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링
🪙 0로그인
결격 사유

1화 · 첫 번째 결격 사유

밤의서재 (AI 작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침묵이 있다.

말하기 전의 침묵과, 다시는 말하지 않기로 결심한 뒤의 침묵.

강재윤이 사는 곳은 두 번째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24층. 오세하앤파트너스 대표이사실 전층.

재윤은 서류 파일을 왼손에, 출입증을 오른손에 쥔 채 복도를 걸었다. 구두 소리가 대리석 바닥을 짧고 정확하게 두들겼다. 복도 끝, 통유리 너머로 한강이 보였다. 늦가을 한강은 납빛이었다. 물결 하나 없이 차갑고 납작했다. 그는 보지 않았다.

"감사팀장님, 대표님은 현재 회의 중이십니다. 잠시——"

비서실 직원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다. 재윤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예정된 시간입니다."

한 문장. 그것으로 충분했다. 비서가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입을 닫았다. 재윤은 이미 대표실 문 앞에 서 있었다.

두 손가락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눌렀다.

문이 열렸다.

통유리 너머 납빛 한강을 등지고 서 있는 남자, 그 시선이 문을 연 재윤과 정확히 맞닿는 순간.

회의는 없었다.

남자는 혼자였다.

창가에 서서 한강을 내려다보다가, 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세하. 서른다섯. 아직도 등이 좁고 턱선이 날카로웠다. 십 년이 그의 몸 어딘가에 무게를 더해두었다 — 더 단단하고, 더 조심스러운 무게. 그러나 재윤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 눈은 그대로였다. 진하고 느린 눈. 무언가를 볼 때 서두르지 않는 눈.

그 눈이 재윤에게 박혔다.

일 초.

두 초.

오세하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요, 선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아니, 삼 일 전에 헤어진 사람에게 건네는 인사처럼. 재윤은 그 목소리를 전혀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 — 그래서 더 모르는 척했다.

그는 파일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의자를 당겨 앉았다. 볼펜 캡을 열었다.

"감사팀장 강재윤입니다. KH홀딩스 피인수 법인 감사 절차에 따라——"

"알아요."

오세하가 낮게 잘랐다. 이쪽으로 걸어와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손가락 끝으로 끌어당겼다. 검지가 잔 손잡이에 닿았다가 멈췄다.

"다 알고 있어요. 서류도 미리 검토했고요. 협조할 건 충분히 하겠습니다."

재윤은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서류 첫 페이지. 감사 범위. 대상 기간 삼 개 년. 재무제표 및 내부거래 전반. 볼펜이 첫 줄에 선을 그었다.

"법인 설립 경위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오세하앤파트너스, 설립 연도 이천십오년. 초기 자본금 출처와 투자 유치 경로——"

"선배."

또였다. 재윤의 볼펜이 멈췄다. 시선은 올리지 않았다.

"호칭 주의하세요. 저는 팀장입니다."

오세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가 흘렀다. 창문 틈으로 바람이 우는 소리. 재윤은 엄지손가락을 내려 손목 안쪽을 눌렀다. 맥이 잡혔다. 규칙적이고 느리게. 그는 그 규칙성에 기댔다.

"초기 자본금."

그가 다시 말했다.

"자기자본 사억, 엔젤 투자 육억. 투자자 명단은 파일에 있을 거예요." 오세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고요했다. "근데 팀장님."

재윤은 볼펜 끝으로 서류를 짚었다.

"진술은 질문 순서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저 지금 진술하는 게 아니라 말하는 거예요."

재윤이 고개를 들었다.

실수였다.

시선이 맞닿는 순간, 오세하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십 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고요. 선배가."

재윤은 그 말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듣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귓속에서 무언가가 울리는 느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눈을 내렸다.

"감사는 감정 교환이 아닙니다."

"그러게요." 오세하가 받았다. "근데 선배 손 보니까, 아직도 그 버릇 있네요."

재윤의 엄지가 굳었다. 손목에서 떨어졌다.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은 척 볼펜을 다시 잡았다. 페이지를 넘겼다.

"투자자 명단 확인하겠습니다."

감사는 두 시간 진행되었다.

오세하는 모든 질문에 답했다. 빠짐없이, 정확하게. 그러나 재윤이 파고들려 할 때마다 답의 끝이 그 지점에서 딱 잘렸다. 마치 어디까지가 위험선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는 것처럼. 재윤은 그것을 눈치챘다.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오세하도 알았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른 척한 채 두 시간을 지나쳤다.

감사 서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남자, 재윤의 볼펜 끝과 오세하의 커피잔 손잡이 위 손가락이 각각 같은 리듬으로 멈추는 찰나.

감사 종료 직전, 재윤이 마지막 항목에 체크를 끝냈다.

"추가 서류 요청 목록은 내일 오전까지 이메일로 전달하겠습니다. 그 전까지 관련 파일 임의 삭제나 이동을 금합니다."

"알겠어요."

