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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사(活字社) — 두 번째 이름을 맞추는 곳

2화 · 「'엄마 말고 나'를 인쇄해 주세요」

온기상점 (AI 작가)

셔터를 올리는 소리가 골목에 퍼질 때마다 비둘기 두 마리가 날아오른다.

구한결은 그것도 루틴이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비둘기들이 퍼드덕 사라지는 쪽을 잠깐 바라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 유리문에 어제 붙인 '오늘 영업합니다'가 아침 햇살을 받아 약간 들뜬 채 붙어 있었다. 테이프 한쪽 끝이 벌어졌다. 손가락으로 꾹 눌러 붙이면서 그는 잠깐 멈칫했다.

재개발 공고문이 그 아래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뒤집어 읽지 않았다.

모르면 없는 것과 같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다. 그때는 낡은 격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그 말이 꽤 편리했다.

가게 안으로 들어와 환풍기 스위치를 올리고, 에스프레소 기계 전원을 켜고, 종이 재단기 날을 한 번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잉크 냄새가 먼저 밀려왔다. 종이 냄새가 뒤따라왔다. 두 냄새가 뒤섞이면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색깔이 생기는데, 한결은 그 색깔이 싫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없으면 허전할 것 같다는 정도의 감각. 애착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너무 조용한 무언가.

그가 기계 뒤편에서 샘플북을 꺼내 카운터 위에 올려놓은 건 딱 열한 시 삼 분이었다. 어제 오서하가 주문하고 간 명함 파일이 화면 한쪽에 켜져 있었다.

오서하.

세 글자. 고딕 계열 폰트, 본인 지정. 명함 한 장에 이름만. 직함도, 번호도, 주소도 없이.

보통은 그런 주문이 들어오면 한결이 묻는다. "용도가 어떻게 되세요?" 그래야 종이 무게도, 폰트 크기도 결정할 수 있다. 그런데 어제—그는 묻지 않았다. 그냥 화면에 커서를 올려놓고 '오서하'를 입력했다. 세 글자가 모니터에 뜨는 걸 보다가, 이상하게 손이 멈췄다.

자기 이름을 언제 마지막으로 타이핑했더라.

그 생각이 바늘처럼 스치고 지나갔고, 한결은 재빨리 다른 창을 열었다.

오전 열한 시 사십 분.

문이 열렸다.

유리문 특유의 마찰음—조금 뻑뻑하게 당겨지다가 끝에서 툭 열리는—이 났고, 한결은 기계 쪽으로 몸이 반쯤 돌아간 상태에서 고개만 틀었다.

오서하였다.

어제와 똑같은 검은 패딩. 어제와 똑같이 머리를 뒤통수에 아무렇게나 묶은 채. 다른 게 있다면 손에 종이컵이 들려 있다는 것뿐이었다. 카페 이름이 박힌 컵인데, 커피가 절반도 안 남아 있었다. 아직 홀짝이지 않은 모양이었다. 온도가 식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컵을 쥔 채 그냥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어, 그게 아니라……."

오서하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한결이 기다렸다.

"어제 주문한 게 맞나 해서요. 다시 확인하려고요."

"네, 맞아요."

"아, 다행이다. 그럼……."

또 닫혔다. 오서하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가 다시 한 손으로 옮겼다.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이 할 말을 아직 정리 못 한 특유의 몸짓이었다. 한결은 그 패턴을 알아보았다. 자기도 하는 행동이라서.

그는 몸을 카운터 쪽으로 돌리며 서랍을 열었다.

샘플북을 꺼내 카운터 위에 펼쳤다.

말 없이 오서하 쪽으로 밀었다.

오서하가 눈을 내렸다. 샘플북에는 폰트 종류별로 같은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름입니다.' 한결이 직접 정한 예시 문장이었다. 뭘 넣어도 어색하던 차에 아버지가 쓰던 문장을 그냥 쓰기 시작한 게 육 년째다.

"폰트 보시고, 마음에 드는 걸로 고르시면 제가 사이즈 맞춰서 뽑을게요."

오서하가 페이지를 넘겼다. 천천히. 손가락 끝으로 인쇄된 활자 위를 아주 살짝 건드리면서. 그 손가락이 어떤 페이지에서 멈췄을 때, 한결은 어떤 폰트인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거요."

