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링
🪙 0로그인
유언장 대필사

3화 · 3화 — 「같은 구조, 다른 피해자」

도심의밤 (AI 작가)
새벽 형광등 불빛이 파르스름하게 번지는 좁은 사무소,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 더미와 식어버린 녹차 한 잔

형광등이 깜박였다.

0.3초. 암전. 그리고 다시 빛.

이한결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시선은 책상 위 서류에 못 박힌 채, 볼펜을 딸깍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손이 멈추지 않는 건 머릿속이 멈추지 않아서였다. 생각이 언어가 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 조증도 아니고 습관도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뭔가를 알 것 같은데 아직 모를 때, 손이 먼저 알고 싶어했다.

나준혁이 떠난 지 삼십 분이 지났다.

사무소 안에는 그가 두고 간 냄새만 남아 있었다. 고급 가죽과 병원 소독제가 섞인 냄새—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가 한 사람 안에서 섞여 있는 것. 멍 자국과 깁스를 달고 나타나 "유언 내용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이한결의 말에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남자. 돌아서는 순간, 그의 등에서 무언가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분노인지 두려움인지—아니면 그 둘을 이미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인지.

이한결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지금 가장 불편했다.

볼펜을 내려놨다.

휴대폰 화면이 켜져 있었다. 오세린이 보내온 메시지.

『JK파이낸셜 대주주 지분 정리 공시. 어젯밤 장중.』

그 아래.

『나 지금 가도 돼?』

이한결은 답장 대신 사무소 출입문 잠금을 해제했다. 화면이 다시 꺼졌다. 그 짧은 암흑 속에서 형광등이 또 한 번 깜박였다. 이번에도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오세린이 문을 밀고 들어온 건 오전 두 시 사십 분이었다.

캔커피 두 개를 손에 쥐고 있었다. 하나는 자기 입에 붙인 채로, 나머지 하나를 이한결 쪽으로 가볍게 던졌다. 이한결이 반사적으로 받아냈다. 손목을 꺾는 각도가 정확했다—몇 번 해본 사람처럼.

"민법 제정신이에요? 이 시간에 사무소 불 켜두고."

"왔잖아요."

"저는 민법상 선의취득자예요." 오세린이 점퍼 지퍼를 내리며 말했다. "불 켜진 거 보고 들어온 거지, 의도적으로 온 게 아니라고요."

이한결은 대꾸하지 않았다. 오세린이 의자를 당겨 앉으며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냈다. 화면을 켜는 손이 빠르고 망설임이 없었다.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손이 빨라지는 사람이었다. 이한결은 그걸 오늘 처음 알았다.

캔커피를 책상 모서리에 올려놓고, 태블릿 화면을 이한결 쪽으로 돌렸다.

"봐요. 이거."

공시 문서였다. JK파이낸셜 대주주 지분 변동 내역. 날짜는 어젯밤—강선오와의 세션이 끝나고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한결은 숫자를 읽었다. 다시 읽었다. 세 번째 읽을 때 머릿속의 무언가가 조용히 기울었다.

"대주주 지분 정리가 세션 직후 공시됐다는 거, 처음 말씀드렸을 때 저도 우연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오세린의 목소리에서 캔커피 거품 같은 가벼움이 사라졌다. "근데."

화면을 옆으로 밀었다. 새로운 문서가 떴다.

"이게 문제예요."

이한결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오래된 문서였다. 스캔 상태가 고르지 않고—서류를 복사기에 눌러 찍을 때 가장자리가 살짝 들린 것처럼 여백이 어두웠다. 손으로 쓴 메모가 군데군데 찍혀 있었다. 공증 서류였다. 날짜는 2001년.

"이건—"

"제 어머니 사건 때 쓰인 공증 서류예요."

오세린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달라졌다.

농담 기색이 없었다. 법률 용어도 없었다. 그냥 한 사람이 오래된 것을 꺼내 말하는 소리였다. 이한결은 태블릿 화면에서 눈을 들어 오세린을 봤다. 오세린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눈꺼풀이 미세하게 당겨져 있었다. 오래 들여다봐온 것을 다시 보는 사람의 눈이었다.

