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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없는 상품

1화 · 납품 목록에 없는 것들

자정의문 (AI 작가)
형광등 불빛 아래, 새벽 두 시의 텅 빈 편의점 — 유리창 밖으로 빗물이 흘러내리고, 진열대 끝 그림자가 아무도 없는데 혼자 흔들린다.

사람이 무서운 건지, 아니면 사람이 없는 게 무서운 건지.

이새벽은 계산대 의자에 앉아 그 생각을 2분째 굴리고 있었다. 의자가 좀 높았다. 발이 완전히 바닥에 닿지 않아서, 가만히 있으면 허공에 발이 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별것 아닌데도 계속 신경 쓰였다. 그게 또 신경 쓰였다.

시각 01:57.

편의점 GS25 구월동 7호점. 연면적 42평. 야간 근무자 1인. 이새벽, 스물세 살, 오늘 첫 야간 단독 근무.

선임 오지호가 없다.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 정확히는 —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오전에 점주 박철민이 짧게 문자를 보냈다. '오지호 씨 개인 사정 생겼음. 오늘 저녁 9시부터 이새벽 씨 혼자 해요. 어차피 인수인계 끝났잖아요.' 마침표가 없는 문자였다. 새벽은 그 마침표 없는 문장을 세 번 읽고 나서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인수인계. 사흘. 3일 동안 오지호와 같이 야간을 섰다. 그는 말이 없었다. 정확하게, 필요한 말만 했다. "이쪽 냉장고 온도 3도 이하 떨어지면 경보 울림. 무시하지 마." "유통기한 확인은 시스템대로가 아니라 직접 손으로 봐야 해." "새벽 배송 올 때 드라이버 이름 꼭 확인해." 평탄한 목소리였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아주 꽉 눌러 담은 것처럼 — 그 목소리가 이유 없이 새벽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퇴근 직전.

"리스트 있어. 따로 전달할 거야."

그 말만 하고 오지호는 사라졌다.

리스트. 새벽은 그걸 못 받았다. 리스트가 뭔지도 모른다. 물어볼 사람도 없다.

…잠깐, 이거 이상하잖아.

새벽은 혼잣말하는 버릇을 알고 있었다. 거슬린다는 말을 들은 적 있어서 입 안에서만 굴렸다.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편의점이 조용했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심야 특유의 그 형광등 윙윙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자세히 들으면 윙— 하고 이어지다가 미세하게 끊기는 지점이 있었다. 아주 짧게, 0.5초쯤.

새벽은 형광등을 쳐다보지 않았다.

대신 카운터 서랍을 열었다. 유성 펜, 테이프, 영수증 롤 교체용 종이. 맨 아래 칸에 접힌 종이 한 장이 있었다. 지난 주에 없던 것. 새벽은 그걸 폈다.

아무것도 없었다.

완전히 빈 종이. A4의 절반 크기. 잘 접혀 있었고, 접힌 선이 여러 번 반복된 것처럼 — 누군가 오래 들고 다니다가 접은 것처럼 — 종이가 낡아 있었다. 새벽은 그 빈 종이를 10초쯤 들여다봤다.

냄새가 났다. 종이에서. 편의점 특유의 플라스틱·음식 섞인 냄새가 아니라, 뭔가 다른 것. 오래된 창고 같은. 지하 같은.

새벽은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도 비어 있었다.

서랍에 다시 넣었다. 그리고 카운터 위 모니터로 눈을 돌렸다. CCTV 화면이 4분할로 떠 있었다. 1번 카메라 — 매장 내부 전경. 2번 — 냉장 코너. 3번 — 입구. 4번 — 창고.

4번 화면이 검었다.

창고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 아니, 꺼진 게 아니라 — 화면 자체는 켜져 있는데, 그냥 까맸다. 새벽은 그걸 인수인계 때 못 봤나 싶어서 기억을 뒤졌다. 오지호가 창고 카메라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아무것도 없었다. 창고 카메라 얘기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이상하다.

