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오늘만큼은 네가 되어줄게
죽은 사람의 하루를 사는 일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적어도 서유하는 그렇게 믿었다. 믿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매번 낯선 얼굴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자신이 너무 우스워지니까.
"이식 완료. 체크리스트 확인해."
차민재의 목소리가 이어폰 너머로 건조하게 흘러들어왔다. 유하는 눈을 감은 채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꺾었다. 새끼손가락, 약지, 중지, 검지. 마디마다 짧고 단단한 소리가 났다. 관절이 아니라 긴장이 부러지는 소리 같았다.
"생체 신호 안정."
"외형 이식 지속 시간."
"여섯 시간. 기록상 최장 열두 시간이니까 충분합니다."
"기억 파편 수용률은?"
"83퍼센트."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거면 됩니다."
민재가 낮게 혀를 찼다. "그거면 됩니다, 그거면 됩니다. 유하씨, 그 말 입에 붙은 거 알아요? 83이면 나머지 17은 구멍이야. 구멍. 거기서 넘어지면 의뢰 전체가 날아가는 거라고."
"구멍은 메우면 됩니다."
"어떻게?"
"즉흥."
침묵이 2초쯤 흘렀다. 민재의 한숨 소리가 그 뒤를 따라왔다.
"…대단한 프로 의식이다, 진짜로."
유하는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가 다시 내렸다. 웃을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웃어도 자신의 웃음이 아니니까.
거울 앞에 섰다.
김소아였다.
아니, 정확히는 김소아의 얼굴이었다. 둥글고 부드러운 턱선, 코끝에서 살짝 들린 각도, 입술 왼쪽 아래의 작은 점 하나. 의뢰가 들어왔을 때 에이전시가 건네준 사진 속 여자가 거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3차원 생체 이식 기술—영혼이라는 단어가 법적으로 금지된 나라에서 '외형 정보'라고 불리는 것들.
그런데 눈이 이상했다.
소아의 눈은 파일에서 보면 좀 더 부드러웠다. 속눈썹이 아래로 내려앉는 방식이 달랐다. 지금 거울 속 눈은 너무 또렷하고, 너무 날이 서 있었다. 유하 자신의 눈이 소아의 얼굴 안에서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티 날까.'
생각하는 순간, 손가락이 또 움직였다. 새끼손가락부터 차례로. 꺾고, 꺾고, 꺾고.
"유하씨."
"네."
"의뢰 내용 다시 한 번 확인할게요. 김소아, 향년 스물여덟. 지난해 9월 교통사고로 사망. 의뢰 내용은—"
"강도현을 만나 마지막 하루를 완성하는 것."
"맞아. 그리고 규정 37조."
유하는 거울에서 시선을 거뒀다. "알고 있습니다."
"모른 척하는 거 아니죠?"
"감정이입 금지. 의뢰인의 기억을 소화하되 자신의 감정을 개입시키지 말 것. 하루가 끝나면 이식을 해제하고 의뢰 완수 보고서를 제출할 것." 한 박자도 안 쉬고 줄줄 읊어냈다. "외웠습니다."
민재가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좀 길어서, 유하는 이어폰이 끊겼나 싶어 건드리려다 멈췄다.
"강도현이 누군지 알아요?"
"의뢰인의 전 연인."
"그것만요?"
심장이 한 박 건너뛰었다. 건너뛰지 않은 척 유하는 외투를 집어 들었다. "그거면 됩니다."
민재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거짓말도 유창하게 한다."
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4월의 을지로는 유난히 빛이 많았다.
오래된 골목과 새 건물이 층층이 뒤섞인 거리에 오후 햇빛이 사선으로 꽂혔다. 사람들이 그 빛 속을 가로지르며 지나갔다. 유하는 약속 장소인 카페 입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소아의 기억 파편이 이따금 눈꺼풀 안쪽에서 깜박였다. 파편이라는 표현이 정확했다. 온전한 장면이 아니라, 색채와 소리와 감촉이 제멋대로 섞인 조각들. 커피 원두가 타는 냄새, 누군가의 웃음소리, 손목 위에 닿던 따뜻한 감촉—그리고 늘 "그렇지?"로 끝나는 말투.
괜찮아, 그렇지?
우리 여기서 자주 왔잖아, 그렇지?
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그렇지—
그 문장이 항상 거기서 잘렸다. 83퍼센트의 경계가 거기였다.
유하는 손가락을 꺾으려다 멈췄다. 지금은 안 된다. 소아는 그런 습관이 없었다.
심호흡을 한 번 더 하고, 문을 밀었다.
카페 안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창가 쪽에 2인용 테이블이 몇 개 있었고, 그 중 하나에—
유하의 발이 멎었다.
강도현이었다.
