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뜬 눈의 계절
차민율은 현관문을 두드리기 전에 노크를 두 번 했다. 딱 두 번—매너가 배인 사람 특유의 리듬. 짧고, 깔끔하고, 물러설 생각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는 뉘앙스.
윤재가 문을 열었을 때, 그는 이미 웃고 있었다. 나쁜 의도 같은 건 손톱만큼도 없는 얼굴로. 그것이 오히려—처음부터—윤재를 약간 불편하게 했다.
"한윤재 씨 맞죠? 저 차민율입니다. 서진이한테 한 번쯤 얘기 들으셨을 것 같아서요."
서진은 두 박자 늦게 나타났다. 윤재의 등 뒤에서 "민율 선배—"라고 부르는 목소리에 약간의 당혹이 실려 있었다. 약간만. 서진은 당혹해도 목소리를 흔들리게 두는 법이 없었다—그 단속이 훈련인지 천성인지, 7개월이 지나도 윤재는 아직 몰랐다.
"들어와요."
윤재가 먼저 비켜섰다. 그 한 발짝이 윤재 자신도 모르게 낸 것이어서, 발이 움직인 다음에야 '왜 내가 비켜서고 있지'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손이 괜히 소파 쿠션을 고쳐 쥐었다. 정돈할 것도 없는 쿠션을.
차민율은 소파에 앉아 커피잔을 받아 들면서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았다. 서진의 옛 선배, 같은 업계 선배, 그리고 지금은 한 프로젝트의 책임자. 윤재는 그 세 가지 사실을 저마다 다른 무게로 가슴 어딘가에 쌓아 올렸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어느 방향으로 기울지, 아직은 몰랐다.
"서진아, 아버님이 도쿄 쪽 얘기 진지하게 잡으셨어. 이번엔 진짜야."
차민율이 말했다. 커피잔을 들면서도 시선은 서진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서진을 보는 방식이—대화가 아니라 측량에 가까웠다. 어딘가 계산하는 눈. 윤재는 그것을 감지했고, 감지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렸다.
"도쿄 쪽이요?"
서진은 되물었다. 그 '되묻기'가 윤재한테는 이상하게 들렸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 처음 듣는 척하는 목소리—어딘지 모르게 반 박자가 짧은, 그 미묘한 시차. 윤재는 그것을 알아챘고, 알아챈 자신이 불편했다.
"일본 지사. 첫 해외 거점이잖아. 서진이 네 이름 직접 올리셨어, 아버님이. 그냥 형식적인 게 아니야, 진짜 운영 책임자로."
침묵이 흘렀다.
윤재는 냉장고 쪽으로 걸어갔다. 물 한 잔 더 가져온다는 이유였는데, 실제로는 그 침묵에서 얼굴을 빼내고 싶었다. 들키면 안 되는 것이 얼굴에 올라오고 있었다—그게 뭔지 정확히 알기도 전에.
냉장고 문에 손을 얹고, 열지 않은 채로, 윤재는 들었다.
서진이 "언제까지 결정해야 해요?"라고 묻는 소리를.
목소리가 흔들리지 않았다. 단 한 톤도. 그 단단함이 오늘만큼은 낯설게 느껴졌다.
차민율이 돌아간 건 두 시간쯤 뒤였다. 역시 깔끔하게, 매너 있게. 현관에서 마지막으로 웃으면서 "서진아, 잘 생각해봐. 네 인생이잖아"라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온당해서, 너무 반박할 여지가 없어서—윤재는 문이 닫히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미울 게 없는 것들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서진은 현관에서 인사를 마치고 돌아오더니 부엌 식탁 앞 의자를 빼고 앉았다. 아무 말 없이. 팔꿈치를 식탁에 짚고 두 손 위에 이마를 얹을 것 같더니, 그러지 않았다. 그냥 앉아서 식탁 한가운데 점을 보고 있었다.
윤재는 싱크대 앞에서 마른 행주로 멀쩡한 컵을 닦고 있었다.
"윤재야."
"응."
"오늘 민율 선배가 온 거—미리 말 못 해서 미안해."
"괜찮아."
행주가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컵 안쪽, 바닥, 다시 안쪽. 윤재는 그 반복 동작에 집중했다. 집중할 것이 있으면 얼굴이 덜 드러난다. 그 사실을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그게 다야?"
서진의 목소리에 뭔가 당겨지는 게 있었다. 조심스럽지 않았다. 서진은 조심스러운 척을 싫어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뭔가 더 있으면 말해줘' 하는 눈빛. 7개월 동안 한 번도 그 눈빛을 숨긴 적이 없었다.
