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룸메이트 협정》 1화 "동거, 그것이 문제로다"
대학 입학식 당일,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
"이상해. 분명히 싱글룸이라고—"
민준호가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들어오던 순간, 방 한구석에 누군가의 짐이 이미 산을 이루고 있었다. 침대 옆 책상에는 형광펜으로 칠해진 수학책이 펴져 있었고, 옷장 문은 걸어 잠긴 상태. 심지어 공기 청정기에서 피우는 향초 냄새가 가득했다. 라벤더. 민준호는 라벤더를 못 견디는데.
"어? 어어어?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현관에서 목청껏 외쳐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분명 동전 던지기로 방 배정을 결정해야 한다는 건지 아무튼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든 조교였다. 민준호는 신입 안내 책자를 다시 펼쳤다. 분명히 209호, 싱글룸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를 반복하던 찰나, 누군가가 옆 복도에서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났다.
"어... 혹시 209호 학생?"
고개를 들었을 때 보인 건, 화이트 운동복을 입은 남자였다. 은백색 반짝이는 뭔가를 목에 걸고 있었다. 신입 안내 배지였다. 그것도 순번 1번.
"맞는데."
"어, 나도. 이상하지? 컴퓨터 오류인 것 같아. 둘 다 싱글룸으로 배정됐대."
남자가 웃었다. 웃기지 않은 웃음이었다. 입꼬리만 올라가고 눈은 안 웃는, 그런 종류의 웃음. 민준호는 즉시 짐작했다. 이 사람도 싫어한다. 상황을 싫어한다.
"그럼 어쩔 건데?"
"교무실에 물어봤어. 일단 방을 같이 쓸 수밖에 없대. 뭐... 잠깐 동안만이라고. 한 주일 정도?"
한 주일이라는 말에 민준호의 등이 곧추세웠다. 한 주일. 자신의 영역을 남과 나눈 지 꽤 오래가 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쭉 혼자였다. 혼자 밥 먹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생각했다. 그게 편했다. 그래서 대학에 와서도 싱글룸을 신청한 거였다.
"내 이름은 강석주야."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이 길었다. 손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무언가 꼼꼼한 사람의 손이었다.
민준호는 손을 맞잡으며 중얼거렸다.
"민준호."
악수는 짧았다. 정확히 1초. 마치 미리 정한 계약처럼 정확했다.
그 후 2시간이 걸렸다. 영역 분배에만 2시간이.
"침대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잖아."
"상관 있어. 난 햇빛이 드는 쪽에서 자야 해."
"진짜? 그건 뭔 기준이야?"
"생물학적 리듬. 알아?"
강석주는 민준호의 답변에 한숨을 쉬었다. 깊은 한숨이었다. 마치 인생에 자주 쓰는 한숨 같은, 그런 깊이였다.
"그럼 책상은? 어느 쪽 책상을 쓸 건데?"
"창가 쪽."
"왜?"
"햇빛."
강석주는 이번엔 한숨을 안 쉬고 웃음을 내뱉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한 번 터지는 웃음이 아니라, 반복되는 웃음. 마치 자신의 상황의 황당함을 깨달은 사람의 웃음.
"혹시... 이거 성격 테스트 같은 건 아니고?"
"뭐가?"
"그 채용 프로그램. 뭐라고 하더라... 어쨌 넌 정반대 사람들을 자꾸 사귀게 된다는 알고리즘?"
민준호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책상 위의 책 몇 권을 들었다. 강석주의 책들이었다. 《즉흥 연주를 위한 화성학》, 《미분 방정식의 실제 응용》, 《동방영화사 역사》. 잡다했다.
"넌 뭐 하는 사람이야?"
"음악과. 아니, 다중 전공이라 수학과도 함께. 그리고 영화 좋아해."
"복잡하네."
"넌?"
"공학과."
"한 가지만?"
