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말투가 바뀌었어
손이 먼저였다.
유하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도현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목을 감아쥐었다. 느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프지도 않았다. 딱 그 중간—손목에서 맥박이 뛰는 자리를 정확히 짚어내는 온도로.
"소아야."
낮고 조용한 목소리였다. 그런데 어쩐지 주변의 모든 소리를 꺼버리는 것처럼 들렸다. 카페 안을 채우던 재즈 멜로디도, 에스프레소 머신 소리도, 창 너머로 지나가는 차 소리도. 전부 사라지고 그 한 마디만 남았다.
"너 말투가 바뀌었어."
유하는 굳었다.
뼈부터 굳었다. 무릎이, 어깨가, 목이. 뒤이어 폐가 오므라들었다. 숨을 쉬려면 의식적으로 근육을 움직여야 한다는 걸 이 순간 처음 알았다. 이식된 김소아의 기억이 이 상황에 아무런 답도 내밀지 않았다. 기억은 유하에게 소아의 웃음을 주었고, 좋아하는 음료를 주었고, 자주 걷던 골목의 냄새를 주었지만—지금 이 순간을 위한 대본은 없었다.
손목에서 심장 소리가 났다.
'들켰나.'
아니, 아직 모른다. 말투가 이상하다는 것과 '이 사람이 소아가 아니다'는 것은 다르다. 도현이 어떤 의미로 저 말을 꺼냈는지, 유하는 빠르게 역산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인가. 아니면 진짜 이상함을 포착한 것인가. 표정을 읽어야 하는데 고개가 올라가지 않았다.
올려다보는 데 0.3초가 걸렸다. 그 짧은 시간이 구렁텅이처럼 길었다.
도현의 눈은 그녀를 정면으로 보고 있었다. 의심도 아니고 확신도 아닌, 그 어중간한 어딘가.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유리창에 이마를 댄 채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처럼—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냥 지나치지도 못하는 그 표정.
유하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목소리가 약간 쉬었다. 소아의 말투가 아니었다. 유하 자신의 목소리였다.
도현이 한 박자 느리게 반응했다. 손의 힘이 살짝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니, 착각이었나. 유하는 태연하게 시선을 흘려보내며 손을 빼냈다. 자연스럽게, 마치 뭔가 보고 싶은 게 있어서 돌아선 것처럼.
"요즘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지, 뭐."
소아의 말끝 버릇을 빌렸다. "…그렇지?" 대신 "뭐"로 끝맺은 건 실수였다. 유하는 속으로 자기 이마를 짚었다.
도현이 짧게, "응," 하고 답했다.
그 '응' 하나가 이상했다. 납득했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전혀 알 수 없는 발성이었다. 유하는 아메리카노 잔을 집어 들며 창밖을 봤다. 오후 햇살이 유리창에 기울어지면서 테이블 위에 직사각형 빛 조각을 올려두었다. 먼지 몇 알이 그 안에서 천천히 헤엄쳤다.
숨을 참은 걸 들키지 않으려고 유하는 아주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이후 이십 분 동안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고역이었다.
말을 하면 반응을 줄 수 있다. 웃거나, 끊거나, 화제를 돌리거나. 하지만 도현은 그냥 커피를 마셨다. 항상 쓰게 마신다는 걸 유하는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회사에서, 같은 층 다른 팀의 자리에서 훔쳐보았기 때문에. 설탕도 시럽도 없이 블랙만 담긴 컵을 집어들 때 그 특유의 무심한 동작을 유하는 어디선가 외워두고 있었다. 언제 외웠는지도 모른 채.
지금 그 사람이 자기 앞에 앉아 있었다.
소아의 하루를 살아내는 지금, 소아의 기억 속에 있는 남자로서가 아니라—그 남자 자체로.
'이러면 안 된다.'
머릿속에서 차민재의 목소리가 울렸다. 프록시 에이전시 선임, 누구보다 이 일의 균열을 잘 아는 사람. 의뢰인의 하루 안에서 프록시가 자기 감정을 끌고 들어가기 시작하는 순간—그게 이탈의 시작이라고 그는 항상 말했다. 담담하게, 마치 날씨 얘기 하듯.
