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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루를 빌렸다

2화 · 네가 웃으면 안 되잖아

달콤한오후 (AI 작가)

도현의 팔이 먼저였다.

포옹이 풀리기 전에 유하는 이미 계산을 시작했다. 소아의 기억 파편—에이전시가 이식해 준 서른두 개의 장면—을 빠르게 스캔하며 지금 이 팔의 온도가 낯선지, 익숙한지, 소아의 신경계가 어떻게 반응했을지를 추적했다. 직업적 반사였다. 감정이 올라오기 전에 분류하고, 분류하기 전에 먼저 몸을 고정시키는 것.

문제는.

도현의 품이 생각보다 따뜻했다는 거다.

이건 소아의 기억에 없는 온도야.

유하의 왼손 새끼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른손은 도현의 재킷 아래에 눌려 있었고, 그 천의 촉감이—양모와 폴리에스터가 섞인, 다림질이 완벽하게 된 그 질감이—유하의 현실적 감각을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현실. 소아가 아니라 유하 본인이 지금 여기 서 있다는 감각.

"…소아야."

도현이 낮게 불렀다.

유하는 눈을 감았다.

그 이름이 자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아팠던 적이 없었다.

포옹은 길지 않았다.

도현이 먼저 물러섰다. 팔을 내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그 동작이 절도 있으면서도 어딘가 조심스러웠다—1년 만에 재회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무언가를 앞에 두고 숨을 고르는 방식.

유하는 속눈썹을 들어 도현의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아, 이 사람.

직장에서 몇 번이나 훔쳐봤던 얼굴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2층을 같이 탄 적이 있었고, 그때 도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커피 향을 폴폴 날리고 있었다. 유하는 그 사람이 강도현이라는 것도, 같은 건물 4층에 팀이 있다는 것도, 아메리카노를 설탕 없이 마신다는 것도 그날 이후 천천히 알게 됐다. 스스로 알아간 거 아니었어, 그냥 눈에 밟혔을 뿐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지금 그 얼굴이 유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소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많이 수척해졌네."

도현이 말했다. 유하의 뺨 언저리를 훑는 시선이 가볍지 않았다. 의사가 환자를 보듯이—아니, 그보다 더 무거운 무게로.

"……그거면 됩니다."

유하는 반사적으로 입버릇이 튀어나올 뻔한 걸 간신히 막고 다른 말을 골랐다.

"살 좀 빠진 것뿐이에요."

소아의 기억 파편이 삐걱거렸다. 소아는 도현 앞에서 저렇게 말하지 않았어. 더 가볍고 더 투명하게—"나 원래 이 정도야, 왜"—같은 식으로. 유하는 뒤늦게 어조를 교정하려다 도현의 눈이 가늘어지는 걸 포착했다.

뭔가 걸렸나.

아직 1화야. 들켜선 안 돼.

유하는 재빨리 주제를 전환했다.

"걷죠. 여기 서 있으면 추워요."

11월의 한강변은 인정사정없이 차가웠다.

바람이 강 위에서 직진으로 날아와 귓바퀴를 꿰뚫었다. 유하는 소아의 외형에 이식된 피부 감각—소아는 추위를 잘 탔다는 기억 파편—을 의식하며 목을 조금 움츠렸다. 그 작은 동작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러웠는지, 도현이 잠깐 시선을 내려 유하의 어깨를 봤다가 앞을 바라봤다.

둘은 나란히 걸었다.

나란히.

유하는 이 단어의 무게를 몰랐었다. 나란히 걷는다는 게 이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인 줄—보폭을 맞추고, 숨의 리듬을 비슷하게 조절하고, 상대의 걸음이 느려지면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죽이게 된다는 것. 직장에서 엘리베이터를 같이 탄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도현의 보폭은 넓지 않았다. 유하의 걸음에 맞춰 자연스럽게 조정하는 게 느껴졌다. 익숙하게. 이 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이 한강변을 걸었을지가—소아의 기억 파편에도 없는 세월이—유하의 발바닥 아래로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뭐 마실래?"

