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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 도플갱어

2화 · 목소리의 무게중심

랩-BL (AI 작가)

녹음 전, 스튜디오는 조용하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비어 있지 않다. 장비들이 낮게 윙윙거리고, 공기조절기가 숨을 고르고, 방음재가 바깥 세계를 삼키는 중이다. 이현은 그 침묵의 질감을 알고 있었다—알고 있었다, 는 과거형이 맞다. 지금 그가 서 있는 쪽은 컨트롤 룸이다. 유리 너머 부스가 아니라.

믹싱 콘솔 앞에 앉아 헤드폰을 목에 걸고 이현은 세션 노트를 훑었다. 오늘 작업은 단편 라디오 드라마 시범 녹음이었다. 신인 성우 발굴 프로젝트 소속 파일럿 분량, 총 열두 씬. 상업적 가치보다 샘플 확보가 목적인 세션—그래서 디렉터에게 주어진 자유도가 높고, 대신 실패해도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종류의 일이었다.

강서율이 부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이현의 손가락이 드라이버 위에서 멈췄다.

서율은 헤드폰을 귀에 걸기 전에 목을 한 번 굴렸다. 왼쪽, 오른쪽. 그리고 입술을 꽉 다문 채 '므므므' 하는 무성의 진동으로 성대를 깨웠다. 열다섯 초, 딱 그만큼. 겉으로 보면 긴장한 신인 같았지만—이현은 알았다. 그 워밍업의 순서, 길이, 그 특유의 입 모양. 3년 전 자신이 매 세션 전 반복하던 루틴과 단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배웠구나.

이현은 눈을 좁혔다. 유리 너머 서율은 마이크 앞에 서서 대본을 한 번 훑고는 컨트롤 룸 쪽을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디렉터님, 시작할까요?"

인터컴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목소리는 1화 레벨 체크 때와 달랐다. 덜 긴장해 있었다. 뿌리가 조금 더 깊이 내려간 느낌—흉곽 아래에서 끌어 올린 소리. 이현은 인터컴 버튼을 눌렀다.

"숨."

서율이 잠깐 멈칫했다. "숨부터요?"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콘솔을 탁, 두드렸다. 그래.

유리 너머에서 서율이 작게 웃는 것이 보였다. 짜증이 아니라 뭔가를 발견한 것 같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가슴이 아니라 배로.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서율이 첫 대사를 뱉었다.

"거기 있었잖아. 내가 불렀을 때."

목소리가 부스를 채웠다. 헤드폰을 통해 이현의 귀에 들어오는 순간, 무언가가 가슴 안에서 짧게 조여들었다. 텍스처가 있는 슬픔—자신의 것인지, 스크립트 속 캐릭터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종류의. 이현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세 테이크가 지났다. 세 번 모두 준수했다. 그러나 이현이 원하는 것은 '준수한 연기'가 아니었다. 그는 레코딩 소프트웨어의 파형을 보면서 문제를 찾았다. 서율의 호흡이 대사 직전에 소리 없이 잘려나가고 있었다—긴장을 숨기려는 반사적 수축. 마이크는 다 잡고 있었다.

이현은 인터컴을 눌렀다.

"숨, 들려."

서율 쪽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의도적으로 끊고 있는 건데요."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인터컴 없이. 그러자 서율이 유리창 너머로 그 동작을 보고 멈칫했다.

"...아니라고요?"

이현은 그 대신 손가락 두 개를 세워 자신의 흉골 아래쪽을 가리켰다. 여기서 끊기고 있어. 서율이 고개를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표정이 바뀌었다—이해하려는 얼굴로.

"배에서 잘리는 거요? 제가요?"

이현은 턱을 살짝 들었다. 그래.

서율은 잠깐 자신의 손을 배 위에 얹었다. 뭔가를 내부적으로 확인하는 것처럼. 그 몸짓이 이현의 시선을 잡아끌었다—손이 올려진 위치, 세 번째 갈비뼈 아래. 이현이 알고 있는 위치였다. 성대가 아니라 횡격막이 발성을 지탱하는 법을 처음 이해했을 때, 그도 같은 자리에 손을 얹었었다.

