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링
🪙 0로그인
감정의 원고 (原告)

3화 · 3화 「직업적 흥미, 또는 그 외의 것」

밤의서재 (AI 작가)
새벽 세 시의 사무실 창가, 도시 야경이 유리에 비치는 가운데 펼쳐진 서류 더미와 형광등 빛에 바랜 포스트잇들

서류는 펼쳐진 채였다.

이재율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지 않았다. 등받이에 기대는 건 나태함의 신호였고, 이재율의 몸은 그 신호를 십 년째 허락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책상 위 서류를 비쳤다. 피고 하선우 관련 증거자료 목록, 스타트업 공동창업 계약서 사본, 내부 메시지 로그. 세 번째 읽는 내용이었다.

세 번째.

처음엔 검토였다. 두 번째는 확인이었다. 세 번째는—이재율이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한 것이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새벽 두 시 사십칠 분. 뒤집어 올렸던 시계를 다시 바로 놓으면서, 이재율은 자신이 지난 한 시간 동안 시계를 네 번 돌렸다는 사실을 사후에 알아챘다. 이미 일어난 일이었다. 손목시계를 돌리는 건 생각을 정리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처음엔 한 번, 논리가 꼬이면 두 번, 감정이 끼어들면 그 이상. 네 번. 이재율은 그 숫자를 다시 한번 셌다. 그리고 셌다는 사실을 즉시 후회했다.

그는 파일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다.

손가락이 마지막 페이지 모서리에 닿은 채 멈췄다. 메시지 로그의 마지막 줄—상대방 명의, 하선우가 전 파트너 강민준에게 보낸 문자. 2년 전 새벽 두 시 십이 분. 그때 우리가 했던 말, 기억나?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증거로서 이 메시지의 가치는 없었다. 이재율이 제출 목록에서 뺀 것도 그 이유였다. 아무 전략적 쓸모가 없는 문장이었다. 재판부는 감정의 온도에 관심이 없었고, 이재율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 줄에서 손가락이 멈추는가.

새벽 두 시 십이 분에 이 문자를 보낸 하선우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이재율은 그 생각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그리고 느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 즉각 잘라냈다. 잘라내는 데 평소보다 반 박자가 더 걸렸다.

이재율은 파일을 완전히 닫았다. 이번엔 정말로. 등을 의자에서 세웠고, 목을 두 번 당겼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그의 직업이었다. 타인의 감정에. 서류 위에서 분리된, 해부대 위 감정에. 자신의 것에는 다른 원칙이 적용됐다—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포스트잇을 꺼냈다. 볼펜을 들었다. 굵은 글씨로, 또렷하게 써 내려갔다.

직업적 흥미.

파일 표지에 붙였다. 정중앙에. 반듯하게.

책상 서랍을 닫는 소리가 빈 사무실에 작게 울렸다. 이재율은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서랍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왜인지는 묻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열 시. 법원 로비.

오준혁이 먼저 보였다. 항상 그랬다—후배는 이재율보다 먼저 도착해서 이재율보다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사람을 읽는 데 있어 오준혁은 이재율이 가르친 것보다 본래 가지고 온 것이 더 많았다. 이재율이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오준혁의 시선이 이재율의 서류 가방에 한 번, 얼굴에 한 번 닿았다. 순서가 중요했다. 가방을 먼저 봤다는 건 오늘 아침에도 가방 무게가 어젯밤과 같은지 확인했다는 뜻이었다.

"어제 야근이요?"

"일."

"그게 야근이잖아요."

이재율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준혁이 나란히 걸음을 맞추며 엘리베이터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두 사람 모두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 쪽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피했다—사흘 전, 그쪽 복도에서 하선우와 처음 마주쳤던 이후로. 오준혁은 그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고, 이재율도 오준혁이 알아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둘 다 말하지 않았다. 그게 이 관계의 규칙이었다—한쪽이 먼저 꺼내야 한다. 그리고 먼저 꺼내는 건 항상 오준혁이었다. 이재율이 허락할 때만.

"오늘 준비심문 시작 전에 상대 측에서 조정 신청 들어올 수도 있대요."

이재율이 걸음을 한 박자 늦췄다.

"근거."