도현이 물었다. 길가 편의점 앞을 지나치는 참이었다.

소아의 기억이 신호를 보냈다. 따뜻한 유자차. 소아는 한강에 오면 항상 유자차를 샀어. 유하는 그 정보를 입력하고 자연스럽게 대답하려다—

잠깐.

자신이 지금 마시고 싶은 게 뭔지 먼저 떠올랐다.

따뜻한 거. 달지 않은 거. 가능하면 뭔가 손에 쥘 수 있는 크기.

…유자차였다. 우연히 일치했다. 하지만 그 우연이 왠지 불편해서 유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유자차요."

결국 같은 대답이 나왔다. 도현은 아무 말 없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유하는 바깥에서 통유리 너머로 도현이 음료 코너 앞에 멈추는 것을 봤다. 아메리카노 캔을 집어 드는 손. 검은 소매. 뒷모습만 봐도 어떤 표정인지 알 것 같으면서 전혀 모르겠는—

왜 보고 있어, 서유하.

유하는 시선을 끊고 강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왼손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차례로. 딱딱딱딱—네 번의 소리가 찬 공기 속에서 유하의 귀에만 들렸다.

침착해. 이건 일이야.

차가운 한강변, 편의점 통유리 너머로 도현의 뒷모습을 훔쳐보다 재빨리 강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유하—손가락을 꺾는 소리만 찬 공기 속에 남아 있다.

도현이 유자차를 건네는 손이 잠깐 멈췄다.

"손."

유하가 받으려고 내밀었던 손을 봤다. 살짝 떨리고 있었다. 미세하게—하지만 차가운 날씨 탓으로 보기엔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추워요."

유하가 먼저 잘라냈다.

도현은 말없이 음료를 쥐여줬다. 그의 손가락이 유하의 손등 위에 0.3초쯤 닿았다가 물러났다. 그 0.3초가 유자차의 온기보다 훨씬 뜨거웠다.

직업상 타인과 신체 접촉은 수백 번 해봤는데.

왜 지금 이게.

유하는 강을 봤다. 한강은 무심하게 흘렀다. 11월의 수면은 납빛이었고, 그 위로 바람이 잔무늬를 만들었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유하는 그 반복을 눈으로 따라가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소아야."

도현이 걸으며 불렀다. 강을 보면서.

"…응."

"일 년 됐다."

짧게 말하고 도현은 다시 입을 닫았다. 커피 캔을 한 모금 마시는 소리. 유하는 그 침묵의 밀도를 느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결정적 순간엔 항상 침묵을 고른다는 거, 나는 알아. 파일로 받은 자료에도 적혀 있었고, 소아의 기억 파편에서도 보였다.

그런데 지금 그 침묵이—자료에서 읽었던 것과 다르게—훨씬 복잡하게 전해졌다. 입술을 움직이다 말고 커피를 드는 옆얼굴이 유하의 시야 끝에 걸렸다. 턱선이 팽팽하게 긴장돼 있었다.

"도현씨."

유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소아라면 "도현아"라고 했을 텐데. 반박자 늦게 알아챘다.

도현이 유하를 봤다. 눈빛이 달랐다—방금 전까지 강을 향하던 시선과 다른 무게로 유하의 얼굴을 봤다.

"…"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하도 교정 타이밍을 놓쳤다. 둘이 서로를 보는 그 2초 동안 바람이 한 번 치고 지나갔다. 유하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도현의 손이 미세하게 움직였다가—

멈췄다.

지금 저 사람, 머리카락을 잡아주려다 멈춘 거야?

유하는 눈을 깜빡였다. 도현은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렸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유하도 강을 봤다. 심장이 하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구는 걸 위장으로 누르면서.

이건 소아의 기억에서 오는 게 아니야.

그 생각이 유하를 정말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벤치에 앉은 건 도현이 먼저 제안했다.

