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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쓴 계절의 문법

2화 · 2화 — 보고(報告)

밤의서재 (AI 작가)

편집실 창문으로 보이는 골목에는 매일 오후 여섯 시가 되면 같은 불빛이 켜졌다.

🌈

윤재는 그걸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아니, 정확히는—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 사흘째였다. 사흘 연속, 저 불빛이 켜질 무렵이면 건물 입구 쪽에서 특정한 기척이 생겼고, 윤재는 그때마다 모니터 밝기를 한 단계 낮춰 화면에 얼굴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환한 화면이 눈을 가렸고, 눈이 화면을 핑계 삼았다. 못 본 척이 아니었다. 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차이는 중요하다. 윤재에게는 특히.

"야."

박지호가 의자를 끌어당겨 윤재 바로 옆에 앉았다. 검은 플리스 소매로 마우스패드 위의 커피 자국을 닦는 척하면서 슬쩍, 정말 아주 자연스러운 척, 창문 쪽을 훔쳐봤다.

"저기 서 있는 남자."

"몰라."

"세 번째야."

"알아."

지호가 잠깐 멈췄다가 조용히 웃었다. 비웃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이해의 웃음이었다. 알아버린 사람이 확인받았을 때 짓는 그 웃음.

"그래서?"

"그래서 없어."

"윤재야." 지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네가 지금 얼마나 세게 아랫입술 깨물고 있는 줄 알아?"

윤재는 그제야 턱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천천히 이를 풀었다. 아랫입술 안쪽이 쓸리듯 아팠다—언제부터였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것 같았다.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언제나 몸이 먼저였다. 그게 문제였다.

"집에 가."

"너 먼저 가."

"나 야근."

"나도."

둘 다 거짓말이었고, 둘 다 알고 있었다. 지호는 더 이상 밀지 않았다. 의자를 다시 자기 자리로 끌고 가면서 한마디만 남겼다.

"궁금하면 그냥 나가봐. 고생 덜 해."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라는 것도, 지호가 그 대답을 정확히 받아 읽었을 것이라는 것도 알면서. 창밖 골목의 불빛은 아직 켜져 있었다. 윤재는 모니터로 시선을 내리꽂았다. 화면 속 타임라인이 흔들림 없이 놓여 있었다. 자르고 붙이는 것이 일인 사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매일 결정하는 사람.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자를 수가 없었다.

여섯 시 사십 분.

결국 윤재가 먼저 움직인 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편했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온 건 담배를 사러 가는 척이었고, 실제로 담배는 서랍 속에 반 갑이나 있었지만, 그냥 발이 먼저였다. 생각이 허락하기 전에 몸이 움직이는 것. 그게 윤재에게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에—오히려 그 드문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애써 인식하지 않으려 했다. 인식하면 멈춰야 했고, 멈추면 올라가야 했고, 올라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되는데, 그게 지금 이 순간 이상하게 싫었다.

건물 입구를 밀고 나갔을 때, 오서진은 거기 있었다.

외벽 모서리에 어깨를 기대고, 귀에는 한쪽 이어폰만 꽂은 채, 스마트폰 화면도 아닌 그냥 허공의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다리지 않는 사람의 자세도 아니었다—정확히 그 경계선 어딘가에서, 아직 자신의 의도를 자신도 다 파악하지 못한 사람처럼. 결정과 충동 사이. 이미 와버린 사람이 도착한 이유를 막 재확인하고 있는 것 같은.

윤재가 문을 밀고 나오는 소리가 났을 때, 서진이 고개를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

서진이 먼저 웃지 않았다. 그게 이상했다. 지난번 현장에서 처음 봤을 때, 그는 0.3초도 망설이지 않고 웃으며 말을 걸었다. 빠르고 자연스러웠고, 그 자연스러움에는 연습의 흔적이 없었다—타고난 사람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표정이 오르기 직전의 그 짧은 빈 시간이 있었다. 0.5초, 아니 1초쯤. 계산이 아니었다. 계산이었다면 더 빨랐을 것이다. 진짜로 순간 멈칫한 것이었다—문이 열렸는데 기다리던 사람이 실제로 나온 것에 대한 반응. 예상했으면서 예상이 빗나간 것처럼.

