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도시전설에 이름이 있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이고 있었다.
PC방 구석, 19번 자리. 이현이 마우스 패드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모니터를 응시하는 동안, 천장의 긴 형광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 눈을 깜박이는 것처럼. 이현은 그 리듬이 신경 쓰여서 화면 대신 천장을 두 번 올려다봤다가 멈췄다.
지금 형광등이 무서운 게 아니잖아.
모니터 화면에는 커뮤니티 게시글이 펼쳐져 있었다. 차유진이 어젯밤 통화 중에 언급한 그 게시물. 'K_리셋7'이 작성한 스레드, 제목은 단순하고 건조했다.
[실제사례 모음] 살아있는데 죽은 사람 — 전국 케이스 정리 (지속 업데이트)
이현은 스크롤을 내렸다. 천천히. 한 줄 한 줄을 읽을 때마다 등이 오싹해졌다.
경기 수원, 여성 41세. 2021년 10월. 교통사고 사망진단 발급, 보험금 2,300만 원 지급. 본인은 현재 생존 중이나 주민번호 말소로 취업 불가.
충북 청주, 남성 28세. 2022년 3월. 가족 동반 입원 중 사망 처리. 병원 의료재단 폐업 후 기록 전무. 현재 행방불명.
부산, 여성 33세. 2020년 6월. 사망 사실 발견 후 5개월 내 실종.
이현의 손이 느려졌다.
5개월 내 실종.
"그 표정."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민서였다.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종이컵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이현의 어깨 너머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현이 움찔하자 민서가 컵 하나를 내밀었다.
"자판기 핫초코요. 돈 없어 보여서."
"……고마워요."
"고맙긴요." 민서는 옆 자리를 끌어당겨 아무렇지 않게 앉았다. 야간 알바 제복인 검정 조끼가 한쪽으로 비틀려 있었다. "그게 K_리셋7 스레드죠? 저도 알아요. 예전에 저장해뒀어요."
이현이 고개를 돌렸다.
"예전에요?"
"한 반 년 됐나." 민서는 핫초코를 한 모금 마시고 모니터를 눈으로 훑었다. "그게 있잖아요, 인터넷 도시전설 중에. '살아있는 사망자' 시리즈. 뭐냐…." 그녀가 잠시 말을 끊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됐어요, 찾아볼게요."
"아니, 말해줘요."
"……그냥 뭐, 무섭다고요? 진짜 사람 얘기가 섞여 있어서. 보통 도시전설은 픽션이잖아요. 근데 이건 아니잖아요, 분명히."
이현은 컵을 두 손으로 감쌌다. 핫초코의 열기가 손바닥을 통해 퍼졌다. 살아있다는 감각. 이런 사소한 것이 요즘은 증거가 됐다.
"K_리셋7, 잠적한 거 알아요?" 이현이 물었다.
민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알아요."
"3개월 전."
"……응." 민서의 말이 무거워졌다. "이 스레드에 댓글 달았던 사람들 중에 두 명이 연락 끊겼어요. 한 명은 아이디가 탈퇴됐고, 한 명은 지금도 가끔 들어오긴 하는데 아무 말도 안 해요. 그거 있잖아요, 뭐냐…." 그녀가 또 말을 자르더니 조용히 덧붙였다. "된 거 같은 사람들."
이현이 천천히 물었다.
"된 게 뭐예요?"
"진짜로. 죽은 거요."
침묵이 왔다.
형광등이 또 깜박였다.
이현은 스레드 하단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K_리셋7의 마지막 게시물은 3개월 전이었다. 내용은 짧았다.
[업데이트] 케이스 23번 추가. 이 중 확인된 실종자 7명. 생존 확인된 케이스 9명. 나머지는 모름. — 다음 업데이트 일정 미정. 잠깐 자리 비워요.
잠깐 자리 비워요.
