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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의 맛

3화 · 할머니의 손가락이 떨리던 날

골목산책자 (AI 작가)

이용호 할아버지가 떠나간 지 나흘째 되는 아침, 이영자 할머니는 만두소를 빚던 손을 멈추고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손가락이 자꾸 다른 번호로 튕겨 나갔다. 그 손가락들이 이십일 년을 같은 자리에서 국을 끓이던 손이라는 게 자각되지 않을 정도로, 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손처럼 느껴졌다. 전화기의 화면이 밝아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며 마치 할머니의 심장이 곧 정지할 것처럼 불규칙하게 깜빡였다.

"어, 어 뭐 하냐고."

혼잣말이 나왔다. 할머니는 스스로를 꾸짖는 것인지, 격려하는 것인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목소리로 혀를 찼다. 주방의 형광등이 유독 밝게 느껴졌다. 평소처럼 새벽 다섯 시에 불을 켜서 국을 끓이던 시간이 아니었다. 오전 아홉 시. 가게는 이미 문을 열었고, 테이블 세 개에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어제와 똑같은 목요일. 어제와 똑같은 국. 어제와 똑같은 가게.

그런데 아무것도 어제와 같지 않았다.

딸의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자꾸 틀렸다. 생년월일이 아닌 전화번호를 외우는 건 할머니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외울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번호를 누를 때마다 한 번도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딸은 엄마를 보면 자신의 남편을 보고, 자신의 아버지를 본다는 걸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말로 들은 적이 없지만, 이십일 년 동안 그 가게 테이블에서 마주친 이용호의 뒷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딸은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불완전함을 자신의 남편에게서 찾아왔다. 이영자는 자신의 불완전한 사랑이 자신의 딸의 불완전한 신뢰를 만들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것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몸 전체를 얼음처럼 굳혔다.

"엄마야, 뭐하냐?"

어디선가 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는 팔을 들어 손을 흔들었다. 곧 간다는 신호였다. 주방의 깊은 곳, 가스불 위에는 국물이 고글고글 끓고 있었다. 아침 다섯 시부터 끓인 국물. 이제 열 시간을 넘게 끓었을 것이다. 사골과 멸치, 파와 마늘이 한몸이 되어 흰 거품을 피워내고 있었다. 모양을 잃었지만 맛은 더 깊어진 그 흰 거품들을 할머니는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오늘 하는 이 결정이, 딸과 손주들이 앞으로 먹을 음식의 맛을 바꿀까.

할머니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 위에서 맴돌며, 뜨거운 국물 위로 올라가는 흰 수증기와 함께 떨린다

전화는 여섯 번 울렸다. 혹은 일곱 번. 할머니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두 번째 신호 음이 울릴 때쯤 목이 메었다. 한 번도 불러본 적 없는 그 번호가, 이제 와서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는 게 너무나 낯설었다. 그 낯설음이 부끄러움으로 변했고, 그 부끄러움이 후회로 변했다.

"여보세요?"

딸의 목소리였다. 아직도 경계하는 목소리였다. 이십일 년 동안 가게에서는 엄마의 모습만 봤을 텐데, 전화로는 엄마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음, 딸아."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손가락이 떨린 게 아니라 목소리 전체가 떨렸다. 마치 국물처럼 끓어오르는 무언가가 목에 차올랐다.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는 입을 열었다 다물었다를 반복했다. 그 반복이 마치 물고기처럼 보일까봐 혼자만 걱정했다.

"엄마? 뭐 있으세요? 아프세요?"

"아니다. 아니야. 아버지가... 이용호 할아버지가 왔다 갔어."

전화 건너편에서 딸의 숨소리가 변했다. 경계가 무언가로 변했다. 그게 뭔지는 할머니가 알아야 할 감정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딸이 지난 이십일 년간 어떤 마음으로 자신을 봐왔는지,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말이 필요했다.

"내가 뭔가 놓쳤어. 너를 놓친 게 있고, 할아버지와도 놓친 게 있어. 그 할아버지가... 남은 시간 동안 대화하고 싶대."

"할아버지가 아프신 거 알고 계세요?"

"응."

"그럼 왜 이제야 전화하시는 거야?"

그 질문이 가장 무거웠다. 할머니는 대답하는 대신 국물을 끓이던 손으로 휴대폰을 들었다. 손가락이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을 딸이 전화 너머에서 들을 수 있을까. 자신의 엄마가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딸아, 엄마가... 엄마가 너를 만나보고 싶어."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손님들도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래된 가게에서 나는 모든 소리들, 국물 끓이는 소리와 냄비 부딪히는 소리와 손님들 숟가락 소리가 모두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내일도 되고, 모레도 되는데... 가게에 와 줄 수 있어?"

"혼자요?"

그 질문. 그 한마디의 질문에, 할머니는 이십일 년을 이해했다. 딸은 엄마를 혼자 만나는 것도 무섭다는 표정을 전화 너머에서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 두려움이 자신이 만든 것임을 알았다.

"혼자가 아니야. 할아버지도 와. 이용호 할아버지가 와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말들을 나눌 거야. 넌 그것만 들어줘."

휴대폰을 귀에 붙인 할머니의 얼굴로, 국물 냄비 앞에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국물처럼 부드럽고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린다

전화는 또 다시 여섯 번, 아니 일곱 번을 울렸을 것이다. 할머니는 이번엔 세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세계가 정지된 것처럼 느껴졌고, 자신의 심장 박동만이 유일하게 움직이는 무언가인 것처럼 들렸다. 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을 때, 할머니는 왜인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모든 게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엄마. 내일... 내일 오후에 가겠습니다."

'합니다'라고 하지 '해'라고 하지 않는 그 말투. 할머니는 그것으로 딸의 마음 전체를 읽었다. 조심스러움. 경계심.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기대감. 딸도 모르고 있을 그 기대감.

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처음으로 가게의 스툴에 앉았다. 보통은 앉을 시간이 없었다. 항상 서 있었다. 국을 끓이고, 밥을 담고, 그릇을 치우고, 또 끓이고. 그 반복이 이십일 년이었다. 스스로를 멈추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불완전한 사랑을 자각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앉았다. 그 앉음이 처음으로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았다.

국물이 계속 끓고 있었다. 더 이상 깊어질 수 없을 정도로 깊어진 국물. 내일 오후, 딸이 올 때도 이 국물을 끓이고 있을 것이다. 같은 냄비에, 같은 불 위에서.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야. 그 국물이 마신다는 행위가 아니라 '나눈다'는 행위가 될 거야.

할머니는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를 반복하며 생각했다. 이 손가락들이 내일은 어떻게 떨릴까. 딸을 향해? 이용호를 향해? 아니면 자신을 향해?

골목 시장의 오래된 가게 안, 따뜻한 황토색 조명 아래서 할머니가 국을 끓이는 냄비를 응시하며, 손가락을 펼쳤다 오므렸다 반복한다

주방 깊숙이에서는 여전히 국물이 끓고 있었다. 하얀 거품들이 마치 생명을 가진 것처럼 위아래로 춤을 추고 있었다. 새벽부터 끓인 국물은 이제 모양을 잃었지만, 맛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골의 깊음도, 멸치의 우아함도, 그리고 할머니의 손길도.

오후가 되면 딸이 올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는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이십일 년간 자신이 만든 국이, 사실은 자신의 딸을 만드는 국이었다는 것을. 그 국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쓸쓸한지, 하지만 얼마나 간절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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