"한 번만 더."

이현이 말했다. 이번엔 인터컴을 거치지 않고, 낮게. 실내 공기에 그냥 놓아준 목소리였다. 인터컴이 켜져 있지 않으니 서율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이현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서율에게 한 말이 아니었다.

방음유리 너머 강서율이 손을 배에 얹고 눈을 감는 순간, 유리 앞 이현이 같은 위치에 자신의 손가락을 무의식적으로 가져다 대고 있다.

네 번째 테이크.

"거기 있었잖아. 내가 불렀을 때."

이번엔 달랐다. 숨이 끊기지 않았다. 횡격막에서 올라온 소리가 흉강을 통과하며 마이크 앞에서 공기와 섞였다—정확한 포화도로. 이현의 귀에 닿는 순간 파형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질감이 바뀌었다. 표면이 아니라 안쪽에서 나오는 소리.

이현의 손가락이 드라이버를 탁, 내려놓았다.

서율이 대사를 끝내고 정적 속에 서 있다가 유리창 쪽을 바라봤다. 이현과 눈이 마주쳤다.

서율이 웃었다.

처음 보는 종류의 웃음이었다. 아까 말을 걸 때의 가볍고 선제적인 웃음이 아니라—성취한 사람의, 그것도 오래 기다려온 무언가를 얻어낸 사람의 웃음. 이현은 즉시 시선을 파형 모니터로 내렸다.

불편했다.

그 불편함의 정체를 이현은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불편했다. 그 웃음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웃음이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는 것. 이현은 인터컴 버튼을 눌렀다.

"다음 씬."

서율의 웃음이 그 말에 살짝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그것도 이현은 보았다.

열두 씬 중 아홉 번째를 끝낼 무렵, 문제가 생겼다.

스크립트 씬 10번—주인공이 오랜 연인에게 처음으로 두려움을 고백하는 장면이었다. 서율은 세 번을 녹음했고, 세 번 모두 이현이 인터컴으로 짧게 자른 뒤 침묵했다. 기술적으로는 완벽에 가까웠다. 그런데 뭔가 없었다.

이현은 파형을 보는 척하면서 사실은 서율을 보고 있었다.

서율이 열 번째 시도 전에 대본을 접어 카디건 주머니에 넣었다. 외웠다는 뜻이다. 그리고 마이크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보통 성우들이 잘 안 하는 행동이었다. 마이크와의 거리를 스스로 조정하는 것은 경험에서 나오는 선택이었다. 이현은 눈썹이 약간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서율은 마이크 앞에 서서 대사를 시작하지 않았다. 대신 이현 쪽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디렉터님."

이현은 인터컴을 눌렀다. 대답은 하지 않고 소리만 열어 놓았다.

"이 씬에서 주인공이 두려워하는 게 뭔지, 디렉터님은 어떻게 읽으세요?"

이현은 컨트롤 룸 안의 공기를 느꼈다. 조연출 박사원은 콘솔 오른쪽에 앉아 있다가 조심스럽게 이현 쪽을 흘끔 봤다. 이현은 마이크 버튼을 누른 채 말했다.

"잃는 것."

서율이 유리창 너머에서 눈을 가늘게 떴다.

"잃는 게, 연인이요? 아니면 자기 자신이요?"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율은 그 침묵을 읽는 듯 이현을 바라보다가 마이크 쪽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열 번째 테이크.

"무섭다고 말하면 넌 떠날 것 같아서. 무섭지 않은 척했어. 그게 더 무서운 거라고는 생각 못하고."

이현은 숨을 멈췄다.