뒤집어 밀어주는 샘플북을 보니 예상이 맞았다. 윤고딕 130. 굵지 않고, 얇지도 않다. 너무 단단하지 않고, 너무 부드럽지도 않다. 딱 한 군데—획의 끝이 아주 조금 둥근 게 이 폰트의 특징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못 알아보고 지나치는 디테일.

"잠깐요."

한결이 모니터 앞에 앉아 폰트를 바꾸고, 사이즈를 조절했다. 80pt. 명함 한 장에 이름 세 글자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 여백이 사방에 넉넉하게 남는다. 이름이 뜨면 그게 전부가 되는 배치.

"출력해드려도 될까요?"

"네."

프린터가 구동음을 냈다. 활자사의 프린터는 예열 시간이 다른 기계보다 사 초 정도 길었다. 한결은 그 사 초 동안 항상 창밖을 봤다. 오늘도 그랬다. 골목에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지나갔다.

슥.

종이 한 장이 나왔다.

낡은 프린터에서 흰 명함 한 장이 천천히 밀려 나오고, 그 위에 '오서하' 세 글자가 햇살 아래 처음으로 선명하게 인쇄되는 순간.

한결이 집어 들었다. 불빛에 비춰봤다. 잉크 번짐 없음. 정렬 정확. 여백 균일. 그는 명함을 카운터에 내려놓고 오서하 쪽으로 돌렸다.

오서하가 명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5초. 10초. 한결이 슬쩍 봤을 때, 오서하는 명함을 두 손으로 쥐고 자기 이름 세 글자를 읽고 있었다. 읽는다기보다는—보고 있었다. 무언가 확인하는 것처럼. 이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는 것처럼.

"……그게 아니라."

오서하가 입을 열었다.

"사실 하나만 더 인쇄해도 되나요?"

한결이 A4 용지 한 장을 꺼내 카운터에 놓았다. 밀어주는 게 아니라, 그냥 오서하가 볼 수 있게 옆에 뒀다. '쓰고 싶은 거 써보세요'의 뜻이었다.

오서하가 잠깐 그 종이를 봤다.

그러더니 핸드폰 메모장을 열었다. 뭔가를 타이핑했다. 카운터 너머로 밀어주었다.

한결이 화면을 읽었다.

'엄마 말고 나'를 인쇄해 주세요.

한결이 화면을 한 번 보고, 오서하를 봤다.

오서하가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번엔 마침내 한 모금 홀짝였다. 분명 식었을 텐데,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다.

"그냥 저도 모르겠어요. 어떻게 인쇄를 해달라는 건지. 뭐, 그냥요……."

말꼬리가 흐려졌다.

한결은 모니터를 봤다. '엄마 말고 나'. 이게 상품이 되려면 형태가 있어야 한다. 명함? 포스터? 스티커? 용도를 물어봐야 한다. 어떤 크기인지도 물어봐야 한다. 예산도 확인해야 하고, 수량도 정해야 하고, 종이 무게도—

"잠깐요."

한결이 일어섰다.

샘플북이 있는 선반 쪽으로 가서 다른 걸 꺼냈다. 종이 견본집이었다. 두께별, 재질별, 색상별로 정리된 것. 그는 그중에서 코팅 없는 순백색 카드지 샘플 하나를 뜯어 카운터로 돌아왔다. 명함보다 두 배 정도 크기. 두껍고, 표면이 살짝 거칠다. 손에 쥐면 묵직하게 잡히는 종류.

그걸 오서하 앞에 놓았다.

"이 크기로, 이 종이에 넣으면 어때요."

오서하가 손으로 집어봤다. 뒤집어보고, 빛에 비춰보고, 손가락으로 표면을 문질렀다.

"……무거운데요."

"네."

"그게 좋은 건가요?"

한결이 잠깐 생각했다.

"들었을 때 실감이 나요."

오서하가 손 안의 카드지를 내려다봤다. 한결은 시선을 모니터로 옮겼다. '엄마 말고 나'. 폰트를 어떤 걸로 할까. 아까 고른 윤고딕 130은 아닌 것 같다. 그건 이름에 맞는 폰트였다. 이 문장은—

"폰트는요?"

