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오늘의 크루아상은 이미 당신 거예요
써니베이크의 아침은 밀가루 냄새보다 먼저 시작된다.
오전 일곱 시 사십 분. 이서온은 아직 진열대가 반쯤 비어 있는 가게 안에서 철판을 닦고 있었다. 손목에 힘을 주어 원을 그리면 스테인리스 표면에 자기 얼굴이 찌그러져 비친다. 눈이 옆으로 늘어나고, 코가 납작해지고. 서온은 그 얼굴을 향해 혀를 쭉 내밀었다가, 주방 쪽에서 탁 소리가 나자 얼른 다시 닦는 척했다.
오늘 입고 온 앞치마엔 어젯밤 반죽이 튄 자국이 있었다. 지웠다고 생각했는데 빛 각도에 따라 희끗하게 남아 있다.
"아 진짜요?"
혼자 중얼거리며 앞치마 끝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서온은 미련 없이 포기하고 카운터로 걸어가 오늘의 진열 목록을 다시 훑었다.
크루아상. 소금 버터 크루아상. 아몬드 크루아상. 치즈 베이글. 호밀 식빵. 단팥 소금빵. 크림치즈 브리오슈.
그리고 맨 아래, 서온이 직접 손으로 적어서 냉장 케이스 옆 작은 메모판에 붙여 둔 것.
[크루아상 1개 – 예약]
딱히 예약 시스템이 있는 가게가 아니다. 점장님이 만든 것도 아니다. 서온이 지난주 화요일부터 혼자 시작한 일이다. 마감 두 시간 전쯤 크루아상이 딱 하나 남았을 때, '저거 못 사 가면 그분 오늘 허탕이겠다' 싶어서 옆에 살짝 치워 뒀던 것이 처음이었다. 그다음 날도 그랬다. 그다음 날도. 지금은 아예 오전에 입고할 때 하나를 먼저 빼 두는 게 습관이 됐다.
누군지도 모른다. 이름도 모른다. 그냥 '크루아상 손님'이다.
매일 오후 네 시에서 네 시 삼십 분 사이에 온다. 건축 관련 학과 같아 보이는 책가방을 메고, 헤드폰은 언제나 목에 걸고, 지갑 대신 핸드폰 케이스에 카드를 꽂아서 낸다. 주문은 한결같다. "크루아상이요." 세 글자. 가격을 말해 줘도 고개만 끄덕인다. 영수증은 필요 없다고 처음에 딱 한 번 말했다—그 이후로는 서온이 알아서 안 뽑는다.
그래도 매일 온다. 그 일관성이 서온은 왠지 마음에 들었다.
빵 앞에서만—딱 빵 앞에서만—그 사람 발걸음이 느려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유리문 너머로 진열대를 스윽 보다가 크루아상이 있으면 그때야 안으로 들어온다. 없으면 그냥 돌아간다. 한 번은 서온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왔을 때, 그 손님이 유리문에 이마를 거의 붙이다시피 하고 안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홱 떼는 걸 봤다. 그 순간이 왜인지 귀여웠다. 다 큰 성인 남자가 빵집 유리에 이마를 대고 있다는 게.
그래서 남겨 두기 시작했다. 딱히 이유가 더 필요하진 않았다.
문제는 오늘이었다.
오늘은 배송이 늦었다. 원래 오전 여덟 시에 들어와야 할 크루아상이 열 시가 넘어서야 들어왔고, 서온은 그것도 모르고 예약 메모를 미리 붙여 뒀다가 뒤늦게 부랴부랴 진열을 마쳤다. 오후 세 시. 평소보다 한 시간 이른 그 시각, 서온이 크루아상 하나를 골라 크라프트 종이에 곱게 싸서 카운터 아래 선반에 올려두는 바로 그 순간—
문이 열렸다.
딸랑.
서온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웃는 얼굴로. 그게 습관이다.
그런데 그 웃음이 조금 굳었다.
크루아상 손님이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예고도 없이. 심지어 서온이 크루아상을 종이에 싸서 막 선반에 내려놓는 장면을 정확히 목격한 채로.
