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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고를 삽니다

2화 · 설계도 안의 방은, 죽은 자의 것이 아니었다

밤의서재 (AI 작가)

윤재는 약속 시간보다 십오 분 일찍 도착했다.

건물 자체가 이미 말을 걸어왔다. 골목 안쪽, 삼층짜리 건물. 외벽은 노출 콘크리트인데 군데군데 목재가 끼어들어 있어—숨을 쉬는 것처럼 느껴졌다. 차갑고 단단한 것 사이로 따뜻한 게 비집고 들어온 형태. 윤재는 그 앞에서 잠깐 멈췄다가, 수첩을 꺼내 건물 입면의 비율을 간단히 스케치했다. 직업적 습관이 아니었다. 뭔가를 잡아두고 싶었다—이유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인터폰을 누르자 열 초쯤 뒤에 버저가 울렸다. 말 한마디 없이.

세오의 작업실은 삼층 전체였다. 계단을 오르는 내내 나무 향이 났다. 설계 사무소이기보다는 어떤 사람의 내부 같은—그런 공기.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빛이었다. 북향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흐린 오전의 빛이 도면들 위에 고르게 깔려 있었고, 그 빛 속에 한세오가 있었다.

책상에 앉아 있지 않았다. 넓은 작업대 앞에 서서, 도면 위에 자를 대고 있었다. 윤재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돌아보지 않았다.

"문 잠가요."

"왜요."

"취재 중에 딴 사람 들어오면 싫어서."

윤재는 문을 잠갔다.

공간을 훑었다. 방 한쪽 벽 전체가 사진으로 덮여 있었다—완공된 건물들의 사진. 크기와 용도가 제각각이었는데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전부 비어 있었다. 사람이 없는 건물들. 입주 전 사진인지, 아니면 일부러 사람을 지워낸 것인지. 윤재는 그것을 보면서 1화 때 세오의 노트에서 읽었던 문장을 떠올렸다—인간은 공간을 완성하지 않는다. 공간이 인간을 완성한다. 그 문장이 갑자기 다른 의미로 읽혔다.

"앉아요."

세오가 여전히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작업대 옆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미리 꺼내둔 것이었다. 윤재는 앉는 대신 벽 쪽으로 걸어갔다.

사진들을 따라 시선이 이동했다. 주택, 소규모 문화 시설, 다리처럼 생긴 구조물, 수목원 관리 건물. 세오의 이력서에서 본 것들과 일치했다—그러나 이력서에 없었던 것이 있었다.

사진들 사이, 딱 한 장. 사진이 아니라 손으로 그린 스케치였다.

A4 크기를 벗어나 주변 사진들을 조금씩 가리는 방식으로 테이프로 붙어 있었다—나중에 추가한 것이 분명한 방식으로. 건물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구조는 있었다. 사방이 막힌 것이 아니라 한쪽이 열린, 안마당 같은 중정이 있는 형태. 그런데 선이—흔들렸다. 세오의 다른 도면들은 자를 댄 것처럼 정확한데, 이것만 손이 떨렸거나, 또는 손을 멈췄다 다시 댄 흔적이 있었다. 선 위에 선이 겹쳐 있었다. 지운 자리 위에 다시 그린.

건물 이름이 없었다. 아래에 숫자만 있었다—03-17.

날짜인지, 도면 번호인지.

노출 콘크리트 벽을 가득 채운 완공 사진들 사이, 손이 떨렸던 흔적이 역력한 연필 스케치 한 장—그것만 유일하게 완성되지 않은 채 붙어 있다.

"그거."

세오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돌아보지 않았는데 언제 봤는지.

"묻지 마요."

"묻지 않았는데요."

"지금 묻고 있잖아요. 손가락으로."

윤재는 자신도 모르게 스케치의 선을 손끝으로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실제로 닿지는 않은 채. 그러나 그건 맞는 말이었다. 윤재는 손가락으로 묻고 있었다.

뒤를 돌았다.

