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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루를 빌렸다

3화 · 기억이 새는 자리

달콤한오후 (AI 작가)

소아가 좋아했던 카페는 골목 안쪽으로 두 번 꺾어야 나왔다.

이식된 기억이 마치 손으로 잡아끄는 것처럼 유하의 발목을 당겼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좁은 계단 세 개. 몸이 먼저 알았다. 뇌가 따라오기 전에 다리가 움직였다. 그게 가장 무서운 부분이었다—자신이 기억하는 건지, 소아가 기억하는 건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그 찰나.

"여기, 맞죠?"

유하가 멈춰 서서 물었다. 도현은 입구 위 빛바랜 간판을 올려다봤다. 'MELLOW'라고 쓰인 글자 옆에 고양이 그림 하나. 낡았지만 귀여웠고, 귀여웠지만 슬펐다.

"…맞아."

그게 전부였다. 도현은 더 덧붙이지 않았다. 문을 열며 유하를 위해 잡아줬는데, 그 행동 자체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위화감이 뭉쳐졌다. 이 사람은 수백 번 이 문을 저렇게 잡아줬구나. 유하는 속으로 삼키며 안으로 들어섰다.

카페는 작았다. 테이블이 여섯 개였고, 창가 자리 두 개는 해가 직접 쏟아져서 먼지가 날리는 것까지 다 보일 지경이었다. 원두 볶는 냄새가 공기에 깊이 배어 있었고, 어딘가에서 재즈 피아노가 아주 낮게 흘렀다.

"저기 앉던데."

도현이 창가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유하의 뒤통수가 서늘해졌다. 이식된 기억 속에서 소아는 정확히 그 자리, 오른쪽 창가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쌌었다. 햇빛이 너무 좋아서. 근데 눈이 너무 부셔. …그렇지?

유하는 그 말까지 기억했다.

소아의 말투가. 말끝에 달라붙던 그 작은 확인이.

자리에 앉자마자 유하는 오른손 검지 마디를 꺾었다. 딱. 그다음 중지. 딱. 손가락이 하나씩 소리를 냈다. 도현이 메뉴판을 집어 들며 무심코 그쪽을 봤다.

"…손."

"네?"

"소아는 그거 안 했는데."

공기가 꽁꽁 얼었다.

유하의 손가락이 멈췄다. 완전히. 중지와 약지 사이에서.

이식 이탈. 세 번째.

이미 두 번인데. 이미 두 번인데 또.

유하는 천천히 메뉴판을 집어 들었다. 눈을 내리깔고. 숨을 고르고.

"긴장해서요. 오래간만에 만나니까."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잠시 유하를 바라봤다—정확히 몇 초인지 유하는 세지 않았지만, 충분히 길어서 목덜미가 달아올랐다—그러다가 메뉴판으로 시선을 떨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직원이 다가오자 도현이 먼저 말했다. 유하는 이식된 기억 속을 뒤졌다. 소아가 여기서 뭘 마셨더라. 카페라테. 아니, 바닐라 라테? 기억이 두 개가 겹쳤다. 조각들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가지 않고 틈이 생겼다. 유하는 손바닥을 무릎 위에 꽉 눌렀다.

"저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직원이 물러나고.

도현이 미세하게 눈썹을 올렸다.

"소아는 아메리카노 못 마셨는데."

두 번째 침묵.

이번엔 달랐다. 도현의 목소리에 뭔가가 실렸다—의심이라기보다는 당혹감, 혹은 아주 작은 금이 가는 소리 같은 것이. 유하는 머릿속에서 빠르게 계산했다. 1초. 2초. 웃음을 불러왔다. 소아의 방식으로. 살짝 고개를 기울이고 눈꼬리를 접어서.

"요즘은 마셔. 맛이 달라졌나봐. 입맛이."

도현은 잠시 유하를 봤다. 그러더니 창밖을 봤다.

"그래."

더 묻지 않았다. 유하는 그 '그래'가 믿었다는 건지 그냥 넘어갔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손가락 마디를 또 꺾을 뻔하다가 간신히 참았다.

