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강원 원주 중앙시장: 만두를 싼 손, 그리고 남겨진 것들
아침 일곱 시, 강원 원주 중앙시장의 셔터가 올라간다. 나는 입구의 떡국 냄새를 따라 들어섰다. 시장 입구 기둥에는 여러 세대가 누적된 포스터가 겹쳐 있었다. 30년 전 축제 안내, 10년 전 추모 안내, 그리고 이번 달 골목 수로공사 공지. 시간이 지나는 방식이 이렇게 물리적이라니.
"어이, 손님! 손님 여기 와봐!"
커다란 스테인리스 냄비 앞에 선 여자가 손짓했다. 이름은 이영자. 70대 초반. 흰 손가락이 만두피를 집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한국인의 손가락 속도에는 타이밍이 있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 그 리듬.
"1988년부터 이 자리에 있었어. 우리 딸년은 서울 간다고 안 들으러니 이제 혼자야. 남편도 10년 전에... 내가 이 만두를 왜 만드냐 하면, 손님들이 오니까지. 그게 다야."
그녀가 끓인 만두국을 마주했을 때, 나는 그제야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 필요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주 오랫동안.
국물은 깔끔했다. 멸치와 다시마로 우린 것 같은데, 어딘가 더 깊었다.
"비법이 있어요?"
"비법이라고 할 게 없지. 손이 기억하는 맛이 있잖아. 너도 알겠지? 엄마손 맛 말이야."
내 어머니는 만두를 잘 못 만들었다. 대신 우동을 잘 끓였다. 돌아가신 지 5년. 나는 그 맛을 따라 여행을 다니는 중인 걸까. 답이 있을 줄 알고.
이영자는 내 얼굴을 유심히 봤다.
"어디서 왔어?"
"서울."
"혼자?"
"네."
그녀가 국그릇을 또 떠왔다. "더 먹어. 내가 너 위해 새로 끓인 거야. 이전 거는 물이 빠졌어."
이건 거짓말이었다. 냄비 안에는 여전히 국이 차 있었다. 하지만 나는 받아먹었다. 손이 건네는 것을 거절하면 안 되는 나이가 있다는 걸 안다.
"우리 딸이 너 같으면 좋겠어. 서울서 전화는 한 달에 한 번. 명절은? 명절도 안 온다. 손주는 봤나? 없다. 딸이 결혼을 안 했어. 일만 한다고. 돈 많이 번다고도 하는데..."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가 대답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목소리.
"그 돈으로 뭘 하냐고 물었어. 응? 뭘 한대? 자기 거주공간을 미니멀하게 유지한다고 했어. 미니멀이 뭐냐고 했더니, 그게 뭐하는 건지도 설명을 못 하는데 자기는 하고 있다고. 엄마, 그게 뭐냐고 네 번을 물었어. 넷 다 답변이 다르더라고. 이제 내가 미니멀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게 좋은 거 아니라는 건 확실해."
나는 숟가락질을 멈추고 이영자를 봤다. 그녀는 멀리를 보고 있었다. 시장 골목 저편, 아무도 지나가지 않는 셔터들을 향해.
"근데 알아? 너 같은 손님이 오면 내가 좋아. 혼자라니까. 우리 딸은 혼자인 게 자유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내 세대는 혼자가 슬픔이었어. 딸 세대는 혼자가 자유인 거고. 손녀 세대는... 뭘까. 혼자가 뭘까."
그 순간 식당 문이 열렸다. 나이 많은 남자가 들어왔다. 80대는 되어 보였다. 은발, 딱딱한 움직임.
"여기 국한 그릇 가져다오!"
이영자가 벌떡 일어났다. 그동안 보이던 슬픔이 한 겹 걷혔다.
"어제도 이 시간에 왔다고 그랬잖아, 이용호 할아버지! 왜 오늘은 늦었어? 혹시 뭘 하셨어?"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옆 자리에 앉았다.
