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귀(耳)
스튜디오 B동은 항상 썩은 커피 냄새가 났다.
정확히는, 눌어붙은 커피 찌꺼기와 우레탄 흡음재와 오래된 공조기 먼지가 뒤섞인 냄새—일반인이라면 그냥 '낡은 건물 냄새'라고 뭉개버릴 그것을, 이현은 눈을 감고도 세 가지로 분리해낼 수 있었다. 3년 전에도 그랬다. 지금도 그랬다. 달라진 건 딱 하나였다.
그는 더 이상 저 부스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복도 끝, 녹음실 입구에서 이현은 멈췄다. 방음 처리된 철문 앞. 손잡이에 손이 닿자 금속의 찬 촉감이 손바닥 중심에서 손목까지 번졌다. 3년. 열 손가락으로 세어도 남는 시간. 그는 잠깐 그 냉기를 쥔 채로 있다가, 당겼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압이 바뀌었다. 방음실 특유의 눌린 공기. 외부 소음이 사라지며 귀 안쪽 고막이 미세하게 팽창하는 감각. 이현은 그 감각을 알고 있었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안락하지 않았다.
디렉터 부스는 녹음 부스와 유리창 하나로 나뉘어 있었다. 이현이 들어선 쪽은 조정석이었다—콘솔, 모니터 세 개, 헤드폰 거치대, 그리고 스피커. 유리 너머는 비어 있었다. 아직 아무도 없었다. 그는 의자를 당겨 앉지 않고 선 채로 콘솔 앞에 섰다. 헤드폰을 집어 목에 걸었다. 습관처럼.
"여기 앉으시면 됩니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제작 PD 오민석, 사십대 중반, 체구에 비해 목소리가 얇은 사람. 이현은 돌아보지 않고 오른손 검지로 콘솔 모서리를 두 번 두드렸다. 알겠다는 뜻. 오민석은 잠시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
"강서율 씨는 세 시에 온다고 했어요. 지금 두 시 사십 분이니까…."
이현이 의자를 당겨 앉았다. 오민석이 말을 잘랐다.
"……준비하실 시간 있습니다."
준비. 이현은 속으로 그 단어를 굴렸다. 마치 자신이 이 자리를 두려워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모니터를 켜고 세션 파일을 열었다. 오늘 녹음할 대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주인공 '류'의 분량. 파일을 열자마자 첫 대사가 화면에 떴다.
'나는 네가 내 목소리로 부른 게 아니야. 내가 먼저 네 이름을 알고 있었어.'
이현은 그 문장을 읽고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세 시 이 분.
문이 열리며 들어온 것은 두 명이었다. 앞서 들어온 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짧게 잘린 어두운 갈색 머리, 키가 컸다, 짙은 색 후드집업을 걸치고 어깨에 캔버스 백을 멘 남자. 뒤따라 들어온 여자는 태블릿을 양손에 들고 뭔가를 빠르게 확인하면서 걷고 있었다. 나유진. 이현이 받은 브리핑에 이름이 있었다—서율의 동기이자 매니저를 겸하는 성우.
강서율은 디렉터 부스 유리창 쪽을 향해 걸어왔다. 이현과 눈이 마주쳤다.
유리 너머라 표정은 조금 납작하게 보였다. 서율은 멈추지 않고 유리 앞에 서서, 거울을 보듯 이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였다.
이현은 인터컴 버튼에 손가락을 얹었다. 누르지 않았다.
나유진이 서율 옆에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서율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방을 의자에 내려놓고 대본을 꺼냈다. 자연스러웠다. 처음 온 녹음실에서 저렇게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신인은 많지 않다. 이현은 그 동선을 눈으로 따라가며 오른손 검지로 콘솔 모서리를 천천히 두드렸다. 박자처럼.
마이크 세팅을 확인하는 사운드 엔지니어가 부스 안으로 들어가 붐 마이크 위치를 조정했다. 서율은 그 과정을 방해하지 않고 한쪽에 비켜 서서 대본을 읽었다.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대사를 중얼거리는 게 아니라, 씹고 있었다. 구강 안에서 단어를 굴리고, 혀의 위치를 가늠하고, 호흡을 나누는—그 동작.
이현의 손가락이 멈췄다.
엔지니어가 빠져나오고 인터컴에 불이 들어왔다.
"레벨 체크 부탁드릴게요."
엔지니어의 목소리. 서율이 마이크 앞에 섰다. 적정 거리. 각도. 정확했다—누가 가르쳐준 것처럼 정확했다. 서율이 입을 열었다.
"레벨 체크. '나는 네가 내 목소리로 부른 게 아니야.'"
이현은 숨을 멈췄다.
