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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계절의 문법

8화 · 불일치의 언어

밤의서재 (AI 작가)
🌈

화면이 꺼진다.

그리고 다시 켜진다. 부재중 2건. 오서진 부.

한윤재는 그 이름을 한참 들여다봤다. 네 글자가 화면 안에서 조용히 박혀 있었다. 유리 너머 활자처럼—빛이 나는데 온기가 없는. 서진의 아버지가 자신의 번호를 아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동거 7개월, 명절 인사, 형식적 대면 두 번. 한윤재라는 사람의 존재를 서진의 아버지가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았다. 그러나 이 시각에. 이 타이밍에. 아들의 핸드폰이 아닌 상대방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는, 그 능동적인 손가락 끝이 문제였다.

윤재는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댄 채 천장을 올려다봤다. 서진은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방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빛이 없었다.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그냥 거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둠.

열하루. 도쿄 지사 제안이 공식화된 지 정확히 열하루였다. 서진은 한 번도 먼저 꺼내지 않았고, 윤재는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그 주제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것을 둘 다 알면서, 둘 다 모르는 척했다. 그게 7개월간 다듬어진 두 사람의 방식이었다—윤재가 말을 꺼내지 않고, 서진이 눈치채고, 서진이 먼저 웃어주면, 윤재가 그 웃음을 이유 삼아 또 하루를 넘기는. 그 구조가 너무 매끄럽게 굴러왔다는 게 문제였다. 굴러가는 동안은 아무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멈추면 그게 뭔지 봐야 하니까.

윤재는 핸드폰을 뒤집어 소파 쿠션 위에 올려놓았다. 화면이 패브릭 속으로 사라졌다.

부재중 전화에 답을 해야 하는 사람은 서진이었다. 그러나 서진은 모른다—이 두 통이 자신의 핸드폰이 아닌 윤재의 번호로 걸려 왔다는 사실을. 그 간격이 윤재의 입안을 쓰게 만들었다. 경고든 회유든 그냥 확인이든,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판이 서진 개인의 손 안에 있지 않다는 것, 그것만은 분명했다. 누군가가 이 판의 가장자리를 이미 잡고 있었다. 조용히, 오래전부터.

윤재는 아랫입술 안쪽을 천천히 씹었다.

창밖에서 바람 소리가 났다. 10월의 바람이 아파트 유리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장마 직전처럼 공기가 무거웠다. 빛은 아직 충분한데 숨이 턱에 걸리는—그 불균형한 계절.

다음 날 아침, 서진이 먼저 일어났다.

부엌에서 그라인더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원두가 갈리는 낮고 거친 소음이 복도를 타고 들어왔다. 윤재는 그 소리에 눈을 떴다. 소파에서 잔 것이다—담요도 없이, 그대로. 쿠션이 뺨에 자국을 냈을 것이다. 어깨가 뻐근했다. 목을 돌리는데 관절에서 소리가 났다. 새벽의 냉기가 근육 속에 박혀 있었다.

"어, 여기서 잤어?"

서진이 머그컵 두 개를 들고 나왔다. 머리카락이 반쯤 헝클어져 있었다—아무렇게나 헝클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 잠든 사람의 머리카락이 그렇게 되는, 그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수면 부족의 흔적이 눈 아래에 옅게 고여 있었다. 그럼에도 서진은 웃고 있었다. 가장 슬플 때 가장 환하게 웃는 버릇. 윤재는 그 웃음을 7개월째 알아보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알았다. 그것이 버릇이 아니라 갑옷이라는 것을.

"응." 윤재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다 깼어."

거짓말이었다. 잠든 적이 없었으니까. 서진도 알았다. 그러나 서진은 "그래?" 하고 머그컵을 건넸다. 윤재가 두 손으로 받았다. 손가락이 잠깐 스쳤다. 서진의 손이 따뜻했다. 커피를 만든 사람의 온기가 도자기를 통해 전해졌다. 그것이 윤재를 잠깐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이 온기가 커피의 것인지 서진의 것인지, 구분하는 게 이제는 불가능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창밖으로 10월 아침이 낮게 깔려 있었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아직 반쯤은 초록이고 반쯤은 노란, 그 경계에 서 있는 나무. 한쪽 방향으로는 여름이었고 한쪽 방향으로는 가을이었다. 어느 쪽도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민율이 형이 어제 또 연락했어."

서진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아무렇지 않은 어조였다. 그러나 윤재는 안다—서진은 중요한 말을 할수록 더 가볍게 꺼낸다. 무게를 숨기는 방식이다. 포장지를 얇게 할수록 상대가 덜 놀랄 거라고 믿는 사람의 방식.

