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 크루아상 한 개와 조원 한 명
써니베이크의 아침은 버터 냄새로 시작된다.
정확히는 오전 여덟 시 사십 분, 2차 발효가 끝난 크루아상이 오븐 문을 나오는 순간부터다. 서온은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어깨가 스르르 내려가는 걸 느꼈다. 고향 냄새 같은 건 아니었다. 그냥, 이 공간이 자기 자리라는 확인 같은 것.
오늘 아침엔 조금 달랐다.
서온은 트레이를 정리하다 말고 유리문 너머를 슬쩍 봤다. 별일은 아니다. 어제 카운터 노트에 적힌 글씨가 아직도 눈에 밟혀서. 또박또박하지만 힘껏 눌러 쓴, 볼펜 자국이 종이를 파고든 그 글씨.
크루아상, 평일 오후 네 시 이후, 가능하면 계속 부탁드립니다 — 한.
가능하면 계속.
서온은 트레이를 내려놓고 혼자 피식 웃었다. 아, 진짜요. 그게 부탁이에요, 선배님.
문이 열린 건 서온이 예상한 것보다 두 시간 일렀다.
오전 열 시. 평일 오전은 원래 한산한 편이다. 대학가 빵집이 진짜 바빠지는 건 점심 이후니까. 서온이 진열대를 닦고 있을 때 문 위 벨이 짧게 울렸고, 고개를 든 순간 눈이 마주쳤다.
한도윤이었다.
어제 본 것과 똑같은 무채색 후드. 옆구리에 노트. 달라진 게 있다면 딱 하나—발걸음이 한 박자, 정말 한 박자 늦었다는 거다. 마치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뭔가를 다시 계산하는 것처럼.
"어, 선배님. 오늘 일찍 오셨네요."
서온이 손에 쥔 행주를 내리며 말했다.
"……응."
도윤은 카운터 앞에 서서 진열대를 훑었다. 오전 열 시의 크루아상은 아직 덜 나온 상태다. 서온이 오후 물량으로 따로 빼 두는 건 아직 오븐 속이었다.
"크루아상은요?"
"오후 물량은 두 시 이후요. 지금 건 조금 전에 다 팔렸어요."
"……."
도윤은 별 표정 없이 진열대를 한 번 더 훑었다. 그러고는 소금빵 한 개를 집어 카운터에 올렸다.
서온이 바코드를 찍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노트에 적어 주신 거 봤어요. 가능하면 계속이라고."
"응."
"근데요." 서온은 계산을 끝내고 영수증을 뽑으면서 도윤 쪽을 봤다. "그거 알바한테 부탁하신 거예요, 아니면 가게에 부탁하신 거예요?"
도윤이 눈을 들었다.
짧은 침묵.
"……차이가 있어?"
"있죠." 서온이 영수증을 건네며 웃었다. "저 이번 달 말에 시험 기간이거든요. 스케줄 바뀔 수도 있어서요."
도윤은 영수증을 받아 넣으며 아주 잠깐 눈을 내렸다 올렸다.
"……알바한테."
그게 다였다. 도윤은 소금빵이 든 봉투를 들고 돌아섰다.
서온은 그 뒷모습을 보면서 또 혼자 웃었다. 행주를 다시 집어 들고 진열대로 돌아가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알바한테래."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이틀 후, 화요일 오후.
교양관 206호는 좌석이 육십 개짜리 중간 크기 강의실인데, 이상하게 항상 딱 두 자리가 모자란 느낌이 드는 구조였다. 서온은 경영학과 1학년 필수 교양인 '도시와 공간의 이해'를 수강 신청할 때 별생각이 없었다. 이름이 그나마 재미있어 보여서. 그뿐이었다.
강의실에 들어서며 빈자리를 찾던 서온의 눈에 익숙한 뒷머리가 들어왔다.
창가 쪽 중간 줄. 무채색 후드. 옆에 노트.
서온은 잠깐 멈췄다.
아.
진짜요?
혼자 속으로 되물으며 서온은 자연스럽게 한 줄 뒤, 통로 쪽 자리에 앉았다. 도윤은 이미 노트를 펼치고 뭔가를 쓰고 있었다.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인데.