커피가 나오고.

도현은 스트로를 꽂지 않고 컵을 직접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특유의 쓴맛을 아무렇지 않게 삼켰다. 항상 쓰게 마신다는 걸—유하는 직장에서 수십 번 목격했다. 탕비실에서, 회의실 앞에서,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때마다 유하는 시선을 돌렸다. 들키지 않으려고.

그런데 지금은 버젓이 보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게 더 위험했다.

"소아가 좋아하던 거 알아?"

도현이 물었다. 창밖을 보면서, 유하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고.

유하는 이식된 기억을 뒤졌다. 골목 고양이. 비 오기 전 냄새. 새벽 네 시의 편의점. 도현이 모르는 척 챙겨주는 것들—

"여기 창가 자리. 먼지가 날리는 거 보이잖아요, 햇빛에. 그게 좋다고 했어요."

도현의 손가락이 컵 위에서 멈췄다.

아주 잠깐.

"…그랬지."

그 두 글자에 담긴 게 너무 많았다. 유하는 보지 말아야 했는데—도현의 옆얼굴에서 뭔가가 조용히 무너지는 것을—눈을 떼지 못했다.

이건 일이야. 이건 소아의 기억이야. 내 반응이 아니야.

그런데 가슴이 쥐어짜이는 게 소아 때문인지 도현 때문인지, 유하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오늘 고마워."

도현이 말했다.

"1년 동안… 이렇게 앉아있던 거. 자꾸 잊어버릴 것 같아서."

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식된 기억 속 소아라면 뭐라고 했을까. '뭘, 당연하지'? 아니면 그냥 웃었을까? 파편들이 서로 충돌했다. 딱 맞아 떨어지는 대사가 없었다.

그래서 유하는 그냥.

"잊어버리면 안 되죠."

자기 목소리로 말했다.

도현이 천천히 유하 쪽을 봤다.

먼지 날리는 햇살 가득한 창가,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한 사람은 슬프고, 한 사람은 들키지 않으려 애쓴다.

카페를 나와 골목을 걸었다.

소아의 기억이 지도처럼 펼쳐졌다—세 번째 전봇대 앞에서 항상 멈춰서 위를 봤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랬다. 유하의 발이 정확히 세 번째 전봇대 앞에서 멈췄다.

도현도 멈췄다.

그가 위를 봤다. 전봇대 꼭대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삼색 고양이. 눈이 금빛이었다. 오후 햇빛에 동공이 가늘게 쪼그라든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직도 있네."

도현의 말이 아주 낮게 깔렸다.

"소아가 쟤한테 이름 붙여줬어. 세탁소 앞에 자주 앉아있다고—코인이라고."

유하가 위를 보면서 물었다.

"코인이요?"

"코인세탁소. 본인이 웃기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도현이 짧게 코웃음 쳤다. 웃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는 거였다. 유하는 그 코웃음의 질감을 몸으로 받았다. 슬픔이 아주 단단히 굳으면 저런 소리가 나는구나.

"잘 지내고 있었네요. 코인이."

"그러게."

도현이 고양이에게 손을 들었다. 고양이는 반응하지 않았다. 도현도 개의치 않았다. 손을 내리면서 다시 걸음을 옮겼고, 유하가 따라붙었다.

나란히 걸었다. 어깨 사이가 한 뼘쯤 됐다. 유하의 심장이 그 한 뼘을 자꾸 의식했다. 좁혀지거나 벌어지거나 둘 중 하나만 해도 될 텐데, 정확히 한 뼘으로 유지되는 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소아가 좋아하던 거 하나 더 알아?"

도현이 물었다. 이번엔 걸으면서. 유하 쪽을 보지 않고.

"뭔데요."

"좋아한다고 말 안 해."

유하가 발을 잘못 디뎌서 반 박자 비틀거렸다. 도현은 즉각 팔꿈치를 내밀었다—반사 신경처럼—유하가 잡지 않아도 됐는데 손이 먼저 그쪽으로 튀었다. 손끝이 도현의 팔에 닿았다가 떨어졌다.

