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저는 있는데요
오전 아홉 시 십칠 분.
강재윤이 요청서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속도는 언제나 일정했다. 감정도, 서두름도, 가늠할 수 없는 여백도 — 전부 종이 한 장의 무게로 눌러버리는 동작. 오세하는 그 요청서를 집어 들지 않았다. 시선만 한 번 내렸다가 재윤의 얼굴로 돌아왔다.
"서버실 접근 권한이랑 내부 회계 원본 파일 전체입니다." 재윤이 말했다. "담당 직원이 안내해도 됩니다."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대답이 너무 빨랐다. 재윤은 미간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의식적으로 눌렀다.
"필요 없습니다."
"감사관님이 어떤 파일을 찾는지, 저도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오세하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재킷 단추를 채우는 손이 느리고 정확했다. "회사 입장에서도 투명하게 협조하는 편이 낫고요. 설마 제가 옆에 있다고 파일이 바뀌진 않을 테니까."
비꼬는 말이 아니었다. 그게 문제였다. 재윤은 그가 언제나 이랬다는 것을 기억했다 — 정공법으로 쳐들어오는데 어딘가 한 겹이 더 있는 목소리. 뒤집어도 속이 보이지 않는 문장.
"따라오십시오."
재윤이 먼저 문을 열었다.
서버실은 건물 지하 2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이 밀도를 얻었다. 재윤은 버튼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세하는 그의 옆에 서 있었다.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정확히 삼십 센티미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 남자는 십 년 전에도 그랬다. 선을 지키는 방식이 지나치게 정확해서, 오히려 그 선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사람.
층 표시 숫자가 줄었다.
"어제 보내드린 자료는 검토하셨어요?"
"했습니다."
"불명확한 부분이 있으면——"
"있으면 문서로 질의하겠습니다."
오세하가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재윤은 한 박자 먼저 내렸다.
지하 서버실은 차가웠다. 냉각 장치 소음이 공기 전체를 얕게 채우고 있었고, 형광등 아래 금속 선반들이 늘어선 통로는 좁았다. 재윤은 뒤를 확인하지 않고 걸었다. 발소리가 두 박자였다.
"이쪽 열이 회계 관련 백업이에요." 오세하가 설명하며 앞으로 나섰다. "원본은 2번 캐비닛에——"
통로가 꺾이는 지점이었다. 오세하가 캐비닛 쪽으로 돌아서는 순간, 재윤도 같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어깨가 닿을 뻔했다. 1센티미터, 아니면 그보다 더 좁은 거리.
재윤은 즉각 한 발 물러섰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말이 나왔다. 의도한 게 아니었다. 재윤은 그 사실을 뱉고 나서야 알았다. 변명 같았다. 해명 같았다. 그것도 아니면 — 경고 같았다. 무엇을 향한 경고인지는 스스로도 불분명했다.
오세하가 멈췄다.
잠깐의 침묵. 냉각 팬 소리만 가득한 공간에서, 그 침묵이 길게 늘어졌다가 — 오세하가 재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윤은 그 표정을 읽으려 하지 않았다.
"저는 있는데요."
낮고, 조용하고,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였다.
그 덤덤함이 오히려 재윤의 어딘가를 건드렸다. 분노가 아니었다. 당혹도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 오래전에 막아둔 것이 막힌 채로 진동하는 감각. 재윤은 엄지손가락으로 왼쪽 손목 안쪽을 눌렀다. 뼈와 피부 사이 어딘가에 압력을 고정시키듯.
"자료 보여주십시오."
"네."
오세하는 돌아서서 캐비닛을 열었다.
재윤은 그 등을 2초간 바라보다 시선을 파일 쪽으로 옮겼다.
오후가 되었다.
재윤은 서버실 한쪽 테이블에 파일을 펼쳐놓고, 오세하는 맞은편 벽을 등지고 서 있었다. 자리를 비워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는 나가지 않았다. 대신 말이 없었다. 재윤이 서류를 넘기는 소리, 가끔 키보드를 치는 소리, 냉각 팬 소음 — 그것들이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이루고 있었다.
오세하가 커피 두 잔을 가져온 것은 두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입니다. 그냥 두고 갈게요."
재윤은 서류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하지만 들었다 — 컵 손잡이를 검지로 두드리는 소리. 아주 작은 소리였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2015년 3월." 재윤이 말했다.
잔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소액 투자자 항목입니다. 이름이 없어요."
"……알고 있어요."
