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거짓말이 신이 된 날
죽는 건 지금이 아니다.
카이 에레스는 그 생각 하나로 눈을 떴다.
목에 칼날이 닿아 있었다. 새벽 네 시, 순례자 여관 3층 방. 창문은 잠겨 있었는데 — 아니, 잠겨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 그 생각 자체가 이미 늦었다. 차가운 쇠 냄새가 코를 찌르고, 침대 주변으로 세 개의 그림자가 호를 그리고 있었다. 하나는 창가, 하나는 문 앞, 하나는 바로 위.
칼을 쥔 손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아마추어는 손이 떤다. 이 손은 안 떨렸다.
셋. 전부 프로.
카이는 손가락 마디를 천천히 꺾기 시작했다. 검지. 중지. 약지. 딱, 딱, 딱 — 뼈 소리가 새벽 정적을 잘게 잘랐다. 암살자가 미세하게 칼을 당겼다. 경고였다.
"움직이지 마라."
"움직인 게 아니다." 카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놀라울 만큼 고요했다 — 속은 온통 폭풍이면서. "손가락 마디 꺾는 건 기도 중에 하는 거다. 신의 후계자가 기도도 못 하냐."
침묵.
그리고 창가의 그림자가 비웃었다. "신의 후계자." 그 말을 씹어 뱉는 방식이, 마치 오래 묵은 욕 같았다. "열두 살짜리 고아가 시장 바닥에서 지껄인 헛소리가 여섯 해 동안 세계를 속였지. 대단한 사기꾼이야."
"그건 내가 원해서 보여준 게 아니다."
"뭐?"
"사기꾼이라는 면모." 카이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칼날이 목에 닿아 있는데, 마치 지금 가장 지루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투였다. "그건 내가 원해서 보여준 게 아니다. 너희가 멋대로 결론 낸 거잖아."
여섯 해 전의 일을 카이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했다.
열두 살. 황도 변두리의 철시(鐵市). 폐허 같은 곳에서 폐허 같은 인생을 살던 시절.
어머니가 열이 났다. 사흘째. 약값이 없었다. 카이는 시장 한복판에 서서 생각했다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거짓말이 뭔지 — 그리고 입을 열었다.
"들어라!"
아무도 안 들었다. 다시.
"들어라! 나는 신을 죽인 자의 후계자다!"
웃음소리가 터졌다. 당연했다. 껑충하고 때 묻은 열두 살짜리가 맨발로 시장 통 한가운데 서서 지르는 소리였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무언가가 선언됐다.
세계의 법칙 중에 '선언 마법'이란 게 있다. 마법사들이 수십 년을 수련해야 겨우 한 줄짜리 진실을 세계에 새기는, 그 어렵고 무거운 기술. 보통은 피의 서약과 의식과 심연의 마나가 필요하다. 그런데 — 극히 드물게 — 선언이 세계의 '공백'을 정확하게 찌를 때, 그 진공 상태의 구멍에 말이 박혀버릴 때, 수련 없이도 굳어진다.
신의 후계자는 공식적으로 없었다.
신은 죽었고, 그 자리는 비어 있었다.
그 공백에 카이의 허풍이 꽂혔다.
시장 바닥에 금빛 균열이 생겼다. 바람이 역류했다. 카이의 발끝에서 무언가 뜨겁고 낯선 것이 올라와 척추를 타고 정수리를 지나갔다 — 그 느낌이 마치 세계가 서명을 받으러 온 것 같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서 있었다.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만 달랐다. 어머니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대신 걸어왔다. 때 묻고 열에 들뜬 얼굴로, 흔들리는 눈으로, 아들의 뺨을 두 손으로 감쌌다.
"알고 있었어," 어머니가 속삭였다. "처음부터."
그게 문제였다.
세상이 속아 넘어간 건 괜찮았다. 세상은 원래 속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어머니가 믿었다. 진짜로, 뼛속까지. 그 믿음이 '신의 적들'에게 닿았고, 신의 적들은 후계자의 어머니를 가만두지 않았다.
어머니가 죽은 건 카이가 열넷이 되던 해였다.
"신의 후계자라면."
창가의 암살자가 한 발 다가왔다. 긴 칼. 짧은 단검 두 자루. 허리에 독침 케이스. 카이는 그것들을 어둠 속에서 하나씩 세었다. 공란(空欄) 마크가 새겨진 단검 케이스 — 반신권 비밀결사. 즉, 베르 오소 쪽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 베르였다면 이미 협상 제안을 했을 테니까.
"능력을 보여봐." 암살자가 말했다. "네가 진짜라면 지금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우리 셋을 죽일 수 있겠지."
그렇겠지.
카이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능력이 없다.
선언 마법으로 세계에 이름은 새겨졌지만, 신의 후계자에게 따라왔어야 할 힘은 오지 않았다. 공백에 이름만 박힌 것이다. 마치 왕관 없이 왕위만 물려받은 것처럼. 아니, 왕위조차 없이 왕의 이름만 달고 있는 것처럼.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여섯 해 동안 그 아무것도 아님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쌓았다.