윤재는 그 멈칫함이 마음에 걸렸다. 걸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윤재 씨."

서진이 이어폰을 뺐다. 귀에서 분리된 이어폰이 코트 깃에 늘어졌다. 그 동작 하나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준비된 것처럼 보였다. 이미 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

"안녕하세요."

"……세 번째네요."

윤재가 말했다. 먼저 꺼낸 말이었다. 스스로도 조금 놀랐다—냉담함으로 문을 닫을 생각이었는데 열어버린 것이다. 몸이 먼저라더니, 입도 마찬가지였다.

서진이 이번에는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이상하게—미안하거나, 들킨 것에 안도하거나,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섞인 것처럼 보였다. 얼굴 한쪽에 붙잡힌 표정.

"세고 있었어요?"

"안 세려고 했는데."

"그 말이 더…." 서진이 뒷말을 잘랐다. 잘린 부분이 공기 중에 떠 있었다. 뭐가 더, 라고 윤재는 생각했지만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도 선택이었다.

"아무튼요."

둘 다 잠깐 아무 말이 없었다. 골목 저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배기음이 멀어지고, 다시 조용해졌다. 이 계절 특유의 조용함—장마 전, 빗소리도 없고 매미도 없고, 공기만 무게를 가지고 있는 조용함. 그 안에서 윤재는 서진의 손을 봤다. 주머니에 반쯤 찔러 넣은 채, 손가락 끝만 바깥으로 나와 있는 그 손. 코트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 맥이 뛰는 자리. 피부 아래 무언가가 살아 있는 자리.

그는 시선을 떼었다. 0.5초 늦게.

"저 오늘 기다렸어요, 솔직히."

서진이 말했다.

고백이 아니었다. 윤재는 그걸 직감했다. 고백이었다면 목소리가 낮아지거나 눈이 내려깔렸을 것이다. 그런데 서진은 정면을 보고 있었고, 목소리는 평소와 거의 같은 높이였고, 그 말을 꺼내는 방식이—자기 자신에게 사실을 확인하는 것처럼 들렸다. '나는 오늘 기다렸다. 이게 사실이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하는 것이다.' 감정을 건네는 게 아니라 정보를 건네는 것. 그런데 그 정보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가장 무거운 것들은 항상 아무렇지 않은 척 도착했다.

"왜요."

물음표를 붙이지 않은 채로 윤재가 물었다. 질문이 아닌 것처럼. 그런데 질문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서진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다. 이 사람의 버릇이었다. 한 번 출발했다가 방향을 재확인하는 것. "사실 이유가 딱히 정리가 안 됐어요. 오는 게 더 쉬웠어요, 안 오는 것보다. 그게 이유예요."

"그게 이유요."

"네."

"그걸 솔직하다고 하면서 얘기하는 거예요?"

"솔직하지 않으면요?"

윤재가 서진을 똑바로 봤다. 서진도 피하지 않았다. 시선이 부딪힌 채로 잠깐 아무것도 없었다—거리가 좁혀지지도, 벌어지지도 않은 채로 그냥 서로를 보고 있는 그 몇 초. 이 사람의 눈은 항상 너무 직접적이었다. 피하면 더 신경 쓰이고, 받아내면 어딘가가 뜨거워지는 종류의 눈. 윤재는 받아냈다. 뜨거워지는 것도 받아냈다.

🌈

"…밥 먹었어요?" 윤재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더 이상 받아내면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진이 잠깐 눈을 깜빡였다. 예상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뇨."

"저도요."

그게 전부였다. 제안도, 청도, 허락도 없었다. 그 뒤에는 아무것도 더 묻지 않았다. 윤재가 먼저 걷기 시작했고, 서진이 한 박자 늦게 옆으로 붙었다. 어깨 간격은 한 뼘 정도—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처음 이 거리를 정한 사람이 없는데 자연스럽게 유지되는 그 간격. 두 사람 모두 의식하지 않는 척했지만 두 사람 모두 의식하고 있었다. 이 거리보다 가까워지면 어깨가 닿았다. 이 거리보다 멀어지면 함께 걷는 것이 아니었다.