헤드폰은 목에 걸려 있었다. 스피커로 흘러나온 소리였는데도—스피커를 통해 납작해진 소리였는데도, 이현의 등 뒤 어딘가에서 척추를 타고 뭔가가 흘러내렸다. 저음. 공명의 위치. 'ㄴ'을 발음할 때 혀끝이 치조를 건드리는 방식. 'ㅇ' 이응이 목 안에서 울리는 자리.
그건.
이현은 헤드폰을 집어 귀에 올렸다.
"한 번 더요."
자기도 모르게 인터컴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목이 아닌 텍스트였다. 이현의 발화 수단은 텍스트—보조 기기가 있었지만, 오늘은 쓰지 않았다. 그가 눌러야 할 건 인터컴이 아니었다. 그러나 엔지니어가 알아들었다.
"서율 씨, 한 번 더 부탁드려요."
서율이 고개를 들었다. 유리창 너머 이현을 봤다. 이번엔 표정이 보였다—약간 고개를 기울인 채, 의문을 담은 시선. 이상하다는 게 아니었다. 왜인지를 알고 싶다는 눈이었다.
그러고는 다시 마이크를 향했다.
"나는 네가 내 목소리로 부른 게 아니야."
두 번째가 첫 번째보다 달랐다. 조금 더 침전했다. 낮아진 게 아니라—무게중심이 내려간 것. 이현의 귀가 그 차이를 잡아냈다. 자동으로, 반사적으로. 3년이 지났어도 이 귀만은 녹슬지 않았다.
그는 헤드폰을 귀에 댄 채 눈을 감았다.
들었다. 틀림없이 들었다.
이 목소리의 공명 위치는 흉골 위 3센티미터. 후두를 살짝 열어두고 날숨을 아끼지 않는 호흡 방식. 'ㅏ' 모음을 발음할 때 턱을 내리되 입꼬리를 잡아당기지 않는 버릇. 그리고—자음이 시작되기 직전, 0.2초가량 공기가 모이는 그 찰나의 충전 소리.
이현이 알고 있는 목소리였다. 그는 그 목소리로 열두 개의 주인공을, 스물여덟 개의 조연을, 그리고 아직도 인터넷 어딘가에 떠돌아다닐 수많은 CM을 녹음했다. 그 목소리가 자신의 목에서 사라진 날 밤을 기억한다. 수술실 천장. 형광등. 그리고 의사가 말하는 입 모양을—소리 없이.
근데 지금 그 목소리가,
저 남자의 목에 있다.
이현은 눈을 떴다. 헤드폰을 내렸다. 목에 도로 걸었다. 손가락이 콘솔 모서리로 갔다—두드리려다, 멈췄다. 그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녹음은 오후 내내 계속됐다.
이현의 역할은 디렉팅이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할 수가 없었다. 보조 기기 없이는 목소리가 없었고, 오늘 그는 고집스럽게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인터컴 너머로 짧게 문자를 쳐서 모니터에 띄우거나, 엔지니어를 통해 전달하거나, 때로는 그냥 손을 들어 멈춤 신호를 보냈다.
서율은 그 방식에 금방 적응했다.
너무 금방이었다.
오후 네 시쯤, 열두 번째 테이크. 서율이 감정의 정점 직전 대사를 치고 나왔을 때—이현은 손을 들었다. 정지. 서율이 멈춰 마이크에서 한 발 물러섰다. 이현은 모니터에 짧게 쳤다.
[숨 먼저.]
인터컴으로 전달됐다. 서율이 유리창 쪽을 봤다. 표정이 조금—읽기 어려웠다. 이현은 그 시선을 그대로 받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자신의 가슴팍을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여기서부터.
서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웃었다.
이현은 그 웃음에서 뭔가가 어긋나는 걸 느꼈다. 보통 신인들은 이런 지시에 긴장한다. 고개를 끄덕이거나 굳은 표정으로 다시 시도한다. 그런데 서율은—마치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을 확인받은 것처럼, 그런 얼굴로 웃었다.
다음 테이크가 시작됐다.
서율이 숨을 모았다. 이현은 헤드폰을 귀에 올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이번엔 숨이 먼저 왔고, 그 다음에 단어가 왔고, 단어 뒤에 감정이 왔다. 순서가 맞았다. 완벽하게.
이현의 오른손이 콘솔 위에 올라가 있었다. 박자를 두드리지 않았다. 그냥 놓여 있었다.
녹음이 끝난 건 여섯 시 직전이었다.
서율이 헤드폰을 벗으며 목을 좌우로 돌렸다. 스트레칭 동작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러웠다. 나유진이 부스 안으로 들어가 서율 옆에 서더니 뭔가를 빠르게 말했다. 서율은 대답하면서 시선을 유리창 너머로 던졌다. 이현과 눈이 마주쳤다.
