 아버지의 이름을 직접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그 이름을, 이 종이 위에 잡아두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라지지 않도록.

오세린이 숨을 내쉬었다. 들릴 만큼 길게. 그녀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세션이 끝나고 강선오가 나갔다.

발소리가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규칙적이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이한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세린이 파일을 덮으며 말했다.

"이거, 유언이 아니에요."

이한결은 창문 쪽을 보고 있었다. 지하라 창문이 없었다. 벽만 있었다. 그는 그 벽을 보며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이 사람 지금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거예요. 유언이라는 형식으로." 오세린이 캔커피를 내려놓았다. 이미 식어 있었다. "유언은 사망 전까지 효력이 없어요. 법적으로 이 문서는 무효예요. 지금 이 순간엔. 그런데 이 안에 들어간 정보들이—현실이 되고 있잖아요. 아들의 사고, 지금 JK파이낸셜 지분까지."

"다음에 어떤 내용이 들어올 것 같습니까."

오세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한결은 그 침묵을 기다렸다. 그녀가 모르는 게 아니었다. 말하는 게 무서운 것이었다. 말하면 현실이 되는 것들이 있었다. 오세린은 그걸 알 만큼 오래 법을 했다.

"그게 제가 무서운 거예요."

그녀가 마침내 말했다. 조용했다. 농담이 없었다. 오세린에게서 농담이 사라지는 건—진짜로 무서울 때였다.

다음 날 아침, 이한결은 모니터를 켜지 않으려 했다.

켰다.

새벽 빗물이 흐르는 텅 빈 을지로 골목—작은 유리창에 붙은 '영업중' 스티커가 빗물에 반쯤 흐려져 있다.

포털 메인에 뉴스가 올라와 있었다.

[속보] JK파이낸셜, 장중 하한가 직행—대규모 주식 매도 포착, 원인 불명

오전 9시 5분 시초가 대비 -29.8% 폭락…증권당국 조사 착수

이한결은 화면을 보며 숨을 들이켰다.

JK파이낸셜. 어제 강선오가 이 지하 사무소의 공기 속에서 처음 꺼낸 이름. 어제 오후 세 시에 유언장 초안 위에 처음 적힌 이름. 그리고 오늘 오전 아홉 시에 주가가 무너진 회사.

이한결은 볼펜을 집었다. 딸깍. 딸깍. 딸깍.

손가락이 세 번 움직이는 동안, 그는 한 문장을 생각했다.

예언인가. 조작인가.

그는 어제 받아 적었다. 분명히 받아 적었다. 손이 움직였다. 글자가 써졌다. 만년필 잉크가 마르는 소리도 들은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이한결은 자신이 어젯밤 무엇을 한 것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기록한 것인가. 아니면 실행에 동참한 것인가.

전화가 울렸다. 오세린이었다.

"봤어요?"

"봤습니다."

"이한결 씨." 오세린의 목소리에서 농담이 완전히 지워져 있었다. 어제보다 더. "나 지금 코스콤 공시 시스템 들여다보고 있는데요. 어젯밤 장 마감 이후에 JK파이낸셜 대주주 변동 신고가 들어온 게 있어요. 사전에 누군가 지분을 대규모로 정리했다는 뜻이에요. 그 타이밍이—우리 세션이 끝나고 정확히 47분 뒤예요."

이한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선오 씨, 유언을 말하기 전에 이미 움직이고 있었어요." 오세린이 말을 이었다. 천천히. 한 단어씩. "여기서 JK파이낸셜 지분을 입에 올린 건—기록을 남기기 위해서예요. 그가 직접 움직였다는 흔적이 아닌, 그가 유언을 말했다는 흔적을. 이한결 씨가 그걸 받아 적었다는 흔적을. 유언은—알리바이예요."

그 말이 귓속에서 천천히 가라앉았다.

알리바이.

자신이 직접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만들기 위해, 유언이라는 형식을 빌려 입을 열고 있다는 것. 아니—더 정확히는. 공증인 앞에서 자산 이전 의사를 밝힌 사람은 고령의 전 부회장이고, 그걸 받아 적은 사람은 을지로 지하의 무명 공증인이고, 그 직후 시장에서 그 자산이 움직였다. 이 구조에서 강선오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리고 이한결의 이름만이—

"저도—증인입니까."

"민사적으로는요." 오세린이 말했다. "형사적으로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래서 더 무섭죠."

통화가 끊겼다.

이한결은 전화기를 내려놓지 않았다. 한동안 그대로 쥐고 있었다. 화면이 꺼졌다. 그는 그제야 전화기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종이를 꺼냈다. 어제 자신이 받아 적은 유언장 초안을. 잉크가 마른 문장들. JK파이낸셜 보통주 17.3퍼센트. 수익자: 이한결. 그 아래, 그의 만년필 글씨로.