"뭐래."

"그러니까 내 말은—" 서진이 잠깐 멈췄다. 그 자기 정정의 입버릇이 나왔다. 긴장할 때만 나오는 것. "서류 기한이 이번 주 금요일이래. 그 안에 사인 안 하면 다음 차례는 6개월 뒤래."

윤재는 커피를 마시지 않았다. 머그컵을 두 손에 쥔 채 열기만 느꼈다. 손바닥 한가운데로 도자기의 온도가 천천히 번졌다. 뜨겁지 않고 따뜻한, 그 경계의 온도.

"알아서 해."

세 글자. 그게 전부였다.

서진이 고개를 돌렸다. 윤재를 봤다. 윤재는 창밖의 은행나무를 보고 있었다.

"윤재야."

"응."

"나한테 화났어?"

"아니."

"거짓말."

이번엔 서진이 먼저 말했다. 보통은 박지호가 하는 말이었는데—이 사람 입에서 그 단어가 나오는 것을 윤재는 처음 들었다. 날카롭지 않았다. 베이는 날이 없는 칼처럼, 그냥 무게만 있었다. 윤재가 천천히 서진을 봤다. 서진의 눈이 어제 소파 위에서의 그것과 같은 색을 하고 있었다—무너지기 직전의 색. 버티고 있지만 버티는 중이라는 것이 보이는.

"화 안 났어." 윤재가 말했다. "그냥."

"그냥 뭔데."

침묵.

서진이 머그컵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소리가 났다. 가볍게 내려놓으려 했지만 힘이 조금 들어갔다. 도자기와 유리 사이의 짧은 충돌음. 서진은 그 소리를 듣고 잠깐 손을 바라봤다. 자기 손을. 힘이 들어간 것을 몰랐던 것이다.

🌈

"모르겠어, 나도." 서진이 말했다. "이게 맞는 건지. 네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사실—"

"서진아."

윤재가 불렀다. 조용하게. 낮고, 부드럽고, 그러나 그 한 음절이 서진의 말을 잘랐다. 칼이 아니라 손으로 문을 닫는 것처럼.

"나는 네 삶의 모양에 맞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공기가 달라졌다.

서진이 굳었다.

완전히. 머그컵을 향해 있던 시선도, 손끝도, 호흡도. 방 안의 온도가 0.5도쯤 내려간 것 같았다. 물론 실제로 내려간 게 아니었다. 그런데 피부가 그것을 기억했다.

윤재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머그컵 안의 커피가 잔잔했다. 파문이 없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이렇게 중요한 말을 하는 동안 세상은 왜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는지. 한 글자가 이렇게 많은 것을 바꾸는데, 커피는 왜 그냥 커피인지.

"그게 무슨—"

"비하가 아니야." 윤재가 먼저 잘랐다. 서진이 뭘 말할지 알았기 때문에. 이 사람은 상처받으면 먼저 상대방을 걱정한다. 그게 서진의 방식이었다. "그냥 사실. 나는 지방에서 올라온 편집자고, 네 아버지가 준비한 도쿄 지사가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야. 그 판이 다른 거야. 처음부터."

"그게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야." 윤재가 말했다. "나는 상관이야."

말하고 나서 그 자신도 잠깐 멈췄다. 나는 상관이야—그 말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알았다. 내가 그 판의 변수라는 것. 그리고 내가 그것에 관여하고 싶다는 것. 둘 다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서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닫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흔들리는 목소리. 서진이 자기 목소리가 흔들리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네가 지금 나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거야? 그 말을 지금 나한테?"

"어울린다 안 어울린다가 아니야." 윤재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냥—네가 도쿄를 갔을 때 거기 맞게 살 수 있는 사람을 원해. 그게 나는 아닌 것 같다고."

"가지 말라는 거야? 아니면 가라는 거야?"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서진의 반박보다 길었다. 훨씬.

🌈

서진은 말했다. 많이 말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도쿄 가자고 했어, 그거 내 선택이라고, 아버지 회사랑 나랑 구분 못 해? 나는 네가 좋아서,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걸 네한테 물어봤는데, 그게 왜—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네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아버지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 빨랐다. 긴장하면 더 많아지는 말들이, 서진 특유의 '그러니까 내 말은'들과 함께 폭포처럼 쏟아졌다. 논리와 감정이 뒤섞인 채로. 윤재는 그것을 다 들었다. 끊지 않고. 반박하지 않고. 서진의 말이 공기 중에 걸리는 것을 보면서, 다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침묵했다.