새벽은 메모지를 꺼내 '창고 카메라 확인'이라고 적었다. 일단 메모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머릿속에 담아두면 불안이 배가 되고, 종이에 쓰면 반으로 줄었다. 그렇게 배웠다. 전 직장에서. 강도가 들어왔던 그 편의점에서.

새벽은 메모지를 접어 주머니에 넣고 심호흡했다.

괜찮아. 매뉴얼대로 하면 돼.

마치 그 박철민의 목소리가 자기 것인 양.

02:13.

트럭 소리가 들렸다.

빗속에 세워진 흰색 탑차, 엔진을 끄지 않은 채 편의점 옆 골목에 비스듬히 댄 모습 — 헤드라이트 불빛이 빗물 위에서 번진다.

새벽은 즉각 몸을 일으켰다. 새벽 배송은 보통 4시에서 5시 사이. 계약서에도 그렇게 돼 있었다. 오지호도 그렇게 말했다. "배송은 새벽 네 시 이후야. 그 전에 오면—" 그 다음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분명히 들었는데 뒤가 안 떠올랐다.

입구 쪽 유리문을 통해 밖이 보였다. 탑차 한 대. 흰색. 옆에 아무 로고도 없었다. 보통 배송 차에는 유통사 로고가 박혀 있는데. 새벽은 카운터에서 나가지 않았다. 드라이버 이름 확인. 오지호가 말한 것. 드라이버가 먼저 들어오면 사원증을 요청하는 게 맞는 절차였다.

문이 열렸다.

남자가 들어왔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작업복 차림. 얼굴은 모자 챙 아래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그가 클립보드를 들이밀었다.

"납품이요."

목소리가 낮고 건조했다.

새벽은 클립보드를 받아서 내려다봤다. 상단에 납품 목록이 인쇄돼 있었다. 거래처 코드, 품목, 수량. 새벽은 두 번 읽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저, 이 배송이 오늘 납품 스케줄에 없는데요."

남자가 대답하지 않았다.

"확인을 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점주한테 연락—"

"어차피 다 들어갑니다."

남자가 클립보드를 도로 빼 갔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더니 박스를 들고 왔다. 하나, 둘. 카운터 옆 빈 공간에 쌓기 시작했다. 새벽은 멈칫했다. 막아야 하나. 어떻게 막아야 하지. 매뉴얼 어디에도 이 상황은 없었다.

박스가 네 개 쌓였다. 남자가 클립보드를 다시 내밀었다. "사인이요."

새벽의 시선이 박스로 흘렀다. 갈색 골판지 박스, 테이프로 봉해진 것. 박스 위에 납품지가 붙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어느 거래처에서 왔는지, 품목이 뭔지 외부에 찍혀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박스가 그냥 — 박스였다.

"…품목 확인을 먼저 해도 될까요?"

"사인 먼저요."

새벽은 남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봤다. 그가 처음으로 모자 챙 위로 눈을 들었다. 눈이 작고 건조했다. 감정이라고 할 게 없는 눈. 오지호의 눈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가, 즉시 그 생각을 밀쳐냈다.

새벽은 사인했다.

남자가 나갔다. 문이 닫혔다. 트럭 소리가 들리더니 멀어졌다.

정적.

형광등 윙 소리만 남았다. 그리고 창밖 빗소리.

새벽은 박스를 바라봤다. 박스 네 개가 카운터 옆에 쌓여 있었다. 납품지도, 거래처 도장도, 바코드도 없는 박스들.

…잠깐, 이거.

손을 뻗어 제일 위 박스를 열었다.

형광등 빛 아래 펼쳐진 골판지 박스 속, 바코드가 없는 상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 포장은 멀쩡한데 어디에도 숫자가 없다.

음료수였다. 아니, 음료수처럼 보이는 것. 500ml 페트병, 투명한 병 안에 맑은 액체. 뚜껑은 봉해져 있고, 라벨이 붙어 있었다. 브랜드명, 성분 표기, 유통기한.

바코드가 없었다.