재윤은 파일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

문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오세하가 불렀다. 재윤은 멈추지 않았다. 오세하의 목소리가 조금 더 낮아졌다.

"권태석 이사 알죠."

발걸음이 멈췄다.

재윤은 돌아보지 않았다. 등이 문을 향한 채로, 그대로.

"KH홀딩스 경영전략실장, 권태석." 오세하가 이었다. 여전히 낮고, 여전히 고요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고요함 밑에 무언가 다른 것이 깔려 있었다. "이번 감사를 기획한 사람이요."

"……감사 기획은 이사회 결의입니다."

"그렇죠."

오세하가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

"근데 그 이사회에 권태석 이사가 있고, 그 이사가 이 감사 건을 가장 먼저 상정했어요. 팀장님은 그거 알고 여기 온 거예요?"

재윤이 돌아보았다.

오세하는 앉은 채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빛이 창 쪽에서 들어와 그의 옆면을 잘라내고 있었다. 눈 아래 그림자. 입술 위 그림자.

"……권태석 이사는 이 회사 인수 건의 당사자입니다. 이해관계자가 감사 기획에 개입했다는 의미라면, 그건 내부 문제로——"

"십 년 전에 저한테 돈을 줬어요, 그 사람이."

재윤의 목 안에서 무언가가 걸렸다.

"선배를 떠나라고. 그리고 저는." 오세하가 잠깐 멈췄다. 검지가 다시 잔 손잡이를 두드렸다. 한 번. 두 번. "받았어요."

침묵이 대표실을 채웠다.

재윤은 오세하를 보았다. 오세하는 재윤을 보았다. 이번에는 어느 쪽도 먼저 시선을 내리지 않았다.

"그 말이 진실이라면." 재윤의 목소리는 낮았다. 더 낮아졌다. 조용하고, 느리고, 그래서 더 위험한 목소리. "그건 지금 이 감사를 무력화하려는 진술입니까."

"아뇨."

오세하가 말했다.

"선배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순간.

재윤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그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입술을 닫았다. 볼펜을 파일에 끼웠다. 손잡이를 잡았다.

"진술은 공식 석상에서 하십시오."

문을 열었다. 닫았다.

복도. 구두 소리. 대리석.

텅 빈 복도를 걸어가는 재윤의 뒷모습, 그의 손목을 누르던 엄지손가락이 파일 손잡이를 꽉 쥔 채 미동도 없이 굳어 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재윤은 거울처럼 매끈한 철제 문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는 것을 보았다. 무표정이었다. 정확하고 완벽하게 무표정이었다.

그는 자신의 왼손이 오른쪽 손목을 쥐고 있다는 것을, 24층이 1층이 되는 동안 내내 알아채지 못했다.

로비를 빠져나와 주차장 쪽으로 걷는 길에, 한수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외투 깃을 세운 채, 재윤을 보자마자 눈을 좁혔다.

"얼굴이 왜 그래요."

"어떻게."

"멀쩡한 척하는 얼굴이요. 팀장님 진짜 멀쩡할 때는 저한테 인사도 안 하거든요." 그녀가 일어나 재윤 옆에 나란히 섰다. "누구예요."

"조사 대상."

"그게 다예요?"

재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한수정은 그를 삼 초쯤 바라보다가, 한숨을 조용히 코로 내쉬었다.

"초기 자본금 투자자 명단 받았어요?"

"내일 오전까지."

"이상한 거 있었어요?"

재윤은 잠시 멈췄다.

"……권태석 이사가 이번 감사를 직접 상정했는지, 내부 이사회 회의록 전부 뽑아놔."

한수정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거……설마 대표한테서 들은 거예요?"

재윤은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한수정이 그 뒤를 따라가며, 낮게 중얼거렸다.

"팀장님, 나 불안한데."

재윤은 멈추지 않았다.

그날 밤, 자정이 넘어 재윤은 혼자 사무실에 앉아 십 년치 서류를 펼쳤다.

오세하앤파트너스 설립 연도. 이천십오년. 재윤이 그를 마지막으로 본 해로부터 정확히 일 년 뒤.

투자자 명단을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다, 손가락이 멈췄다.

다섯 번째 줄.

익명 투자자. 이천만 원. 이천십오년 삼월.

이천십오년 삼월.

재윤이 군 전역한 달.

그가 오세하를 찾아다니다 포기한 달.

볼펜이 서류 위에서 굴러 바닥에 떨어졌다. 재윤은 줍지 않았다. 엄지가 손목 안쪽을 눌렀다. 세게. 맥이 빠르게 뛰었다.

처음으로.

오늘, 처음으로.

그는 오세하에게 묻지 않은 말이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당신이 그 돈을 받았다면, 그 돈을 어디에 썼습니까.

다음화 예고
2화 · 저는 있는데요
바로 이어서 볼 수 있어요.
다음화 이어보기 →
AD
📣 멤버십 가입하면 광고가 사라지고 모든 회차를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어요. 멤버십 보기 →

💬 댓글 0

댓글을 쓰려면 로그인하세요.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