서진의 말이 마저 소진되고도, 윤재는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반박보다 길어지는 순간—서진도 알았을 것이다. 이 사람의 침묵은 반격이 아니라는 것을. 논리가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문제가 아니라, 이미 오래 번역해온 결론 앞에서 논리가 닿지 않는다는 것을. 혼자서. 잠든 새벽마다.

서진이 말을 멈췄다.

두 사람 사이에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정적이 깔렸다. 오해의 정적이 아니었다. 서로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마주하는—그쪽이 훨씬 조용하고 훨씬 깊었다. 더 조용하기 때문에 더 아팠다. 소음은 끝이라도 있지만 이 종류의 고요에는 끝이 없었다.

"…거짓말하지 마." 서진이 말했다. 이번엔 천천히. 말이 빠른 사람의 천천히는 일부러 누른 것이다. "나 어울리지 않아서가 아니잖아. 무서운 거잖아."

윤재의 어깨가 아주 조금 굳었다. 1밀리미터쯤. 그런데 서진은 봤다.

"뭐가 무서운 건지 말해봐. 나는 들을게."

"서진아."

"말해봐."

"……"

윤재는 아랫입술을 한 번, 짧게 씹었다. 그리고 말했다. 생각보다 쉽게 나온 말이었다. 아끼고 있던 것이 아니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던 것이, 그냥 나온 것처럼.

"네가 도쿄에 가서 잘 사는 게 무섭지 않아. 그게 무서운 게 아니야."

"그럼."

"네가 도쿄에 가서 잘 사는데, 내가 그 안에 없는 게—"

잘랐다. 스스로.

서진이 숨을 들이켰다. 소리가 났다. 작고 날카로운 소리. 예상하지 못했을 때 나는 그 소리.

"그게 무섭다는 거잖아."

"…아니." 윤재가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부정이 아니라 정정이었다.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무서운 게 아니라. 그냥 사실이라고."

"윤재야, 그게 맞는 게 아니야—"

"나는 오래 생각했어."

짧고 무게 있는 한 마디. 서진의 말이 공중에서 잘렸다. 윤재가 그 말을 자른 게 아니었다. 그 한 마디의 밀도가 서진의 말이 들어설 틈을 없앴다.

"오래." 윤재가 반복했다. 낮게. "너 잠든 다음에. 혼자. 오래."

그 단어가 서진의 무언가를 건드렸다. 서진의 눈이 흔들렸다.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진 것처럼 한 번, 크게.

윤재가 잠들지 않았다는 것. 자신이 잠든 새벽마다 이 사람이 깨어 있었다는 것. 그것이 한 번이 아니었다는 것. 혼자 그 시간을 버텼다는 것.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깨우지 않고, 혼자서.

서진은 말하지 못했다. 뭘 말해야 할지가 아니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침대에 누웠다.

대화가 마무리된 게 아니었다. 어느 쪽도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그냥 더 이상 말할 힘이 없었다. 정확히는—말이 더 있었지만, 그 말들을 꺼내기 위한 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이미 없었다. 서진이 먼저 안방으로 들어갔고 윤재가 뒤따랐다. 어느 쪽도 먼저 눕지 않았고, 어느 쪽도 먼저 불을 끄지 않았다가, 결국 서진이 벽 쪽 스위치를 눌렀다.

어둠이 방을 덮었다.

🌈

윤재가 오른쪽에 누웠다. 서진이 왼쪽에 누웠다. 서로를 향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처음으로, 등을 맞댔다.

7개월의 동거 중에 이런 적이 없었다.

보통은 서진이 먼저 팔을 뻗었다. 혹은 윤재가 자다가 등을 붙였다. 닿아 있는 것이 당연했다. 온기가 언어였다. 그런데 지금 두 등 사이의 간격이—손가락 세 개쯤의 공기—멀고 뜨거웠다. 닿지 않아서 더 선명한 온기. 닿으면 무너질 것 같아서 닿지 못하는 거리. 그 간격이 냉기가 아니라 열이었다. 두 몸이 방출하는 체온이 닿지 않은 채로 그 사이 공기를 데웠다.

윤재는 천장을 향한 채 눈을 떴다. 어둠 안에서 서진의 호흡을 들었다. 평소보다 불규칙했다. 너무 고르게 만들려는 사람의 호흡이 이런 모양을 한다. 잠들지 않은 것이다.

"윤재야."

서진이 불렀다. 낮고, 조심스럽게. 낮에 말이 많았던 사람과 같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껍데기를 벗긴 목소리. 윤재는 이 목소리의 서진을 처음 들었다.

"응."