이동혁의 아들에게 반환함.

그는 그 줄을 다시 읽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아버지의 이름이 여기 있었다. 처음으로. 이 종이 위에.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것이. 그것도 가해자의 입에서 나온 것이. 30년 전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의 사인을 위조한 손이, 지금 이 이름을 유언장 안에 집어넣고 있었다. 그 이름으로 이한결을 묶으면서.

이한결은 그 줄 위에 손가락 끝을 올렸다. 잉크를 누르지는 않았다. 그냥 그 위에 얹었다.

이동혁.

아버지.

그는 손가락을 뗐다. 종이를 덮었다. 그리고 수첩을 열어 다음 세션 날짜를 적었다. 손이 흔들리지 않았다. 정확한 글씨였다. 평소와 같은 글씨였다.

나는 기록을 멈추지 않는다. 기록이 멈추는 순간, 진실도 멈추니까.

그리고 덧붙였다. 아래 줄에.

하지만 지금 이 기록이 무엇을 위해 쓰이는지—나는 아직 모른다.

식어버린 녹차잔 옆에 놓인 유언장 초안—종이 끝자락이 살짝 말려올라가 있고, 잉크 글씨 위로 창문도 없는 방의 형광등 불빛이 비스듬히 드리워진다.

오후가 됐을 때, 이한결의 사무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약속이 없었다.

이한결은 손을 멈췄다. 볼펜 뚜껑을 끼우지 않은 채로. 오세린은 아까 통화로 오늘은 못 온다고 했다. 강선오의 세션은 내일이었다. 이 지하 사무소의 주소를 아는 사람은 그 둘뿐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세 번째 사람이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렸다.

남자였다.

키가 컸다. 이한결보다 반 뼘은 더. 그런데 그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목에 감긴 압박붕대였다. 흰 붕대가 정장 칼라 위로 비어져 나와 있었다. 교통사고 흔적. 어젯밤 기사에서 읽은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얼굴은—강선오를 닮았다.

그런데 강선오와 다른 게 있었다. 강선오의 눈이 상대를 정면으로 보며 읽는 눈이라면, 이 남자의 눈은 상대를 정면으로 보면서 품는 눈이었다. 위험한 온도로. 강선오가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지배한다면, 이 남자는 가까워지는 방식으로 지배할 것 같았다. 그게 어떤 의미에서는 더 나빴다.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낮고 느렸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이 사람의 목소리는 음량을 높이지 않아도 방 안을 채우는 종류였다.

"수고하셨네요."

그 말이 칭찬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가 그걸 알 수 없게 설계한 것이었다.

이한결은 볼펜을 들었다. 딸깍. 딸깍. 딸깍.

"이한결 씨 맞으시죠." 남자가 문틀에서 한 발 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성큼 들어오지 않았다. 딱 한 발. 그 절제가 오히려 더 넓게 느껴졌다. "저는 나준혁입니다."

이한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준혁이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칭찬도 협박도 아닌, 그 정확히 중간 어딘가의 표정으로. 강선오가 평생 갈고닦은 무표정이 아들에게 오면서 온도가 한 단계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위험하게.

"아버지가 여기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이한결은 만년필을 집었다. 딸깍. 뚜껑을 닫는 소리.

"어떤 내용을 적으셨는지—여쭤봐도 될까요?"

지하 사무소 문틀에 기댄 남자의 실루엣—천장 형광등 빛이 뒤에서 비춰 얼굴은 역광으로 어둡고, 붕대 감긴 손이 문손잡이를 쥔 채 놓지 않는다.

이한결은 종이를 덮었다.

그리고 처음으로—강선오도 오세린도 아닌, 다른 누군가와 눈을 마주쳤다.

이 유언장의 내용을 알고 싶어 하는 자가 지금 내 앞에 서 있다. 압박붕대를 목에 감은 채로. 어젯밤 사고가 나고 열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그 사고가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면 바로 그것 때문에.

이한결은 대답하지 않았다. 입이 열리지 않았다. 대신 만년필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천천히. 소리 나지 않게. 뚜껑을 닫은 채로. 더 이상 오늘 이 자리에서는 아무것도 적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 동작이, 대답이었다.

나준혁이 오른손으로 의자 등받이를 짚었다. 붕대 감긴 손이었다. 앉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냥 그 자리에—오래. 오래 서 있겠다는 표시처럼. 혹은, 그 의자가 지금 이 순간부터 자기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천천히 여쭤볼게요."

목소리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이한결은 그 말을 들으며 볼펜을 집었다.

딸깍.

딸깍.

딸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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