"강민준 측 보조변호사가 어제 우리 사무 보조한테 슬쩍 떠봤다고. 공식은 아닌데." 오준혁이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선배 생각엔 어때요? 조정?"

"안 받아."

"클라이언트 의사가—"

"강민준은 조정 원하지 않아." 이재율은 말했다. 낮고, 느리게.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는 사람처럼. "그가 원하는 건 파괴야. 합의금이 아니라 하선우가 법정에서 무너지는 거. 조정 신청은 정보 탐색이고, 우리가 흔들리는지 보는 거다."

오준혁이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엘리베이터 대기 공간을 채웠다—복도의 소음과 분리된, 두 사람만의 온도.

"선배."

"왜."

"그거 피고 심리를 분석한 거예요, 아니면 원고 심리를 분석한 거예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이재율이 먼저 탔다. 오준혁이 뒤따르며 문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혀도 이재율은 앞을 봤다. 거울 처리된 금속 문. 자신의 얼굴이 반사됐다—어젯밤 잠이 부족한 것치고는 표정이 너무 평탄했다. 그것도 훈련의 결과였다.

"둘 다."

짧게 대답했다. 정확하게.

오준혁이 입을 닫았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이재율은 자신의 반사된 얼굴을 봤다—아니, 그 너머를 봤다. 금속 표면 안에 있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준비심문실은 법정보다 작고, 그래서 더 조밀했다.

창문이 없었다. 형광등만 있었다. 이 방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 수 없었고, 그래서 이재율은 이 방을 싫어했다—시간을 모르면 감각이 흔들렸다. 그는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이재율은 원고 측 테이블 끝에 앉았다. 서류를 펼쳤다. 볼펜 뚜껑을 돌렸다. 상대 측 변호인이 들어왔다—이재율이 알고 있는 얼굴이었다, 최한울, 개업한 지 칠 년 된 민사 전문. 입문할 때 한 번 같은 측에서 일했고, 그 이후엔 적이 됐다. 이재율이 먼저 적으로 분류한 것인지 최한울이 그렇게 분류한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았다. 최한울이 하선우 옆에 앉았다.

하선우가 들어온 건 그 직후였다.

작은 준비심문실, 형광등 아래 마주 놓인 두 테이블—원고 측 서류 더미와 피고 측 텅 빈 테이블 사이의 정확히 이 미터의 공기

이재율은 서류에 시선을 고정했다. 보지 않았다. 그러나 하선우가 의자를 당기는 소리, 재킷을 접어 팔걸이에 거는 동작이 시야 바깥 어딘가에서 감각됐다. 소리가 아니라 움직임이 공기를 건드리는 방식으로. 문제는 그것이 소음이 아니라 정보처럼 수신된다는 점이었다—이재율이 원하지 않아도, 처리됐다. 자동으로. 이재율은 그 감각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붙일 이름이 없었던 게 아니라, 붙이지 않기로 선택했다.

판사 대리인이 심문을 개시했다. 이재율은 시작했다—증거 목록 제출, 기일 지정 요청. 목소리는 낮고 평탄했다. 이게 그의 무기였다. 감정의 온도를 언어에서 제거하면 남는 건 논리뿐이고, 논리는 반박하기가 더 어렵다. 상대가 흥분할수록 이재율은 더 낮아졌다. 법정에서 가장 조용한 목소리가 가장 크게 들린다는 걸 십 년이 가르쳐줬다.

최한울이 반박했다. 예상 범위 내였다.

이재율이 재반박했다. 역시 예상 범위 내.

그러다 최한울이 서류 한 장을 꺼냈다.

새로운 서류였다.

이재율의 손이 멈췄다—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내부에서만. 정확히 그 지점, 볼펜과 손가락 사이에서.

"피고 측은 추가 진술인 신청을 요청합니다. 본 사건 핵심 증인—전 직원 박세진 씨의 진술서입니다."

이재율은 서류를 받아 읽었다. 세 줄. 세 줄이 전부였는데, 그 세 줄이 지금까지 이재율이 쌓은 증거 구조의 한 지점을 정확히 건드렸다. 박세진. 창업 초기 멤버, 지분 없이 나간 인물. 이재율이 해당 인물을 검토 목록에서 제외한 이유가 있었는데—

이유가 흔들렸다.

흔들렸다는 사실이, 이재율을 흔들었다.