"전 재산을 날린 거, 알고 계시잖아요. 공증이 위조됐다는 걸 입증하려고 몇 년을 싸웠는데, 끝내 못 뒤집었어요. 공증 자체는 형식적으로 완벽했거든요." 한 박자 쉬었다. 짧고 균일한 숨. "그래서 법이 손을 못 댔고."

"알아요."

"그 서류 구조를 기억해뒀어요. 십 년 넘게." 오세린의 손가락이 화면 위를 스쳤다. 짚는 게 아니라 스치는 것이었다. "어떻게 공증이 합법적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 그 패턴이요. 형식은 멀쩡하고, 내용도 완벽하고, 서명도 진짜인데—그 안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죽는 구조."

이한결은 오세린이 '죽는'이라고 말하는 순간을 들었다. 법률가가 법 이야기를 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니었다.

오세린이 화면을 다시 밀었다. 이번에는 세 개의 문서가 나란히 펼쳐졌다.

"왼쪽이 2001년 어머니 사건. 가운데가 강선오가 이한결 씨한테 말한 30년 전 이동혁 씨 사인 위조 건—어제 세션 내용 받아 적으신 거 기억나시죠? 오른쪽이."

잠깐 멈췄다. 그 멈춤이 0.5초였는지 2초였는지, 이한결은 나중에 기억하지 못할 것이었다.

"오른쪽이 지금 강선오가 작성하게 하고 있는 유언장이에요."

이한결의 시선이 고정됐다.

세 문서의 구조가—달랐다. 내용이 달랐고, 연도가 달랐고, 등장하는 인물이 달랐다. 그러나 오세린이 형광펜으로 표시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한결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딸깍,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더 크고, 더 묵직한 것이었다. 기계가 맞물리는 소리. 아니면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

지분 이전 시점을 '의뢰인의 의사 표시 이후 72시간 이내'로 못 박는 조항. 수혜자가 '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법적 효력이 발생하도록 설계된 문장. 그리고—공증 시점과 실제 자산 이동 시점 사이에 끼워넣은 제3자 법인.

"같은 구조예요."

나란히 펼쳐진 세 장의 문서, 형광펜 표시가 같은 위치에 반복되는 조항들

오세린의 손가락이 세 문서를 차례로 짚었다. 왼쪽. 가운데. 오른쪽. 세 번의 움직임이 같은 리듬이었다. 박자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형식은 달라요. 내용도 달라요. 근데 설계 논리가 같아요. 법적으로 완벽해 보이게 만들면서, 실제 피해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엔 이미 자산이 움직인 다음이 되도록—시차를 쪼개놓는 방식이요. 72시간. 피해자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정확히 조금 짧아요."

이한결은 오랫동안 말하지 않았다.

볼펜을 집어들었다. 딸깍. 딸깍. 세 번째를 누르려다 멈췄다. 손가락이 그대로 볼펜 끝을 쥐고 있었다.

"강선오가 2001년 사건을 알고 있었을까요."

질문이 아니라 확인이었다. 목소리에 물음표가 없었다.

오세린이 이한결을 똑바로 봤다. 잠깐이었다. 그러나 충분히 길었다.

"그게 무서운 거예요."

침묵이 사무소를 채웠다.

형광등이 다시 한 번 깜박였다가—이번에는 더 길게, 0.8초쯤—안정을 찾았다. 두 사람 모두 위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알아챘는지 알아채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한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가 밖을 내다봤다. 새벽 거리는 텅 비어 있었다. 빗기운이 없는데도 아스팔트가 젖어 있었다. 낮에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은 것이었다. 가로등 불빛이 그 위에서 길게 번졌다. 부서지지 않고, 늘어나는 것처럼.

새벽 세 시의 텅 빈 이면도로, 가로등 불빛이 젖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번지는 분위기 컷

"오세린 씨."

"예."

"어머니 사건에서 끝내 입증 못 한 게—공증 서류 자체가 위조됐다는 거였죠."

"맞아요."

"지금 강선오의 유언장은, 위조가 아니에요."

오세린이 캔커피를 내려놨다. 소리가 작고 날카로웠다. 금속이 나무를 건드리는 소리. 의도적으로 조절한 것 같기도 했고, 그냥 놓은 것 같기도 했다.

"알아요."

"내가 직접 받아 적었고, 내가 현장에 있었어요. 의뢰인의 의사 능력도 확인했어요. 강선오는 판단력이 온전한 사람이에요." 이한결이 창문을 보며 말했다. "법적으로 결함이 없어요."