세오가 작업대에서 일어나 이쪽을 보고 있었다. 몇 걸음 거리. 자를 손에 든 채로. 시선은 윤재의 손을 보고 있었다—벽에서 떼어낸 그 손을.

"도면 번호예요? 아니면 날짜예요."

"말했잖아요."

"묻지 말라고요. 들었어요." 윤재는 수첩을 꺼냈다. 펜을 들었다. 그러나 쓰지 않았다. "03-17."

세오의 눈이 좁아졌다. 아주 약간.

"메모했어요?"

"안 했어요."

"거짓말."

"외웠어요."

짧은 침묵. 세오가 자를 내려놓았다. 금속이 작업대 위에 닿는 소리가 또렷했다.

"그게 메모 안 한 거랑 같은 말이에요?"

"달라요." 윤재가 말했다. "메모는 지울 수 있는데, 외운 건—못 지우거든요."

세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말을 삼킨 것처럼 보였다. 그가 다시 작업대로 걸어가 도면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등을 돌렸을 때, 윤재는 그 등의 각도에서 뭔가를 읽었다—말을 지운 자리. 세오도 뭔가를 지우는 사람이었다. 다만 수첩에 쓰는 대신, 자세로 지웠다.

"오늘 뭘 알고 싶어서 왔어요."

"작업 방식이요. 어떻게 공간을 구상하는지. 뭘 먼저 정하는지."

"부고에 그게 왜 필요해요."

"당신이 설계한 건물들을 부고에 넣기로 했잖아요. 그러면 당신이 무엇으로 그 건물들을 지었는지를 알아야—" 윤재가 잠깐 멈췄다. "제대로 쓸 수 있어요."

세오가 천천히 돌아봤다. 이번엔 완전히.

"'무엇으로'."

"예. 재료 말고요."

또 침묵. 세오가 윤재를 보는 시선이 달랐다—첫날 계약서를 읽듯 보던 시선과. 그것보다 조금 더, 오래.

"앉아요. 이번엔 진짜로."

작업 방식을 묻는 질문에 세오는 말이 적었다. 예상한 것보다도 더. 대신 도면을 펼쳤다—완공된 건물들의 초기 스케치. 윤재는 메모하는 척 수첩을 열어두었지만 실제로는 세오의 손을 보았다. 도면 위를 움직이는 손. 벽의 두께를 두 손가락으로 짚는 방식, 천장의 높이를 손을 들어올려 공중에서 재는 방식. 그것이 설명이었다.

"여기." 세오가 한 스케치의 중정을 짚었다. "이 비율이 중요해요. 3.2미터. 사람 하나가 팔을 벌렸을 때 양쪽 벽에 닿을락 말락 하는 너비."

"왜 그게 중요한데요."

"그 너비가 되면—" 세오가 잠깐 멈췄다. "혼자라는 게 느껴지지 않아요. 너무 넓으면 비어 있다는 게 보이고, 너무 좁으면 갇힌 것 같고. 딱 그 너비일 때 공간이 같이 있어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윤재가 수첩에 뭔가를 썼다. 이번엔 진짜로. 그러나 세오가 한 말은 아니었다—공간이 같이 있어주는 것처럼. 그 말이 아니었다. 세오가 말하지 않은 것을 썼다: 사람이 없어도.

"많이 써요?"

"예?"

"메모. 하루에 얼마나 써요."

"직업이니까요."

"그 정도로 많이 쓰면—뭘 지워요? 많이."

윤재가 펜을 멈췄다.

세오가 그를 보고 있었다. 위에서 아래로 훑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건축가가 건물의 하중을 계산하듯—구조를 파악하려는 시선으로.

"당신도 지우는 사람이에요."

말이 아니라 진술이었다. 윤재는 부정하지 않았다. 부정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직업이니까요."

"그게 이유가 돼요?"

"당신은 되잖아요."

세오의 입 끝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웃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고, 무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무언가가 지나갔다.

"됩니다. 그게 이유가. 지금까지는."

지금까지는.

윤재는 그 단어를 수첩에 쓰지 않았다. 외웠다.