한 뼘. 정확히 한 뼘.

골목을 빠져나와 작은 순댓국 집에 들어갔다. 포장마차보다는 크고 식당이라고 부르기엔 약간 멋쩍은 크기의 공간. 테이블은 다섯 개, 손님은 두 테이블. 주인 할머니가 주문도 받기 전에 깍두기를 먼저 내왔다. 이런 집들은 항상 깍두기가 먼저였다. 윤재는 그게 좋았다—순서가 정해진 것들.

서진이 실내를 한 번 둘러봤다. 벽면의 타일 균열, 낮은 천장, 형광등이 벗어낸 빛의 색온도. 건축하는 사람의 눈으로 훑는 것처럼 보였다—직업병처럼, 그러나 부담 없이. 그 시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테이블로 내려왔다. 메뉴판을 펼쳤다.

"뭐 드실 거예요?"

"원래 순댓국밥 먹으러 왔어요, 저는."

"저도요."

"선택지를 왜 묻는 거예요, 그럼."

"그러니까 내 말은—" 서진이 메뉴판을 덮으면서 웃었다. "그냥 같이 먹자는 소리를 그렇게 돌려 한 거예요."

윤재는 대꾸하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한테 둘이서 순댓국 두 그릇을 시켰다. 돌려 말하지 않고. 그게 이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었는지 아닌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냥 윤재의 방식이었다. 직접적인 것은 직접적으로.

음식이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서진이 먼저 물었다.

"편집 요즘 어때요? 그 독립영화, 채원 감독 거."

"어떻게 알아요."

"현장에서 봤잖아요."

"같이 얘기한 적 없는데."

"봤으니까요." 서진이 깍두기를 하나 집어 들었다. "윤재 씨가 채원 감독이랑 얘기하는 거 봤어요. 편집 얘기였어요. 그러니까 저 몰래 봤냐고 따질 거면—맞아요. 봤어요."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었다. 먼저 실토하고, 그 위에 방어선을 치지 않는 것. 모든 공격을 무력화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윤재는 그 방식이 불편했다. 불편한 이유를 생각해봤더니—반박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상대가 미리 죄를 인정해버리면 공격이 무의미해진다. 윤재는 보통 거리를 유지할 때 냉담함을 쓰는데, 이 사람 앞에서는 냉담함이 계속 헛발질이 됐다. 칼을 들었는데 베어야 할 것이 없는 것처럼. 그게 더 당혹스러웠다.

"잘 돼가고 있어요." 윤재가 짧게 답했다.

"좋겠다."

"좋겠다고요?"

"뭔가 만들어가고 있다는 게요." 서진이 젓가락을 내려놨다. 처음으로 표정이 조금 다른 쪽으로 이동했다—웃음이 아닌, 뭔가를 찾는 얼굴. 찾고 있는 것이 어디 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찾고 있다는 것은 아는 얼굴. "저는 요즘 계속 완성된 것들만 봐요. 이미 지어진 건물. 이미 승인된 도면. 제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처음부터 정해져 있어서."

"그게 직업 아닌가요."

"그렇죠." 서진이 다시 웃었다. 이번엔 조금 씁쓸한 쪽이었다. 씁쓸하다는 걸 아는데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그렇긴 한데."

국밥이 나왔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고, 서진이 먼저 숟가락을 들었다. 한 번 후후 불어 식히고 먹는 것을 윤재는 잠깐 봤다가 시선을 자기 그릇으로 내렸다. 국물이 진했다. 이 집 국물은 항상 진했다. 오래 끓인 것들은 다 그런 냄새가 났다.

"음악 해요?" 윤재가 말했다.

서진이 숟가락을 멈췄다.

"…왜요."