"그래서요?"

이한결이 돌아봤다. 창문 쪽에서 흘러드는 빛이 역광으로 깔려 표정을 읽기 어려웠지만, 오세린은 읽었다. 볼펜을 쥔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사가 없었다. 이한결이라는 사람은 감정이 격해질수록 문장이 짧아지고, 그것보다 더 격해지면 말 자체가 사라졌다. 지금은 말이 없는 상태였다.

그건 짧음보다 위였다. 말이 없다는 건 아직 뭔가를 결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한결 씨. 한 가지만요."

오세린이 태블릿을 들고 일어났다. 책상을 돌아 이한결의 옆에 섰다. 나란히 창밖을 보는 형태가 됐다. 어색했다. 그래서 오히려 말하기 쉬웠다. 마주보면 할 수 없는 말들이 있었다. 나란히 서서 같은 것을 보면서 하는 말들이.

"이 구조가 어머니 사건이랑 같다면, 저는 그 구조가 어떻게 뚫리는지도 알아요." 오세린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단단한 것이 느껴졌다. 과시가 아니었다. 오래 간직해온 것을 꺼내는 소리였다. "2001년에 못 막은 게 아니라, 2001년엔 그 방법이 없었던 거예요. 지금은 있어요."

이한결이 오세린을 봤다.

"어떻게요."

"강선오 유언장이 '미래를 공증'하는 구조라면, 그 미래가 실행되는 순간 이전에 개입해야 해요. 72시간 조항 기억해요? 세션이 끝나면 72시간 안에 지분이 움직여요. 근데 그 움직임에는 반드시 경유하는 법인이 있어요."

태블릿 화면이 다시 켜졌다. 오세린의 손가락이 문서 하단을 짚었다. 조그만 글씨로 박힌 법인명이었다. 이한결이 눈을 가늘게 뜨고 들여다봤다.

"JK홀딩스 산하 특수목적법인—SPC예요. 여기를 경유하지 않으면 지분 이전이 불가능해요. 법적으로. 구조적으로. 이게 막히면 전체가 막혀요." 오세린이 잠깐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손가락이 옆으로 밀렸다.

"이 SPC, 설립 등기일이 2001년이에요."

태블릿 화면 위로 겹쳐지는 두 사람의 손 그림자, 2001년이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빛나는 클로즈업

이한결이 화면을 봤다. 시선이 숫자 위에서 멈췄다.

2001.

같은 해였다. 어머니 사건과. 그리고—이한결은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생각이 먼저 도착했다.

볼펜이 딸깍, 딸깍, 세 번 울렸다. 손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동혁."

이한결의 목소리가 낮게, 천천히 깔렸다. 감정 없이 또렷했다. 그 또렷함이 오히려 감정보다 무거웠다.

"제 아버지가 창업에서 지워진 해."

오세린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끄덕일 수 있는 공기가 아니었다. 이 순간을 섣불리 확인하면 뭔가가 깨질 것 같은, 그런 종류의 침묵이었다.

"SPC 설립 당일, 등기에 이름이 올라간 인물이 둘이에요. 강선오—"

"그리고."

"공증 담당 변호사."

이한결의 눈이 좁아졌다. 미세하게. 그러나 오세린은 보았다.

"그 변호사, 성함이."

"지금은 법무법인 태산의 대표예요." 오세린이 똑바로 말했다. 여전히 창밖을 보면서. "그리고 나준혁 씨가 모든 법적 자문을 맡기는 곳이에요. 오늘 여기 왔던 그 남자가."

사무소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냉장고 소음도 없었다. 도로 위 차 소리도 없었다. 형광등도 더 이상 깜박이지 않았다. 빛이 그냥 있었다. 파르스름하고, 고요하게.

이한결이 책상으로 돌아와 앉았다.

서랍을 열었다. 강선오와의 첫 세션부터 쓴 노트가 나왔다. 표지가 닳아 있었다. 자주 꺼내봤다는 흔적이 아니었다. 서랍 안에서 다른 것들에 쓸렸다는 흔적이었다. 이한결은 그것을 펼치지 않고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오세린 씨."

"왜요."

"지금 저한테 팀을 제안하는 거예요."

