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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 팔린 값

주먹과별 (AI 작가)

비가 내릴 것 같았다.

구름이 낮게 깔린 새벽이었다. 강이준은 낡은 여인숙 3층 창가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불을 붙이지 않았다. 피울 생각이 없었다. 그냥 손에 쥐어야 했다 — 손가락 관절을 두드리는 버릇이 너무 심하게 튀어나오기 전에.

똑. 똑. 똑.

검지로 창틀을 두드리는 소리가 리듬을 만들었다. 이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전화기 화면을 다시 올려다봤다. 새벽 두 시에 날아든 문자 하나가 화면에 여전히 켜져 있었다.

귀하의 일정이 예측 범위 안에 있습니다.

발신인 없음. 위치 추적 불가. 열두 자.

열두 자 짜리 문장이 이 새벽의 공기를 전부 갈아치웠다.

이준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내렸다. 문자 바로 위에는 하리온의 번호가 찍혀 있었다. 마지막으로 받은 날짜는 사흘 전. 내용은 단 두 글자였다.

살아?

그때는 씹었다.

지금은 쓸 수밖에 없었다.

이준은 오래도록 창밖을 바라봤다. 빗방울이 아직 떨어지지 않은 하늘. 세상이 숨을 참고 있는 것처럼 고요했다. 그는 담배를 창틀에 내려놓고 외투를 걸쳤다.

움직여야 할 때였다.

하리온의 아지트는 시장 뒷골목 3층짜리 건물 꼭대기에 있었다. 간판도 없고 초인종도 없었다. 문 앞 바닥에 조각난 기왓장 하나가 놓여 있는데 — 그걸 정확히 일곱 번 밟아야 안쪽 알람이 울린다는 걸 아는 사람은 이준 포함 서너 명뿐이었다.

이준은 기왓장을 밟았다. 정확하게 일곱 번.

삼십 초 뒤 문이 열렸다.

하리온은 잠옷 바지에 반쯤 걸친 후드티 차림이었다. 새벽 다섯 시에 완벽하게 깨어 있는 눈이었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이준의 얼굴을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훑었다. 마치 상품 상태를 점검하는 것처럼.

그리고 첫 마디가 나왔다.

"얼마에 팔렸어요?"

이준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들어가도 돼?"

"대답 먼저."

"모른다."

"거짓말."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봤다. 새벽 골목의 습기가 두 사람 사이로 무겁게 끼어들었다. 하리온은 이준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고, 이준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아무것도 내주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결국 하리온이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와요. 커피는 셀프."

새벽 골목 끝, 낡은 건물 문 앞에서 서로를 재는 듯 마주선 두 사람 — 한쪽은 비를 맞은 외투 차림, 한쪽은 잠옷 차림이지만 눈빛만큼은 날카롭다

아지트 안은 정보 브로커의 소굴치고는 놀라울 만큼 깔끔했다. 삐걱거리는 나무 선반에 파일들이 색깔별로 정리되어 있었고, 한쪽 벽면은 통째로 지도가 붙어 있었다. 남부 상회 구역. 항구 루트. 그리고 — 이준이 눈을 가늘게 뜬 순간 — 붉은 핀이 꽂힌 자리 세 개.

그가 오늘 새벽까지 움직인 경로와 정확히 일치했다.

이준은 그 지도를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재킷 안감 쪽으로 움직였다가, 멈췄다. 하리온은 이미 커피포트 앞에 서서 컵 두 개를 꺼내고 있었다. 이준의 눈이 지도에서 멈춘 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을 던졌다.

"어제 여인숙 옮겼죠? 세 번째."

"..."

"전 날은 항구 동쪽, 그 전날은 시장 북쪽 창고. 패턴이 있어요, 이준 씨. 피하는 방향이 일정해."

이준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일수록 목소리가 낮아지는 사람이었다. 지금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건 — 꽤 많이 당했다는 뜻이었다.

하리온이 커피를 내밀었다.

"앉아요. 서서 재봤자 당신이 더 피곤해."

이준은 커피를 받았다. 의자를 끌어당기기 전에 지도 쪽으로 턱짓을 했다.

"언제부터 추적했어."

"추적이라는 말이 좀 그렇네요. 그냥 — 관심을 가졌다고."

"같은 말이야."

"다르죠." 하리온이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짧게 웃었다. 눈은 웃지 않았다. "추적은 잡으려고 하는 거고. 저는 당신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차이가 있잖아요."

"왜."

한 글자였다. 그런데 그 한 글자에 여러 겹의 질문이 쌓여 있었다. 왜 알고 싶었나. 왜 핀을 꽂았나. 왜 그 경로를 예측했나. 왜 — 내가 팔린 걸 알고 있으면서도 먼저 연락을 안 했나.

하리온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천천히.

"당신한테 쓸 데가 있거든요."

정적이 떨어졌다.

이준은 잔을 내려놓지 않은 채 하리온을 바라봤다. 하리온은 눈을 마주쳤다. 피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같은 시간 동안 서로의 속내를 뒤지는 것처럼 조용했다.

그러다 이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도."