그리고 지금 그 탑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그래. 무너지면 되지.
카이의 입꼬리가 어둠 속에서 비틀렸다.
"능력을 보여달라고?" 그가 말했다. 목소리에 이상한 무게가 실렸다. "좋아. 보여주지."
"단, 그건 내가 원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다. 알아서들 해석해라."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폈다. 검지. 중지. 약지. 소지. 그리고 — 주먹을 쥐었다.
동시에 말했다.
"나는 지금 이 방에서 빠져나간다."
선언이었다.
아무런 마나도 없었다. 아무런 빛도 없었다. 그냥 말이었다. 열두 살 때처럼 공백을 찌르는 기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 선언 마법의 부작용이 있었다. 한 번 세계에 이름이 새겨진 사람의 선언은, 설령 실력이 없어도, 세계가 잠깐 망설인다.
그 망설임은 0.3초.
카이에게는 충분했다.
그는 이불을 걷어차며 옆으로 굴렀다. 칼날이 베개를 찍었다. 창가의 암살자가 뛰었다. 카이는 이미 침대 아래에서 숨겨둔 것을 꺼냈다 — 책. 무겁고 두꺼운 신전 경전. 표지가 금박이라 묵직하기로 유명한.
책을 집어 던졌다.
두꺼운 금박 경전이 암살자의 관자놀이에 정통으로 박혔다.
"읽어라."
탁음이 여관 방에 울렸다. 암살자가 비틀거렸다. 카이는 그 사이 문 앞 암살자를 향해 달렸다 — 달리면서 옷걸이에 걸린 성수(聖水)병을 낚아챘다. 병을 던지지 않았다. 마개를 뽑아 상대의 얼굴에 끼얹었다.
성수 자체엔 아무 위력도 없다.
하지만 신의 후계자의 성수라는 공포가 있다.
암살자가 비명을 질렀다. "뜨거워 — !"
뜨겁지 않았다. 상온의 물이었다. 그런데 세계가 또 망설였다. 0.3초. 신의 후계자가 성수를 뿌렸다는 사실 앞에서 암살자의 뇌가 공포 신호를 먼저 쏘아버린 것이었다.
카이가 그 0.3초에 무릎으로 명치를 찍었다.
암살자가 접혔다.
마지막 하나. 창가. 아까 책에 맞아 비틀거렸던 놈이 이미 회복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빠르다. 카이가 후퇴했다. 등이 벽에 닿았다. 칼이 날아왔다.
끝인가.
그 생각과 동시에 — 창문이 바깥에서 날아가며 열렸다.
차가운 새벽 바람이 방 전체를 쓸었다. 그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아니, 들어왔다는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3층 창문을 통해, 발소리 하나 없이,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 서 있었다.
검은 외투. 짧게 자른 머리카락. 키는 카이보다 약간 작지만, 그 몸에서 나오는 압력은 방 전체를 눌렀다. 손에는 아무 무기도 없었다.
암살자가 멈췄다.
새로운 인물은 암살자를 바라보다가 — 카이를 바라봤다. 새벽 어둠 속에서도 그 눈이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 입술이 꽉 다물려 있었다. 그런데.
카이는 봤다.
그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을.
이 사람이 뭔가를 재밌어하고 있다.
암살자가 새 침입자를 향해 칼을 돌렸다. 그리고 0.5초 뒤 — 칼을 든 채 쓰러졌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카이는 못 봤다. 그냥 쓰러졌다. 나머지 둘도 마찬가지였다. 일, 이, 삼. 차례로 바닥에.
여관 방이 고요해졌다.
카이와 새 침입자가 서로를 바라봤다.
침묵이 흘렀다.
카이가 먼저 말했다. "... 감사하다."
새 침입자가 그의 말을 그대로 반복했다. "감사하다." 그리고 덧붙였다. "왜?"
"...목숨을 구해줬으니까."
"목숨을 구해줬으니까." 되받았다. "그게 내 목적이라고 생각하냐?"
카이의 머리 뒤에서 소름이 돋았다.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한 번도 본 적 없다. 그런데 직감이 말했다 — 이 사람은 네 편이 아니야. 그리고 이 사람은 네가 가짜라는 걸 알고 있어. 그리고.
그리고 이 사람이 진짜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 생각을 카이는 즉시 짓밟았다.
"나중에 얘기하자." 카이가 말했다. "여기가 들킬 것 같으니까."
새 침입자가 카이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 창문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 한마디만 남겼다.
"다음엔 없다."
다음엔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 다음엔 구해주지 않겠다는 건지, 아니면 다음엔 카이를 죽이러 온다는 건지 — 알 수 없었다.
카이는 쓰러진 암살자 셋 사이에 혼자 서서, 손가락 마디를 다시 꺾기 시작했다.
딱. 딱. 딱.
아침이 왔다.
세라 나인이 문을 두들겼을 때, 카이는 이미 씻고 옷을 입고 경전을 펼쳐 앉아 있었다. 방 한구석에 암살자 셋이 깔끔하게 포박된 채 쌓여 있다는 사실만 빼면, 아주 경건한 아침 풍경이었다.