"도쿄 얘기."
윤재가 말했다. 행주를 내려놓으면서. 등을 돌리지는 않고.
"이미 알고 있었지, 너."
서진이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긍정이었다. 부정하지 않는 사람이 부정하지 않을 때의 무게.
윤재는 그제야 돌아섰다. 식탁에 팔꿈치를 짚고 앉은 서진의 얼굴이, 반쯤 기울어진 오후 햇빛 속에서 피곤해 보였다. 아니, 정확하게는—무언가를 오래 들고 있어서 팔이 탄 얼굴이었다. 혼자 들고 있던 것이 묵직하고, 내려놓는 방법도 아직 모르는 것 같은.
"언제 들었어?"
"3주 전쯤."
3주.
그 숫자가 윤재의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박혔다. 소리도 없이. 뽑으려 하면 더 깊이 박힐 것 같아서, 윤재는 그냥 뒀다. 지금 당장은.
"왜 말 안 했어?"
"확실하지 않아서. 아직도 확실하지 않아."
"그러니까 내 말은—" 서진이 의자를 뒤로 밀면서 일어섰다. 몇 발짝 걷다가 멈추고, 뒤통수를 긁적이다가 윤재 쪽을 똑바로 봤다. 그 일련의 동작들이 전부 서진이 무언가를 정리하는 방식이었다—걸으면서 생각하고, 멈추면서 결론 낸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한 게 없어. 진짜로."
"그래."
"그래?"
"그렇다고."
윤재는 행주를 다시 들었다. 닦을 것도 없는 컵을 또. 서진이 한 걸음 더 다가와 윤재의 손목 위에 손을 올렸다—행주를 뺏지 않고, 그냥 얹었다. 정지시키는 방식으로. 말없이.
"화났어?"
"아니."
"아까부터 뭔가 계속 닦고 있잖아."
"습관이야."
"그거 알아. 근데 화났을 때 더 많이 닦잖아."
윤재가 서진의 손을 내려다봤다. 서진의 손이 자기 손목 위에 놓여 있었다. 따뜻했다. 그 온도가 싫지 않다는 게 지금 이 순간 이상하게 화가 났다—싫어야 뭔가가 더 간단해질 것 같은데, 따뜻하다는 게 느껴지는 한 아무것도 간단해지지 않았다.
"나 화 안 났어."
"거짓말."
"——."
"윤재야, 나 도망가려는 게 아니야."
"알아."
"진짜로."
"그렇다고 했잖아."
서진이 손목을 잡아당겼다. 윤재가 반 발짝 끌려왔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아졌는데, 좁아진 만큼 서로의 숨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이 거리에서는 상대방이 숨을 어떻게 쉬는지도 안다. 지금 서진이 평소보다 조금 천천히 쉬고 있다는 것도.
"나한테 화내도 돼."
서진이 낮게 말했다. 평소보다 느린 속도로. 말이 빠르게 나오는 사람이 이렇게 천천히 말할 때, 그게 진심이라는 걸 윤재는 알고 있었다—그것도 7개월이 가르쳐 준 것이었다.
"화낼 이유가 없어."
"있어."
"없다고."
"3주 동안 나한테 말 못 한 거—"
"네 사정 있는 거잖아."
"그게 윤재 네 사정이기도 해."
그 말에 윤재는 입을 다물었다. 아랫입술 안쪽에 이가 닿았다가 물러났다. 그 버릇이 나올 때, 서진은 기다렸다. 윤재가 말 대신 아랫입술을 씹을 때 억지로 말을 꺼내게 하면 안 된다는 걸 7개월 만에 배웠다. 이 사람은 공간을 주면 나오고, 밀면 닫힌다.
"서진아."
"응."
"나는—이 정도면 돼."
서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내려갔다. 아주 조금, 보는 사람이 알아채기 힘들 만큼. 그런데 윤재는 알아챘다.
"이 정도?"
"지금 이게. 이게 충분해."
서진이 잠시 윤재를 들여다봤다. 오래. 그 시선이 어디엔가 걸리는 것 같았다—윤재가 말한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은 것에. 말과 말 사이의 간격에.
"윤재야."
"응."
"지금 이 정도면 된다고 자꾸 스스로한테 말하는 사람이, 정말로 충분한 사람이야?"
그 질문이 공기 속에 걸렸다. 가라앉지도 않고, 흩어지지도 않고.
윤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이 어딘가 정확히 박힌 것 같아서—아까 3주가 박힌 것과 같은 방식으로, 같은 자리 조금 더 깊은 곳에.