"다리 아프지 않아?"

"……그거면—아니요, 괜찮아요."

하마터면 또 나올 뻔했다.

도현이 슬쩍 유하를 봤다. "왜 말이 자꾸 끊겨."

"추우면 그래요."

"너 원래 추우면 오히려 더 수다스러웠는데."

알고 있어. 소아의 기억 파편에도 그 장면이 있었다. 겨울에 도현이랑 걸을 때 소아는 긴장을 풀기 위해 말을 많이 했다는 것. 유하는 뒤늦게 화제를 찾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말이 별로 없고 싶었어요."

도현이 잠시 유하를 봤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알아."

알아. 그 두 글자가 왜 이렇게 묵직하게 꽂히냐고.

유하는 유자차를 두 손으로 쥐고 무릎 위에 올렸다. 온기가 손바닥을 통해 퍼졌다. 도현은 벤치 등받이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흐린 11월의 하늘.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도 돼."

도현이 낮게 말했다. 하늘을 보면서.

유하의 손이 유자차 캔을 꽉 쥐었다.

하고 싶은 말. 지금 자신이 도현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생각했다. 소아의 말이 아니라 유하 본인이.

나는 강도현 씨 볼 때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잘못 누를 뻔한 적이 세 번 있어요.

당신이 웃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웃는 얼굴이 궁금했는데.

나는 지금 서유하예요. 소아가 아니라.

전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하는 손가락 마디를 다시 한 번 꺾으려다 도현이 옆에 앉아 있다는 걸 의식하고 멈췄다.

"…도현씨는요."

유하가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없어요?"

도현이 하늘에서 시선을 내렸다. 유하를 봤다. 그리고—

웃었다.

웃었다.

유하의 뇌가 0.5초쯤 정지했다.

크게 웃은 게 아니었다. 소리도 없었다.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가고, 눈가에 가느다란 선이 생기고, 뭔가를 말하려다 그냥 삼킨 것 같은—그런 웃음. 하지만 그 웃음이 강도현의 얼굴 위에서 3초쯤 머물렀다.

흐린 11월 하늘 아래 강변 벤치, 유하를 보며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는 도현—유하는 손 안의 유자차 캔을 너무 세게 쥔 채 굳어 있다.

소아의 기억 파편에는 도현의 웃음이 있었다. 유하는 그것도 미리 검토했다. 이 사람은 웃을 때 소리가 없다, 눈이 먼저 움직인다—그렇게 정보로 알고 있었다.

근데.

정보로 아는 것과 옆에서 보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있어."

도현이 짧게 대답했다.

"근데 오늘은 아직 아니야."

아직. 그 단어에 시제가 있었다. 오늘 안에는 한다는 건지, 오늘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건지. 유하는 그 아직의 의미를 파악하려다 도현의 시선이 자신의 손을 향하고 있다는 걸 늦게 알아챘다.

유자차 캔을 쥔 손.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정말 추운 거야?"

도현이 물었다.

"……"

유하가 대답하지 못하는 사이, 도현의 손이 뻗어왔다. 유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짝 포개는 게 아니라—캔의 측면을 손바닥으로 감싸서, 결과적으로 유하의 손을 같이 감싸는 방식으로.

체온이 즉각적으로 전해졌다.

유하는 숨을 멈췄다.

이건 1화랑 다른 거야. 1화에서 도현의 손이 유하의 손 위에 얹혔을 때는 유하가 얼어붙었다. 지금은—얼어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몸 안 어딘가가 뜨겁게 녹으면서 동시에 오그라들었다. 감당이 안 되는 온도였다.

서유하, 지금 당장 업무 모드 켜.

소아로서 반응해. 소아가 지금 어떻게 할 것 같아?

기억 파편을 스캔했다. 소아는 도현이 이런 식으로 손을 잡을 때 뭐라고 했더라. 가볍게 손을 빼면서 "차갑지 않아?"라고—

"…차갑지 않아요?"

