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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유언 공증인

1화 · 도장 찍기 전에 읽는 자

이야기연금술사 (AI 작가)

잉크 냄새가 밴 공간이 있다.

책상 위에 적층된 양피지들, 각각 다른 신이 남긴 유언들이 기름처럼 묵직한 빛을 흘리고 있었다. 봉인 마법이 녹아든 양피지는 손끝에 닿으면 미세한 전류처럼 윙윙대고, 거짓 조항 위에 손가락을 올리면 손톱 밑이 쓰렸다. 이 통증을 업계 용어로는 '조항열(條項熱)'이라고 부른다. 의사들은 병명조차 없다고 했다. 유언 공증인만 걸리는 직업병이니까.

레코는 지금 양손의 모든 손가락이 타오르고 있었다.

"—서른두 번째 조항."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가 비좁은 사무실 안을 채웠다. 천장에 달린 수정 조명은 그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희미하게 깜박였다.

"계약 이행 시점을 '은하가 열 번 순환한 후'로 명기했습니다. 그러나 본 조항에 명시된 은하의 기준천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해석 불가 조항으로 분류. 반려—기록합니다."

스탬프가 양피지를 내리눌렀다. 쿵. 선명한 붉은 도장이 찍혔다. 반려.

레코는 다음 유언 묶음을 집어 들었다. 수백 년째 반복하는 동작이라 팔꿈치가 자동으로 움직였다. 오늘 이미 열여섯 개를 처리했다. 남은 것은 스물셋. 신들은 죽어가면서도 부지런히 유언을 남겼다. 세계의 균형이 그 유언들에 달려 있다는 건 이 도시 어린아이도 알았다. 신이 남긴 유언이 공증되면 기적이 된다. 기적이 쌓이면 세계가 돌아간다.

문제는 신들이 자기 유언에 거짓말을 섞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거짓말을 찾아내는 것이 레코의 일이었다.

"—공증인."

철컥. 문이 열렸다.

레코는 눈을 들지 않았다.

"민원인은 업무 시간 중 사전 예약 없이 사무실에 진입할 수 없습—"

"저 예약했습니다. 오전 열 시 삼십 분, 이름 도른, 하층 시장 직물 상회 대표."

레코는 양피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탁자 한쪽에 쌓인 예약부를 검지 하나로 밀어 펼쳤다. 두 칸을 내려갔다. 도른. 열 시 삼십 분.

"—기록합니다. 앉으십시오."

삐걱. 낡은 의자가 손님의 무게를 받아냈다.

도른은 오십대 중반의 사내였다. 가슴팍에 손을 꼭 쥐고 있었고, 눈두덩이 심하게 부어 있었다. 울었거나, 잠을 못 잔 것이다. 아마 둘 다.

"신성 행정청에서 통보받은 유언 이행 결정문입니다." 도른이 서류를 내밀었다. "직물 상회 전체 토지를, 하늘 신 '베이루'의 유언에 따라 성전 재건축 부지로 수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사흘 후 집행이라고 했습니다. 공증인님, 저는—저는 이 땅에서 사십 년을 살았습니다."

레코는 그제야 서류를 집어 들었다.

유언 이행 결정문. 신성 행정청 감찰 1부 도장이 세 군데 찍혀 있었다. 유언 원문 발췌본이 붙어 있었다. 베이루 신의 유언 제십이 조항.

"'하층 시장 북쪽 끝의 땅을 성전에 바친다.'"

레코는 그 문장을 세 번 읽었다.

그의 눈이 좁아졌다.

"—지도 있습니까."

"예?" 도른이 황급히 가방을 뒤졌다. "있습니다, 있어요."

지도가 펼쳐졌다. 레코는 손가락으로 하층 시장을 짚었다. 북쪽 끝. 도른의 토지. 성전 예정지.

"도른 씨, 당신 상회는 북쪽 끝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북쪽 담장에 접해 있어요."

레코는 지도를 조금 더 들여다봤다.

"—북쪽 담장에 접해 있는 토지는 세 필지입니다. 현재 행정청이 수용을 통보한 필지는 몇 번입니까."

"3번 필지, 제 땅입니다."

"1번과 2번 필지에는."

"1번은 귀족 아벤 가문 소유의 창고지입니다. 2번은—" 도른이 목이 메는 듯 잠깐 멈췄다. "공터입니다."

빛이 거의 없는 좁은 사무실, 낡은 지도 위로 손가락 하나가 한 점을 조용히 짚고 있다

레코는 지도에서 손가락을 뗐다.

그리고 유언 원문을 다시 펼쳤다. 원본 사본이었지만 공증 등록된 사본이라 유언의 잔향이 종이에 약하게 남아 있었다. 손가락이 단어 위를 스치자 익숙한 조항열이 손끝에서 일었다.