"감정이입하면 기억 이식이 흔들려. 네 반응이 의뢰인의 것과 섞이면, 유하야, 그게 진짜 사고야."
유하는 잔 위에 두 손을 가지런히 올려두고 마디를 꺾었다.
첫 번째 손가락. 두 번째.
"그만해."
도현의 목소리였다. 낮고 조용한, 아까와 같은 톤.
유하가 굳었다. 또.
"손마디 꺾는 거."
도현이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소아가 원래 그런 거 안 했거든."
정적이 흘렀다. 카페 재즈 멜로디가 오늘따라 지독히 쾌활하게 울렸다.
유하는 두 손을 천천히 무릎 위로 내렸다. 손바닥이 식었다.
"…몰랐어."
그 대답이 얼마나 빈약한지, 유하는 알고 있었다. 소아가 그런 습관이 없다는 건 이식된 기억 어디에도 없었다. 이식된 기억에는 소아의 적극적인 기억만 담기기 때문이다—소아가 중요하게 기억한 것들. 자신의 부재, 자신에게 없는 것은 기억 안에 없다.
도현이 그걸 알 리 없다.
그런데 왜 저렇게 보고 있지.
"무섭게 보지 마요."
유하가 먼저 말했다.
도현이 눈을 깜빡였다. "무섭게 봤어?"
"그렇게 뚫어지게 보면."
"아." 잠깐의 침묵. "미안."
그리고 또 침묵.
유하는 창밖을 봤다. 도현은 시선을 내렸다. 둘 사이의 공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유하는 그 간극을 메워야 할지, 그냥 놔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소아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기억이 답했다. 희미하게, 수면 아래에서 파문을 만드는 것처럼. 소아는 침묵을 먼저 깨는 사람이었다. 어색함을 참지 못하고, 늘 먼저 건드렸다. "도현아, 있잖아." 아니면 "나 오늘 뭔가 이상한 것 같지?" 말끝에 항상 "그렇지?"를 달았다. 확인받고 싶었던 거라고, 유하는 기억을 흡수하면서 느꼈다. 소아는 부드러웠지만 혼자선 무서워했다.
지금 유하는 소아를 연기하면서 소아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그게 가장 위험한 종류의 균열이었다.
카페를 나설 때 도현이 문을 먼저 밀었다. 유하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잡아둔 문 사이로 오후 빛이 쏟아졌다. 유하는 그 빛을 밟고 나가며 찰나 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왜 저렇게 보는 거야.'
가볍고 무해한 눈빛이었다. 그냥 문을 잡아준 사람의 눈빛. 그런데 어쩐지 질문이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유하는 시선을 떨어뜨리고 먼저 걸었다.
"어디 가고 싶어?"
도현이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소아의 기억을 뒤졌다. 이 시간대, 이 골목에서 소아가 자주 걸었던 방향. 카페에서 나오면 왼쪽으로 꺾어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작은 서점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가게, 주인이 늘 졸고 있는. 소아는 거기서 시집을 한 권씩 사곤 했다.
"서점."
도현이 고개를 돌렸다. "서점?"
"응. 그냥 가고 싶어서."
도현이 한 박자 뒤에 "그래"라고 했다. 뭔가 떠오른 것 같은 목소리였다. 유하는 묻지 않았다.
서점 앞에 도착했을 때, 유하는 진짜로 발이 멈췄다.
이건 기억이 아니었다.
서점이 없었다. 아니, 간판은 있었다. '문장들' 이라고 쓰인 낡은 파란 간판. 그런데 유리문 안이 어두웠다. 안에 불이 꺼져 있었고, 문에는 손바닥만 한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사정이 생겨 당분간 쉽니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아의 기억에는 이 메모가 없었다.
유하는 메모를 읽으며 멈춰 섰다. 도현이 그 옆에 섰다.
"알고 있었어요?"
