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여백이 너무 많군요
죽음을 파는 남자가 처음 문을 연 건 오전 열한 시 십칠 분이었다.
윤재는 그 시각을 기억한다. 커피가 식어가는 타이밍이었고, 창문 너머 은행나무가 바람에 반쯤 뒤집히던 순간이었으며, 무엇보다—공책에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던 그의 펜이, 처음으로 멈췄던 때였다.
손님이 들어온 것은 알았다. 노크는 두 번이었다. 적당히 강하고 적당히 짧은, 자기 확신이 있는 사람의 노크. 그러나 윤재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이 이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는 유일한 조건이다. 그러니까—기다리면 그가 먼저 말할 것이었다.
기다렸다.
오 초. 십 초. 이십 초.
아무 말도 없었다.
윤재는 그제야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문 바로 앞에 서 있지 않았다. 사무실 안쪽으로 네 걸음쯤 들어온 위치였는데, 두 팔을 내린 채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천장이 아니라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 언저리를 보고 있었다.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미세하게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무언가를 재는 것처럼.
나이는 서른 중반쯤. 짙은 회색 코트가 몸에 딱 맞게 떨어지는데 재단이 비쌌다. 턱선이 각지고 눈이 좁았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이 그의 옆얼굴에 납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어딘가 마모된 구석이 있었다. 오래된 건물처럼. 잘 지어졌으나 이미 낡기 시작한.
"천장 높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윤재가 먼저 말했다.
남자의 시선이 내려왔다. 처음으로 윤재를 봤다.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이 층고에 창문이 이 위치면, 채광이 오후 두 시 이후로 급격히 떨어지겠더라고요."
목소리가 낮았다. 문장 사이가 짧게 끊겼다. 말하는 것보다 생략하는 쪽이 더 많은 사람의 말투였다.
"고칠 생각은 없습니다." 윤재가 말했다. "앉으시겠어요."
남자는 앉았다. 의자를 당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앉았다. 의자가 책상과 조금 멀었는데 그는 그 거리를 좁히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에 손목을 걸치고,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한 검은 케이스를 무릎 위에 올렸다.
"한세오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한세오 건축 사무소. 대표." 윤재는 책상 위 서류를 한 장 집었다. "저한테 연락하기 사흘 전에 검색 기록을 남기셨더군요. 저에 대해 꽤 찾아보셨을 텐데."
"그러면 용건도 아시겠네요."
"압니다." 윤재가 서류를 내려놓았다. "부고."
침묵이 왔다. 짧고 밀도 있는 침묵이었다. 세오는 그 침묵을 거슬러 하지 않았다. 마치 침묵이 자신의 것인 것처럼, 자신이 먼저 이 방에 들여놓은 것처럼 앉아 있었다.
"정확히는." 세오가 말했다. "제 부고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죽기 전에."
"시한부."
"네."
"얼마나."
"길면 여섯 달."
윤재는 펜을 집지 않았다. 공책을 열지도 않았다. 그냥 남자를 봤다—직업적인 방식으로. 빠진 것을 찾는 방식으로. 말해진 것보다 말해지지 않은 것에 귀를 기울이는 방식으로.
"케이스 안에 뭐가 있습니까."
세오가 케이스를 들었다. 잠금장치를 열고, 건넸다.
윤재는 받아서 열었다.
노트였다. 얇은 것이 두 권. 표지가 낡아 있었다—펼쳐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많이 펼쳐봐서 낡은 것이었다. 한 권을 집어 첫 장을 넘겼다. 깔끔한 필체로 항목이 나열되어 있었다.
출생. 학력. 주요 작업. 수상 내역. 설계한 건물 목록. 영향을 받은 건축가. 건축 철학.
그리고—그뿐이었다.
"잘 정리되어 있군요." 윤재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윤재가 두 번째 페이지를 넘겼다. 세 번째. 네 번째. 텅 빈 페이지들이 이어졌다. 그는 노트를 덮지 않고 탁자 위에 펼쳐 세오 쪽으로 밀었다. "여백이 너무 많군요."
세오의 시선이 노트로 향했다가 돌아왔다.
"필요한 내용만 적었습니다."