"이 사람," 이현이 마우스를 잡고 스레드 맨 위로 돌아갔다, "케이스 정리 방식이 너무 체계적이에요. 날짜, 지역, 보험금 액수, 담당 의료기관. 이건 그냥 인터넷에서 주워모은 게 아니야."
"맞아요." 민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게 이상했어요. 근데 뭐, 그냥 덕후면 이 정도 할 수도 있지 않나 싶었어요. 도시전설 수집가들 중에 진짜 프로급이 있거든요."
"케이스 9번." 이현이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담당 의료기관: 마산 Y재단 산하 의원. 이거예요."
민서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어요?"
"제 사망진단서에 찍힌 도장이랑 동일한 재단이에요. 3년 전에 폐업했어요. 차유진이 찾아냈어요."
민서는 5초쯤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핫초코를 책상에 내려놨다. 그리고 이현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럼 이현 씨가 케이스 23번 다음인 거예요?"
이현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자정이 지난 PC방은 이상하게 고요했다. 손님은 이현 포함 네 명. 모두 게임 중이었고, 게임 소리가 저마다 다른 박자로 흘러나왔다. 총소리, 전자음, 배경음악. 그 소음들이 묘하게 섞여 들리는 사이 이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차유진이었다.
이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뒤 직원 휴게 공간으로 들어갔다. 민서가 따라왔다. 민서의 공간이니까.
"어디예요."
유진의 첫 마디는 인사가 아니었다.
"PC방이요. 민서 씨 가게."
"지금 당장 스레드 링크 보내요. K_리셋7 스레드 원본."
이현은 핸드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운 채 복사 붙여넣기로 링크를 문자로 전송했다.
"보냈어요. 왜요, 뭔가 찾은 거예요?"
"케이스 9번 담당 의원." 유진의 목소리가 낮고 건조했다. "마산 Y재단 폐업 이후 의사 면허 이전 기록을 좇았어요. 세 명 중 두 명은 현재 도망 상태에 준하는 주소 이력이에요. 한 명은 서울에 있어요."
이현의 손이 멈췄다.
"서울."
"의원 열지 않았어요. 직원으로 등록돼 있어요. 어느 보험사 소속으로."
한 박자 침묵.
"설마."
"명의만이에요. 실제 근무는 확인 안 됐어요. 근데." 유진이 잠시 끊었다가 이었다. "김재술 소속 보험사 계열사예요."
이현은 휴게 공간 의자 등받이를 꽉 붙잡았다.
이 상황은 합리적이지 않아.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너무 합리적이었다.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고, 그게 더 무서웠다.
"어디에 있어요, 지금." 이현이 물었다.
"사무실이에요. 트렁크 서류 꺼내고 있어요."
"트렁크 서류."
"어머니 사건 것들이요."
이현은 할 말이 없었다. 유진이 5년 동안 차 트렁크에 넣어두고 다닌 서류들. 매일 데리고 다니면서도 열어보지 못했던 것들. 이현은 그게 어떤 무게인지 알 것 같았다. 버리지도, 꺼내지도 못하는 것의 무게.
"……조심해요." 이현이 말했다.
짧은 정적.
"현재 입증 가능성 34%예요."
이현이 눈을 깜박였다.
"어제 12%였잖아요."
"스레드 케이스랑 재단 연결 됐으니까요. 올랐어요."
"……34%도 낮은 건데."
"나머진 우리가 올려요."
우리.
이현은 그 단어가 귀에 걸리는 걸 느꼈다. 차유진이 '우리'라고 말했다. 사실만 나열하는 사람, 불필요한 말은 극도로 아끼는 사람이. 가슴 어딘가가 한 번 쿵 뛰었다. 이현은 그걸 무시하려다가 실패했다.
"알겠어요. 내일 아침 일찍 봐요."
"새벽 세 시 넘으면 연락하지 마요. 저도 잘 거니까."
통화가 끊겼다.
민서가 커피 포트 옆에 팔을 괴고 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레요?"
"뭐요?"
"표정이요."
"……모르는 소리 하지 마요."