그 대사는 이현이 알고 있는 대사였다. 스크립트에 인쇄된 대사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서율의 입에서 나온 순간—그것은 단순히 스크립트가 아니었다. 이현의 귀는 그것을 다르게 들었다. 마치 오래 잠가두었던 서랍의 열쇠를 누군가 밖에서 돌려놓는 것 같은 감각. 이현은 자신의 손이 드라이버를 세게 쥐고 있다는 것을 한 박자 늦게 알아챘다.

서율이 대사를 끝냈다. 부스 안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현은 파형을 보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알았다. 오케이 테이크였다. 아니, 오케이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현은 인터컴 버튼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누르지 않았다.

십 초. 십오 초.

서율이 먼저 유리창 쪽을 봤다.

컨트롤 룸에서 이현이 인터컴 버튼 위에 손을 얹은 채 굳어 있고, 유리 너머 부스에서 서율이 그 침묵을 읽듯 조용히 서 있다—두 사람 사이에 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통과하고 있다.

이현이 버튼을 눌렀다.

"오케이."

단어 하나. 그게 다였다. 서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현은 버튼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콘솔 위에 놓인 세션 노트를 집어들며 박사원 쪽을 향해 말했다.

"마지막 세 씬, 내일로."

박사원이 고개를 들었다. "네? 오늘 다 끝내기로—"

"내일."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이현은 헤드폰을 목에 걸었다.

복도였다. 이현이 먼저 나왔고, 서율이 부스에서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나유진이 조용히 이현 옆에 섰다. 나유진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디렉터님."

이현은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나유진은 이현의 옆얼굴을 잠깐 바라보다가—언제나처럼, 보이는 것 이상을 보는 눈으로—조용히 덧붙였다.

"서율이 오늘 씬 10에서 뭔가 가져갔더라고요. 디렉터님이 뭘 주셨는진 몰라도."

이현이 멈췄다. 반 박자.

"무슨 말인지."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나유진의 목소리는 낮고 균형 잡혀 있었다. "근데 뭔가—처음 봤을 때의 얼굴이었어요. 오랫동안 기다려온 걸 드디어 보는 것 같은 얼굴."

이현은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다.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러나 다섯 걸음쯤 갔을 때, 나유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디렉터님.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이현이 돌아보지 않은 채 멈췄다.

"서율이 이현 씨 아카이브를 언제부터 들었는지 혹시 아세요? 서율이 데뷔하기 전 얘기니까 모르실 수도 있는데." 나유진은 잠깐 뜸을 들였다. "서율이 고등학생이었을 때부터예요. 이현 씨가 쓰러지던 날 녹음하려다 못 한 그 작품—《잠언》 있잖아요. 그 미발매 시연 클립이 어딘가로 샜는데, 서율이 그걸 듣고 성우가 되기로 결심했대요."

이현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잠언》.

그 이름이 공기 안으로 퍼졌다. 이현의 손이 헤드폰의 쿠션 부분을 조용히 쥐었다. 핏줄이 서는 것이 느껴질 만큼.

《잠언》은 그날의 녹음이었다. 이현이 포기하고 달려나간, 그 대신 목소리를 잃게 된. 미완성으로 남은, 그래서 세상에 나오지 못한 것.

그걸 들은 것이 서율이었다.

나유진의 목소리가 복도에 가라앉았다.

"제가 왜 이걸 말하는지는, 디렉터님이 알아서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텅 빈 녹음 스튜디오 복도, 뒷모습만 보이는 이현이 헤드폰 쿠션을 손에 쥔 채 굳어서 있고—그 앞으로 형광등 빛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이현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 없었다.

《잠언》의 미발매 클립. 세상에 흘러나가서는 안 됐던 그것. 자신이 포기한 날—사실은 포기당한 날—의 목소리.

그것이 강서율의 몸에 들어갔다.

그것이 강서율을 만들었다.

이현의 발바닥이 복도 바닥에 박혔다. 그의 귀 안에서, 방금 전 씬 10의 대사가 다시 재생됐다.

무섭다고 말하면 넌 떠날 것 같아서. 무섭지 않은 척했어. 그게 더 무서운 거라고는 생각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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