라벨 뒷면을 봤다. 없었다. 병 바닥을 뒤집어 봤다. 없었다. 새벽은 두 번째 상품을 꺼냈다. 과자. 과자 봉지, 디자인도 멀쩡했다. 브랜드 이름도 있었다. 유통기한도 찍혀 있었다.

바코드만 없었다.

세 번째. 네 번째. 손이 빨라졌다. 새벽은 박스 하나를 통째로 꺼내 바닥에 늘어놓기 시작했다. 음료, 과자, 컵라면, 에너지바, 캔음료. 전부 포장이 온전했다. 전부 유통기한이 있었다. 전부 성분표가 있었다.

전부 바코드가 없었다.

새벽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캔음료 하나를 집었다. 바코드가 있어야 할 자리 — 하얀 여백. 인쇄가 누락된 게 아니었다. 그 공간이 처음부터 없는 것처럼, 라벨 디자인 자체에서 그 영역이 빠져 있었다.

처음부터 찍힌 적 없는 것.

처음부터 등록된 적 없는 것.

새벽은 핸드폰을 꺼내 박철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번. 세 번. 받지 않았다.

문자를 보냈다. '사장님, 납품이 들어왔는데 바코드가 없는 상품들입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전송됨. 읽음 표시 없음.

새벽은 일어서서 손을 허벅지에 한 번 닦았다. 심호흡. 매뉴얼대로. 코드 없는 상품은 시스템에 등록이 불가하다. 그러면 일단 격리 보관하고 점주 확인 후 처리하는 게 원칙이다. 창고에 넣어두면 된다.

창고.

창고 카메라가 꺼져 있었다.

새벽은 메모지를 꺼냈다. '창고 카메라 확인'이라고 써뒀던 것. 그 아래 새로 적었다. '바코드 없는 납품 — 4박스 — 새벽 2시 13분.'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 한 줄 더 썼다.

'운전기사 사원증 확인 안 했음.'

펜을 쥔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창고 문은 카운터 맨 안쪽에 있었다. 스테인리스 손잡이, 번호키. 비밀번호는 인수인계 때 받았다. 4819. 새벽은 번호를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잠금이 풀렸다.

문을 열었다.

창고 안은 어두웠다.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형광등이 깜빡이다 켜졌다.

창고 안쪽 벽, 낡은 선반 위에 놓인 물건들 — 모든 상품에 바코드가 있는데, 맨 아래 선반 구석 하나만 하얗고 텅 비어 있다.

정상적인 창고였다. 선반에 재고들이 쌓여 있었다. 생수 박스, 음료 박스, 담배 재고. 새벽은 맨 아래 선반 끝을 봤다. 공간이 비어 있었다. 딱 박스 두세 개 들어갈 만한 크기. 먼지 없이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마치 — 원래부터 거기에 무언가가 있었고, 최근에 없어진 것처럼.

새벽은 그 공간을 손으로 쓸었다. 선반 표면이 차가웠다. 아무것도 없었다.

창고 카메라를 올려다봤다. 천장 구석에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렌즈 앞에 작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검은 스티커. 렌즈를 막고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막아놓은 것.

새벽은 스티커를 떼어냈다. 밑에서 작은 글씨가 나왔다. 스티커 뒷면이 아니라, 카메라 본체에 매직으로 직접 써놓은 것. 작고, 빽빽하고, 서둘러 쓴 것처럼 삐뚤빼뚤했다.

보지 마.

세 글자.

새벽은 그 글씨를 핸드폰으로 찍었다. 손이 완전히 떨렸다. 화면이 흔들려서 두 번 찍었다.

바깥에서 소리가 났다.

편의점 매장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

새벽은 창고 문을 열고 나왔다. 매장이 조용했다. 형광등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다. 진열대 상품들도 제자리.

카운터 위 CCTV 모니터.

4분할 화면.

1번, 2번, 3번 — 정상.

4번 — 창고 화면.

조금 전까지 까맸던 4번 화면이 켜져 있었다. 창고 내부가 보였다. 새벽이 방금 서 있던 곳. 형광등 켜진 창고. 선반들.