도면 위에 손을 올린 채 공중의 높이를 재듯 팔을 들어올리는 세오, 그 손끝을 수첩도 덮은 채 올려다보는 윤재의 측면.

오후 두 시쯤이었다.

사진들을 다시 보고 싶었다—세오가 도면 정리를 하는 동안 윤재는 벽을 따라 걸었다. 다시 그 스케치 앞에 섰다. 03-17. 2003년 3월인지, 3월 17일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것인지.

선이 겹쳐 있었다. 한 번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린. 그러나 그 위에 또 그린. 그리고 멈춘. 중정의 너비는—3.2미터였다. 세오가 아까 말한 그 너비. 혼자라는 게 느껴지지 않는.

"그 건물은 지어지지 않았어요."

세오가 등 뒤에서 말했다. 이번엔 가까웠다—몇 걸음 안이었다.

"알아요."

"알면 왜 또 봐요."

"완성되지 않은 게 더 말이 많아서요."

침묵이 달랐다. 이번 것은 길었다. 윤재가 돌아봤을 때 세오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의도한 거리가 아닌 것처럼. 아니면 의도했지만 의도했다는 걸 모르는 것처럼.

세오의 눈이 스케치에 닿아 있었다. 그러다가 윤재에게 왔다.

"그 스케치 이름이 뭔지 알아내면—"

세오가 천천히 말했다.

"부고에 쓸 수 있어요?"

"쓸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알아낸 다음에 정해요."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윤재가 솔직하게 말했다. "당신이 숨기는 것 중에 제일 잘 숨긴 거니까."

세오가 한 발 물러섰다. 아주 조금—그러나 물러섰다. 그것이 윤재에게는 대답이었다. 숨기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세오가 표정이 변했다. 미묘하게—경계라기보다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 온 것 같은.

벽에 붙은 모니터로 걸어가 화면을 봤다. 그리고 이 취재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세오가 짧게 욕을 했다.

"씨발."

"누구예요."

세오가 대답하지 않고 버저를 눌렀다.

계단을 올라오는 발소리는 가볍고 빨랐다. 문이 열리기 전에 이미 공간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윤재는 그런 사람이 들어오기 전에 미리 알아챘다. 경험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삼십 대 초반으로 보였다. 키가 크고,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이 좁은 골목 안까지 차를 타고 왔을 것 같은 차림새. 그러나 눈이 달랐다. 코트나 차와 어울리지 않는 눈—너무 솔직한, 또는 솔직한 척하도록 훈련된.

이도현이었다.

윤재가 그 이름을 아는 건 세오의 이력서가 아니라 다른 경로 때문이었다. 건축업계가 아니었다—인테리어 컨설팅 회사 대표. 세오와는 대학 동기. 그보다 더 가까운 관계였을 것이라는 추측은 세오의 노트에서 읽었다. 아니, 정확히는 노트에서 읽지 못한 것에서 읽었다. 세오의 노트에 없는 이름들—이도현은 그 공백 중 하나였다.

이도현은 들어오면서 윤재를 봤다. 한 번, 천천히.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수평으로—같은 레벨에서 파악하는 시선.

"세오야, 이 사람이 그 부고 작가야?"

세오가 대답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윤재입니다."

"알아요." 이도현이 말했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방식으로. "한세오가 얘기했어요."

"무슨 얘기를요."

이도현이 잠깐 웃었다—세오를 향해서.

"네가 얘기한 만큼은 왔네."

세오가 작업대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볼일이 뭐야."

"보러 왔지." 이도현이 코트를 벗어 의자에 걸었다. 자기 공간인 것처럼. "너 얼굴. 요새 어때."

"멀쩡해."

"멀쩡해 보이진 않는데."

짧은 침묵. 세오가 도면 위에 손을 올리고 이도현을 봤다. 그 시선이—윤재에게 향할 때와 달랐다. 더 오래된 무언가가 있었다. 낡은 상처처럼, 아무는 척하면서 여전히 건드리면 아픈.

