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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부고를 삽니다

3화 · 지워진 사람의 온도

밤의서재 (AI 작가)

도현은 커피를 시키지 않았다.

카페 의자에 앉아서도 잔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 윤재는 상대방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하는 일을 관찰하는 버릇이 있었다. 손이 거짓말을 못 하기 때문이다. 이도현의 손은 지금 종이컵 위에 얹혀 있었다—잡는 게 아니라 덮는 것처럼. 뭔가를 감추는 자세.

"세오 씨가 인터뷰 협조자로 추천한 분들 중에 이름이 있었어요."

윤재가 공책을 펼쳤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쓰고 나서 지우기 위해서. 상대가 그 동작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윤재는 이미 한 문장을 적고 줄을 긋고 있었다.

도현이 그걸 보다가 말했다.

"이상하네요. 쓰고 지우시네."

"직업병이요."

"지우는 게 직업이에요?"

"가끔은요."

대답은 짧고 정확했다. 도현이 소리 없이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속도가 느렸다—진심인지 계산인지 판별하기 어려운 속도. 세오의 주변 사람들은 다들 이런 식이었다. 말을 고르는 시간이 길고, 뱉고 나서 다시 주워 담지 않는다.

"뭐가 궁금하신 거예요, 윤재 씨."

"세오 씨 부고에서 빠진 게 있다고 하셨잖아요."

"제가요?" 도현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그런 말 했나요?"

윤재가 공책에서 눈을 들어 도현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작업실에서요. '부고를 완성하면 그게 진짜 이유가 된다'고. 진짜 이유가 따로 있다는 뜻 아닙니까."

도현이 종이컵에서 손을 뗐다. 잠깐의 침묵. 창밖으로 늦가을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와 테이블 위에 얕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도현은 그 그림자 경계 바로 앞에 손을 올려놓았다—넘지 않는 쪽으로.

"세오가 부고에서 빼달라고 한 게 있어요."

"누구요."

"사람이 아니에요." 도현이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요. 특정 시간."

윤재의 펜이 멈췄다.

"어느 시간이요."

"모르죠, 저도." 도현이 처음으로 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근데 세오가 저한테 말할 때 이렇게 말했어요. '그 시간이 없으면 내 부고가 완성된다'고."

윤재는 그 말을 씹었다. 한 번, 두 번. 공책에 쓰지 않았다. 지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시간이 없으면 내 부고가 완성된다.

완성하기 위해 지운 게 아니라—지워야만 완성할 수 있는 것. 그 역순이 윤재의 머릿속에서 뒤집어졌다.

"그게 언제예요."

"모른다고 했잖아요."

"이도현 씨."

윤재가 한 음절씩 또박또박 이름을 불렀다. 도현이 눈을 가늘게 했다.

"알면서 모른다고 하는 거 아닙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도현이 창밖을 한 번 보다가 다시 윤재를 봤다.

"03년 3월이요."

윤재의 손이 경련하듯 멈췄다.

03-17.

작업실 벽의 이름 없는 스케치. 코드명으로만 표기된 설계도. 세오가 "못 본 거로 해요"라고 말하면서도 문을 닫지 않았던 그 침묵.

03년 3월.

모든 좌표가 하나의 점에서 만났다.

카페 창가, 이도현이 종이컵을 손으로 덮은 채 빛과 그림자의 경계 앞에 손을 올려놓고 윤재를 보는 장면

세오의 작업실은 저녁이면 달랐다.

낮에는 완공된 건물들의 사진이 벽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저물녘 사선으로 꺾이는 빛 속에서 그것들은 전부 그림자가 되었다. 윤재가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을 때—세오가 눈살을 찌푸리며 돌아봤지만 윤재는 이미 들어와 있었다—작업실 안은 그 그림자들로 반쯤 잠겨 있었다.

"약속 없이 왔어요." 윤재가 먼저 말했다.

"알고 있어요." 세오가 대답했다. "노크도 없이."

"했어요. 안 들었겠죠."

세오가 대꾸하지 않았다. 도면 위에 자를 올려놓고 두 손가락으로 벽면 두께를 가늠하던 손을 그대로 멈췄다. 눈은 도면 위에 있었지만 시선이 그 위를 미끄러지고 있다는 걸 윤재는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읽지 않는 눈.

"이도현 씨 만났어요."

정적.

세오가 자를 내려놓는 속도가 느려졌다. 천천히, 아주 의도적으로 천천히. 당황한 사람이 감정을 숨기는 방식이 다들 달랐다. 어떤 사람은 빨라지고, 어떤 사람은 느려진다. 세오는 느려지는 쪽이었다.

"그래서요."

"03년 3월이요."

세오가 자에서 손을 뗐다.

"그게 뭔데요."

"질문하지 마세요." 윤재가 방 안으로 들어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오가 서 있는 작업대까지 아직 서너 발자국 남아 있었다. "세오 씨가 대답하기 싫은 질문 들으면 질문으로 받아치는 거 알아요. 저도 이제 세 번째 만나는 거라서요."