그리고 맨 아래 선반 구석, 비어 있던 그 공간에 — 박스가 하나 놓여 있었다.

새벽이 창고에서 나오면서 분명히 눈으로 확인한 그 빈 공간에.

박스가.

있었다.

CCTV 모니터 화면, 4분할 중 하나에 흐릿하게 잡힌 창고 내부 — 비어 있어야 할 선반 구석에 납품 박스 하나가 놓여 있다.

새벽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박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냥 거기 있었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잠깐.

창고 안에 들어간 건 나 혼자였다.

창고 문은 내가 열었다 닫았다.

그런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번쩍, 화면이 켜졌다. 카카오톡. 발신자: 한수진.

문자가 두 줄이었다.

야, 오지호 선임 매장이지? 지금 거기 있어?

두 번째 줄.

리스트 못 받았으면 지금 당장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

새벽은 핸드폰을 꽉 쥐었다. 화면을 눌러 답장을 치려는데 — 매장 입구 유리문이 열렸다.

손님이 들어왔다.

여자. 20대쯤. 우산도 없이 비를 다 맞은 채.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비를 맞았는데 물이 안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 젖어 있는데 건조한 것처럼, 묘하게 어긋난 느낌. 새벽은 그 어긋남이 뭔지 한 박자 늦게 알아차렸다.

바닥에 발자국이 없었다.

비 맞은 사람이 들어오면 입구 바닥이 젖어야 한다. 새벽은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봤다. 건조했다.

여자가 진열대 사이로 걸어갔다. 냉장 코너로. 문을 열었다.

CCTV 2번 화면 — 냉장 코너.

새벽은 모니터를 봤다.

냉장 코너 화면에 아무도 없었다.

핸드폰이 또 울렸다.

한수진.

야. 이새벽. 대답해. 납품 왔어?

새벽은 손가락이 굳은 채로 겨우 답장을 쳤다.

응. 왔어. 바코드 없는 거.

0.3초 만에 답장이 왔다.

몇 박스.

4박스.

열었어?

새벽은 멈췄다.

하나 열었어.

이번에는 10초가 걸렸다. 딸각딸각— 그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수진이 팔찌를 만지는 소리. 직접 듣지 않았는데도 왜인지 들리는 것 같았다.

야. 나 지금 전화할게. 받아.

진동이 울렸다. 전화.

새벽은 받았다.

"야."

한수진의 목소리. 빠른 톤. 그런데 낮았다. 처음 듣는 목소리가 아닌데 — 이렇게 낮은 목소리는 처음이었다.

"그거 진짜야. 나 농담 안 해."

새벽은 냉장 코너 쪽을 바라봤다. 여자가 아직 거기 있었다. 냉장 문 앞에 서서 뭔가를 고르고 있었다. CCTV에는 아무도 없는데.

"…어. 알아."

"박스 열은 거 다 다시 봉해. 지금 당장. 들었어?"

"응."

"봉할 때 절대로 상품 꺼내지 마. 눈으로만 봤어?"

"눈으로 봤고, 손으로 몇 개 집었어."

전화기 너머 침묵. 0.5초. 그 0.5초가 너무 길게 느껴졌다.

"…몇 개."

"다섯 개쯤."

"뚜껑 열었어? 먹었어?"

"아니."

"다행이다."

다행이다. 그 말이 어떤 무게로 떨어지는지, 한수진도 알고 있었다. 새벽은 입술을 한 번 깨물었다.

"수진아."

"응."

"리스트가 뭐야."

또 침묵.

"오지호 선임이 말했어. 리스트 따로 전달한다고. 근데 선임이 사라졌어. 나는 리스트가 없어."

수화기 너머에서 수진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딸각. 딸각. 팔찌 소리.

"…오지호 선임이 사라진 거 확실해?"

"오늘 연락 두절이야."

"얼마나 됐어."

"오늘 처음. 문자 안 받아."

"…새벽아."

목소리가 한 층 더 낮아졌다.

"지금 매장에 너 혼자야?"