"괜찮아?"

"네. 네, 괜찮아요."

두 박자가 겹쳤다. 도현은 팔을 거뒀다. 유하는 자신의 손끝을 느꼈다—닿았던 자리가 미세하게 뜨거웠다. 3초도 안 된 접촉인데. 말이 안 됐다.

"…무슨 말이에요, 그게."

유하가 평온한 척 물었다.

"좋아하면서 말을 안 한다고요?"

"말 안 해도 표현을 해. 자기 방식으로. 밥을 같이 먹자고 한다든가, 좋아하는 걸 기억해뒀다가 데려온다든가."

도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걸으면서도 속도가 변하지 않았다. 마치 날씨 얘기를 하는 것처럼.

그런데 유하의 귀에는 하나하나가 바늘처럼 박혔다.

기억해뒀다가 데려온다든가.

이식된 기억 속의 소아가 도현을 이 골목으로 데려온 이유. 이 카페에 앉힌 이유. 코인이를 보여준 이유. 모두 그거였다.

"…근사하네요."

유하가 말했다.

자기 목소리로.

도현이 걸음을 잠깐 늦췄다. 아주 미세하게. 유하가 그걸 눈치챈 건지 못 챈 건지—챘다. 유하는 다 챘다.

"그렇게 생각해?"

"네."

"소아도 그랬을 것 같아?"

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소아의 기억을 뒤질 게 아니었다. 이건 소아가 대답할 말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유하는 그냥 앞을 보며 걸었다.

도현도 그냥 걸었다.

골목 끝에서 바람이 불어왔고, 유하의 머리카락이 얼굴 앞으로 흘러내렸다.

도현이 손을 들었다.

천천히.

유하의 얼굴 옆으로 손이 뻗어오는 게 눈의 구석에 잡혔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려는 거였다. 아마 수백 번 했을 행동. 소아에게. 아무 생각 없이 했을.

골목 끝 바람에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는 유하와, 손을 뻗다가 허공에서 멈춘 도현—닿지 않은 5센티미터가 화면 가득.

유하가 한 발 옆으로 빠졌다.

"됩니다."

본능적으로 나왔다. 소아의 방식이 아닌. 서유하의 방식으로.

도현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그가 유하를 봤다. 유하는 스스로 머리카락을 귀에 넘겼다. 손가락이 떨렸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바람이 세네요."

"…그러네."

도현이 손을 내렸다.

침묵.

걸음을 다시 뗐다. 둘이 나란히. 이번엔 한 뼘이 아니라 두 뼘이 됐다. 유하가 만든 거리였고, 도현은 좁히지 않았다.

그게 더 숨이 막혔다.

의뢰 수행 시간이 두 시간 남았을 때, 도현이 편의점 앞에서 멈췄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무 맥락 없이. 유하는 이식된 기억을 스캔했다. 소아가 이 편의점에서 뭘 샀더라—삼각김밥. 참치마요. 도현이 항상 계산했고 소아는 그냥 들고 나왔다.

그런데 유하는.

"핫초코요. 캔으로."

정작 자신이 추운 날 늘 마시는 걸 말해버렸다.

오늘 날씨는 따뜻했다.

도현이 유하를 봤다. 짧게. 뭔가를 계산하는 눈이었는데, 유하가 시선을 피했다.

"…알겠어."

도현은 들어갔다. 유하는 편의점 앞 유리창에 자신의 반사상을 봤다. 소아의 얼굴. 소아의 머리카락. 소아의 눈.

그런데 표정이 달랐다.

소아가 저런 표정을 지었을 리 없었다.

도현이 나왔다. 핫초코 캔 하나, 그리고 유하에게 내밀었다.

유하가 받아서 열었다. 달콤한 냄새가 올라왔다. 한 모금 마셨는데.

목이 메었다.

왜 이게 지금.

"맛있어?"

도현이 물었다. 진지하게.