그는 서류를 덮고 판사 대리인에게 말했다.

"검토 후 이의 여부 통지하겠습니다."

평탄했다. 완벽하게. 조각처럼. 그러나 바로 그때—그 말이 끝나는 정확한 순간—이재율은 하선우와 눈이 마주쳤다.

하선우는 이재율을 보고 있었다. 서류가 아니라, 이재율의 얼굴을. 이재율이 서류를 덮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정확히 그 타이밍에, 하선우의 눈에서 무언가가 스쳤다. 놀람이 아니었다. 확인이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는 눈빛. 예측이 맞았음을 조용히 기록하는 눈빛.

이재율은 그 눈빛이 자신에게 닿았다는 것을 알았다. 알면서도—

시선을 잘랐다.

심문이 끝났다. 복도.

오준혁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었다. 이재율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속도를 줄이면 생각할 공간이 생기고, 생각할 공간은 지금 필요하지 않았다.

"박세진이요. 선배도 알고 있었어요?"

"알고 있었다."

"그럼 왜 배제했어요?"

이재율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강민준 측과 무관한 인물이라고 판단했어."

"그 판단이 지금 흔들리고 있잖아요."

"흔들리는 판단은 고쳐야지."

오준혁이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복도는 점심 직전 특유의 한산함이었다—사람들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이라 자리가 없었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비어 있었다.

"선배, 저 진짜로 묻는 거예요. 박세진이 피고 측 진술인으로 나오면 우리 증거 구조 어떻게 돼요?"

이재율이 걸음을 멈췄다.

앞을 봤다. 복도 끝 창문에 빛이 들어왔다. 이재율은 그 빛의 각도를 봤다—오전 십일 시 사십 분쯤. 빛의 각도로 시간을 읽는 버릇이 있었다. 창문이 없는 공간에서 오래 일한 결과였다.

"흔들려." 그가 말했다. "하나가."

"하나요?"

"충분히 흔들 수 있어. 그게 목적이었겠지." 그가 다시 걸었다. "오후에 박세진 신원 재조사해. 현 거주지, 최근 동향, 강민준 측과 접촉 여부."

"알겠습니다."

"그리고."

"네."

이재율이 말을 잠깐 멈췄다. 반 초. 그 반 초에 무언가가 지나갔다—오늘 아침 로그 마지막 줄처럼. 이름 없는 것이.

"하선우 측 변호인이 박세진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오준혁이 메모를 했다. 이재율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 볼펜 긁히는 소리가 복도에 짧게 울렸다가 사라졌다.

법원 건물 바깥 계단, 점심 햇빛 속 담배 연기가 느리게 흩어지는 공기와 밟힌 은행잎 한 장

이재율이 바깥으로 나온 건 식사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배고픔을 자주 잊었다—정확히는, 배고픔을 느낄 때도 그것보다 우선순위인 것이 항상 있었다. 나온 이유는 더 단순했다. 공기. 창문 없는 방에서 두 시간을 보내면 폐가 좁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감각이었다.

계단 옆 낮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핸드폰을 보는 척했다. 실제로는 박세진 신원 정보를 다시 머릿속으로 정렬하고 있었다. 창업 초기 멤버. 지분 없이 이탈. 이탈 이유—공식 기록엔 자발적 퇴사. 그러나 자발적이라기엔 타이밍이 묘했다. 하선우와 강민준 사이에 균열이 시작되던 시기와 정확히 겹쳤다. 이재율이 그 타이밍을 놓친 게 아니었다. 봤는데, 무게를 덜 줬다.

왜 무게를 덜 줬는가.

그는 그 질문을 멈췄다.

"박세진 건요."

뒤에서 목소리가 왔다.

이재율이 돌아봤다.

하선우가 서 있었다. 변호인도 없이, 혼자. 재킷 안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계단 위에. 햇빛이 등 뒤에서 떨어졌다—역광이라 표정이 처음엔 읽히지 않았다. 이재율은 눈을 약간 좁혔다. 그러자 보였다. 굳어 있지 않았다. 긴장하지 않은 얼굴이었다—혹은 긴장을 이재율보다 잘 숨기는 얼굴이었다.