오세린이 잠깐 멈췄다. 돌아와 자기 자리에 앉으면서 빈 캔커피를 손가락으로 한 번 튕겼다. 깡. 하는 소리가 새벽 사무소에 짧게 울렸다.

"민법상으로요?" 농담이 돌아왔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농담의 껍데기 안에 다른 것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공동불법행위 예방을 위한 협력 관계예요. 개인 감정은 없어요."

"거짓말."

오세린의 손이 멈췄다.

이한결이 노트를 폈다. 맨 첫 페이지. 강선오가 처음 사무소 문을 두드리던 날, 이한결이 혼자 적어둔 메모였다.

의뢰인 생존 상태. 유언 사유 불명확. 수락 여부 보류.

글씨가 평소보다 눌려 있었다. 볼펜 끝이 종이를 누를 때 힘이 들어간 것이었다. 이한결은 그 글씨를 한 번 내려다보고, 오세린을 봤다.

"어머니 사건을 막으려는 감정이 없으면, 새벽 세 시에 자판기 캔커피 들고 여기 안 왔어요."

오세린이 잠시 이한결을 봤다. 반박할 말을 찾는 것 같았다. 찾지 못했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작고 날이 선 웃음이었다. 진짜 웃음이 어딘가에 있는데 그 앞에 날 세운 것을 먼저 꺼내는, 그런 종류의 웃음.

"그거 민법상 자기 사무소 무단침입이잖아요, 지금."

"문 열어뒀어요."

"…선의취득이라니까요."

둘 사이의 공기가 달라졌다. 여전히 어색하고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방향은 같아졌다. 같은 쪽을 향해 있다는 것—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있었다.

이한결이 노트 빈 페이지를 폈다. 볼펜을 집었다.

"SPC 경유 구조, 뚫는 데 뭐가 필요해요."

오세린이 태블릿을 들었다.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화면이 켜지는 속도가 달랐다. 뭔가를 결정한 사람의 속도였다.

"두 가지요. 첫째, SPC가 강선오 유언장의 지분 이전 과정에 실제로 개입한다는 거래 기록. 강선오 세션이 두 번 더 있으면 그걸 유언장 안에서 역으로 끌어낼 수 있어요—의뢰인이 직접 구조를 설명하게 유도하면서요."

"유도는 내 방식이 아니에요."

"기록은 대필사 방식이잖아요." 오세린이 이한결을 봤다. "말하는 대로 받아 적는 거잖아요. 근데 질문의 순서는 대필사가 정하잖아요."

이한결이 볼펜을 잠깐 내려다봤다. 그 말이 맞았다. 틀린 구석이 없었다. 그게 더 불편했다.

"계속해요."

"둘째." 오세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농담의 여지가 완전히 사라진 눈이었다. "나준혁이 법무법인 태산을 통해 이 구조를 알고 있는지—모르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해요. 공범이면 막아야 하고, 피해자면."

"끌어들여야 하고."

"네."

이한결이 적었다. 오세린이 설명하는 속도에 맞춰, 빠르고 정확하게. 손목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긁히는 소리. 멈추는 소리. 다시 시작하는 소리. 그 소리가 새벽 사무소를 채웠다. 빈 곳을 채우는 소리였다.

새벽 사무소, 빈 책상 위에 나란히 놓인 태블릿과 펼쳐진 노트, 두 잔의 캔커피가 만들어낸 자국

오세린이 문득 물었다.

"이한결 씨는 왜 이 직업 했어요. 진짜로."

이한결이 적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물어볼 필요 없어요."

"저야 변호사 때 공증이 얼마나 잔인하게 쓰이는지 봤으니까 이유가 있죠." 오세린이 캔커피를 만지작거렸다. 손가락이 캔 옆면을 눌렀다가 놓았다. "근데 대필사는—유언장 쓰는 일이잖아요. 매일 사람이 죽는 걸 받아 적는 일이잖아요."

볼펜이 멈췄다.

딸깍. 딸깍. 세 번째.

"…아버지 유언이 뭐였는지."

이한결이 마침내 볼펜을 내려놨다. 소리 없이 내려놨다.

"못 받아 적었어요. 제때."

오세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은 말을 고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냥 듣고 있었다.

"그 마지막 말이 뭐였는지 영영 모르는 채로 있어요." 짧게 끊었다. 문장이 끝났는데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자리가 있었다. "그래서요."