서율이 인터컴 쪽으로 걸어갔다. 버튼을 눌렀다.
"저, 선배님."
이현은 인터컴 버튼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눌렀다.
"……."
무음. 이현은 보조 기기가 없었다. 서율이 그것을 알 리 없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나유진이 서율의 팔꿈치를 살짝 잡아당기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이현은 그 장면을 유리 너머로 지켜봤다.
그런데 서율이 나유진의 손을 부드럽게 뿌리쳤다.
그리고 다시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직접적으로.
"한 가지만 여쭤봐도 돼요?"
이현은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서율은 그 침묵을 거부로 읽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읽었는데도 개의치 않은 것이거나.
"오늘 제 녹음, 어떠셨어요?"
평가를 구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궁금해서 묻는 음성도 아니었다. 이현은 그 어조 안에서 뭔가를 찾으려다, 결국 모니터를 향해 손을 뻗었다. 키보드를 두드렸다. 인터컴으로 문자가 전달됐다.
[내일 두 시.]
서율이 잠깐 모니터를 봤다가, 다시 이현을 봤다.
"……그게 답이에요?"
말투에 웃음기가 묻어났다.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율이 천천히 인터컴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알겠습니다. 내일 두 시에 올게요, 근데."
잠깐 뜸을 들였다.
"다음엔 직접 말씀해주시는 거 같은데요?"
이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서율은 그 표정을 보고 입꼬리를 한쪽만 올렸다. 가방을 집어 들고 나유진과 함께 녹음실을 나갔다. 문이 닫혔다. 방음 처리된 문이 닫히는 순간, 모든 소리가 차단됐다.
이현은 혼자 디렉터 부스에 남았다.
헤드폰이 목에 걸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어 다시 귀에 올렸다. 세션 파일을 열었다. 오늘 녹음된 트랙들. 커서를 이동해 임의의 타임라인에 갖다 댔다. 재생.
서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현은 눈을 감았다. 등이 의자 등받이에 닿지 않았다. 허리를 세운 채로, 몸이 소리 쪽으로 미세하게 앞으로 기울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계속됐다.
3년 전 자신의 목에 있던 소리가—지금 헤드폰 속에서 타인의 폐로 불어지고 있었다. 이현은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목구멍 안쪽에서 무언가가 조여드는 걸 느꼈다. 흉터가 있는 자리. 수술 후 이년 동안 목에 붙이고 다니던 냉찜질 팩의 감촉. 그리고—
빼앗긴 것인가.
아니면,
재생이 끝났다. 이현은 헤드폰을 내렸다. 모니터 속 파형을 바라봤다.
'다음엔 직접 말씀해주시는 거 같은데요?'
이현은 저 입이 자신의 과거 녹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아직 몰랐다. 그리고 서율이 녹음 전에 성대를 풀던 방식도. 그 방식이 이현이 쓰던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같다는 것도.
아직 몰랐다.
그것을 알게 되는 건, 아마 내일 두 시였다.
그 전에, 이현은 한 가지를 결정했다.
내일은 보조 기기를 가져온다.
같은 시각, 스튜디오 빌딩 엘리베이터 안.
나유진은 태블릿을 옆구리에 끼고 서율을 바라봤다. 서율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이어폰을 꽂은 상태였다. 나유진은 이어폰 줄의 색깔을 알고 있었다. 흰색 선이 군데군데 바래 있는, 오래된 유선 이어폰. 그게 무슨 음원을 재생하는지도.
이현의 구작 녹음이었다.
나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다. 서율이 눈을 뜨며 이어폰을 한쪽만 빼고 먼저 내렸다.
"유진아."
"응."
"이현 선배가 3년 만에 스튜디오 복귀한 거, 업계 사람들 다 알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지. 왜."
서율이 걷다가 멈췄다. 나유진도 멈췄다. 서율이 빌딩 출입문 너머 어두워진 바깥을 보면서 말했다.
"나한테 처음 온 메시지 기억해? 고등학교 때."
나유진이 표정을 굳혔다.
"……이현 선배 아카이브 사이트에서 다운받은 mp3 파일들이 담긴 드라이브 공유한 거? 그거?"
"응." 서율이 돌아봤다. 표정이 이상하게 담담했다. "3년 치 녹음, 전부 다."
"그게 왜 지금."
"오늘 그 선배가," 서율이 잠깐 멈췄다가, "나한테 '숨 먼저'라고 했거든."
나유진의 손 안에서 태블릿이 삐걱, 눌렸다.
"그 표현. 내가 처음 알았을 때는 선배 인터뷰에서였어. 잡지. 2019년. '감정보다 숨이 먼저다'—그거."
서율이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만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