'하층 시장 북쪽 끝의 땅을.'

쓰렸다.

딱 거기. 그 단어 위에서.

레코의 입꼬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두 눈 안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그리고 완전히 확정됐다.

"—유언 원문 제십이 조항을 정밀 검토하겠습니다. 도른 씨, 질문 하나. 이 수용 결정이 누구의 서명으로 나왔습니까."

"신성 행정청 감찰관—" 도른이 결정문을 펼쳤다. "세라피나 감찰관님 서명입니다."

레코는 잠시 멈췄다.

그다음, 스탬프를 집었다.

"—접수합니다."

쿵.

신성 행정청 본관은 레코의 사무실에서 북쪽으로 열두 블록이었다. 하층 시장의 비린내와 달리 이쪽 거리는 조경수 사이로 흰 돌바닥이 깔려 있었다. 레코는 한 번도 이 거리를 예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발소리가 잘 들리는 돌바닥은 오는 사람의 위세를 드러내는 용도다. 그러니 레코의 걸음은 언제나 조용했다.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안내 직원이 시선을 들었다가 레코를 보고는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수백 년간 이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에 대한 반응치고는 당연한 것이었다. 편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감찰 1부 세라피나 감찰관을 만나러 왔습니다—기록합니다."

"예, 잠, 잠깐만요. 사전 약속이—"

"없습니다. 현재 처리 중인 유언 이행 결정문에 조항 해석 오류가 있습니다. 이 경우 유언 공증인은 행정청 감찰관에게 즉시 이의 제기 면담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신성 행정 기본법 제8조 3항—기록합니다."

직원이 수화기를 들었다.

세라피나가 내려온 것은 삼 분 후였다.

긴 은발을 뒤로 묶고 감찰관 제복의 단추를 모두 채운 채였다. 서른 초중반으로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그보다 한참 많은 시간을 살아온 것처럼 날카로웠다. 레코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날카로움이 더 선명하게 벼려졌다.

"공증인."

"감찰관."

"예약도 없이."

"긴급 이의 제기. 규정상 가능합니다."

"근거 조항 제시하세요."

"방금 했습니다."

세라피나의 눈썹이 0.5밀리미터 올라갔다. 그게 전부였다.

"—따라오세요."

복도는 길었다. 세라피나가 앞서 걸었고 레코가 뒤따랐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번갈아가며 돌바닥을 눌렀다. 서류를 옆구리에 낀 세라피나의 보폭은 빠르고 정확했다. 레코는 두 걸음에 한 번씩만 발을 움직여도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세라피나가 힐끔 돌아봤다.

"오래 사시니까 보폭이 크군요."

"별 관심 없습니다."

"저도요."

면담실 문이 열렸다.

창문 하나 없는 방이었다. 테이블 하나, 의자 둘, 조명 하나. 세라피나는 맞은편에 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관련 서류."

레코가 유언 원문 사본과 이의 제기서를 건넸다. 세라피나가 빠르게 훑었다. 한 페이지 넘기는 데 삼 초.

"베이루 신의 유언 제십이 조항. 저희가 검토한 조항입니다." 세라피나가 서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하층 시장 북쪽 끝의 땅. 현장 측량 결과 도른 씨의 필지가 최북단에 위치합니다. 집행 근거 명확합니다."

"—아닙니다."

세라피나가 눈을 들었다.

"근거 조항 제시하세요."

레코는 자신이 준비해 온 문서를 펼쳤다. 베이루 신의 유언 원문 전체본이었다. 세라피나의 서류에는 제십이 조항 발췌본만 있었다.

"제십이 조항 전문입니다." 레코가 해당 줄을 짚었다. "'하층 시장 북쪽 끝의 땅을 성전에 바친다. 그 땅은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어야 한다.'"

세라피나가 굳었다.

"발췌본에는 후단이 빠져 있었습니다—기록합니다."

"—그건."

"도른 씨의 필지는 사십 년간 직물 상회로 운영됐습니다. 매일 수십 명이 드나드는 상업 토지입니다.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곳'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않습니다." 레코의 목소리는 평탄하게 이어졌다. 파도 한 번 없는 수면처럼. "반면 2번 필지는 현재 미개발 공터입니다. 담장 안쪽이라 공식적으로 출입 기록이 없습니다. 조항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2번 필지입니다—기록합니다."

정적이 면담실을 눌렀다.

세라피나의 손이 서류 위에서 멈춰 있었다.

"그 2번 필지는."

"아벤 가문 소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세라피나가 레코를 봤다. 레코가 세라피나를 봤다.