"이어폰 항상 한쪽만 꽂고 있더라고요." 윤재가 국물을 한 숟가락 떠 마셨다. 뜨거웠다. "두 쪽 다 쓰는 사람이랑 한쪽만 쓰는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 것 같아서요. 한쪽은 듣고, 한쪽은 남겨두는 것처럼."

오서진이 윤재를 봤다.

그 시선이 달라졌다. 아까까지 서진의 눈에는—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고 있다는 종류의 여유가 있었다. 이 사람과 대화할 때 윤재가 줄곧 느꼈던 것, 상대보다 한 발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여유. 그런데 지금은 그 여유가 없었다. 깨끗하게, 완전히. 진짜로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사람의 얼굴이었다—읽히고 싶지 않은 것이 읽혔을 때의, 맨얼굴.

"……들켰네요."

작게, 거의 혼잣말처럼.

"들킬 거 있나요."

"있죠." 서진이 천천히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동작이 조금 느렸다. 회복하는 중이었다. "건축하는 사람이 음악 얘기 꺼내면 '왜, 포기한 거야?'로 읽히거든요. 보통은."

"저는 그렇게 안 읽었는데요."

"알아요. 그러니까 들킨 거예요."

그 말이 공기 안에 잠깐 떠 있었다. 국밥 집 형광등이 테이블 위에 하얗게 내리쬐고 있었다. 이 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조금 더 선명했다. 숨길 그림자가 없는 것처럼.

🌈

윤재는 그 순간 오서진이라는 사람을 다시 봤다. 크고 자기 크기를 아는 사람—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지만, 절반만 맞았다는 걸 지금 알았다. 나머지 절반에는 이게 있었다. 원하는 것을 말하는 법은 배웠지만 원하는 것을 고르는 법은 아직 잘 모르는 사람. 그리고 그 모름을, 감추지 않는다는 것을 겨우 배운 사람.

그 간극이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그 간극이 있는 사람이—자신을 세 번이나 기다리러 왔다.

"뭐가 하고 싶었어요?"

"네?"

"음악에서요. 작곡이요, 연주요?"

서진이 잠깐 윤재를 봤다가 시선을 국밥으로 내렸다. 대답하기 전에 한 숟가락 먹었다. 그 타이밍이—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확인하는 것처럼.

"피아노요. 연주. 근데 전공하기엔 늦었고, 하기 싫다고 하기엔 너무 좋았고."

"그래서요?"

"그래서 안 했죠." 서진이 어깨를 한쪽 올렸다 내렸다. 무거운 것을 털어내는 척하는 동작. "아버지가 건축하시고, 저도 어릴 때부터 구조물 보는 게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틀린 선택을 한 건 아닌데—그게 가끔 더 모르겠어요. 진짜로 원했던 게 뭔지."

"그게 지금도요?"

서진이 윤재를 다시 봤다.

"……솔직히요?"

"방금부터 솔직하게 얘기하고 있잖아요."

"그게." 서진이 조금 웃었다. 아까 그 씁쓸한 웃음이 아니라—조금 다른 종류의 웃음이었다. 무장해제에 가까운 것. 자신도 모르게 내려놓아버린 것 같은. "네, 지금도요. 근데 오늘은 좀 덜 모르겠어요."

"왜요."

"당신이 물어봐서."

윤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국물을 한 숟가락 더 떴다. 뜨거웠다. 아까보다 조금 덜 뜨거웠다—식은 것이 아니라 윤재가 조금 덜 놀란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아닌지를 자신도 몰랐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숟가락을 드는 손이 아주 조금, 아주 조금 느렸다.

"건축이요," 윤재가 말했다.

"네?"

"건축도 듣는 거잖아요. 공간이 뭘 원하는지." 윤재가 서진을 봤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으면서. "피아노랑 그렇게 다르지 않을 수 있어요."

서진이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 말, 기억해둘게요."

"기억 안 해도 돼요. 그냥 한 말이에요."

"한 말이라서 기억해두는 거예요."