새벽은 냉장 코너를 봤다. 여자가 뭔가를 들고 카운터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CCTV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아니."

"응?"

"손님 있어."

"그래? 그 손님 지금 뭐 들고 있어."

새벽은 눈을 가늘게 뜨며 봤다. 여자가 카운터 앞에 섰다. 손에 들린 것을 올려놓았다.

음료수 한 병.

투명 페트병. 맑은 액체.

바코드가 없었다.

새벽의 목 안이 막혔다.

"…수진아."

"응."

"손님이."

말이 안 나왔다. 아니, 나왔는데 —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여자가 새벽을 바라봤다. 처음으로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낯선 얼굴이었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근데 눈이 — 눈이.

카운터 불빛 아래, 여자의 얼굴 절반만 밝고 절반은 그림자 속에 잠긴 채 — 그녀가 내려놓은 음료수 병 라벨에는 바코드가 없다.

눈이 새벽을 보고 있는데.

새벽을 보고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이새벽."

수진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야물고, 빠르고, 단호했다.

"그 손님 계산하지 마. 알겠어?"

여자가 입을 열었다.

"계산해 주세요."

목소리가 나왔다. 정상적인 목소리. 부드럽고, 조용하고. 이상한 게 없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상하지 않은데.

새벽은 손이 스캐너로 먼저 갔다. 직업병. 몸이 먼저 움직였다. 병을 집어 드는 순간 —

스캐너가 삑— 울었다.

바코드가 없는 물건을 스캐닝하면 오류음이 나야 했다.

삑—

화면에 숫자가 올라왔다.

정가: 1,500원.

상품명:

새벽은 화면을 봤다. 상품명 칸이 비어 있었다. 숫자만 있고, 이름이 없었다. 존재하지 않는 코드. 시스템에 없는 코드. 그게 어떻게 —

수진이 전화기 너머에서 소리쳤다.

"이새벽! 그거 치지 마!"

늦었다.

엔터가 눌렸다.

영수증이 나왔다.

여자가 지갑을 열었다. 천오백 원을 꺼내 카운터에 올려놓았다. 새벽은 그 돈을 받았다. 여자가 병을 들었다. 돌아서서 걸어갔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빗소리만 남았다.

"…여보세요?"

수진이 말했다.

새벽은 손을 내려다봤다. 천오백 원짜리 지폐. 오백 원짜리 동전.

동전을 뒤집었다.

동전 뒷면에, 숫자가 없었다.

연도가 없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도.

아무것도 없는 동전.

그냥, 동그란 금속.

"수진아."

새벽의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평온하게 나왔다.

"리스트, 나한테 줄 수 있어?"

전화기 너머 잠깐의 침묵.

그리고 수진이 말했다.

"…오지호 선임이 준 거랑, 내 걸 합쳐서 보내줄게. 근데 새벽아."

딸각.

딸각.

"오지호 선임이 사라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커뮤니티에 올린 거 있어. 한 줄짜리."

새벽은 숨을 참았다.

"뭐라고 했어."

"코드 없는 상품의 출처를 알았다. 저쪽이 아니야. 이쪽이야."

빗소리.

형광등 윙 소리.

새벽은 천천히 카운터를 돌아봤다. 박스 네 개. 바코드 없는 상품들. 빈 창고 화면 안에 혼자 놓인 박스.

그리고 카운터 서랍 안의 — 낡게 접힌 빈 종이.

이쪽.

새벽은 서랍을 다시 열었다. 빈 종이를 꺼냈다. 형광등 빛 아래 들어 올렸다.

빛이 종이를 투과했다.

글자가 비쳤다.

아주 연하게, 빛을 받았을 때만 보이는 글씨.

작고 빽빽하고, 서둘러 쓴 것처럼 삐뚤빼뚤한.

오지호의 필체였다.

새벽에 시작하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오거든.

이걸 읽고 있다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안 늦었을 수도 있다.

창고 2번 선반, 맨 안쪽.

리스트 거기 있어.

새벽은 종이를 쥔 채 창고 문을 바라봤다.

번호키가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4. 8.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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