"누굽니까."
대답이 없었다. 재윤은 파일에서 눈을 들었다. 오세하는 커피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손을 거두었다. 그 손이 아주 잠깐 — 거두기 직전에 — 미세하게 떨렸다.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이유가 아니라 이름을 묻고 있습니다."
"지금은요."
재윤은 그를 바라봤다. 오세하의 눈이 재윤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혹은 — 지금 이 자리에서 더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것의 솔직한 표현처럼. 재윤은 그 시선을 분류하려다 멈췄다.
"다음 질의 때 문서로 제출하십시오."
그는 다시 서류로 눈을 내렸다.
오세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나가지 않았다. 재윤도 내보내지 않았다. 그 사실을 둘 다 알면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윽고 오세하가 벽 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재윤은 서류를 읽었다. 오세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형광등이 두 사람 위에 똑같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수정에게서 메시지가 온 것은 오후 네 시였다.
— 지금 어디요. 전화 안 받네.
재윤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 서버실 문 쪽을 돌아봤다. 오세하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자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호흡이 얕고 일정하게 — 의식이 깨어 있는 사람의 침묵이었다.
재윤은 파일을 덮고 장갑을 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오세하가 눈을 떴다.
"내일 오전에 추가 자료 목록 보내겠습니다."
"알겠어요." 오세하가 일어나며 재킷을 털었다. "같이 올라가죠."
재윤은 대답하지 않고 문 쪽으로 걸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두 사람은 다시 나란히 섰다. 올라가는 내내 침묵이었다. 재윤은 버튼 쪽을 봤고, 오세하는 문 쪽을 봤다. 삼십 센티미터의 간격이 다시 정확하게 유지됐다.
1층에서 문이 열렸다. 재윤이 먼저 내렸다.
"강재윤 씨."
재윤이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아까, 서버실에서." 오세하의 목소리가 낮았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라 오히려 더 선명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고 했잖아요."
재윤은 손목을 누르고 싶었다. 꾹 참았다.
"그게 사실이면 — 저 지금 감사관님 앞에서 이러고 서 있을 이유가 없죠."
재윤이 천천히 돌아봤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오세하는 그 안에서 손으로 문을 막은 채 서 있었다. 빛이 등 뒤에서 잘려 있었다. 그 얼굴에 처음으로 — 재윤이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언가가 올라와 있었다.
"저는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겁니다."
문이 닫혔다.
재윤은 닫힌 문을 2초간 바라봤다. 로비의 냉기가 뒤늦게 목 뒤를 건드렸다. 왼쪽 엄지가 손목 안쪽으로 파고드는 걸 그제야 알아챘다 — 언제부터 누르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출입문 쪽으로 걸었다.
밖에서 한수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코트 깃을 세우고, 입에서 하얀 김을 내뱉으며, 재윤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썹을 올렸다.
"세 시간이요? 서버실에서?"
"자료가 많았습니다."
"그 사람이 직접 안내했어요?"
재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수정은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녀의 표정이 질문에서 걱정으로, 걱정에서 더 깊은 무언가로 옮겨갔다.
"재윤 씨."
"보고서 초안 내일 오전까지 나옵니까."
"그게 지금 하고 싶은 말이에요?"
재윤이 걸음을 옮겼다. 한수정이 옆으로 붙었다.
"오세하 대표가 뭐라고 했어요?"
"감사 관련 발언입니다."
"재윤 씨."
재윤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수정이 그 옆에서 잠자코 걸었다. 잠시 후, 그녀가 작게 말했다.
"그 사람이 십 년 전에 돈 받고 당신 떠났다고 했잖아요."
"네."
"근데 지금도 그 사람 말 들으면 뭔가 달라지는 거 알아요, 당신 표정."
재윤은 걸음을 멈췄다. 한수정도 멈췄다.
"표정은 감사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재윤은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가로등 불빛이 도로 위로 길게 누워 있었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왔다. 차가웠다.
"퇴근하십시오, 수정 씨."
그가 먼저 걷기 시작했다.
한수정은 그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의 왼손이 주머니 속에서 — 아마도 손목 안쪽을 누르고 있을 것이라는 걸, 그녀는 알았다.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는 핸드폰을 꺼냈다. 주소록을 열었다. 스크롤이 내려갔다.
멈춘 이름은 — 권태석이었다.
그녀는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화면을 끄지도 않았다. 그 이름 위에 손가락이 올라간 채로, 잠시 그대로였다.
바람이 다시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