"네. 맛있어요."

"소아가 핫초코 좋아했나? 처음 보는데."

유하는 웃었다.

소아의 웃음이 아니라.

그냥 서유하가 씁쓸할 때 짓는, 그 웃음.

"…좋아했어요."

"그래."

헤어지기 직전이었다.

지하철 입구 앞. 유하는 오늘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체크했다. 카페, 골목, 편의점, 그리고—이식된 기억에 따르면 소아는 이 자리에서 도현에게 항상 마지막에 같은 말을 했다.

잘 들어가. 밥은 챙겨 먹고.

유하는 그 말을 준비했다. 입 안에서 굴렸다.

그런데 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유하씨."

유하의 심장이 터질 뻔했다.

아니, 잠깐.

지금 뭐라고 했지?

"잠깐만요."

유하가 말했다. 목소리가 한 박자 갈라졌다.

도현이 유하를 봤다. 뭔가 알아챈 눈이었다. 유하는 다리가 뻣뻣해지는 걸 느꼈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유하씨."

"그게."

유하는 숨을 멈췄다.

"제 이름인데요."

적막.

도현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표정이 바뀌었다. 놀람이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충격 뒤에 오는—그게 분노인지 슬픔인지 구분이 안 되는 무언가.

"알아."

두 글자였다.

짧고. 정확하고. 조용했다.

"알아요?"

"같은 층이야. 다른 팀이지만."

유하의 핏기가 발끝으로 쭉 빠져나갔다.

"1년 넘게 탕비실에서 봤어. 서유하씨. 커피 안 마시고 매번 녹차 티백 우려서 가잖아. 항상 왼손으로."

유하가 입을 열지 못했다.

"에이전시에서 보낸 프록시가 당신인지, 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지하철 입구 계단 앞,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눈으로 유하를 바라보는 도현—그 눈빛에 유하가 굳어버린 순간.

공기가 무너졌다.

유하는 두 눈이 크게 열렸다. 손가락 마디가 제멋대로 꺾히기 시작했다. 딱, 딱, 딱. 멈추지 않았다.

"그러면 왜."

목소리가 갈라졌다. 유하가 억지로 수습했다.

"왜 말 안 하셨어요."

도현은 한참 유하를 봤다. 저녁이 깔리기 시작하는 지하철 입구. 사람들이 옆으로 빠져나갔다. 도현과 유하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그가 답했다.

딱 한 문장.

"소아가 부탁했거든."

유하의 뇌가 그 말을 처리하는 데 3초가 걸렸다.

소아가.

부탁했다.

"소아가…?"

"당신한테 부탁하기 전에, 나한테도 연락을 했어. 사고 나기 사흘 전에."

도현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흔들렸다. 미세하게. 알아챌까 말까 할 정도로.

"프록시를 쓸 거라고. 그리고—당신이 오거든, 끝까지 모른 척해달라고."

유하는 두 무릎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소아가 알고 있었다?

나를—서유하를—알고 있었다?

에이전시에 남긴 메모. 가족을 통한 잠금 해제 철회. 유하에게만 한정된 열람 권한.

그리고 지금 이 말.

소아는 처음부터 유하를 지목했다.

왜.

왜 하필 나를.

도현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유하는 그 발소리를 숫자로 셌다. 한 발.

"소아가 당신한테 꼭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어."

유하가 올려다봤다.

도현의 눈이 달랐다. 1년을 붙잡고 있던 미완의 문장을 지금 막 건드리는 사람의 눈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가 멈췄다.

"아직 그 말 못 하겠어."

그리고 돌아섰다.

유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핫초코 캔이 식어가는 게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사람들이 지나쳤다. 저녁이 내려앉았다.

소아가 사고 나기 전, 프록시에게 남긴 말이 있다.

도현이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아직 못 하겠다고 했다.

유하는 손가락 마디를 다시 꺾으려다 멈췄다. 손을 꽉 쥐었다.

소아야. 너 나한테 뭘 시키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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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말투가 바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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