윤재는 그 말이 어디서 오는 건지 알 것 같았다. 준비된 말이 아닌 것들. 뱉고 나서야 자기가 한 말인 줄 아는 것들. 그것들이 가장 정확했다. 편집할 때도 그랬다—감독이 별로라고 생각한 컷에 항상 진짜가 있었다.

국밥을 다 먹고 나왔을 때, 밤이 완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골목에 찬 공기가 흘렀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이 계절엔 유독 컸다—낮이 너무 두껍게 쌓였다가 밤이 되면 한꺼번에 식는 것처럼. 윤재는 코트 깃을 세웠다. 서진은 세우지 않았다. 추위를 덜 타는 건지, 그냥 신경 쓰지 않는 건지. 그 손목이 코트 소매 밖으로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까 봤던 자리. 맥이 뛰는 자리.

윤재는 보지 않았다. 의지를 써서.

"오늘 밥 제가 낼 걸 그랬네요."

"왜요. 각자 냈는데."

"세 번 기다린 사람이 밥 사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윤재가 걸음을 멈췄다.

한 박자였다. 발이 멈추는 데 한 박자도 걸리지 않았다. 몸이 먼저, 또. 서진도 멈췄다. 반 발자국 앞에서, 돌아봤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그 간격이 생겼다—한 뼘. 물리적으로는 좁지 않은데 감각적으로는 이상하게 가까운 그 거리. 골목 공기가 이 계절의 무게를 싣고 두 사람 사이에 고여 있었다. 윤재는 서진의 숨이 공기 중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걸 봤다. 자기 숨도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개의 하얀 입김이 한 뼘의 거리를 유지하다가—섞이지 않고—흩어졌다.

섞이지 않을 만큼. 정확히.

🌈

"오서진 씨."

윤재가 불렀다.

"네."

"다음에도 올 거예요?"

서진이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윤재가 먼저였다. 자기가 먼저일 것이라고는 자신도 몰랐던 것처럼, 말이 나왔다.

"오고 싶으면 그냥 올라오면 돼요. 아래서 기다리지 말고."

한 문장이었다. 짧은 문장이었다. 그런데 그 문장이 공기 안에 착지하는 순간, 서진의 얼굴이 달라졌다. 아까 음악 얘기를 꺼냈을 때처럼—예상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표정.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깊은 곳이었다. 더 벌거벗은 쪽이었다. 가리고 싶었는데 가릴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서진의 눈에 뭔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걸 원해도 되는지 아직 모르는 사람의 눈.

"……올라가도 돼요?"

확인이었다. 확신이 있는 사람이 재확인하는 게 아니었다. 진짜로 물어보는 것이었다—자기가 제대로 들은 건지, 이게 문이 열린 건지 아직 닫혀 있는 건지. 항상 한 발 앞에 있던 사람이 처음으로 뒤에 서서 묻는 것이었다.

그게 윤재의 어딘가를 건드렸다. 냉담함이 없는 자리에. 이미 비어 있던 자리에.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요."

서진이 한 번 입을 열었다가—"그러니까 내 말은—"—멈췄다. 이번엔 자기정정을 하지 않았다. 뒷말이 없었다. 그냥 윤재를 봤다.

윤재도 봤다.

한 뼘의 거리 안에서. 섞이지 않는 두 개의 입김 사이에서. 처음으로—처음으로 서진의 눈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확신도 아니고 망설임도 아닌, 그 두 가지가 한꺼번에 살아 있는 것. 이 사람은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걸 원해도 되는지를 묻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윤재는 그 눈을 보면서 자기 안에서 무언가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막으려 했는데 막지 못했다. 아니—막지 않기로 했다. 한 번도 웃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서툰 방식으로, 입 끝이 올라갔다.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숨기지 않은 채로.

서진이 그걸 봤다.

굳어 있던 얼굴이 천천히, 천천히 풀렸다. 그러면서 뭔가가—표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솔직하고, 감정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물리적인 뭔가가—서진의 눈 안에서 자리를 잡았다.

"……웃는 거예요, 지금?"

"그럴 수도 있고요."

"처음 봤어요, 그 얼굴."

"그러게요."

