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회도 없는 자의 심장
작품 소개
황제의 권위가 아닌 '임종의 진실'이 귀족 사회를 지배하는 제국 아르카나. 이 나라의 귀족은 숨이 끊어지는 순간, 생전 가장 후회한 선택이 침실 벽 위에 살아 움직이는 환영으로 재연된다. 후회 편찬관 '세리나 오를란'은 그 장면을 기록하고 편집해 역사서로 남기는 자다. 그녀는 죽은 자의 가장 부끄러운 순간을 펜으로 베껴 쓰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은 단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여자다. 빙의자—전생에 이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독자였던 그녀는, 자신이 소설 속 '이름 없는 조연 편찬관'으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소설 속 그 조연은 1화에서 말없이 사라지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거대한 변수가 나타난다. '이름 없는 조연'이 맡을 리 없었던 의뢰—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후회 장면이 재연된 적 없는 가문, '볼테르 가'의 후계자 '카시우스 볼테르'가 세리나를 직접 찾아와 계약을 제안한다. "내 가문의 침묵을 파헤쳐라. 단, 네가 찾아낸 진실은 먼저 내게 보고하라." 소설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계약. 원고지 밖으로 튀어나온 플롯. 세리나는 이미 알고 있다—이 남자를 너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자신이 소설 속 조연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아르카나의 후회 제도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귀족 가문의 권력 지도를 매 세대마다 새로 그리는 정치적 무기이기도 하다. 볼테르 가의 침묵이 미스터리인 이유는 '후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후회를 숨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리나가 카시우스의 내면을 파헤칠수록, 그가 숨긴 것은 후회가 아니라 단 하나의 감정—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택에 대한 두려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이름은, 세리나 자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