짧은 침묵.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했다. 서온은 종이 봉지를 쥔 채 손을 멈췄고, 상대는 유리문 손잡이를 아직 잡고 있었다.
"……어."
남자가 먼저 말했다. 어. 그게 전부였다.
서온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러다 평소 습관대로 손이 먼저 움직였다. 봉지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으면서.
"어서 오세요! 크루아상……이죠?"
"응."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배송 알림 앱이 있어서."
서온이 눈을 깜빡였다. 배송 알림 앱? 이 빵집에 그런 게 있나? 없다. 절대로 없다. 알바를 시작한 지 넉 달이 됐는데 그런 기능을 도입했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저희 가게요?"
"아니."
"……그럼요?"
"비슷한 이름의 카페 앱이 알림을 잘못 보냈어."
서온은 그 대답을 받아들이는 데 이 점 오 초가 걸렸다. 비슷한 이름의 카페 앱이 잘못 울렸는데, 그걸 보고 '어, 그럼 빵집도 혹시 크루아상 나왔을까' 싶어서 왔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결국—
"그러면 오늘 우연히 일찍 오신 거잖아요."
"응."
"근데 마침 제가 이걸 치우는 걸 보신 거고요."
"응."
서온은 잠깐 봉지를 내려다봤다가 다시 상대를 봤다. 그 사람은 이미 문에서 손을 떼고 카운터 쪽으로 두어 걸음 걸어와 있었다. 표정은—딱히 화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니었다. 뭔가를 조용히 계산하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거 왜 따로 뒀어요."
질문 형식이지만 물음표가 없는 말투였다.
서온은 잠깐 망설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까. 아, 손님이 매일 오시길래 마감 전에 없으면 허탕 치실까 봐 남겨 뒀어요—라고 하면? 머릿속으로 그 문장을 돌려봤다. 그냥 친절한 서비스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니면 좀 이상한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다.
"혹시 불편하셨어요?"
서온이 되물었다. 방어선을 친 게 아니라 진짜 궁금했다.
남자가 짧게 눈을 내렸다가 올렸다.
"불편하진 않아."
"그럼 됐잖아요."
"됐다고 결론이 나면 설명이 없어도 돼요?"
"……왜 따로 뒀는지 물어보셨잖아요."
"응."
"손님이 매일 오시잖아요. 크루아상 사러. 근데 마감 두 시간 전쯤 되면 거의 없거든요. 한 번은 없어서 그냥 가시는 거 봤어요. 그래서 그냥—"
서온은 허공에 손을 들어 올려 손바닥을 펼쳤다가 오므렸다. 말할 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이다.
"—남겨 뒀어요. 딱히 복잡한 이유는 없고요."
침묵이 잠깐 내려앉았다.
남자의 시선이 카운터 위 봉지에 머물렀다가 서온에게로 돌아왔다. 서온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눈이 꽤 서늘하게 생겼다. 예쁘게 생긴 사람인데 인상이 묘하게 단단해서 뭘 생각하는지 알기가 어렵다.
"학번이요."
뜬금없었다.
"……네?"
"학번. 건축학과 삼학년이에요."
서온이 잠깐 멍했다.
"저는 경영 일학년이에요."
"알아요."
"……어떻게요?"
"앞치마 주머니에 학생증 꽂혀 있어요. 위에 학번 찍혀 있고."
서온이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진짜였다. 앞치마 주머니에서 학생증 모서리가 비죽이 나와 있었고, 바코드 줄 아래 학번이 선명하게 보였다.
"아 진짜요?"
혼자 중얼거렸다.
"한도윤이에요."
남자가 말했다. 이름이었다. 아무런 전후 맥락 없이 그냥 툭.
서온이 얼떨결에 받았다.
"이서온이에요."
"알아요."
"……또 학생증이요?"
"이름도 찍혀 있어."
서온은 잠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다 웃음이 먼저 나왔다. 억지로 참은 게 아니라 그냥, 나왔다.
"그러면 선배님이시네요."
"응."
"말씀 놓으세요, 선배님."