세라가 들어와 쌓인 암살자들을 보고, 카이를 보고, 다시 암살자들을 봤다.
허리의 염주를 손가락으로 튕기기 시작했다.
"설명해라."
"기도 중에 방해가 들어왔다."
"포박은."
"기도가 끝난 뒤에 했다."
세라가 염주를 세는 속도가 빨라졌다. "어제 취침 전에 창문 잠금 확인을 지시했다."
"했다."
"창문이 부서져 있다."
"그건 내가 원해서 부순 게 아니다."
"...카이 에레스." 세라가 한 발 다가왔다. 아침 햇빛이 그녀의 옆얼굴을 잘랐다 — 각진 턱, 단정하게 묶인 머리카락, 눈매는 늘 무언가를 꿰뚫고 있는 것 같은 날카로움. 제국 종교기사단의 검사복이 몸에 딱 붙어 있었다. 카이보다 두 살이 많고, 키도 두 뼘은 컸다. "너 혼자서는 이 셋을 이길 수 없다."
"이겼는데."
"혼자 힘으로는."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세라가 쭈그려 앉아 암살자 하나의 얼굴을 살폈다. 손가락으로 복면을 걷어냈다. 그리고 굳었다.
"제3왕도 소속 성소멸단(聖消滅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이 자들이 왜 여기."
카이는 그 순간 세라의 눈을 봤다. 평소의 날카로움과 다른 게 있었다. 무언가 — 두려움이라기엔 단단하고, 분노라기엔 차가운 — 감정이 스쳤다 지나갔다.
저 눈을 어디서 봤더라.
카이의 가슴이 조여왔다. 어머니의 눈이 저랬다. 믿는 걸 잃을까봐 두려운 눈이.
"세라."
"말해라."
"어젯밤에 누가 왔었다."
세라가 고개를 들었다. "누구."
카이는 잠깐 입술을 다물었다가 열었다. "모른다. 이름도, 얼굴도. 다 쓰러뜨리고 나갔다."
"신의 후계자를 보호하러 온 존재라는 뜻이냐."
그럴 리가.
"그건 내가 원해서 보여준 게 아니다," 카이가 말했다. "그냥 그렇게 해석해라."
세라가 카이를 오래 바라봤다. 염주 세는 손이 멈춰 있었다. 아주 드문 일이었다.
"...증거가 없다. 아직."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카이는 그 말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죽은 동생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이 거짓말이 목에 더 깊이 걸릴 것 같았으니까.
세라가 암살자 처리를 위해 나간 뒤, 카이는 다시 혼자 남았다.
그는 창문 앞에 섰다. 부서진 나무 틀. 새벽 바람이 지나간 자리. 그 자리에 아주 작은 것이 남아 있었다 — 검은 실 한 가닥.
카이가 집어 들었다.
외투에서 뜯긴 것이었다.
진짜.
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카이는 검은 실을 손바닥에 말아 쥐었다. 쥐면서 생각했다 — 이 세계엔 진짜 신의 후계자가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카이를 죽이러 온 게 아니라, 살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카이는 아직 몰랐다.
몰라야 했다.
왜냐하면, 만약 그 이유가 카이를 직접 죽이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어젯밤의 구원은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함정이었다.
손가락 마디를 꺾었다.
딱.
"기도 중이다," 카이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중얼거렸다. "신이 진짜 존재한다면, 이것 좀 알려줘라. 나를 살려준 그 사람이 — 나를 죽이러 온 사람이냐, 아니냐."
대답은 없었다.
신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리고 카이는 그 신도 죽이지 못한, 그냥 열여덟 살짜리 거짓말쟁이였으니까.
발아래 여관 마당에서 소리가 들렸다. 세라가 기사단에 연락을 취하는 소리. 암살자들을 어디론가 이송하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들 사이로 — 아주 작게, 누군가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게 들렸다.
지붕 위였다.
카이가 천장을 올려다봤다.
발소리는 이미 없었다.
하지만 카이는 알 수 있었다 — 그 사람이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걸.
떠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걸.
왜인지는 — 아직 모른다.
모르는 채로, 오늘도 거짓말 위에 거짓말을 쌓아야 했다.
같은 시각, 황도에서 사흘 거리의 정보 거래소.
베르 오소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성소멸단이 움직였다는 건." 그가 맞은편 빈 의자를 향해 말했다. 그 의자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제국 종교청이 카이 에레스를 공식적으로 제거하기로 결정했다는 뜻이지. 흥미롭지 않아요?" 찻잔 손잡이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렸다. "가짜 후계자가 살아남으면 살아남을수록, 세계는 그 거짓말을 더 깊이 믿게 되거든. 그게 선언 마법의 무서운 점이야. 처음엔 허풍이었어도, 믿음이 쌓이면 진짜가 된다. 그러니까."
빈 의자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카이 에레스는 이제 내가 살려야 하는 패다."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패는, 내가 버릴 때까지는 살아있어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