그 질문이 허공에 걸린 채로, 밤이 왔다.
두 사람은 저녁을 먹었다. 윤재가 지은 밥이었다. 된장찌개에 계란말이, 시금치나물. 별것 없는 밥상이었는데 정갈했다—윤재의 밥상이 늘 그랬다. 좋아하면 밥을 짓는 사람의 방식. 서진이 숟가락을 들다 멈추고 잠깐 식탁을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봤다.
서진이 설거지를 했다. 아무도 도쿄를 꺼내지 않았다. 아무도 3주를 꺼내지 않았다. 대신 서진은 찌개를 한 숟가락 더 떠서 입에 넣고 눈을 반쯤 감으면서 "이 된장찌개 어떻게 이렇게 맛있어, 진짜로"라고 진심으로 중얼거렸고, 윤재는 "된장이 좋아서"라고 짧게 답했다.
"된장이 좋으면 다 이렇게 돼?"
"솜씨가 있어야지."
"그것도 맞다."
서진이 찌개를 한 번 더 떴다. 윤재는 그것을 보면서 뭔가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가슴 안쪽에서, 천천히. 아직 박혀 있는 것들은 그대로인데, 그 주변이 조금 덜 팽팽해졌다. 그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한동안 괜찮았다.
밤 열한시, 침대.
서진이 먼저 누웠고 윤재가 나중에 들어왔다. 조명은 서진 쪽 협탁 스탠드만 켜져 있었다—윤재가 씻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서진의 오래된 습관. 윤재가 들어오면 끈다. 그 순서가 생긴 게 언제부터인지 두 사람 다 기억하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다—그 '어느 날'을 특정할 수 없는 것들이 두 사람 사이엔 꽤 있었다.
윤재가 협탁 쪽으로 손을 뻗자, 서진이 먼저 껐다.
어둠.
두 사람이 나란히 누웠다. 천장이 고요했다. 서진의 몸에서 샴푸 냄새가 났다—서진이 쓰는 건 라임 향이라 밤마다 이 침대에서 아주 옅게 여름이 났다. 윤재는 그 냄새에 이미 익숙해져 있어서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오늘 밤은 이상하게 선명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선명해졌다. 장마가 오기 전의 공기 같은 것—냄새가 더 잘 배이는 계절.
서진이 팔을 뻗어 윤재의 손을 잡았다.
느슨하게. 손가락을 끼워 넣는 게 아니라 그냥 얹는 방식으로. 요구가 없는 무게. 윤재는 그대로 뒀다.
"나 무서워."
서진이 말했다. 천장을 보면서. 고백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사실을 보고하는 사람의 목소리로—그런데 그래서 더 진짜같이 들렸다. 서진이 가장 솔직할 때는 이렇게 건조하게 말할 때였다.
"뭐가."
"결정하는 거."
"도쿄?"
"도쿄도 있고. 그것만도 아니고."
서진의 엄지가 윤재 손등을 아주 천천히 쓸었다. 의도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를 동작. 그냥 살아 있는 사람이 다른 살아 있는 사람을 만지고 싶을 때 나오는 것. 말보다 먼저 나오는 종류의.
"나한테 처음으로 선택받고 싶다는 걸 가르쳐준 사람이 너야."
윤재가 숨을 삼켰다.
"그게 무슨—"
"그냥. 갑자기 그 말 하고 싶었어."
서진이 고개를 돌렸다. 윤재의 옆얼굴을 봤다. 윤재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눈을 감지 않고.
"윤재."
"응."
"나 봐봐."
한 박자, 두 박자.
천장에서 시선이 떨어지는 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윤재가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서진의 눈이 가까웠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웠다—두 사람이 같은 베개를 거의 맞닿을 듯 쓰고 있었으므로. 이 거리에서는 서로의 눈동자 안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윤곽만 보인다. 눈이 얼마나 열려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윤곽만으로도 충분히 많은 게 보였다—오늘 밤 서진의 눈이 똑바로 윤재를 향하고 있다는 것도.
서진이 먼저 움직였다.
손이 올라와 윤재의 뺨에 닿았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가락 끝으로—그 조심스러움이 오히려 더 명확하게 느껴졌다. 확인하는 방식의 접촉. 윤재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는 것이 허락의 방식이었고, 서진은 그것을 알았다. 7개월이면 그 정도는 안다.
"오늘 나한테 화내도 됐는데."