한도윤이 잠깐—정말 아주 잠깐—입술을 달싹였다가 그냥 닫았다. 그러고는 봉지를 카운터에서 들었다.
"얼마예요."
"삼천오백 원이요."
카드가 나왔다. 서온이 단말기를 내밀었다. 결제가 끝나자 도윤은 봉지를 들고 돌아섰다. 서온은 그 뒤통수를 보면서 뭔가 더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하면 됐다.
"또 오세요!"
"응."
문이 닫혔다. 딸랑.
서온은 텅 빈 카운터 앞에서 두 박자 멈췄다가, 예약 메모지를 떼서 구겼다. 내일부터는 그냥 또 남겨 두면 된다. 이미 말했으니까. 이제 이상한 게 아니다.
손을 비비며 주방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문득 한 가지가 걸렸다.
한도윤.
이름을 알았다. 근데 왜 그 사람이 먼저 이름을 말했지? 빵집 알바생한테 이름을 먼저 말하는 건—딱히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서온은 몇 달째 이 가게에서 일했는데 먼저 이름 밝힌 손님이 몇 명이나 됐더라.
없었다.
한 명도.
서온은 그 생각을 잠깐 붙잡고 있다가, 스스로 놔버렸다. 생각해봤자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특이한 사람인 거겠지.
그날 오후 다섯 시.
마감 한 시간을 앞두고 서온이 진열대 정리를 하고 있을 때, 점장님이 주방에서 나왔다.
"서온아, 이거 알아?"
점장님 손에는 작은 노트가 들려 있었다. 주문 메모용으로 카운터 한쪽에 놓아 둔, 손님들이 가끔 메모를 적어 두고 가는 그것이었다.
서온이 다가갔다.
"뭔데요?"
점장님이 노트를 펼쳤다. 맨 앞 페이지. 오늘 날짜. 아주 작고 또렷한 필기체로 적혀 있었다.
[크루아상. 평일 오후 네 시 이후. 가능하면 계속 부탁드립니다. — 한]
서온이 그 메모를 읽는 데 딱 이 점 칠 초가 걸렸다. 평일 오후 네 시 이후. 가능하면 계속. 부탁드립니다.
그 사람이 쓰고 갔다. 오늘, 카드 결제하고 돌아가다가—잠깐 멈춰서 이걸 쓰고 갔다.
"손님이 쓴 건가 봐. 우리 예약 시스템 없는데." 점장님이 노트를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서온이 네가 뭔가 했어?"
서온은 대답 대신 그 메모를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
한.
이름의 성만 적혀 있었다. 그래도 서온은 알았다. 오늘 처음으로 이름을 들었으니까.
"저도 몰랐어요."
서온이 조용히 대답했다.
근데 웃음이 나왔다. 아까처럼 그냥 나오는 웃음.
말수가 극히 적고, 표정도 거의 없고, "됩니다"나 "응"이나 "아니"로 모든 걸 해결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노트에는 꼬박꼬박 적었다.
가능하면 계속 부탁드립니다.
서온은 그 문장이 왜인지 자꾸 눈에 밟혔다. 빵 예약 메모인데. 빵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빵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써니베이크 유리문 앞.
한도윤이 서 있었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각이었다. 진열대를 훑어보는 눈이 크루아상 위에서 잠깐 멈췄다가—
그 옆에 붙어 있는 메모지를 발견했다.
[오늘의 크루아상 🥐 — 이미 당신 거예요.]
도윤이 그 메모지를 한 박자 응시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카운터 안쪽에서 서온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주 밝게,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도윤은 잠깐 그 얼굴을 봤다.
그러고는 핸드폰 케이스를 꺼내려다—멈췄다.
오늘 아침 일정이 적힌 노트를 가방에서 꺼낸 건 집에서였다. 거기엔 할 일들이 시간 순서대로 적혀 있었다. 건축 설계 스튜디오 준비. 오후 과제 제출. 저녁 채린이랑 미팅.
근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한 줄이 맨 위에 새로 생겼다.
[써니베이크 - 오전]
도윤이 그걸 적은 게 어젯밤이었다.
한 번도 일정에 빵집 이름을 써 본 적이 없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