알고 있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의뢰 파일을 받은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강도현, 만 서른. 같은 회사 기획팀 소속. 키 182센티미터. 왼손잡이. 블랙커피만 마심.
파일에서 수십 번 확인한 이름이고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저 사람이, 지금 저 자리에, 저 각도로, 저 빛 속에 앉아 있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그의 옆면을 얇게 가르고 있었다. 잔에 손을 감싸 쥔 채 창밖을 바라보는 옆모습—이목구비가 또렷하고 입술이 일직선으로 다물려 있었다. 커피 잔 안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빛을 받아 희게 흩어졌다.
유하의 가슴이 타이트하게 조여들었다.
아.
이건 기억 파편이 아니었다. 소아의 감정이 아니었다. 분명하게, 명백하게, 서유하 자신의 반응이었다.
나쁜 타이밍이었다. 제일 나쁜 타이밍이었다. 지금 저 사람 앞에서 자신은 서유하가 아닌데—소아인데—그런데 심장이 혼자서 박자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규정 37조.
유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걸었다.
테이블 사이를 지나는 사이, 도현이 고개를 돌렸다.
딱 0.5초였다.
그 0.5초 동안 도현의 눈이 유하를—소아를—발견하고, 시간이 멈췄다.
1년이라는 세월이 사람의 눈빛 안에 저렇게 고스란히 쌓일 수 있다는 걸, 유하는 그 순간 처음 알았다. 충격도 아니었고, 반가움도 아니었다. 그냥 무너지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댐이 아주 조금, 가장 약한 지점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하는 것 같은.
도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두르지 않았다. 뛰지도 않았다. 그냥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도 없이 두 걸음을 걸어와서—
유하가 대사를 떠올리기도 전에, 강도현의 팔이 그녀를 감싸 안았다.
따뜻했다.
너무 갑작스럽고, 너무 조용하고, 그래서 너무 따뜻했다.
유하는 눈을 감았다. 반사적으로. 그리고 팔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소아라면 이 포옹에 응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몸이 굳어버렸다.
이게 뭐야.
심장이 너무 크게 울렸다. 도현의 어깨에 코끝이 닿았다. 면 소재 재킷에서 커피 냄새가 났다. 따뜻하고 조금 쓴 냄새. 그 냄새가 소아의 기억 파편과 겹치면서 유하의 눈꺼풀 안쪽이 이상하게 아려왔다.
이건 소아의 감정이야.
이건 소아의 기억이야.
이건—
"왜 이제 와."
도현이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조용했다. 포옹을 풀지 않은 채였다. 유하의 귀 바로 옆에서,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일 년이나."
유하는 대답을 찾았다. 파일에서 건네받은 문장들을, 소아의 기억 파편 속에 녹아 있는 말투를, 그 특유의 말끝을—
"…미안해."
아무것도 아닌 두 음절이 목구멍에서 나왔다. 소아의 음성으로. 그런데 유하는 그 순간 자신이 진짜로 미안한 건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도현이 천천히 포옹을 풀었다.
그리고 유하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면으로. 가까이. 이렇게 가까이서 강도현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늘 몇 미터의 거리가 있었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누르거나, 회의실 유리창 너머로 흘끗 보거나.
지금은 한 뼘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도현의 눈이 유하를 훑었다. 빠르지 않고 느리게. 이마에서 눈썹으로, 눈으로, 코끝으로, 입술로.
유하는 숨을 멈췄다.
"머리 잘랐네."
도현이 말했다.
파일에서 확인했다. 소아의 머리카락은 생전에 허리까지 내려왔었다. 이식된 오늘의 외형은 쇄골 아래 5센티미터쯤에서 잘려 있었다. 의뢰 요청 사항에 명시된 디테일이었다.
"응." 유하가 대답했다. 소아의 말투를 입술로 굴리며. "어때?"
도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잠깐 더 바라봤다. 무언가를 찾는 것 같은 눈빛으로. 그러다가 시선을 거두고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앉아."
딱 한 마디였다.
유하는 의자를 당겨 앉으면서, 몰래 이어폰 쪽으로 손을 올렸다. 미세하게, 들키지 않게 건드렸다.
민재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들려왔다. "살아 있어요?"
숨을 내뱉었다. 소리 없이.
"…그거면 됩니다."
민재가 속삭였다. "아까보다 훨씬 덜 설득력 있는데."
틀리지 않았다. 유하는 이어폰에서 손을 떼고, 테이블 위의 메뉴판을 집었다. 종이가 손끝에서 바삭하게 펴졌다.
도현은 맞은편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블랙. 당연히 블랙이었다.
"뭐 마실 거야."
"아무거나."
도현이 메뉴판을 보지도 않고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요."
유하는 입술을 달싹였다가 닫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소아가 즐겨 마시던 메뉴였다. 파일에 적혀 있었다. 도현은 1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좋아하던 커피를.