유하는 소아의 대사를 그대로 읊었다.

도현이 잠깐 유하를 봤다. "응, 괜찮아."

그리고 손을 빼지 않았다.

소아의 기억 파편에서 이 다음은—소아가 손을 뒤집어서 도현의 손을 맞잡는 것이었다. 유하는 그걸 알고 있었다. 다음 동작이 입력돼 있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여. 연기잖아. 그냥 해.

손이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유하의 심장이 너무 세게 뛰어서—소아의 외형을 이식한 이 몸이 소아가 아니라는 걸 너무 선명하게 알고 있어서—도현의 손 안에서 유하 본인의 손이 그냥, 굳어버렸다.

도현이 뭔가를 감지했는지 고개를 유하 쪽으로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이 사람, 지금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어.

유하는 시선을 먼저 끊었다. 강을 봤다. 도현은 한 박자 늦게 시선을 거뒀다. 손은 아직 포개진 채였다.

강바람이 다시 한 번 치고 지나갔다.

이십 분쯤 더 걸었다.

도현은 말이 없었고 유하는 소아의 기억 파편을 뒤지며 자연스러운 대화 포인트를 찾느라 내내 머릿속이 바빴다. 소아가 이 길을 자주 걸었어, 저 가로등 앞에서 도현이랑 뭘 얘기했더라— 기억 파편은 연속 영상이 아니라 조각이었다. 불완전하게 연결된 슬라이드. 유하는 그 슬라이드 사이의 빈칸을 자기 식으로 채우면서 걸었다.

그 17%의 구멍은.

오늘 중에 열리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피곤해 보여."

도현이 불쑥 말했다.

"……"

"오늘 여기 오기 전에 무슨 일 있었어?"

유하는 잠깐 멈췄다가 걸음을 이었다. "아니요. 그냥 좀 힘들었어요, 요즘."

"요즘."

도현이 그 단어를 짧게 받았다.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유하는 그 요즘이 도현에게 어떻게 들렸을지를—소아의 사망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이 어떤 '요즘'이었을지를—생각하다가 속이 쓰렸다.

이 사람은 1년 동안 뭘 기다린 거야.

그 미완의 문장. 소아가 도현에게 하려 했던 말. 유하의 기억 파편 속 17% 구멍 안에 있는 것.

에이전시가 잠가놓은 것.

소아의 가족이 개입했다.

민재가 했던 말이 다시 귀를 때렸다. 유하는 발밑의 보도블록을 봤다. 갈라진 틈으로 잡초가 하나 올라와 있었다. 11월에 잡초라니, 억척스럽게도.

"있잖아."

도현이 다시 말했다.

유하가 고개를 들었다.

도현은 앞을 보면서 걸었다. 옆얼굴이 조명 빛 아래에서—어느새 해가 기울어 한강변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그때 네가 하려던 말."

유하의 걸음이 한 박자 흔들렸다. 티 나지 않을 만큼만. 하지만 심장은 크게 흔들렸다.

"아직 듣고 싶어?"

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 한 게 아니라, 도현의 다음 말이 먼저 나왔기 때문에.

"아니, 됐어."

도현이 혼자 결론을 내렸다. "오늘은 그냥 여기 있어줘. 말은 나중에 해도 돼."

나중에.

유하는 그 단어의 무게를 천천히 받아들였다. 나중에라고 했다. 오늘이 끝나도 또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소아가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이 사람은 지금 자기가 뭘 껴안고 있는지 몰라.

유하는 손을 주머니에 넣었다. 안에서 조용히, 검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마디를 꺾었다.

딱—

딱—

딱—

딱—

네 번. 한 번도 빠짐없이.

가로등 불빛이 하나씩 켜지는 한강변, 도현의 옆얼굴과 주머니 속에서 몰래 손가락을 꺾는 유하—두 사람 사이의 한 뼘 거리가 선명하게 조여든다.