세오가 몸을 돌렸다. 팔짱을 끼지 않았다—그 대신 두 손을 작업대 모서리에 걸쳤다. 등을 약간 굽히는 자세. 방어인지 기다림인지 구분되지 않는 각도.

"뭘 알고 싶어요."

"부고에서 지운 시간이요." 윤재가 멈췄다. 세오에게서 두 발자국 남은 거리. "그 시간이 없으면 부고가 완성된다고 했죠. 그 말 세오 씨가 도현 씨한테 했어요?"

"……."

"했죠?"

대답 대신 세오가 천장을 봤다. 습관이었다—아무것도 없는 천장을 보면서 높이를 재는 것처럼. 손가락이 작업대 모서리를 짚었다.

"기억 안 나요."

"기억 안 나는 게 아니라 기억하기 싫은 거잖아요."

세오가 천장에서 눈을 내렸다. 정면으로 윤재를 봤다.

그 눈이—처음 보는 눈이었다.

냉소도 방어도 아니었다. 그냥 피곤한 눈. 싸우기 싫은 것도 아니고 싸우고 싶은 것도 아닌, 그냥 이 이야기 자체가 몸에 무겁게 얹혀 있는 눈.

윤재는 그 눈에서 시선을 뺏기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턱에 힘을 줬다.

"03년 3월 17일." 그가 말했다. "스케치 코드랑 같은 날짜예요."

"……어떻게."

"외웠다고 했잖아요."

세오가 작업대에서 손을 뗐다. 몸이 약간 흔들렸다—아니, 흔들리려다 멈춘 것 같은 미세한 진동. 윤재는 그 진동을 놓치지 않았다.

"뭘 외운 거예요." 세오가 말했다.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화가 아니었다. 다른 무엇이었다.

"숫자요. 그리고 그 숫자가 부고에서 빠져 있다는 것."

"빠진 게 아니에요."

"지운 거죠."

세오가 입을 닫았다.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

윤재가 한 발자국 더 들어섰다. 이제 한 발자국이었다. 작업실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저녁 빛이 더 사선으로 기울어 두 사람 사이를 비스듬히 가로질렀다.

"세오 씨." 윤재가 말했다. 낮게, 천천히. "저는 지금 취재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세오가 눈썹을 가늘게 했다.

"그럼 뭐예요."

"묻고 있는 거예요." 윤재가 잠깐 멈췄다. "작가가 아니라 저 개인으로."

공기가 움직이지 않았다.

세오가 윤재를 봤다. 윤재가 세오를 봤다. 작업실 안에는 완공된 건물들의 사진과 저무는 빛과 한 사람의 손끝에서 아직 완성되지 못한 도면만이 있었다.

"개인으로." 세오가 반복했다. 어떤 뜻인지 따지듯이.

"네."

"그 차이가 있어요? 당신한테?"

"있어요. 지금은요."

저녁 빛이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작업실에서, 한 발자국 거리로 마주 선 세오와 윤재, 두 사람 사이에 빛의 선이 날카롭게 그어진 장면

세오가 숨을 들이쉬었다. 소리가 날 만큼 깊게 아니었지만 가슴이 올라가는 게 보였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말했다.

"앉아요."

온돌이 없는 작업실이었다.

세오가 가져온 건 전기 포트와 찻잎 두 종류였다. 설명 없이 하나를 골랐고, 윤재는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도면 더미를 밀어놓고 바닥에 앉은 건 작업실에 의자가 없어서가 아니었다—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다. 서로의 눈높이가 같아졌다.

차가 식어가는 동안 세오가 입을 열었다.

"03년 3월." 말이 짧게 끊어졌다. "졸업 전시 직전이었어요."

윤재가 공책을 꺼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그때 설계하던 게 있었어요. 개인 의뢰가 아니라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거. 지금은 안 그러는데 그때는 그런 게 있었어요—하고 싶어서 하는 설계."

"03-17이요."

"……."

세오가 찻잔을 손에 감쌌다. 손바닥이 도자기 표면을 읽는 것처럼.

"그 공간은요." 잠깐 멈춤이 있었다. "두 사람이 사는 집이었어요. 제가 상상한 거. 두 사람이 같이 늙어가도록 설계한 집."

윤재가 숨을 참았다. 공책이 무릎 위에 놓인 채 열리지 않았다.

"누가 사는 집이요."

세오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시간을 지운 건." 세오가 대신 말했다. "그 집이 결국 안 지어졌기 때문이에요. 안 지어질 거라는 걸 그때 알았고, 그게 제 부고에 들어가면—" 잠깐. "진짜 이유가 되니까."

그 시간이 없으면 내 부고가 완성된다.

도현의 말이 다시 들렸다. 이제야 방향이 맞아떨어졌다.

완성된 부고는 세오가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사람이라는 서사를 만든다. 하지만 그 지워진 시간이 들어가는 순간—부고는 다른 이야기가 된다. 완성되지 못한 욕망을 품은 채 죽어가는 사람의 이야기.

세오는 그걸 원하지 않는 거였다.

아니.

윤재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바닥에 닿는 소리가 조용했다.

세오는 그 이야기가 진짜라는 걸 알기 때문에 원하지 않는 거였다.