아벤 가문. 이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귀족 가문 중 하나. 신성 행정청 이사회에 세 명의 의석을 가지고 있는.

"—공증인." 세라피나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낮아졌다. "지금 하시려는 말이 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발췌 과정의 오류는 담당 직원의 실수일 수 있고—"

"후단이 잘렸습니다. 실수라면, 하필 귀족 가문에게 불리한 조항만 잘리는 실수가 행정청 서류에서 반복됩니까." 한 박자. "근거 조항 제시할까요."

형광등 하나뿐인 면담실에서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 테이블 위 서류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팽팽하게 당겨진 공기

세라피나의 입술이 가늘게 당겨졌다.

"지금 저를 도발하고 있는 겁니까, 공증인."

"—기록합니다."

"그게 대답입니까."

"대답입니다."

세라피나는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눌렀다. 소리가 났다. 레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이 아무리 조항을 파고들어도, 이의 제기를 접수할지 여부는 감찰관 권한입니다. 저는 이 이의 제기를 기각할 수 있어요."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까."

"그게 전부라면 저도 전부가 있습니다." 레코가 문서 가방에서 마지막 서류 한 장을 꺼냈다. "베이루 신의 유언 공증 원본에는 제가 수백 년 전 직접 서명한 공증인 확인서가 있습니다. 공증인이 직접 서명한 유언의 조항 해석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공증인 권한으로 집행 즉시 정지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신성 유언법 제22조 1항. 이 경우 감찰관은 삼 일 내에 재검토 결과를 제출해야 합니다—기록합니다."

세라피나가 그 서류를 내려다봤다.

수백 년 전의 잉크로 쓰인 레코의 서명. 글자체가 지금과 다름없이 단정하고 차가웠다.

"…집행 즉시 정지."

"도른 씨의 사흘은 충분히 보장됩니다."

세라피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코도 하지 않았다.

바깥에서 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조명이 윙윙댔다. 면담실의 공기가 두 사람 사이에서 아주 천천히, 그리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기울었다.

"—재검토하겠습니다."

세라피나의 목소리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보다 0.5도쯤 낮아져 있었다.

"근거 서류 두고 가세요, 공증인."

"두겠습니다—기록합니다."

레코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집었다. 문 손잡이를 쥐었다.

"공증인."

돌아봤다.

세라피나가 서류를 들여다본 채 물었다.

"당신 얼마나 됐습니까. 이 일."

"—육백십이 년입니다."

"...육백."

"기억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차피 기억 안 하시니까—기록합니다."

문이 닫혔다.

레코는 청사 앞 계단을 내려가다 멈췄다.

계단 중간쯤, 난간 위에 무언가가 앉아 있었다.

아이였다. 열 살 안팎으로 보이는 형태였지만, 몸의 윤곽이 약간 흐릿했다. 햇빛이 닿는 쪽 어깨가 희미하게 비쳐 보였다. 유언 잔향. 이미 사망한 신의 기억이 형태를 입고 떠도는 것들이었다.

레코는 그런 잔향들을 수백 년간 본 적이 있었다. 대부분 며칠 안에 흩어진다.

그런데 이 아이는 레코를 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두 눈을 맞춰서.

"이상하다." 아이가 말했다. 목소리가 조용했다. "잔향은 사람 눈을 안 보는데."

레코가 한 계단 내려갔다.

"잔향이 제 눈을 알아보는 경우도 없습니다."

"나는 오르." 아이가 다리를 흔들었다. "당신 이름 알아. 레코."

레코의 걸음이 멈췄다.

수백 년간 아무도 먼저 그 이름을 부른 적이 없었다. 도장 찍는 자. 공증인. 이봐요 거기. 그런 것들이었다.

"—어디서 알았습니까."

오르는 웃었다.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유언에 나와. 엄청 큰 유언에." 다리를 다시 흔들었다. "근데 레코, 있잖아. 아는 거 있어? 제일 무거운 도장은, 아직 찍히지 않은 것들이래."

청사 계단 난간 위, 몸의 윤곽이 흐릿하게 비쳐 보이는 아이가 레코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레코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이를 내려다보며 단 한 가지를 생각했다.

수백 년간 그 어떤 유언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본 적이 없었다.

'엄청 큰 유언.'

"—그 유언이 어느 신의 것입니까."

오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흐릿한 어깨가 햇빛 속에서 잠깐 더 투명해졌다.

"가장 처음 신."

심장이 한 박자 비었다.

가장 처음 신. 이 세계가 시작될 때 존재했던 단 하나. 수백 년간 유언 공증 기록에서 단 한 번도 이름이 올라온 적 없는.

아르카.

"—기록합니다."

이번엔 그 두 글자가 레코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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