테이블 위에 잠깐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유하는 메뉴판을 내려놓고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 꺾지 않았다. 꺾으면 안 됐다.
도현이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하고 싶은 말 있다고 했잖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맞았다. 소아가 마지막 날—사고가 나기 전—도현에게 연락을 했다. 만나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그리고 오지 못했다. 말을 전하지 못했다.
그 말을 전하는 것이 이번 의뢰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유하는 조용히 손을 내려다봤다.
83퍼센트.
나머지 17의 구멍.
소아가 하려 했던 그 말이—정확히 거기 있었다. 구멍 속에.
"…응." 유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있어."
"말해."
"지금 바로?"
도현이 유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너무 곧고 너무 깊어서, 유하는 잠깐 어지러움을 느꼈다. 소아의 기억 파편이 아니었다. 서유하 본인이 느끼는 어지러움이었다.
"1년 기다렸어."
한 마디였다. 그게 전부였다.
근데 그 한 마디가, 유하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1년.
강도현은 1년 동안 이 문장을 기다렸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을. 마침표가 없는 말을. 그 미완의 문장이 사람 하나를 1년째 묶어두고 있었다.
그리고 유하는 그 문장을 모른다.
구멍 속에 있어서.
유하는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다음 말을 말하려다—
이어폰에서 민재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아주 작게. 그러나 선명하게.
"유하씨. 지금 기억 파편 접근해봤어요?"
심장이 멎을 뻔했다.
"17퍼센트 구멍—소아씨가 하려 했던 말, 거기 있는 거 맞아요. 그런데." 민재가 잠깐 말을 끊었다. "그 구멍, 에이전시에서 의도적으로 잠가뒀어요."
유하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굳었다.
"무슨 말이에요."
"소곤소곤해요. 의뢰인이 듣겠어."
맞은편에서 도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을 기다리며.
유하는 손을 무릎 아래로 내렸다. 손가락을 꺾었다. 새끼손가락, 약지, 중지, 검지.
한 마디씩 끊어서, 아주 입술만 움직이며 물었다. "왜요."
민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소아씨가 도현씨한테 하려 했던 말이—의뢰 의뢰처에서 원하는 말이 아닐 수도 있다고. 그래서 에이전시가 개입했어요."
유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의뢰 의뢰처."
"소아씨 가족. 부탁했는데, 내용은 나도 몰라요. 유하씨한테도 말 안 해줬고—"
"잠깐만요."
유하는 입술을 닫았다. 그리고 도현을 봤다.
도현이 유하를—소아를—보고 있었다.
그 눈빛 안에 1년치 기다림이 쌓여 있었다. 완성되지 못한 문장을 기다리는 눈빛이. 그리고 유하는 그 문장이 뭔지 모르는데, 에이전시는 알면서 잠가뒀고, 소아의 가족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다.
이게 뭐야.
규정대로라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 에이전시에 문의하고, 의뢰를 일시 중단하고,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근데 도현이 말했다.
"오래 걸려도 돼."
그 목소리가, 너무 부드럽게 유하의 귀 안쪽에 박혔다.
"천천히 해도 돼. 나 여기 있어."
도현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유하의 손 위로 내려왔다.
그냥 얹었다. 꽉 잡지 않고, 그냥. 있어줄게, 라는 것처럼.
유하는 그 온기가 손등을 타고 올라오는 걸 느꼈다.
굳어버렸다.
몸이 굳고, 심장이 굳고, 머릿속이 굳어버렸다.
이건 소아한테 하는 거야.
이 사람은 나를 소아라고 생각해서 이러는 거야.
나는 서유하야. 서유하라고.
그런데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도현이 눈치챘는지, 손을 살짝 더 얹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냥 거기 있어주는 것.
유하는 눈을 들어 강도현의 얼굴을 봤다.
그 사람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소아를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하는—지금 이 순간—한 번쯤, 딱 한 번만, 이게 자신을 향한 눈빛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유하를 향한 눈빛이었으면.
그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
유하의 눈이 커졌다.
안 돼.
규정 37조.
감정이입 금지.
이건 내 하루가 아니야.
이건 소아의 하루야.
나는 오늘만 빌린 거야.
그런데 빌린 하루 안에서, 빌린 얼굴 안에서, 서유하의 심장이 혼자서 멋대로 뛰고 있었다.
이어폰 너머에서 민재가 작게 말했다.
"…유하씨."
유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현이 조용히 물었다.
"괜찮아?"
유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눈꺼풀 안쪽에서—소아의 기억 파편도 아니고, 에이전시의 지침도 아니고—강도현의 옆모습이 창가 빛 속에서 선명하게 떠올랐다.
처음 보는 각도였다.
이렇게 가까이서는.
나는 지금 뭘 느끼고 있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