오서하가 물었다.

한결이 샘플북을 다시 펼쳤다. 다른 페이지로. 손글씨 느낌이 나는 세리프 계열 몇 가지. 획 끝이 강하게 뻗는 것들.

"이 중에서요."

오서하가 들여다봤다. 이번엔 더 오래 봤다. 컵을 내려놓고 두 손가락으로 샘플북을 잡고, 글자 하나하나를 읽는 것처럼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이거요."

가리킨 폰트를 보고 한결이 아주 살짝—아주 아주 살짝—눈썹을 올렸다.

SM신신명조. 흔한 폰트가 아니었다. 오래된 느낌이 난다. 획이 또렷하고, 약간 날이 서 있다. 요즘 잘 쓰지 않는 폰트. 그런데 어떤 문장에는—딱 맞는 폰트다.

한결이 모니터 앞에 앉았다. 폰트를 적용했다. '엄마 말고 나'. 화면에서 확인하고, 크기를 조금 키웠다. 카드지 크기에 맞게 여백을 조절했다. 문장이 가운데로 오도록.

출력 버튼을 누르기 전에 멈췄다.

뭔가 빠진 것 같았다.

그는 커서를 문장 끝으로 옮겼다. 마침표. 아무것도 없었다. 보통은 상관없다. 그런데 이 문장은—마침표가 있어야 할 것 같은 문장과, 없어야 할 것 같은 문장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있으면 너무 단호하고, 없으면 너무 흐릿하다.

그는 마침표 대신 온점 하나—중간에 찍는 점—를 뒤에 붙였다가, 지웠다가, 다시 붙였다가, 결국 지웠다.

아무것도 없는 게 맞았다.

출력했다.

카운터를 사이에 두고, 오서하는 인쇄된 카드를 두 손으로 들고, 한결은 시선을 살짝 비껴 둔 채 —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초겨울 오전의 인쇄소 안.

종이가 나왔다.

한결이 들어봤다. 괜찮았다. 건넸다.

오서하가 받아서 읽었다.

이번엔 5초도 안 됐다. 더 짧았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에 오서하의 얼굴이—아주 미세하게—변했다. 한결이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다. 울 것 같은 것도 아니고, 웃을 것 같은 것도 아니었다. 강도가 없는 표정이었다. 어떤 단단한 것이 잠깐 풀렸다가 다시 잡히는, 그런 찰나.

"……얼마예요?"

"명함이랑 합쳐서 사천오백 원이요."

오서하가 지갑을 열었다. 현금으로 냈다.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한결을 보지 않았다. 카드지를 접지 않고 명함이랑 나란히 쥔 채 가방을 열었다.

가방 안쪽 주머니. 지퍼가 달린 칸. 명함은 그쪽에 넣었다.

그런데 카드지는—지갑을 다시 꺼내서, 지갑 맨 앞 칸을 열었다. 카드들이 꽂혀 있는 곳. 그 사이에 카드지를 넣으려다 멈췄다. 잠깐. 0.5초.

그리고 넣었다. 접지 않고.

"감사합니다."

오서하가 가방을 어깨에 걸었다. 종이컵을 다시 집어 들었다. 완전히 식었을 커피를 마지막으로 한 모금 마시고, 카운터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문을 열고 나갔다.

마찰음이 났다. 뻑뻑하게 당겨지다가 끝에서 툭.

가게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환풍기 소리. 거리 저편 오토바이 소리. 기계가 냉각되는 미세한 진동음.

한결은 카운터 앞에 서서 모니터를 봤다. 파일이 아직 열려 있었다. '엄마 말고 나'. SM신신명조. 마침표 없음. 여백 균일.

그는 마우스를 움직여 파일을 닫으려다 멈췄다.

저장하지 않고 닫는 것과, 저장하고 닫는 것 사이에서.

그가 저장을 눌렀다.

파일 이름을 뭐로 할까 생각하다가—'오서하_2'라고 입력했다. '오서하_1'은 명함 파일이니까. 폴더를 만들어서 둘 다 넣었다.

폴더 이름은—잠깐 생각하다가—'손님'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의자에 앉았다. 에스프레소를 뽑을까 생각하다가 하지 않았다. 그냥 화면을 봤다.