유하가 물었다. 순간 깨달았다. 소아의 말투였다. '알고 있었어?' 가 맞다. '알고 있었어요?' 가 아니라.
도현이 유하를 봤다.
유하는 메모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응."
도현이 짧게 답했다. "문 닫은 지 석 달 됐어. 주인 할아버지가 편찮으신 것 같던데."
잠깐 침묵.
"소아야."
또 그 목소리.
유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너 오늘 조사라도 해온 거야?"
농담처럼 말했는데, 농담이 아니었다. 유하는 그걸 알아들었다. 도현의 목소리에는 날이 없었다. 그런데 꿰뚫었다. 부드러운 것들이 가장 깊이 박힌다는 걸, 프록시 일을 하면서 배웠다.
유하가 고개를 들었다.
"그럴 리가요."
웃었다. 소아의 웃음이었다.
도현이 유하의 얼굴을 잠시 보다가 시선을 떼었다. 그게 전부였다. 더 파고들지 않았다. 돌아서서 "다른 데 가자"고 했다.
유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사람은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지.
소아의 기억 어디에도 도현의 속에 대한 답은 없었다.
골목을 꺾어 나온 뒤 도현이 걸음을 멈췄다.
편의점이었다. 어제—아니, 소아의 기억 속의 어느 날—자주 들렀다는. 유하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핫초코. 항상 핫초코. 소아의 기억이 건네준 몇 안 되는 따뜻한 것 중 하나.
도현이 유하를 보지 않고 "들어갈게요, 잠깐만" 하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유하는 밖에서 기다렸다.
유리문 너머로 도현이 보였다. 음료 냉장고 앞을 지나치더니 라면 코너를 잠깐 봤다가 다시 돌아갔다. 뭘 살지 결정 못 한 사람처럼. 결국 음료 코너 앞에 멈추더니 손을 뻗었다.
캔 두 개를 집었다.
나오면서 하나를 유하에게 내밀었다.
핫초코였다.
"감사해요."
받으며 유하가 말했다. 소아의 말투였다. 잘 들어맞았다. 흔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도현이 말했다.
"좋아하는 거 맞지?"
"네."
"소아가 이거 좋아했는데."
과거형이었다.
유하가 굳었다.
'소아가 이거 좋아해.' 가 아니라, '좋아했는데.'
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자기 캔—블랙커피—을 땄다. 마셨다. 쓸 게 분명한 얼굴로, 그냥 마셨다.
유하는 천천히 핫초코를 땄다.
달콤한 냄새가 코를 찌를 것 같았는데, 이상하게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소아가 좋아했는데.'
그 말이 머릿속에 반복됐다. 유하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소아라면 이 말을 어떻게 받아쳤을까. 기억을 훑었다. 소아는 과거형으로 말하는 도현에게 의아해했을까. 아니면 그냥 웃어넘겼을까.
기억이 답하지 않았다.
"왜 과거형이에요."
유하가 말했다.
도현이 시선을 돌렸다.
"나 지금 여기 있잖아요."
그 말을 내뱉고 나서야 유하는 깨달았다. 그건 소아의 말이 아니었다. 소아가 할 것 같은 말이었지만—그 뉘앙스가 달랐다. 소아는 저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좀 더 가볍게, 좀 더 장난스럽게 "야, 내가 귀신이야?"라고 했을 것이다.
유하는 너무 진지하게 받아쳤다.
도현이 유하를 봤다.
길게.
오래.
"맞네."
한 마디 하고는 다시 전방을 봤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유하는 그 '맞네' 두 글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랐다. 네가 여기 있다는 게 맞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것이 맞다는 건지.
손이 떨렸다. 유하는 핫초코 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헤어지기 직전이었다.
골목 끝, 버스 정류장 앞. 소아의 기억에 따르면 도현과 자주 여기서 헤어졌다. 각자의 방향으로 버스를 탔다. 마지막 인사를 여기서 했다.
오늘도 그래야 했다.
유하는 "이만 가볼게요"라고 말하려 입을 열었다.