서진이 낮게 말했다. 입술이 가까웠다. 숨이 섞일 정도로. 윤재의 숨이 서진의 숨 속으로 들어가고, 서진의 숨이 윤재의 숨 속으로 들어오는—그 뒤섞임의 경계가 흐려졌다.
"화 안 났다고."
"여전히 거짓말."
"——."
"윤재야."
"왜."
"3주 동안 말 못 한 거 미안해. 진짜로. 변명 안 할게."
그 말이 예상보다 직접적이어서 윤재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서진이 변명을 안 할 때—그게 가장 어른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을 때라는 것도, 윤재는 알고 있었다.
윤재의 아랫입술이 미세하게 당겨졌다. 안쪽을 씹는 버릇—서진의 손가락이 그 움직임을 느꼈다. 뺨에 닿은 채로. 피부를 통해 전해지는 작은 근육의 움직임.
"너 지금 또—"
"닥쳐."
서진이 웃었다. 낮고 짧게. 그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아주 가깝게 퍼졌다. 윤재는 그 소리를 듣고 뭔가 안에서 쥐고 있던 걸 조금 내려놓았다—자기도 모르게. 언제 그렇게 꽉 쥐고 있었는지도 모르는 채로. 쥐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던 것을 놓는, 그 종류의 이완이.
서진의 입이 윤재의 입에 닿았다.
처음엔 그냥 닿음이었다. 가만히, 물어보듯. 7개월째 같은 침대에서 자는 두 사람의 입맞춤이 이렇게 조심스러울 수 있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는데—오늘은 이상하지 않았다. 오늘은 다시 처음 같은 것들이 많았으므로. 처음처럼 불확실하고, 처음처럼 중요했다.
윤재가 응답했다. 손을 들어 서진의 손목을 잡는 방식으로. 뺨에 닿은 손을 떼어내지 않고 그 자리에 눌러두는 방식으로. 거기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니—거기 있어줬으면 한다는 요청이, 손끝으로 전해지는 방식으로.
서진의 호흡이 깊어졌다. 윤재가 당긴 방향으로 기울었다. 두 사람의 몸이 가까워지는 것이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느껴졌다—체온이 먼저 닿고, 다음에 무게가, 다음에 손이. 그 순서가 있었다. 매번 다를 것 같은데 매번 같은 순서로. 체온, 무게, 손.
서진의 손가락이 윤재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갔다. 윤재가 낮게 숨을 내쉬었다—억누른 게 아니라 그냥 나온 것이었다. 오늘 밤은 억누를 이유가 없었다. 아직 해결된 게 하나도 없는데, 그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종류의 밤.
서진의 입술이 턱선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느리게. 확인하는 속도로. 목덜미에 숨이 닿을 때 윤재의 손가락이 서진의 등을 끌어당겼다. 소리 없이.
"나 도망 안 가."
서진이 윤재의 이마에 얼굴을 묻으면서 말했다. 입술이 눈썹 위에 닿아 있었다. 따뜻했다—서진의 모든 것이 오늘 밤은 유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장마가 오기 전의 공기는 습해서 열을 더 잘 품는다고 했던가.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 안 나는 말이 지금 이 침대에서 실감 났다.
"알아."
"진짜로."
"그렇다고."
"——윤재야, 그 '그렇다고'는 믿는다는 거야, 아니면 그냥 넘기는 거야?"
윤재가 잠깐 멈췄다.
그리고 서진의 목덜미를 손으로 감아 올리면서, 이마를 맞댔다. 이마끼리 닿는 이 각도에서 두 사람의 숨이 완전히 섞였다. 서로의 눈이 너무 가까워서 초점이 잡히지 않는 거리에서, 윤재가 말했다.
"믿어."
그 한 마디가 오늘 밤 윤재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였다. 크지 않았다—작았다. 그런데 작아서 더 컸다. 채워진 것과 비워진 것이 동시에 있는 목소리.
서진이 그 말을 듣고 잠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 말을 받아 들고 있는 것처럼. 윤재의 이마에 이마를 붙인 채로. 숨을 고르는 것처럼도, 말을 삼키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다음에 서진이 다시 입을 맞췄을 때, 그건 조심스럽지 않았다. 두 사람이 무언가를 확인한 다음에 나오는 종류의 것이었다—묻는 게 아니라 말하는 방식의 입맞춤. 뺨에 닿았던 손이 윤재의 턱을 감쌌다. 윤재의 등이 침대에 눌렸다. 서진의 무게가 내려앉았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숨소리가 뒤섞였다. 라임 향이 더 선명해졌다. 서진의 손이 윤재의 옆구리를 타고 내려가다가 잠깐 멈추고—멈춰서 기다렸다. 윤재가 그 손을 잡아 더 깊이 끌어당겼다. 그것이 허락이었다.