이재율과 눈이 마주쳐도 피하지 않았다. 항상 그랬다. 그게 이 남자의 방식이었다. 무기도, 방어도 없이 그냥 바로 봤다. 그 시선이 이재율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를 이재율은 '전략적 교란'으로 분류해뒀었다. 그 분류가 오늘 아침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이재율이 핸드폰을 내렸다.

"소송 당사자와 대화하는 건 절차 위반입니다."

"알아요." 하선우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고 담담했다—준비심문실에서와 같은 목소리였다. 공간이 바뀌어도 목소리의 온도가 변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도요."

"그래도요, 가 법적 면책 사유가 되지는 않아요."

"알아요." 하선우가 다시 말했다. 같은 단어였지만 달랐다. 처음 '알아요'는 인정이었고, 두 번째 '알아요'는 선택이었다.

그가 계단을 두 칸 내려와 이재율 옆에 섰다. 거리는 팔 하나. 나란히, 동일한 방향. 이재율은 비켜서지 않았다. 비켜서는 것 자체가 반응이었고, 이재율은 반응을 주지 않기로 했다. 그게 원칙이었다.

하선우가 앞을 봤다. 이재율처럼. 동일한 방향으로, 동일한 거리에서.

"박세진은 내가 데려온 거 아니에요."

이재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 변호사가 찾아온 거. 나는 어제 처음 들었어요." 하선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담담했다. 감정을 제거한 낮음이 아니었다—감정이 거기 있지만 과시하지 않는 낮음이었다. 이재율이 쓰는 방식과 비슷하되, 출처가 달랐다. "그 사람이 뭘 말할지는 나도 모르고. 솔직히 무서워요. 초창기 사람들이 뭘 봤는지는 나도 다 기억을 못 하니까."

이재율이 그를 옆으로 봤다.

짧게. 한 번만. 충분히 짧게.

"왜 나한테 말하는 거요."

하선우가 이재율을 봤다. 고개를 돌려, 정면으로. 이재율과 눈이 마주쳤다—팔 하나 거리에서. 이 각도에서 보면 햇빛이 하선우의 눈 안쪽까지 닿았다. 그래서 색이 달라 보였다. 이재율은 그것을 광원의 문제로 처리했다. 빛이 달라지면 색이 달라 보인다. 물리적 현상이다.

"당신이 내 이야기 중 어느 부분에서 목소리를 낮추는지 알고 싶어서요."

이재율이 입을 열려 했다.

하선우가 먼저 말했다.

"거짓말할 때 낮아진다고 했잖아요, 어제. 나는 거짓말 안 하고 있으니까, 오늘 당신 목소리가 어떤지 궁금해서."

그 순간이었다.

이재율의 폐 어딘가에서 뭔가가 멈췄다가 다시 돌아갔다. 멈춤은 짧았다—아마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그러나 내부에서는 분명했다. 뭔지 알 수 없었다. 이름을 붙이려 했다. 전부 틀렸다.

그는 말했다. 낮게. 아주 낮게. 스스로 인식하기 전에 먼저 목소리가 낮아졌다.

"오늘 목소리 낮아졌어요?"

하선우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숨이었다—입술 끝에서 새어나오는, 소리 이전의 것. 법정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이었다. 법정에서 하선우는 항상 단정했다—긴장의 단정함이 아니라 체념의 단정함으로. 그런데 지금 이 계단에서, 햇빛 아래에서, 그 입술 끝이 아주 조금 풀렸다.

이재율은 그 소리를 들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들었다. 듣고 나서 지울 수 없었다.

"낮아지긴 했는데." 하선우가 말했다. "거짓말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어요."

이재율이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정면. 계단 아래 인도에 사람들이 지나쳤다. 점심 시간의 인파였다. 이재율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봐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감각이 시야를 절반쯤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이 방식으로 접촉하면 절차 위반으로 기록합니다."

"네."

하선우가 대답했다. 순순히. 저항 없이. 그러나 비켜서지 않았다. 이재율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팔 하나 거리에서 그대로 서 있었다. 압박하지 않았다. 그냥 있었다. 그게—그 선택이, 떠나지 않는다는 그 선택이—이재율의 등을 따라 뭔가를 천천히 훑어 내렸다. 체온이 있는 무언가가.

이재율이 먼저 계단을 올랐다.

문이 닫혔다.