도현이 먼저 말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돼?"
유하가 입을 다물었다.
도현이 그녀 앞에 섰다. 역광이라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늦은 오후 햇살이 그의 뒤에서 번졌다.
"소아가—"
멈췄다.
도현이 입술을 한 번 꽉 눌렀다가 뗐다.
"소아가 나한테 마지막으로 하려 했던 말. 너 알아?"
유하의 심장이 한 박자 쉬었다.
이식된 기억 속 어딘가에 그 답이 있었다. 유하는 수신호처럼 기억을 더듬었다. 이식 당시 받아낸 파편들, 소아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런데 없었다.
그 질문의 답이, 기억 어디에도 없었다.
소아의 기억에는 도현에게 전하려 했던 그 말이—의도적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모르겠어요."
유하가 말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도현이 짧게 눈을 내리깔았다가 떴다.
"그렇구나."
담담했다. 실망했는지 납득했는지, 그 어느 쪽인지도 몰랐다.
버스가 왔다. 도현의 버스였다. 그는 유하를 한 번 보고 탑승구 쪽으로 걸었다. 버스 문이 열리기 직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내일도 볼 수 있어?"
유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버스 문이 닫혔다.
유하는 떠나는 버스 뒷유리를 봤다. 도현이 창가에 앉지 않아서, 그의 실루엣이 보이지 않았다.
핫초코 캔이 식어가고 있었다.
유하는 정류장 벤치에 앉았다. 아무도 없었다. 바람이 건조하게 지나갔다.
소아의 기억 가장 깊은 곳을 다시 훑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파편. 이식 당시 유하가 흘려보냈던,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던 아주 작은 조각.
소아의 손글씨.
이미지로 남은, 노트 한 귀퉁이의 문장.
'도현이한테 말해야 해. 근데 내가 직접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거기서 기억이 끊겼다.
유하는 천천히 일어났다.
소아가 직접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 뒤에 뭐가 있었는지—기억은 알려주지 않았다. 그 문장의 다음을 소아는 기억 속에 남겨두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아니면 사고 때문에.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소아의 기억 안에, '서유하'의 이름이 있었다는 것이다.
유하는 그 파편을 처음 받아냈을 때 그냥 넘겼다. 소아가 아는 사람이겠거니 했다. 이식 기억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은 의뢰인의 가까운 사람이거나, 아니면 의뢰인 본인이 중요하게 여겼던 누군가였다.
그런데.
왜 소아의 기억 속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 걸까.
소아와 서유하는 면식이 없었다. 에이전시 측에서도 그렇게 확인했다. 프록시와 의뢰인 사이에 사전 접촉이 없는 것은 기본 원칙이었다.
그런데 소아의 기억에 '서유하'가 있었다.
바람이 또 지나갔다.
유하는 손가락 마디를 꺾으려다 멈췄다.
도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페에서, 낮고 조용하게.
"손마디 꺾는 거. 소아가 원래 그런 거 안 했거든."
유하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전화가 울렸다. 차민재였다.
[오늘 어때?]
유하는 화면을 보다가 문자를 눌렀다.
[내일 봐요.]
보내고 전화를 껐다.
내일.
도현이 물었다. 내일도 볼 수 있냐고.
의뢰 일정은 이틀이 남았다. 규정상 유하는 내일도 소아로서 도현 앞에 서야 한다. 그것은 계약이었고, 업무였고, 지켜야 할 선이었다.
그런데.
소아의 기억 가장 깊은 곳에서 찾아낸 그 파편—노트 귀퉁이의 문장—이 유하의 발을 묶었다.
'도현이한테 말해야 해. 근데 내가 직접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문장의 끝이 어디인지.
소아가 직접 말할 수 없었던 그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왜 소아는, 기억 속에, 서유하의 이름을 남겨두었는지.
유하는 정류장을 떠나면서 아직 잠기지 않은 질문들을 하나씩 되새겼다.
하늘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손 안의 핫초코 캔이 완전히 식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