"뭐냐." 민서가 입꼬리를 올렸다. "설레는 거 맞잖아요. 세상이 이현 씨 죽었다고 처리해두고 있는데, 그 상황에서도 심장이 뛰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이현이 민서를 노려봤다. 민서는 전혀 움츠러들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 많이 하네요."
"저 원래 말 많아요."
새벽 한 시.
손님이 한 명 더 빠져나갔다. 이제 PC방에는 이현과 게임에 몰두한 남자 두 명뿐이었다. 민서는 카운터로 돌아갔고, 이현은 다시 19번 자리에 앉아 스레드를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케이스 하나하나를 노트에 옮겨 적었다. 날짜, 지역, 의료기관, 보험금 액수. 이현의 손이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정리하면 무섭지 않다. 정리하면 패턴이 보인다. 패턴이 보이면 막을 수 있다. 이건 강박이 아니다. 지금은 생존 전략이다.
케이스 9번. 마산. 케이스 14번. 대구. 담당 의원 폐업 이력 있음. 케이스 17번. 인천. 보험금 지급 완료 후 본인 '심근경색'으로 3개월 뒤 사망. 케이스 21번. 서울. 사망 처리 이후 6주 내 실종. 연락 두절.
이현은 펜을 멈췄다.
케이스들에 패턴이 있었다. 사망 처리 자체가 문제가 아니었다. 사망 처리된 사실을 알아버린 이후가 문제였다. 아는 순간부터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실종되거나, 사망하거나.
그러니까 이현은 지금 카운트다운 중이었다.
알아버린 지 며칠째야.
"이현 씨."
민서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이현이 고개를 들었다. 민서가 카운터에서 이쪽을 보고 있었는데, 표정이 달랐다. 평소의 유들유들한 게 사라지고 뭔가 굳어 있었다.
"이거 한번 봐요."
이현이 카운터로 다가갔다. 민서가 모니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PC방 내부 CCTV 화면이었다.
"저 손님."
가장 끝 자리, 화면 구석.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이현이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남자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얼마나 됐어요?"
"세 시간이요." 민서의 목소리가 한 톤 내려앉았다. "근데 그거 있잖아요…… 저 사람, 처음 왔을 때부터 계속 19번 자리 보고 있어요. 이현 씨 자리요. 한 번도 화면을 제대로 안 봤어요."
이현이 등이 굳는 걸 느꼈다.
고개를 돌려 직접 봤다. 구석 자리. 남자의 눈이. 화면이 아닌, 이현이 방금까지 앉아 있던 19번 자리를 보고 있었다. 이현이 일어나서 카운터로 온 걸 아직 감지하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19번 자리를.
이현은 카운터 아래로 몸을 낮췄다. 핸드폰을 꺼냈다. 차유진한테 전화할까, 문자 보낼까 한 박자 망설이다가 문자를 눌렀다.
지금 PC방에 수상한 사람 있어요. 저 감시하는 것 같아요.
답장이 왔다. 7초 만에.
사진 찍어요. 지금.
이현은 천천히 일어났다.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모르는 척.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카운터 위에 아무렇게나 놓인 것처럼 뒤집어 세웠다. 각도를 조절했다. 구석 자리가 잡혔다.
찍었다.
전송했다.
그리고 이현은 아무 일도 없다는 표정으로 19번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등이 벌벌 떨렸다. 모니터 앞에서 노트를 집어 들고 아무 내용이나 적는 척했다.
20초 후, 유진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현은 이어폰을 꽂고 받았다.
"얼굴이 나왔어요?"
"반쯤이요. 옆면."
"충분해요."
"누군지 알아요?"
짧은 침묵.
"…… 모르겠어요. 근데."
"근데요?"
"재술 씨 측 사람이라면, 저쪽이 이 PC방 위치를 알고 있다는 뜻이에요. 어제 전화에서 민서 씨 언급한 게 허풍이 아니었어요."
이현은 손가락 끝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민서.