교수가 들어오고, 출석을 부르고, 그제야 도윤이 고개를 들다가—
눈이 마주쳤다.
서온이 살짝 손을 들었다. 반갑다는 듯이.
도윤의 눈이 0.5초쯤 멈췄다 돌아갔다.
서온은 그걸 보면서 입술을 씰룩했다. 못 본 척은 아니었다. 분명히 봤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척한 거다.
그 선배, 참 일관되네.
조 편성은 강의 중반부에 진행됐다.
"출석 번호 홀수가 1조, 짝수가 2조입니다. 5인 1조, 오늘 안에 조장 정하고 연락처 교환까지 마쳐요."
서온의 출석 번호는 열일곱. 홀수.
그리고 한도윤의 출석 번호는—
"……열다섯."
서온은 칠판에 붙은 명단을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홀수. 같은 조.
조원들이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서온이 도윤 옆자리로 이동하자 도윤은 노트에서 눈을 들지 않았다.
"선배님."
"……."
"저 이서온인데요. 1조 맞죠?"
도윤이 명단을 한 번 내려다봤다. 그리고 짧게.
"응."
조원들이 하나둘 모이는 동안 도윤은 줄곧 노트에 뭔가를 적었다. 서온은 옆에서 나머지 조원들과 이름을 교환하고 단체 채팅방을 만들고, 혼자 거의 진행을 다 맡다시피 했다.
"도윤 선배님도 카톡 아이디요."
도윤은 노트를 덮고 서온 쪽으로 화면을 기울였다. 서온이 아이디를 추가하는 동안 도윤은 팔짱을 끼고 창밖을 봤다.
"선배님, 조장은 누가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서온이 해."
조원 중 한 명이 끼어들었다. 도윤은 별말이 없었다. 기권을 표명하는 방식이 침묵인 거다, 라는 걸 서온은 이미 알아챘다.
강의가 끝나고 조원들이 먼저 나갔다. 서온은 가방을 챙기면서 옆을 봤다. 도윤은 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서온은 허공에 손을 한 번 긁적이다가 입을 열었다.
"선배님, 저 당황하면 안 되는 질문인 거 알면서 하나 물어봐도 돼요?"
도윤이 노트를 덮으며 서온을 봤다.
"조 편성 때 얼굴 굳으셨잖아요. 저 때문이에요?"
침묵이 딱 2초 이어졌다.
"……단순 손님이랑 조원이 겹치는 게 변수라서."
"변수요."
"응."
서온은 잠깐 그 말을 씹어봤다. 변수. 자기가 변수라는 거다.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근데 빵집이랑 수업이랑 다른 거잖아요."
"어."
"그럼 저는 그냥 조원 이서온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도윤이 서온을 봤다. 서온은 웃고 있었다. 짓궂지도 않고 상처받지도 않은, 말 그대로 궁금해서 묻는 눈이었다.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온은 가방을 어깨에 올리며 말했다.
"저는 그냥 조원이어도 충분한데요, 선배님."
그리고 먼저 강의실을 나갔다.
도윤은 그 자리에 잠깐 앉아 있다가, 창밖을 봤다.
변수. 라고 말했지만, 사실 그 단어는 정확하지 않았다. 변수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이서온은—이미 계산에 들어와 있었다. 오전 열 시의 써니베이크, 소금빵, 알바한테. 전부 노트 어딘가에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다음 조모임은 일주일 뒤 금요일 오후 두 시, 학교 도서관 세미나실로 잡혔다.
서온은 그 전날 밤까지 아이디어를 정리했다. 이번 과제는 '도시 속 유휴 공간을 새로운 방식으로 상상하기'였다. 오 페이지 분량의 기획안. 서온은 공책 한 권을 거의 다 썼다. 경영학과 특유의 방식으로—표와 숫자 대신 허공에 뭔가를 그리듯 손이 먼저 움직이고 나서 종이에 받아 적는 방법으로.
금요일 오후, 세미나실에 먼저 도착한 건 도윤이었다.
서온이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도윤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트가 펼쳐진 채로.
서온이 맞은편에 앉으면서 가방에서 공책을 꺼내 책상에 올렸다. 두꺼운 줄 공책, 여기저기 포스트잇이 붙고 모서리가 접힌 것들도 있었다.