"이게 부고예요, 아니면 이력서예요."
짧은 정적.
"다를 게 있나요."
"다르죠." 윤재가 팔짱을 꼈다. 처음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이력서는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쓰는 거고, 부고는 당신이 무엇이었는지 쓰는 겁니다. 이건—" 그가 노트를 턱으로 가리켰다. "어떤 사람도 없어요. 설계는 있는데 건축가가 없습니다."
세오가 말이 없었다.
좋은 신호였다. 반박이 없다는 건 맞다는 뜻이거나, 반박하기 싫다는 뜻이거나. 어느 쪽이든 윤재가 뭔가를 건드린 것이었다.
"제가 뭘 원하는지는 알고 계시죠." 세오가 말했다. 어조가 바뀌지 않았다. 감정이 흔들린 흔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너무 단단하게 관리된 어조는—역설적으로, 관리되지 않으면 무너질 무언가가 있다는 신호다. "제가 남길 언어를 써주는 사람. 제가 설계한 대로 완성해주는 사람. 그게 당신이 할 일입니다."
"그건 대필 작가가 아니라 조각가 얘기군요."
세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이 설계한 대로 완성하는 건 조각가가 하는 일입니다. 대필 작가는—" 윤재가 노트를 천천히 도로 케이스에 집어넣었다. "설계를 부수는 일을 하죠. 당신이 미처 설계하지 못한 것, 설계하기 싫었던 것, 설계했다고 착각한 것. 거기서 진짜 사람을 꺼내는 게 제 일입니다."
케이스를 닫으려는데 세오의 손이 뻗었다.
손목이었다. 잡은 게 아니었다—그냥 케이스 위에 손을 얹은 것이었다. 그러나 윤재는 손을 멈췄다. 세오의 손끝이 케이스 모서리를 짚은 채 미동도 없었다. 손가락이 길었다. 관절이 굵고 손바닥이 넓었다—설계 도면을 오래 다룬 손이었다.
"설계를 부수면," 세오가 말했다. "부고가 아니라 폭로가 됩니다."
"아름다운 폭로면 부고보다 낫죠."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아요."
"알고 있습니다." 윤재가 케이스에서 손을 뗐다.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그래서 당신이 저한테 왔겠죠. 원하는 것만 주는 사람한테는 안 갔잖아요."
세오가 윤재를 봤다.
오래.
윤재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 사람이 지금 무엇을 재고 있는지는 몰랐다—층고인지, 벽 두께인지, 아니면 눈앞의 작가가 얼마나 위험한지. 어느 쪽이든, 계산하고 있다는 건 확실했다.
"조건은요." 세오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
"여섯 달. 밀착 취재. 당신이 숨기고 싶은 것을 제가 캐내도 된다는 동의. 그리고 완성된 부고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저한테."
"마지막 조건은 안 됩니다."
"그러면 저도 안 됩니다."
침묵이 다시 왔다. 이번엔 길었다. 은행나무가 또 한 번 바람에 뒤집혔다. 커피는 완전히 식었다. 윤재는 그 침묵을 쫓지 않고 기다렸다—사람들은 결국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말을 한다. 이 남자가 예외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최종 결정권." 세오가 천천히 말했다. "마음에 드는 단어는 아닌데."
"하지만 틀린 조건도 아니죠."
또 짧은 침묵.
"삭제권은 저한테 있어야 합니다." 세오가 말했다. "최종적으로 내보내기 싫은 건 내보내지 않을 권리."
"최종 편집은 저, 삭제 거부권은 당신." 윤재가 말했다. "단—삭제 이유를 저한테 설명해야 합니다."
"이유를 왜요."
"지우는 것도 데이터거든요."
세오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뭔가를 말하려다 그만뒀다. 그것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이 사람은 지우는 것이 많다. 그리고 그 지워진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스스로 알고 있다.
"계약하죠." 세오가 말했다.
계약서는 짧았다. 기간, 보수, 취재 방식, 그리고 편집권에 관한 단 하나의 조항. 서명을 마친 세오가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첫 번째 질문은 뭡니까."
"오늘은 질문 없습니다."