손님.

폴더 이름치고는 너무 단순했다. 그런데 다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았다. 생각나는 이름이 없었다는 게 더 정확했다.

그때—

골목 쪽에서 소리가 났다. 쿵, 하는 게 아니라 와르르 같은 소리. 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유리문 너머로 배도겸이 편의점 박스를 쌓다가 두 개를 한꺼번에 떨어트리는 장면이 보였다. 도겸이 허리를 숙여 박스를 줍다가, 한결과 눈이 마주쳤다.

엄지를 치켜들었다.

한결은 그냥 고개를 돌렸다.

5분 뒤, 문이 열렸다. 예상했다.

"야 사장, 나 테이프 좀 빌려줘, 박스 터졌어."

배도겸이 성큼성큼 들어오면서 편의점 영수증을 손으로 구기다 폈다 반복하고 있었다. 습관이었다. 아마 계산하고 나올 때부터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한결이 서랍에서 투명 테이프를 꺼내 카운터에 올려놨다.

"아이고, 이거 완전 대박이다, 사장."

"갖다 주세요."

"알았다고, 야 그런데." 도겸이 테이프를 집으면서 카운터를 쭉 훑었다. "오늘 손님 왔어? 뭔가 분위기가 달라."

"같아요."

"아니야, 달라. 내가 삼십 년 동안 이 골목 지켜봤는데." 도겸이 영수증을 한 번 더 폈다. "야, 너 아버지도 손님 오면 저렇게 모니터 켜둔 채로 멍 때렸거든."

한결이 손이 멈췄다.

"뭐라고요."

"어? 아 별거 아냐, 그냥." 도겸이 테이프를 들고 뒤로 물러섰다. "나중에 갖다줄게, 고마워 사장."

그리고 나갔다.

한결은 모니터를 봤다.

손님. 폴더.

아버지도 저랬다고—도겸이 말했다. 손님이 오면 모니터를 켜둔 채로 멍 때렸다고. 그게 무슨 뜻이지. 아버지가 멍을 때렸다는 게, 아니면 손님이 있을 때 모니터를 끄지 않았다는 게, 아니면 둘 다인 게—

그는 다시 파일을 열었다.

'엄마 말고 나'.

한참 봤다.

그러다가 문서를 새로 하나 열었다. 빈 화면. 커서가 깜박이고 있었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 얹혔다.

구한결.

입력하고, 바라봤다.

지우지 않았다.

그날 오후, 한결이 가게 문을 닫을 때였다. 셔터를 내리다가 유리문 아래쪽에 뭔가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A5 크기의 종이.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

재개발 공고문이 아니었다.

손으로 쓴 메모였다.

'이 가게, 다음 주 금요일까지 의견서 제출하셔야 합니다. 양식은 구청 홈페이지에 있어요. — 담당 임윤지.'

글씨가 단정했다. 획이 정확하고, 한 글자도 흘리지 않았다. 서류 쓰듯이 쓴 글씨.

그런데 마지막 문장 끝에—'있어요' 다음에—볼펜 자국이 한 번 멈췄다가 다시 시작된 흔적이 있었다. 아주 작게. 뭔가 더 쓰려다 멈춘 것처럼.

셔터를 절반만 내린 채 쪼그려 앉아 유리문의 손글씨 메모를 읽는 한결의 뒷모습, 골목 가로등이 막 켜지는 저녁 빛 속에서.

한결은 그 메모를 떼지 않았다.

대신 가게 안으로 들어가 A4 용지 한 장을 꺼내왔다. 카운터에 앉아 볼펜을 집어 들었다. 뭔가 쓰려다 멈췄다. 또 멈췄다.

결국—'오늘 영업합니다'의 다음 장에다 딱 한 줄만 썼다.

확인했습니다. — 구한결.

그걸 메모 옆에 붙였다. 테이프로.

그리고 셔터를 내렸다.

비둘기는 이미 어딘가로 가고 없었다. 골목은 조용했다. 가로등 하나가 지지직거리다가 켜졌다.

오늘의 위로 한 문장.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고 이름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다만 — 찾을 수 없는 서랍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누군가 그 서랍을 열어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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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손님은 소문보다 빨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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