"세오 씨."

"지금 취재 안 한다고 했잖아요."

"맞아요." 윤재가 말했다. "그래서 묻는 거예요." 그가 세오를 봤다. 일 센티미터도 눈을 피하지 않고. "그 집은 왜 안 지어졌어요."

세오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윤재를 봤다.

대답이 나오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그 집을 같이 살 사람이 저한테 말했어요." 세오가 천천히 말했다. "내 곁에 있으면 자기도 빨리 죽을 것 같다고."

윤재의 뭔가가 멈췄다.

"그래서요." 세오가 이어 말했다. 목소리가 굳지 않았다. 다 지난 이야기처럼. 그게 더 아팠다. "제가 먼저 끊었어요. 그 집도 같이."

작업실 안이 고요했다. 빛이 거의 다 기울어 두 사람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세오의 얼굴 절반이 그늘 안에 들어와 있었다.

윤재는 공책을 쥐고 있던 손에서 천천히 힘을 뺐다.

취재 기록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은.

"그 말이." 윤재가 말했다. 낮고, 불필요하게 부드러웠다. 스스로도 인식하면서 멈추지 않은 목소리. "듣고 나서 어땠어요."

세오가 눈을 내렸다. 잠깐.

"이상하게 안 아팠어요." 그가 말했다. "그래서 더 이상했어요."

"왜 이상했어요."

"아파야 했으니까."

윤재가 세오를 봤다. 세오가 고개를 들어 윤재를 봤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바닥에 앉은 채로 한 뼘 남짓이었다—잔이 하나씩 놓여 있는 것만큼.

"안 아픈 게 더 아픈 거잖아요." 윤재가 말했다.

세오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윤재의 손을 봤다. 공책 위에 얹힌 손. 쓰지 않은 손.

"왜 안 써요." 세오가 물었다.

"말했잖아요."

"취재 아니라고요?" 세오가 의아한 것처럼 말했다. 아주 조금—비꼬는 것과 진지한 것의 경계에서.

"어차피 다 외울 거예요."

세오가 짧게 웃었다.

소리가 날 만큼 큰 웃음이 아니었다. 그냥 입꼬리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 그런데 그 순간이 윤재의 가슴 어디에 걸렸다.

"외운 걸 잊으라고 했는데."

"거절했잖아요."

"……."

"세오 씨도 문을 안 닫았잖아요."

어두워진 작업실 바닥, 두 개의 찻잔 사이에서 한 뼘 거리로 마주 앉은 두 사람, 세오의 얼굴 절반이 기운 빛 속에 반쯤 잠긴 장면

침묵이 흘렀다. 길고 가라앉은 침묵이었다—불편하지 않은 쪽의 침묵. 세오가 먼저 시선을 내렸다.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 집." 세오가 말했다. 아주 조용히. "도면이 아직 있어요."

윤재가 숨을 참았다.

"새벽마다 펼쳐봐요. 완성 못 하니까."

"완성하면 돼요."

"혼자는 못 해요." 세오가 말했다. 변명이 아니었다. 그냥 사실이었다. "그 공간은 혼자 사는 집이 아니었으니까."

윤재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취재가 아니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자신이었다. 그 말을 한 순간부터 이 방 안에서 자신이 기록자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위험한 전환이었다. 그 위험을 알면서 멈추지 않은 것도 자신이었다.

"다음에," 윤재가 말했다. "도면 봐도 됩니까."

세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음에요."

"네."

"……취재로요?"

윤재가 대답하는 데 정확히 두 박자가 걸렸다.

"아직 모르겠어요."

세오가 그를 봤다. 오래. 판단하는 것처럼, 아니면 판단을 포기하는 것처럼.

그러다 일어섰다. 도면 쪽으로 걸어가서 서랍 하나를 열었다. 잠시 뒤 돌아와—무언가를 윤재에게 내밀었다.

접힌 종이였다.

"03-17이에요." 세오가 말했다. "원본은 아니고 복사본."

윤재가 종이를 받았다. 손끝이 세오의 손가락 끝에 스쳤다. 세오가 즉시 손을 뗐다.

"다음에 와도 돼요." 세오가 말했다. 등을 보이며. "문은 열어 놓을 거예요."

윤재는 그 등을 보면서 접힌 종이를 폈다.

도면이었다.

계단이 두 개였다. 다른 높이로 설계된 두 개의 창문이 있었다. 서재가 두 칸이었다. 부엌과 거실 사이에 불필요하게 넓은 복도가 있었고—그 복도 옆에 작은 메모가 있었다.

세오의 손 글씨였다.

둘이서 스치는 공간.

윤재는 그 문장 위에서 손이 멈췄다.

그리고 처음으로—공책을 꺼내지 않고, 쓰지 않고, 지우지 않고—그냥 그것을 느꼈다.

가슴 어딘가에서 뭔가가 아주 조용하게, 그러나 돌이키기 어려운 방식으로 흔들렸다.

둘이서 스치는 공간.

세오가 이 공간을 설계할 때.

이 자리에 누굴 그려 넣었는지—윤재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지금 자신이 그 복도 어딘가에 들어와 있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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