이도현이 윤재 쪽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근데 어디까지 들었어요? 세오 이야기."

"취재 중이에요."

"그게 대답이에요?"

"그게 대답이에요."

이도현이 다시 웃었다. 이번엔 달랐다—세오에게 쓴 웃음이 아니라 진짜로 재미있다는 얼굴로.

"날카롭네요." 이도현이 말했다. "세오가 왜 골랐는지 알겠어."

"이도현."

세오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한 단어였는데 문장 같았다—그 이름 하나에 그만해오지 마왜 왔어가 전부 들어 있었다.

이도현이 세오를 봤다. 부드럽고 무거운 시선으로.

"부고를 완성하면," 이도현이 천천히 말했다. "그게 진짜 이유가 되는 거야."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선 이도현, 그를 보는 세오의 등과, 세오와 이도현 사이에 서서 두 사람 모두를 읽으려는 윤재의 옆얼굴.

공간이 달라졌다.

윤재는 그 변화를 정확하게 감지했다—세오의 호흡이 바뀌었다.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 서 있는 방식이. 척추가 조금 더 세워졌다. 발이 한 발짝 뒤로 갔다가 멈췄다.

이도현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윤재는 완전히 해독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세오에게 어떻게 박혔는지는 보였다—날카롭게, 오래된 틈새로 정확하게.

세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도현이 코트를 다시 집어 들었다.

"갈게. 얼굴 보러 온 거라 했잖아." 그가 문 쪽으로 걸으면서 윤재를 봤다. "잘 써줘요. 세오 부고. 이 사람, 말 안 하는 게 더 많으니까."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갔다. 가볍고 빠르게, 올라올 때처럼.

작업실에 두 사람이 남았다.

윤재가 세오를 봤다. 세오는 벽의 사진들을 보고 있었다—스케치를, 03-17을. 손이 작업대 위에 놓여 있었는데 손가락이 도면의 모서리를 잡고 있었다. 잡고 있다기보다 눌러두고 있었다. 무언가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이도현 씨가."

윤재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 노트에 없었어요."

세오가 돌아보지 않았다.

"알아요."

"왜요."

"..."

"세오 씨."

이름을 부른 건 처음이었다. 계약 이후 줄곧 경어와 거리를 유지했는데—이름이 나온 것은 윤재도 계획하지 않은 일이었다.

세오가 돌아봤다.

눈이—달랐다. 지금까지 본 것과. 이도현이 두고 간 말이 아직 눈 안에 있었다. 해소되지 않은 채로, 침전되지 않은 채로.

"다음에 와요."

세오가 말했다.

"오늘 취재 끝나요?"

"끝났어요."

윤재는 수첩을 덮었다. 가방을 들었다.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한 번 더 그 스케치를 봤다. 03-17. 선 위에 선이 겹친. 멈춘 손이 다시 댄 자리.

계단을 반쯤 내려왔을 때 뒤에서 세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두고 말한 것이었다.

"윤재 씨."

"예."

"외운 거—잊어요."

윤재가 멈췄다.

계단 중간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지 않고 말했다.

"못 잊어요."

대답이 없었다.

그러나 문이 닫히지도 않았다.

윤재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생각했다. 그리고 골목으로 나와 건물 앞에 서서, 아까 스케치해둔 수첩 페이지를 폈다. 외벽의 비율. 목재와 콘크리트가 섞인 방식.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03-17. 완성되지 않은 것. 지워진 사람.

그리고 잠깐 생각하다가—지우지 않았다.

수첩을 닫을 때, 이도현의 말이 다시 귓속에서 울렸다.

부고를 완성하면, 그게 진짜 이유가 되는 거야.

진짜 이유.

세오가 부고를 쓰고 싶은 진짜 이유가—완성하고 싶어서가 아닐 수도 있었다. 윤재는 그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건물을 돌아봤다. 삼층 채광창에 불이 켜져 있었다.

세오는 아직 거기 있었다.

그 빛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도면을 펴고 있는지, 스케치를 보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서 있는지—윤재는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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