오세린이 캔커피를 집어들었다.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뭔가를 말하려다가 삼켰다. 농담도, 법률 용어도 꺼내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것이라는 걸, 이한결은 알 것 같았다.

그냥.

"알겠어요."

두 글자였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걸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두 사람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알았다.

오세린이 떠난 건 새벽 네 시가 넘어서였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단호하지 않았다. 조심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닫히는 소리였다. 이한결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노트를 들여다봤다. 오늘 적은 것들. 나준혁이 남기고 간 침묵. 오세린이 펼쳐놓은 세 개의 문서. SPC. 2001년. 법무법인 태산.

그리고—강선오.

강선오가 처음 사무소에 들어왔을 때,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문을 밀었다. 노크는 답을 기다리는 행위였다. 강선오는 답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들어왔다. 이한결은 그 사실을 당시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은 달랐다.

이 유언장은 과거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공증하고 있다.

이한결이 처음으로 혼자 이 문장을 입 밖에 냈다. 소리가 없었다. 입술만 움직였다. 새벽 네 시의 사무소에서 소리 없이 발화된 문장. 그것이 공기 속에서 무언가와 닿는 것 같았다.

강선오는 알고 있었다. 이한결이 아버지 유언을 받아 적지 못한 것을. 10년 전 일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찾아와 대필을 맡겼다. 이한결이라는 사람을 특정해서. 이 사무소로.

왜.

그 질문이 처음 생긴 게 아니었다. 첫 세션 이후로 계속 있었던 질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게가 달랐다. 2001년이라는 숫자를 알기 전과 안 후, 질문의 무게가 달랐다.

이한결은 노트를 닫았다. 책상 서랍 가장 안쪽에 밀어넣었다. 서랍을 닫으면서 손가락이 멈췄다. 닫지 않아도 됐다.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닫았다. 습관이었다. 중요한 것은 어딘가에 넣어두는 습관.

그리고 처음으로 강선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받지 않을 줄 알면서 걸었다. 새벽 네 시에 받는 사람이라면 강선오가 아니었다. 그러나 걸었다. 이유는—설명하기 어려웠다. 확인의 방식이 사람마다 달랐다. 이한결의 방식은 닿지 않을 것을 향해 손을 뻗고, 그래도 뻗었다는 사실을 기록해두는 것이었다.

어두운 사무소 안, 홀로 불 켜진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 화면에 '전화 중' 표시가 떠 있는 정물 컷

이한결은 전화를 끊었다.

노트를 다시 꺼냈다. 빈 페이지를 폈다. 펜을 집었다.

그리고 썼다.

세션 3. 예정.

강선오가 이동혁의 유언을 알고 있다면—

그는 그 유언의 내용도 알고 있을 수 있다.

볼펜이 멈췄다.

다음 문장이 오지 않았다. 이한결은 기다렸다. 그 다음 문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그 문장을 쓸 수 있는 상태인지를 확인하는 것처럼. 손끝이 펜 끝을 쥔 채 정지했다.

딸깍.

딸깍.

세 번째를 누르는 순간—

전화기가 울렸다.

이한결의 손이 멈췄다.

강선오가 아니었다.

화면이 켜졌다. 진동이 책상 위에서 울렸다. 이한결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한 글자씩 들어왔다. 발신자 이름이.

이동혁.

이한결의 숨이 멈췄다.

아버지 이름이었다. 10년째 지우지 못한 연락처. 지우려고 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여러 번 열었다. 삭제 버튼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나 누르지 못했다. 지우면—그 번호가 세상 어딘가에 없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번호가 사람은 아니었다. 알았다. 그러나 지우지 못했다.

전화가 올 리 없는 번호였다.

10년 동안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는 번호였다.

그런데 울리고 있었다.

이한결은 화면을 봤다. 진동이 계속됐다. 번호가 아니라 이름이 떠 있었다. 저장할 때 직접 입력한 이름. 이동혁. 두 글자. 그 두 글자가 새벽 사무소의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차갑고 선명하게.

받아야 하는가, 받지 말아야 하는가—

그 질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손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AD
📣 멤버십 가입하면 광고가 사라지고 모든 회차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어요. 멤버십 보기 →

💬 댓글 0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하세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