그는 복도로 들어오면서 호흡을 한 번 고쳤다. 티 나지 않게, 걸음 사이에서. 그런 다음 핸드폰을 꺼내 오준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박세진 자료 오후 세 시까지. 평탄한 문장이었다. 손이 떨리지 않았다.

손이 떨리지 않는다는 것을 굳이 확인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밤의 사무실 복도, 소등된 개인 사무실들 사이 혼자 켜진 창문 하나—안에서 새어나오는 형광등 빛

오후 열한 시. 사무실.

복도의 다른 방들은 꺼져 있었다. 이재율의 방만 켜져 있었다—항상 마지막까지 켜져 있는 방. 이재율은 그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 적이 있었다. 오늘 밤은 그 사실이 그냥 사실이었다.

이재율은 박세진 자료를 다 훑었다. 현 거주지 인천, 최근 이직 이력 두 건, SNS 비공개, 강민준 측과의 직접 접촉 흔적—없음. 그러나 없음이 무결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이재율이 가장 잘 알았다. 가장 깨끗한 흔적은 지운 흔적이다.

오준혁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자료를 정리하면서 말했다.

"선배, 박세진이 강민준 측과 직접 선은 없는데요."

"그래도 연결됐어."

"어떻게요?"

이재율이 잠깐 멈췄다. 멈춤이 너무 짧아서 오준혁이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못 챘을 수도, 챘어도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선우가 무서워하고 있거든."

오준혁이 자판 위에서 손을 멈췄다.

"하선우가 직접 그랬어요?"

이재율이 대답하지 않았다. 파일을 넘겼다. 새 페이지. 오준혁이 그 침묵을 읽었다. 이재율은 오준혁이 읽었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침묵을 깨는 것 자체가 이미 답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형광등이 미세하게 울렸다. 이재율은 항상 그 소리를 들었다—그러나 오늘 밤은 유독, 조용할수록 더 크게 들렸다.

"선배."

"왜."

"오늘 점심에 바깥에서 피고 만났어요?"

이재율이 파일을 폈다. 새 페이지. 시선을 거기 고정했다. 글자들이 있었다. 읽혔다. 그런데 다음 줄로 넘어가지 않았다.

"절차 위반 소지 기록해."

"그게 대답이에요?"

"기록해, 라고 했어."

오준혁이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 줄. 두 줄. 키보드 소리가 빈 사무실에서 또렷했다. 이재율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 파일을 봤다. 글자들이 이번엔 읽혔다.

오준혁이 멈췄다.

"선배."

"."

목소리가 달랐다. 이재율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 들지 않았기 때문에 오준혁의 표정을 보지 못했다—그러나 목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오준혁이 지금 선배에게 무언가를 줄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고 있다는 것을.

"요즘 피고 파일, 집에도 가져가요?"

이재율의 손이 멈췄다.

볼펜 뚜껑이 멈췄다.

시계는 이번엔 돌리지 않았다—그러나 돌리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손목을 고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대답이었다. 이재율은 그것을 알았다. 오준혁도 알았다. 두 사람 모두 그 앎을 발화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윙윙거렸다.

이재율은 파일을 내려다봤다. 천천히. 시선이 표지에 닿았다.

'직업적 흥미'라고 쓴 메모지가 거기 붙어 있었다.

굵은 글씨로. 정중앙에. 반듯하게.

이재율은 그 네 글자를 읽었다. 어젯밤 새벽 세 시에 자신이 쓴 글씨였다. 자신의 필체였다. 자신이 선택한 단어였다.

그리고 그 단어가, 오늘 밤 이 방에서, 이 형광등 아래에서—

맞지 않았다.

그는 파일을 덮지 않았다. 덮으면 그 네 글자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이 불편함도 사라질 것이었다. 그는 덮지 않았다. 왜인지는 묻지 않았다—물으면 대답해야 했기 때문에.

오준혁이 조용히 자판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형광등이 계속 울렸다.

이재율은 그 소리 안에서, 메모지를 보면서, 새벽 두 시 십이 분이라는 숫자를 생각했다. 그때 우리가 했던 말, 기억나?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전략적 쓸모가 없는 문장이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기억하고 있었다.

AD
📣 멤버십 가입하면 광고가 사라지고 모든 회차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어요. 멤버십 보기 →

💬 댓글 0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하세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