"나—" 멈춤. 서진이 숨을 한 번 고른 뒤에. "내가 선택받고 싶다는 게 뭔지 네 덕분에 처음 알았어."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웃기잖아." 서진이 말을 이었다. 어둠 속에서 천장을 향해. "나 그전까지 원하는 거 다 있었거든. 원하면 됐고, 되면 당연했고. 근데 너는—네가 한 번 날 보는 눈이 있잖아. 알아보는 것 같은. 그게 뭔지 몰랐는데, 그게 무서웠어. 그러니까 내 말은, 처음으로 내가 선택받아야 하는 입장이 된 것 같아서."

침묵. 방 안에 두 사람의 숨소리만 남았다.

서진이 계속 말했다. 평소와 달리 빠르지 않았다. 말 사이사이에 틈이 있었다.

"그래서 잘하고 싶었어. 잘하려고 했는데. 내가 잘한 건지 모르겠어."

윤재는 눈을 감았다.

잘했다, 고 말하면 거짓말이었다. 못했다, 고 말하면 잔인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옳은 말이 없었다. 그냥 틀린 말과 덜 틀린 말만 있었다. 그런데 가끔은 덜 틀린 말이 더 아팠다. 완전히 틀린 말은 부숴버릴 수 있지만, 덜 틀린 말은 품어야 했다.

"서진아."

"응."

"나도 잘하고 싶었어."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한 마디가 이상하게, 두 문장보다 많은 것을 전달했다. 윤재가 말에 능한 사람이 아니어서 오히려. 이 사람이 이만큼 꺼냈다는 것이, 그 자체로 무게를 가졌다.

서진이 숨을 내쉬었다. 길게. 천천히. 어두운 방 안으로 그 숨이 번졌다.

두 등이 1센티미터쯤 가까워졌다. 의도했는지 몰랐다. 서진이 먼저인지 윤재가 먼저인지 몰랐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닿을 듯 닿지 않은 채로, 두 사람은 같은 어둠 안에 누웠다. 같은 어둠. 같은 천장. 다른 침묵.

서진이 먼저 잠들었다. 호흡이 고르게 가라앉았다. 억지로 고르게 만들던 것이 아니라 진짜로 가라앉은 것—그 차이를 윤재는 알았다.

윤재는 한동안 그 호흡을 세었다.

열셋, 열넷, 열다섯.

새벽 두 시.

윤재는 다시 나왔다.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를 열었다—냉기가 얼굴을 건드렸다.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닫았다. 뭔가를 찾은 게 아니었다. 냉장고를 여는 행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 싱크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흘렀다. 콸콸이 아니라 가늘게. 가는 물줄기가 스테인리스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잠갔다. 소리가 끊겼다.

그는 핸드폰을 꺼냈다.

박지호에게 전화했다. 두 번 울리고 연결됐다.

"야." 지호가 말했다. 자다 깬 목소리가 아니었다. 전혀. "또 안 자?"

지호는 묻지 않았다. 왜 이 시각에, 라고. 그냥 알고 있었다. 이 사람이 이 시각에 전화한다는 것의 의미를. 몇 년이 그것을 가르쳤다.

"……지호야."

"응."

"어제 아버지한테 전화 왔어. 서진이 아버지."

침묵.

지호가 뭔가를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컵이거나 책이거나. 그것을 내려놓고 자세를 바꾸는 소리. 이 통화에 집중하겠다는 신호였다.

"서진이 핸드폰이 아니라." 윤재가 말했다. "내 번호로."

"그거—"

"알아." 윤재가 잘랐다. "알아, 뭔지."

"모른다고 하지 마." 지호가 말했다. 언제나처럼 단답으로. 감정을 빼고 정확하게. "이미 알고 있으면서 모른다고 하지 마."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싱크대 가장자리를 손가락 끝으로 짚었다. 차가웠다.

"윤재야." 지호가 낮게 불렀다. 직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 순간엔 목소리에 아주 얇은 온기가 섞였다. 얇아서 오히려 진짜였다. "너 지금 거기서 버티고 있는 거야,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거야."

"……버티고 있어."

"그래."

그 두 글자가 답하지 않고 받아줬다.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지 않고. 그냥, 그래. 지호가 이십 년 넘게 해온 방식이었다.

"근데 지호야."

"응."

"그 사람이." 윤재가 잠깐 멈췄다. 부엌의 냉기 속에서. "진짜로 날 선택하고 싶은 것 같아."

지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더—" 윤재가 말했다. 그리고 마저 잇지 못했다.

더. 무엇이 더인지. 더 무서운지, 더 아픈지, 더 사랑스러운지. 윤재 자신도 그 문장의 끝을 몰랐다. 아는 척하며 살아온 사람이 처음으로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쪽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이렇게 무거운 일인 줄, 서른다섯 살이 되어서야 알았다.