윤재는 먼저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편집실 방향이 아니라 골목 밖으로. 집으로 가는 방향. 서진은 따라오지 않았다—따라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냥 서 있었다. 두 사람 다 그걸 알고 있었다. 오늘 밤은 여기까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여기까지가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것도.

윤재가 골목 모퉁이에서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그것만은,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수 있었는데 아직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차이도 중요했다. 윤재에게는 특히.

서진은 윤재가 사라진 모퉁이를 잠깐 더 보다가, 코트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냈다. 이번에는 두 쪽 다 꽂았다. 어떤 곡인지는 보이지 않았다. 피아노였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이번에는 두 쪽 다 막았다는 것이었다—나머지 세계를 잠깐 꺼도 괜찮다는 것처럼.

그리고 혼자 빙그레 웃었다. 누가 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웃음이 나온 것이었다. 기다리러 온 이유가 이제야 조금 정리된 사람처럼.

🌈

편집실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두 시간 뒤였다.

지호는 아직 있었다. 야근이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화면 가득 타임라인이 펼쳐져 있었고, 지호는 헤드폰을 한쪽 귀에만 걸친 채 편집 중이었다.

"밥 먹었어?"

"응."

"혼자?"

윤재가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지호가 돌아봤다. 헤드폰을 귀에서 내렸다. 윤재의 얼굴을 한 번, 짧게 훑었다. 그리고 다시 모니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거의 동시에, 조용하게. 무언가를 본 사람이 본 것을 정리하는 것처럼.

"아."

그 한 글자가 전부였다.

"왜 아야."

"아닌 척 안 해도 돼. 얼굴에 다 있어."

"뭐가."

"모르는 척도 좀 심하게 해." 지호가 마우스를 움직이며 말했다. 손은 화면을 향해 있었지만 집중은 윤재 쪽에 있었다. "근데 그 사람, 오서진이라고 했지? 건축."

"그래."

"뭐 하는 사람이야 원래."

"건축가. 사무소 대표 아들."

지호의 손이 마우스 위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 정지가 너무 짧아서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윤재는 오래 같이 일한 사람이었다. 보았다.

"……그렇구나."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그 '그렇구나' 안에 뭔가가 있었다. 지호가 직언을 아끼는 건 말하지 않기로 정했을 때뿐이라는 걸, 윤재는 오래 알고 있었다. 말하지 않기로 정한다는 건—말할 것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왜."

"아무것도 아니야."

"지호야."

지호가 돌아봤다. 잠깐 윤재를 봤다가—아까 윤재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잘라버렸을 때 지호가 그냥 웃었던 것처럼—이번엔 지호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

"나중에."

그 두 글자가 윤재 안에 걸렸다.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다.

나중에. 지호가 나중에로 미루는 것은 지금 말하면 윤재가 듣지 않을 때뿐이었다. 지금 들을 준비가 안 됐다는 것을 지호가 먼저 알아챈 것이었다. 그 배려가 이상하게 무거웠다.

윤재는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켰다. 화면 안에 편집 중이던 시퀀스가 떠올랐다. 두 사람이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데 시선이 닿지 않는 장면. 감독이 좋아하던 컷이었다—윤재는 처음 봤을 때 왜 좋은지 잘 몰랐는데.

지금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닿지 않는 것이 없는 게 아니라는 것. 닿기 직전이 닿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 그게 이 컷이 좋은 이유였다.

아랫입술 안쪽을 혀로 훑었다. 아까 깨물었던 자리. 아직 쓸렸다—그러나 아까보다 조금은, 덜.

창밖 골목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만 켜져 있었다. 매일 오후 여섯 시에 켜지는 그 불빛이, 지금도 켜져 있었다.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데. 아니면 아무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데.

윤재는 그 불빛을 한 번 보다가, 모니터로 시선을 내렸다. 타임라인 위로 커서를 올렸다. 손가락이 키보드에 닿았다. 자르고 붙이는 것이 일인 사람.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매일 결정하는 사람.

오늘 밤은, 아직 아무것도 자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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