다른 조원 셋이 삼삼오오 들어오며 자리를 채웠다. 자연스럽게 아이디어 공유가 시작됐다.
서온이 공책을 펼치며 말했다.
"저는요, 지하도 생각했거든요. 학교 앞 지하도 있잖아요, 항상 불 꺼져 있는 구간."
서온이 손을 들어 허공에 직사각형을 그렸다.
"거기를 그냥 빛으로 채우는 거예요. 아, 진짜 조명 말고요." 손이 움직이며 곡선을 그렸다. "낮에는 천장을 뚫어서 자연광이 들어오게 하고, 밤에는 벽면에 동네 사람들 기록 같은 거 투사하는 거예요. 지나다니는 공간인데 잠깐 멈추게 만드는 거."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메모를 했다.
도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서온이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도윤은 자기 노트를 보고 있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회의가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서온이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조원 중 한 명이 서온의 공책을 빌려 뭔가를 확인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공책이 도윤 쪽으로 밀렸다.
도윤은 잠깐 그것을 봤다.
빛이 들어오는 방향을 그린 단면 스케치, 화살표로 표시된 사람의 동선, 여백에 적힌 메모들.
"멈추게 하는 공간 = 목적지가 아닌 곳에서 생기는 여유."
도윤의 시선이 그 문장 위에서 한 박자 멈췄다.
건축학과 3학년이 갖고 다니는 노트에도 비슷한 메모가 있었다. 다른 언어로 쓰인 같은 생각. 도윤의 버전은 이렇게 되어 있었다.
동선의 공백이 공간을 만든다.
서온이 돌아왔다. 공책이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서온은 자리에 앉으면서 도윤 쪽을 슬쩍 봤다.
도윤의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서온은 봤다. 도윤이 공책에서 눈을 거두던 그 순간을. 아주 짧게, 뭔가를 덮어놓는 것 같은 눈이었다.
서온은 모른 척했다.
회의가 끝났다. 조원들이 먼저 나가고, 서온이 짐을 챙기는 동안 도윤은 노트를 닫았다.
서온이 먼저 말했다. 일부러 가볍게.
"선배님도 지하도 같은 공간 생각해봤어요? 전공이니까요."
"……아니."
"어떤 거 생각하셨어요?"
"이번엔 말할 만큼 안 됐어."
서온은 가방을 어깨에 올리고 도윤을 봤다. 도윤은 노트를 겨드랑이에 끼우다가 서온과 눈이 마주쳤다.
말할 만큼 안 됐다는 건, 생각은 했다는 거다.
서온은 그 말의 뒷면을 아주 잠깐 들여다봤다가, 웃었다.
"다음 회의 때 말할 만큼 되면 들려줘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먼저 문을 향해 걸었다.
서온이 따라 나오면서 말했다.
"저 오늘 마감 알바 있어요. 먼저 갈게요."
"응."
"크루아상 오늘 유자 필링 들어간 거 나왔거든요. 선배님 오시면 남겨 둘게요."
복도를 걷던 도윤의 발걸음이 한 박자 늦춰졌다.
서온은 이미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아홉 시 사십 분.
도윤은 도서관 열람실 창가 자리에 앉아 노트를 펼쳤다.
하루 일정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오전 전공 수업, 점심, 오후 조모임, 저녁 스튜디오 작업—
그 아래에 여백이 조금 있었다. 도윤은 볼펜 뚜껑을 열다가, 닫았다.
노트 한쪽 귀퉁이, 아주 작은 글씨로.
동선의 공백이 공간을 만든다.
그 옆에, 오늘 처음 적는 것처럼.
——멈추게 하는 공간.
도윤은 잠시 그걸 내려다봤다가, 노트를 덮었다.
이틀 후 수요일 저녁, 채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야 나 내일 교양 수업 결석이야 대신 출석 불러줘 아 그리고 1조 조원 중에 경영 1학년 이서온이라고 있지? 내가 그 애 과 선배한테 들었는데
도윤은 화면을 봤다.
걔 이번 학기 중간에 알바 그만둔대.
도윤의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잠깐 멈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