지호가 말했다.

"그 말 먼저 한 사람이 너잖아."

"……응."

"그럼 다음 말도 네가 해야 해."

🌈

전화를 끊었다. 부엌에 혼자 남았다. 조명을 켜지 않은 채로. 창문 너머 도시의 빛이 희미하게 부엌으로 흘러들어 왔다. 그 빛 안에 윤재가 서 있었다. 서 있는 것만 하고 있었다.

다음 말.

그 다음 말이 무엇인지,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모르는 척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것이 고백인지 이별인지 스스로도 아직 구분하지 못했는데, 해야 한다는 것만은 알았다. 지호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물어보지 않고 알고, 설명하지 않고 전달했다.

윤재는 핸드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뒤집지 않았다. 화면이 위를 향한 채로 뒀다. 오서진 부의 부재중 전화가 아직 알림 위에 얹혀 있었다.

그 이름 옆에, 새로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문자. 수신 시각: 01:47.

발신자: 오서진 부.

메시지는 두 줄이었다.

[한 군, 서진이가 결정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아서. 주변에서 잘 얘기해줬으면 합니다. 이번 기회가 그 아이한테 좋은 출발입니다.]

윤재는 그 두 줄을 세 번 읽었다.

주변에서. 잘. 얘기해줬으면.

첫 번째 읽을 때는 의미를 받았다. 두 번째 읽을 때는 구조를 받았다. 세 번째 읽을 때는—그 구조 안에서 자신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를 받았다.

주변. 자신이 주변이었다. 서진의 아버지가 그 단어를 썼다. 한 군, 이라고 불렀다. 정중하고 거리가 있는 호칭. 설득을 부탁하는 대상.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위치. 그 위치가 이 두 줄 안에 정확히 그려져 있었다.

입 안이 새하얗게 타는 것 같았다. 분노가 아니었다. 정확히 분노가 아니었다. 분노는 뜨겁고 빠르고 방향이 있다. 이것은 그보다 조용하고 이보다 오래가는 종류의 감각이었다—자신이 이 판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상대방이 이미 알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의. 이미 알고 있던 것이 문자 두 줄로 확인되는 순간의. 진단이 아니라 통보가 되는 순간의.

[주변에서.]

윤재는 핸드폰을 뒤집었다.

그리고 안방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복도가 어두웠다.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걸었다—자신도 모르게. 안방 문 앞에 섰다. 서진의 숨소리가 들렸다. 균일하고 깊었다. 진짜로 잠들어 있었다.

이 사람은 이 문자를 몰랐다.

아버지가 이 새벽에 윤재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는 것을. 주변에서 얘기해달라고 했다는 것을. 그 두 줄이 윤재를 어디에 세워놨는지를.

윤재는 문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차가운 금속. 그리고 올린 채로 한참을 있었다. 돌리지 않았다.

돌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직 자신이 할 다음 말을 모르기 때문에—정확히는, 다음 말은 알지만 그 말을 할 자신이 이 사람의 잠을 깨울 자격이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는 네 삶의 모양에 맞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아, 고 말했다.

그건 진단이었다. 오래 번역해온.

그런데 지금 이 문자 두 줄은 그 진단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줬다. 누군가가 이미 같은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을 도구로 쓰고 있었다. 윤재가 혼자 새벽마다 번역해온 것을, 다른 누군가가 훨씬 이전부터 읽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

서진은 알고 있을까.

아버지가 이 번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이런 문자를 보냈다는 것을. 혹은—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은 것일까.

그 '혹은'이 문손잡이 위의 손가락을 차갑게 만들었다.

🌈

손가락이 차가웠다.

부엌 냉기가 복도를 타고 올라온 탓이겠지만, 윤재는 그 차가움이 다른 곳에서 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금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문 너머에 있는 것에 대해, 자신이 아직 모르는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에서 오는.

바람이 창문을 건드렸다. 아파트 복도 어딘가에서 소리가 났다. 세상은 새벽 두 시에도 조용하지 않았다. 조용한 척할 뿐이었다.

안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서진은 몰랐다.

그리고 윤재는—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그 '아직'이 언제까지인지도, 자신은 알지 못했다.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인지도. 문손잡이 위에 올린 손을 내리지 않은 채로, 한윤재는 어둠 속에 서 있었다. 장마 직전의 공기처럼—빛은 아직 충분한데, 이미 무언가가 무겁게 짓눌러 오는. 아름답고 예감이 있는, 그 직전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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