세오가 눈썹을 약간 올렸다. 처음으로 표정이 바뀌었다—당황이라기보다는, 예측이 빗나간 사람의 미세한 재조정이었다.
"취재 아닙니까."
"첫날은 봅니다." 윤재가 공책을 열었다.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당신이 뭘 보여주고 싶어하는지를요."
"그게 취재 아닌가요."
"그건 준비 운동이죠." 윤재가 쓰면서 말했다. 공책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부고에서 사람을 꺼내려면 먼저 그 사람이 어떻게 자기를 숨기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이미 꽤 잘 숨기는 편인 것 같은데."
"..."
"노트에 가족 얘기가 없더군요."
세오가 손을 무릎 위에서 조금 움직였다. 의자 팔걸이를 짚었다.
"친밀한 관계 항목도." 윤재가 계속 썼다. "친구. 연인. 전 연인. 동료. 전부 없었어요. 건축 철학은 두 페이지인데."
"그런 건 부고에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필요 없다고 정한 거죠." 윤재가 그제야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제가 보기엔, 그게 유일하게 필요한 겁니다."
눈이 마주쳤다.
세오의 눈은 생각보다 더 깊었다—층수가 많은 건물처럼. 겉에서 보면 단층인데 들어가면 계속 아래로 내려가는 그런 구조. 윤재는 그것을 알아챘고, 알아챈 순간 자신의 심박이 한 번 빠르게 뛰었다는 것도 알아챘다. 직업적인 흥분이었다—그렇게 분류했다. 지금은 그렇게 분류하는 것이 맞았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세오가 말했다. "당신은 부고를 몇 편이나 썼습니까."
"스물두 편."
"다 발표됐어요?"
윤재의 펜이 공책 위에서 멈췄다. 아주 짧게. 세오가 그것을 봤는지 안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스물한 편은요." 윤재가 말했다.
"나머지 한 편은."
"그건 당신이 알 필요 없는 정보입니다."
세오가 잠시 그를 봤다. 그러다—웃었다. 웃는다고 하기엔 너무 작은 것이었지만, 입꼬리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는 건 확실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남자의 진짜 얼굴에 더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윤재에게 불쑥 들었다.
"공평하군요." 세오가 말했다.
"뭐가요."
"당신도 지우는 게 있다는 거." 세오가 케이스를 들고 일어섰다. 코트 단추를 잠그며 말했다. "그러면,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오죠. 취재 장소는 제 사무소가 낫겠죠."
"네."
"주소는 알고 있을 겁니다. 충분히 조사하셨을 테니까."
세오가 문 쪽으로 걸었다. 네 걸음. 문손잡이를 잡으면서 뒤를 보지 않고 말했다.
"한 가지."
"말씀하세요."
"내가 보여주기로 결정한 것 외에—" 세오가 아주 잠깐 멈췄다. "꼭 필요한 것만 캐내세요. 나는 폭로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렸는데." 윤재가 공책에 무언가를 적었다. "아름다운 폭로면 부고보다 낫습니다."
문이 닫혔다.
윤재는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난 뒤에도 십 초쯤 그 자리를 봤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고 공책을 확인했다.
자신이 쓴 것을 읽었다.
가족 없음. 연인 없음. 철학 두 페이지. 여백이 더 많다. 지우고 싶은 게 있다. 뭘 지웠는가.
그리고 그 아래에—자신도 모르게 쓴 한 줄이 있었다.
스물두 번째 부고.
윤재는 그 줄을 세 번 덧그어 지웠다.
펜이 종이를 뚫을 것 같은 힘으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완전히 식어 있었다. 쓴맛이 혀 위에 눌렸다.
그는 다시 공책을 열고—적기 시작했다. 이번엔 지우지 않았다.
한세오. 건축가. 시한부. 여섯 달. 노트에 없는 것: 전부.
창밖 은행나무가 다시 흔들렸다. 잎이 하나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떨어지다가 바람에 다시 올라갔다가—그러다 결국 아래로 사라졌다.
윤재는 그것을 보면서, 오래 전 자신이 쓰다 만 부고의 첫 문장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는 동안에도 창문을 먼저 봤다.
닫았다. 그 기억을. 늘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그러나 오늘은—조금 더 오래 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