민준호는 대답 대신 짐을 풀기 시작했다. 책상 한쪽에 노트북을 놨다. 그 옆에 필기구를 종류별로 정렬했다. 강석주가 옆에서 지켜봤다.
"오케이, 정리된 사람이네."
"너는?"
"난... 창조적이라고 할 수 있지. 정리는 필요할 때만."
"필요할 때는 언제야?"
"그때가 되면 알겠지."
민준호는 강석주의 책상 위 상태를 다시 한 번 봤다. 필기구는 컵 안에 무질서하게 들어가 있었고, 책들은 높이 순이 아닌 완전히 임의의 순서로 쌓여 있었다. 그 와중에도 냄새는 라벤더였다.
"그런데 진짜 한 주일이만 된다는 거 확실한 거야?"
강석주가 침대에 누웠다. 누우면서도 신발을 벗지 않았다. 침대 위에서.
"어... 확실해. 아마. 다른 방이 비면."
"아마?"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럴 걸? 교무실 아줌마도 잘 모르는 분위기였어."
민준호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리고 그 충동을 억누르고 싶지 않았다. 이건 자신의 생활 공간이었다. 불확실성을 좋아하지 않았다.
"신발 벗어."
"어?"
"침대 위에서 신발 벗어."
강석주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천장을 보던 시선이 민준호를 향했다. 그 시선은, 어떤 복잡한 감정을 담은 시선이었다. 화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뭔가를 재는 듯한 시선. 물론 민준호를 향한 시선이었다.
"너 정말 심하네."
하지만 강석주는 신발을 벗었다.
밤 열 시가 넘었을 때, 민준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봤다. 창밖으로는 신입생 축제의 음악이 들렸다. 신나는 노래였다. 록 계열의, 리드 기타 소리가 뚜렷한, 그런 노래.
강석주가 그 음악에 맞춰 음을 내고 있었다. 완전히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마치 혼잣말처럼.
"어두운 밤이 깊어갈 때, 여린 마음도 함께 깊어져..."
민준호는 강석주 쪽을 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윤곽이 보였다. 천장을 보는 얼굴. 뭔가 멀리 보는 듯한 눈빛.
"잘 자야 하지 않아?"
"어? 아, 넌 자는 줄 알았어. 음악이 좋아서... 그냥 부르게 됐어. 미안."
"뭐가 미안해. 자면 돼."
강석주가 몸을 돌렸다. 민준호 쪽을 보는 자세로. 어두운 방 속에서 두 사람의 호흡만 들렸다.
"근데 너 정말 심각한 사람이야. 신발 문제로 뭐 그렇게..."
"습관이야."
"습관이 참 많네."
"싫어?"
이번엔 강석주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웃음은, 뭔가 포기한 사람의 웃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나쁜 웃음은 아니었다.
"일단... 한 주일이니까. 참자."
민준호는 그 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천장을 다시 봤다. 멀게 들리던 축제 음악이, 이제 슬픈 발라드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민준호는 먼저 일어났다. 06:27. 생물학적 리듬이 깨웠다.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창가로 나갔다. 다시 자기 전에 생각할 수 있는, 그 정도의 조용한 시간.
강석주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얼굴이 반쯤 베개에 묻혀 있었다. 그렇게 자는 사람의 얼굴은 조용했다. 어제의 웃음도, 시침까지 빠르게 도는 눈동자도 없었다. 그냥 자는 얼굴이었다.
민준호는 노트북을 켰다. 수강신청 변경 가능 시간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손가락이 멈췄다. 대신 "싱글룸 배정 시스템 오류" 키워드로 검색했다.
결과는 없었다.
그렇다면 강석주가 했던 말들은 다 사실일까. 교무실에 물었고, 일주일 정도라고 했고, 다른 방이 비면 옮긴다고 했고, 아마라고 했고...
민준호는 노트북을 닫았다. 해결할 건 해결해야 했다. 정확한 정보를.
오늘의 할 일 목록에 "교무실 확인"을 추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