"여긴 누구?"
"서울에서 온 손님이야. 혼자 여행 다니는 분이야. 이용호 할아버지, 이 손님한테 좋은 말 해주세요. 인생이 혼자가 아니라고."
나는 미안할 지경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이용호 할아버지는 이미 국을 마시고 있었다. 그는 한 숟가락, 한 숟가락을 매우 천천히 마셨다.
"나?"
그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2004년부터 이 자리에 있었어. 매일 아침 여기 와서 이 여자가 끓인 국을 먹어."
"뭐? 이 할아버지가 내 국을 제일 잘 먹는 손님이야."
이영자가 웃었다. 하지만 그건 불안한 웃음이었다.
"2004년이면... 몇 년을 같이..."
"21년."
할아버지가 대신 답했다.
"21년을 같은 시간에 같은 국을 먹으며 앉아 있는 거냐?"
내 질문이 너무 직설적이었나,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멈추고 나를 봤다.
"여자, 이건 관계가 아니야. 습관이야. 차이가 있어. 습관 속에서 사람을 만나는 건, 사실 사람을 안 만나는 거야. 내가 여기 와서 국을 마실 때, 이 여자는 국을 끓이고.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보긴 하지만, 보고 싶어서 보는 건 아니야. 그냥... 아침이 되면 발이 자동으로 여기를 향하는 거지."
이영자의 얼굴이 굳었다.
"할아버지, 그게 뭐 하는 소리야?"
"내 딸이 시집을 가지 않았어. 나 때문인 것 같아."
할아버지가 갑자기 말했다.
"너?"
이영자가 되물었다.
"내가 니 곁에만 있으면서, 너는 나를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난 최선을 못 했어. 너한테 가장 큰 죄는, 곁에 있으면서도 없는 척한 거야. 너는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했고, 딸은 그걸 봤어. 여자가 남자 옆에 있어도 혼자구나, 하고."
"왜 지금 이런 소리를..."
이영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할아버지는 국을 다 마셨다. 숟가락을 놨다. 그 소리가 유독 컸다.
"내일부터 이 자리에 안 올 거야. 의사가 그랬어. 3개월이라고. 그 전에 뭐가 미안한지 말해야 할 것 같았어."
침묵. 긴 침묵. 시장의 다른 소리들—채칼질음, 손님들의 목소리, 라디오 음악—이 갑자기 크게 들렸다.
"나도 지은 게 있어."
이영자가 한참을 지난 후 말했다. 눈을 감고.
"뭐?"
"내가 니 딸 앞에서 니를 너무 많이 칭찬했어. 아버지는 이래, 아버지는 저래. 아버지는 나한테 이렇게 해줬어. 그러니까 딸이 남자를 믿지 못했을 거야. 아버지보다 좋은 남자는 없다고."
할아버지가 다시 그녀를 봤다.
"너는 미안한 게 아니야."
"그럼 뭐야?"
"너는... 더 먼저 가고 싶은 사람이야. 그런데 내가 먼저 가는군."
이영자가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혼자 남겨졌다. 할아버지와.
"손님, 이 국 좋아?"
"네. 아주."
"근데 이제 맛이 바뀔 거야. 내가 없어지니까. 사람이 없으면 음식도 달라지거든. 기억이 음식에 들어가거든."
그는 카운터에 돈을 내려놓았다.
"내일부터... 이 자리는 어떻게 될까요?"
내 질문이 한없이 어리숭했지만, 할아버지는 대답해줬다.
"모르지. 하지만 확실한 건 있어. 21년을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은 사람이 안 오면, 그 자리는 더 이상 같은 자리가 아니라는 거야."
할아버지는 천천히 일어섰다. 시장 입구 쪽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내가 불렀다.
그가 돌아봤다.
"네."
"딸분이... 안 오세요?"
"와야겠지. 이제 좀 늦었을 수도 있지만, 와야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