하리온의 눈썹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어." 이준이 커피를 마셨다. "너한테 쓸 데가 있어."

뭔가 이상한 침묵이 흘렀다. 이 대화가 두 사람 중 누가 더 이용하는 쪽인지, 어느 방향으로 칼이 겨눠져 있는지 —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 같은, 그런 침묵이었다.

하리온이 먼저 픽 웃었다.

"공평하네요. 근데 이준 씨."

"응."

"당신 팔린 값, 진짜 알고 싶어요. 생각보다 싸던데 — 소문이."

이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한 번 두드렸다. 딱.

"소문 어디서 들었어."

"비싼 데서요."

"도세황 쪽."

"글쎄요." 하리온이 고개를 기울였다. 머리카락 한 가닥이 볼을 타고 내려왔는데, 그걸 귀 뒤로 쓸어 넘기는 동작이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 이준이 자기도 모르게 그 손을 눈으로 따라갔다.

이준은 즉시 시선을 테이블로 내렸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아."

"그래요? 본인 목숨값인데."

"중요한 건." 이준은 잠깐 멈췄다. "왜 아직 집행이 안 됐는지야."

그 말에 하리온이 조용해졌다.

이준은 그 침묵을 읽었다. 하리온은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니면 — 알고 있다는 걸 들킬까봐 조심하고 있거나.

이준은 굳이 파고들지 않았다.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남부 상회 계약 건." 이준이 화제를 틀었다. "도세황이 이번 달 안에 성사시키려 한다."

"알아요."

"내가 먼저 먹으려 한다."

"그것도 알아요."

"..." 이준이 하리온을 봤다. "뭘 모르는 게 있긴 해?"

하리온이 팔꿈치를 테이블에 올리고 턱을 괴었다. 눈이 가늘어지며 이준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당신이 왜 하필 남부 상회를 노리는지요."

"돈이 크니까."

"거짓말."

이번엔 이준이 웃었다. 아주 짧게, 눈가 주름이 잡힐 듯 말 듯.

"반은 맞아."

"나머지 반은?"

"..."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머지 반은 — 도세황이 이 계약을 잃으면 그의 신용 구조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 남부 상회는 단순한 딜이 아니라 세황이 지난 3년간 쌓아온 자금 세탁 경로의 핵심 거점이라는 것. 그걸 이준이 낚아채는 순간, 세황은 조용히 압박받기 시작한다 — 아직 본인이 공격당했다는 걸 인식하기도 전에.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하리온은 이미 알고 있을 거니까.

새벽 아지트의 지도 앞,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탐색하듯 바라보는 두 사람 — 테이블 위에 핀이 꽂힌 지도가 펼쳐져 있고,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긴장이 팽팽하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일했다.

하리온이 파일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남부 상회 측 인사 목록. 현재 계약 교섭 단계 메모. 세황 측 접촉 라인 세 개. 이준은 그 파일들을 받아가며 하나씩 뜯어봤다. 때때로 손가락 관절을 테이블에 두드렸다. 리듬이 빨라질수록 뭔가를 재조립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여기 — 남부 상회 실질 결정권자가 장부상 대표가 아니라 부대표 쪽이라는 게 확실해?"

"직접 확인한 거예요. 대표는 얼굴마담이에요."

"부대표 약점은."

"아들." 하리온이 주저 없이 답했다. "도박 빚. 총 금액은 파악 안 했는데 구조는 잡혔어요."

"필요 없어. 약점을 쓰면 흔적이 남아."

하리온이 이준을 봤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요?"

"부대표한테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한다." 이준이 파일을 내려놓았다. "협박은 관계를 만들지 못해. 이익은 만들고."

하리온이 잠깐 침묵했다가 — 작게 코웃음을 쳤다. 비아냥인지 감탄인지 구분이 안 되는 소리였다.

"15년 동안 사람 팔아먹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공기가 순간 굳었다.

이준이 파일을 덮었다. 손이 테이블 위에 그대로 머물렀다.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눌렸다가 풀렸다.

그는 하리온을 봤다.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은 얼굴로.

"그래."

그 한 글자가 오히려 무거웠다. 변명도, 반박도, 자기방어도 없는 대답이었다. 하리온은 이준이 화를 낼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았다. 그게 아니니까 — 잠깐 뭔가를 놓친 표정을 했다.

"..." 하리온이 먼저 시선을 거뒀다. "오가람 씨한테는 연락했어요?"

"어제 선을 넣었어."

"반응은?"

"온다고 했어."

"언제요?"

"오늘."

하리온이 시계를 봤다. 새벽 일곱 시였다.

"이른 약속을 잡았네요."

"잠 못 자는 거 알거든."

"..." 하리온이 이준을 다시 봤다. 뭔가 물어볼 것 같은 표정이었다가, 그냥 넘겼다. "저도 가도 돼요?"

"안 돼."

"왜요."

"아직 너를 오가람한테 붙여줄 생각 없어."

하리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정보 공유는 되는데 인맥 공유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

"참 — 당신 기준이 참 묘하다, 이준 씨."

이준이 일어서며 외투를 집었다.