오늘 밤은, 말 없이도 충분했다.
자정이 지났다.
서진이 먼저 잠들었다. 윤재의 팔 위에 얼굴을 얹고, 숨소리가 느려지면서. 잠들기 직전까지도 윤재의 손을 쥐고 있다가—그 쥠이 느슨해지면서. 자는 서진의 얼굴은 깨어 있을 때보다 방심해 있었다. 그 방심이 윤재는 오래전부터 좋았다. 말이 빠르고 무언가를 항상 정정하는 사람이 말을 잃을 때, 그 고요함이. 이것만큼은 서진이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않는 얼굴이라는 걸, 그래서 윤재한테만 보이는 얼굴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서 좋았고, 좋다는 게 오늘 밤은 조금 무거웠다.
윤재는 눈을 감지 않았다.
서진의 호흡을 세면서, 천장을 보면서. 손을 올려 서진의 머리카락을 아주 천천히 넘겼다. 잠든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속도로. 이런 짓을 자기가 하고 있다는 걸 낮에는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었다. 낮에는 행주나 닦고 있을 것이었다.
도쿄.
그 단어가 또 왔다. 조용하고 선명하게. 차민율의 목소리로. 서진이 "언제까지 결정해야 해요?"라고 물을 때의 그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윤재의 손이 멈췄다. 서진의 머리카락 위에서.
3주. 서진은 3주 동안 알고 있었다. 그리고 3주 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것이 배신이 아니라는 걸 윤재는 안다—진짜로. 서진이 말하지 않은 건 숨기려 한 게 아니라 아직 스스로도 정리되지 않은 것을 꺼내기가 두려웠기 때문이고, 그 두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해한다. 이해가 돼.
그런데 이상한 건.
이해하면서도, 그 3주 동안 자신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이 오늘 밤 이 침대에서 이상하게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서진의 미래 지형이 달라지고 있는 동안, 윤재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그것이 잘못된 게 아니었다. 그게 윤재의 방식이었다—좋아하면 밥을 짓는다. 그 방식이 틀린 게 아닌데, 틀린 게 아닌데.
왜 이렇게 작아지는 것 같지.
서진의 숨소리가 고르게 이어졌다. 잘 자고 있었다. 옆에 윤재가 있다는 걸 알아서, 안심하고 잠든 얼굴이었다. 그 안심이 오늘 밤은 아름답고도 조금 아팠다—아름다운 것들이 그렇듯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 때 더 아름답게 보이는.
윤재는 그 얼굴을 오래 봤다.
그리고 다시 천장을 봤다.
눈을 감지 않은 채로, 새벽이 왔다.
오늘 밤 뜬 눈은 윤재였다. 서진은 자고 있었다. 그리고 잠든 서진 옆에서 윤재는 계산하지 않으면서도 무언가가 계속 누산되는 감각을 느꼈다—숫자로 나타낼 수 없는 것들이 쌓이는 감각. 방식이 없는데 무게가 있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없이.
아랫입술 안쪽에 이가 닿았다.
그리고 물지 않았다. 오늘 밤은.
그 대신 서진의 손을 꼭 쥐었다. 서진이 잠결에 손가락을 움직였다—잡아오는 방향으로. 자면서도. 무의식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다—이 손이 거기 있어야 한다고. 이 온도가 맞다고.
윤재는 그 손을 쥔 채, 눈을 감지 않았다.
새벽 세시.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무음으로 설정된 것이 협탁 위에서 한 번 빛을 냈다가 꺼졌다.
발신자 이름이 화면에 짧게 떴다가 사라졌다.
윤재는 그것을 봤다.
'오서진 부'
협탁의 빛이 꺼졌다. 어둠이 돌아왔다. 서진의 숨소리는 그대로였다—고르고, 느리고, 안심한 사람의 것으로.
윤재는 천장을 봤다.
3주. 그리고 아직 결정하지 않은 것들. 그리고 새벽 세시에 울리는 아버지의 전화.
서진이 알고 있는 지형과 윤재가 알고 있는 지형이, 어쩌면 처음부터 같은 지도 위에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조용히, 소리 없이, 박혔다.
뽑으려 하면 더 깊이 박힐 것 같아서.
윤재는 그냥 뒀다.
서진의 손을 쥔 채로. 눈을 감지 않은 채로.
새벽이 조금씩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