이현이 고개를 들어 카운터를 봤다. 민서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민서의 눈이 '어떻게 됐어요?'라고 묻고 있었다.
이현은 노트 귀퉁이에 작게 썼다.
지금 자리 바꿔요. 안 보이는 곳으로.
노트를 카운터 쪽으로 밀었다. 민서가 읽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태연하게 물통을 집어 들고 휴게 공간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유진 씨." 이현이 낮게 말했다. "트렁크 서류 지금 열고 있어요?"
"응."
"거기서 K_리셋7 스레드 케이스 9번이랑 겹치는 게 있어요? 담당 의사 이름이라든가, 재단 관계자라든가."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 서류 넘기는 소리도. 유진이 뭔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30초, 1분.
"이현 씨."
유진의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건조했던 게 아니라, 뭔가를 눌러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뭔데요."
"어머니 사망진단서에 서명한 의사."
"응."
"스레드 케이스 9번 담당 의사랑 같은 사람이에요."
이현은 숨을 멈췄다.
"확실해요?"
"이름, 면허번호, 두 개 다 일치해요. 확실해요."
구석 자리 남자가 의자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이현은 시선을 들지 않았다. 귀로 들었다. 남자가 일어나고 있었다.
"유진 씨." 이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금 그 서류 절대 혼자 갖고 있지 마요. 사진 찍어서 어딘가에 올리든가, 아니면 나한테 보내요. 지금 당장."
"왜요."
"그 서류가 생기면 당신도 타깃이 될 수 있어요. 아니, 이미 됐을 수도 있어요. K_리셋7 봤잖아요. 이 사람들, 증거 들고 있는 사람부터 지워요."
침묵.
이현은 구석 자리 남자가 카운터 쪽으로 걷는 소리를 들었다. 정산하러 가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이현은 고개를 숙인 채 손가락에 힘을 줬다.
"……알겠어요."
유진이 말했다.
"사진 찍어서 보낼게요. 그리고 이현 씨."
"응."
"거기 지금 당장 나가요. 민서 씨 데리고."
"남자가 아직—"
"이현 씨."
유진이 이현의 이름을 불렀다. 짧고 또렷하게. 이현은 입을 다물었다.
"생존 가능성 34%예요. 올리고 싶으면 움직여요."
이현은 일어났다. 노트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아무렇지 않은 척. 구석 자리 남자는 카운터 앞에 서서 정산하고 있었다. 이현은 시선을 그쪽에 두지 않은 채 민서가 들어간 휴게 공간 쪽으로 걸었다.
민서는 문 뒤에 붙어 있었다.
이현이 들어오자마자 민서가 속삭였다.
"나가요?"
"응."
"비상구 있어요. 이쪽 와요."
민서가 앞장섰다. 주방 겸 창고를 지나는 좁은 통로. 박스들 사이로 몸을 비켜가며 걸으면서 민서가 이현의 손목을 잡았다. 이현이 뭔가 말하려는 찰나, 민서가 고개를 돌렸다.
"도시전설에 이름이 올라가는 사람들, 있잖아요."
"응."
"다들 혼자였어요."
비상구 표시등이 초록빛으로 두 사람 얼굴을 비췄다.
이현은 민서의 손목을 되잡았다.
"이제 아니잖아요."
문을 밀었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밀려들었다.
그리고 이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문자였다. 발신인은 '차유진'. 내용은 두 줄이었다.
서류 사진 전송 완료. 그리고 이현 씨—
K_리셋7 IP 추적했어요. 마지막 접속지가 이 PC방이에요. 3개월 전.
이현은 비상구 문을 붙든 채 그 문자를 두 번 읽었다.
그리고 민서를 봤다.
민서의 표정이 이상했다. 이현의 눈이 문자를 읽는 걸 보고 있었는데, 그 눈이—미묘하게, 굳어 있었다.
"민서 씨."
이현이 천천히 말했다.
"K_리셋7이 누구예요."
민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