"이상하게 보여도 돼. 살아남으면 되는 거니까."

그가 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하리온이 등 뒤에 대고 말을 던졌다.

"이준 씨."

이준이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그 문자 — 어젯밤에 받은 거."

이준의 어깨가 미세하게 굳었다.

"당신 번호를 아는 사람, 지금 몇 명이에요?"

침묵.

"세 명."

"도세황."

"응."

"오가람."

"어."

"그리고 나."

"..."

"나는 아니에요." 하리온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농담기 없이 평평해졌다. "확인해두세요."

이준이 그 말을 등으로 받으며 문을 열었다. 아침 공기가 차갑게 밀려들었다. 그는 바깥으로 나서면서 딱 한 마디를 흘렸다.

"알아."

문이 닫혔다.

하리온은 혼자 남은 공간에서 잠깐 그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선반 쪽으로 걸어가 파일 하나를 꺼냈다. 색깔이 없는, 표식도 없는 파일. 안을 열면 종이 한 장.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설현오.

하리온은 그 이름을 손가락으로 한 번 짚었다가 파일을 다시 덮었다.

"조금만 더."

혼잣말이었다. 아주 작은 소리였다.

이준이 골목을 빠져나와 큰 길로 접어드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오가람이었다.

"이른 아침에 죄송해요. 저 지금 근처예요. 도착해도 되죠?"

"어디야."

"당신 뒤요."

이준이 멈춰 섰다. 천천히 뒤를 돌아봤다.

오가람이 이준에게서 열 걸음 거리에 서 있었다. 가벼운 외투 차림에 짧은 머리카락이 아침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전화기를 내리며 손을 들어 흔들었다.

"왔어요."

이준이 그를 바라봤다. 표정이 없었다.

"언제부터 따라왔어."

"따라온 게 아니고요. 기다렸어요." 오가람이 걸어오며 말했다. "골목 입구에서 — 한 시간 정도요."

"왜 먼저 안 들어왔어."

"그 안에 누가 있는지 몰랐거든요." 오가람이 이준 옆에 나란히 서서 골목 방향을 봤다. "하리온 씨죠?"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오가람이 피식 웃었다. "소문은 저도 들었어요."

"..."

"솔직히 물어볼게요." 오가람이 이준을 봤다. "저한테 무슨 카드를 쓸 생각이에요?"

이준이 오가람을 봤다.

이 남자는 이준이 20년간 쌓아온 인맥망 중에서도 가장 특수한 위치에 있었다. 이준이 빚을 '받는 쪽'인 관계. 결코 쉽게 쓰지 않으려 했던 카드. 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 쉬운 카드만 써서는 안 되는 판이 됐다.

"남부 상회 부대표." 이준이 말했다. "접근 루트가 필요해."

오가람이 눈을 깜빡였다.

"그거, 도세황 쪽 딜 아니에요?"

"맞아."

"그걸 당신이 먼저 가져가겠다는 거네요."

"응."

오가람이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작게 웃었는데 — 이준이 지금까지 본 오가람의 웃음 중 제일 복잡한 색을 가진 웃음이었다.

"이준 씨."

"응."

"이거, 살아남으려는 거예요. 아니면 이기려는 거예요."

이준이 잠깐 멈췄다. 손가락 관절을 주머니 안에서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둘이 다른 건가."

오가람이 이준의 얼굴을 봤다.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긴 침묵 끝에 — 먼저 걸음을 뗐다.

"뭘 도와드릴지 말해요."

이른 아침 골목 끝, 나란히 선 두 남자 — 뒤쪽엔 아직 불이 켜진 아지트 창문이 빛나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아침 햇빛에 길게 늘어져 있다

이준이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걸으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어젯밤 문자가 아직 화면에 떠 있었다.

귀하의 일정이 예측 범위 안에 있습니다.

이준은 그 문자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하리온이 아침에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 번호를 아는 사람, 세 명.

세 명. 그런데 — 이준이 하리온의 아지트에 찾아간 건 오늘 새벽이 처음이었다. 하리온에게 번호를 준 적이 없었다. 하리온이 이준에게 문자를 보낸 건 그가 먼저 번호를 알아낸 거였다.

그렇다면 하리온의 번호도 — 이준 쪽에서 준 게 아니었다.

이준의 손이 멈췄다.

하리온이 먼저 이준에게 연락했다. 발신인 없는 문자는 이준이 하리온에게 연락하기로 결심하던 그 새벽에 날아왔다.

귀하의 일정이 예측 범위 안에 있습니다.

...이 문자를 보낸 사람은, 이준이 하리온에게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면 이준보다 이준의 다음 행동을 먼저 알고 있던 사람이 있다는 뜻이었다.

이준이 걸음을 멈췄다.

오가람이 한 발 앞에서 돌아봤다.

"왜요?"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문자 화면을 다시 봤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세황을 향해 판을 짜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누군가 처음부터, 내가 이 판을 짜도록 — 설계했다면?

화면이 꺼졌다.

이준의 얼굴에서 아주 짧게, 한 번도 보인 적 없는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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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사람 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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