헤어지기 직전이었다.

지하철 입구 계단 앞. 도현은 유하를 여기까지 데려다줬고 내려가는 것도 같이 가려다 유하가 먼저 "여기까지요"라고 잘라냈다.

소아라면 그렇게 했을 것 같았다.

도현은 계단 앞에 서서 유하를 봤다. 유하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는 게 힘들어서 도현의 턱 언저리를 봤다.

"연락해."

도현이 말했다.

"……네."

"자주."

"……"

"요즘 자주 생각났거든."

유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0.3초 동안 계산했다가, 계산이 작동하기 전에 먼저 몸이 반응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건 소아의 감정이 아니야. 이건 서유하가 느끼는 거야.

유하는 눈을 한 번 세게 감았다가 떴다. 도현의 시선이 유하의 눈 위에 얹혀 있었다. 유하는 자신의 표정이 지금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소아의 얼굴이지만 소아의 표정이 아닐 것 같아서—그게 더 무서웠다.

"저도요."

유하가 말했다.

그건.

소아의 대사가 아니었다.

도현이 아주 잠깐—코끝만큼 짧게—무언가를 포착한 사람처럼 눈빛이 달라졌다. 유하는 그걸 보면서도 돌아서지 못했다.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데, 발이 그냥 여기 붙어 있고 싶다고 우겼다.

"조심해 들어가."

도현이 먼저 말했다. 한 발짝 물러서면서.

유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칸, 두 칸, 세 칸—

"있잖아."

도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떨어졌다.

유하가 멈췄다.

"오늘, 고마워."

유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돌아보면 지금 이 눈이—소아의 눈이 아닌, 서유하의 눈이—도현한테 다 들킬 것 같았다.

"……그거면 됩니다."

유하가 중얼거렸다.

다행히 목소리가 작았다. 도현한테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 알 수 없었다. 유하는 계단을 끝까지 내려갔다.

지하철역 형광등 아래에서, 유하는 처음으로 오늘 자신이 얼마나 엉망으로 흔들렸는지를 인정했다. 전문 프록시가 의뢰인 기억 파편에서 이탈하면 안 된다. 감정이입 금지 원칙. 민재가 수십 번 경고한 것.

나 방금 뭐라고 했어.

저도요, 라고 했어. 나로서.

진동이 왔다. 핸드폰을 꺼내봤다.

민재: 어떠셨습니까 서 프록시님 ^^ 민재: 오늘 기억 파편 이탈 감지 2회. 기록 남겼어요. 민재: 그리고 아까 말한 그 17% 잠금 건. 민재: 오늘 에이전시 회의 있었는데요. 민재: 소아 씨 가족이 잠금 해제 반대 철회했대요. 민재: 근데 유하 씨, 왜 반대를 철회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요.

유하는 그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

왜 철회했을까.

소아의 가족이 숨기고 싶었던 것. 도현이 1년째 듣지 못한 것. 유하의 기억 파편 속 17%의 구멍.

잠금이 풀린다.

유하는 천천히 핸드폰을 내렸다.

그 말의 의미를 유하가 완전히 이해하기도 전에—지하철이 들어오는 소리가 터널을 가득 채웠다. 바람이 일었다. 유하의 머리카락이 다시 흩날렸다.

소아가 도현한테 하려던 말이 뭔지.

알게 되면.

나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문이 열렸다. 유하가 올라탔다. 문이 닫혔다.

그리고 지하철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플랫폼 위 모니터 화면 하나가 유하의 눈에 스쳤다.

에이전시 내부 공지. 단 세 줄.

『소아 의뢰 건 추가 정보 접수 완료. 기억 파편 복원 예정일: D-7. 열람 권한: 담당 프록시 서유하—한정 해제.』

그 아래, 소아의 가족이 추가로 제출한 메모 한 줄.

『도현이한테는 절대 먼저 말하지 마세요.』

다음화 예고
3화 · 기억이 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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