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48시간 전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목록이 있다.
살아남을 것들의 목록. 그리고 사라질 것들의 목록.
류하은은 언제나 후자를 쓴다.
좌석 번호 23F. 창가.
비행기가 아직 활주로를 달리는 동안, 하은은 이미 노트를 펼쳐 있었다. A5 크기, 검은 표지, 볼펜 자국이 표지 가죽을 얕게 눌러 지도처럼 패인 노트. 노트 안쪽 첫 페이지에는 손글씨로 단 한 줄만 적혀 있었다.
사라지기 전에 보아야 할 것들.
그 아래로 목록이 이어진다. 번호가 붙어 있다. 1번부터 9번까지. 9번 옆에는 새로 번호가 추가될 공간이 남아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창밖으로 도시가 빠르게 작아졌다. 인천의 불빛들이 납작해지고, 해안선이 실처럼 가늘어졌다가, 구름이 전부를 삼켰다. 하은은 창밖을 보지 않았다. 창이 없는 것처럼 시선을 고정한 채 목록을 읽어 내려갔다.
목록의 내용은 단순하다. 지명. 건물 이름. 시장의 이름. 강의 이름. 오래된 탑, 백 년 된 제빵소, 세 세대가 살았던 광장의 분수대. 번호 옆에 짧은 메모가 붙는다. 다음 달 댐 완공으로 수몰 예정. / 폐쇄령 D-3. / 지뢰 제거 전까지 출입 금지 구역 지정.
이것들이 류하은의 여행지다. 관광 안내서에는 절대 실리지 않을 목적지들.
지금 향하는 곳은 목록의 10번 칸이다. 며칠 전에 추가한 항목. 발칸반도 접경 도시 D. 하은은 지명을 노트에 쓸 때 보통 약자로 처리한다. 습관이다. 이름이 적히면 어딘가 정이 들 것 같아서.
이 도시는 48시간 후 완전 폐쇄령이 내려진다.
국경 분쟁. 구체적인 경위는 복잡하고, 하은은 복잡한 것을 짧게 이해한다. 두 나라가 오래된 선 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 선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 선 위에 도시 하나가 얹혀 있다. 도시 안에 삼만 명이 살고 있다. 그들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48시간 후에는 달라질 예정이다. 어떻게 달라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보통은 그럴 때 무언가가 부서진다.
하은은 그 48시간 안에 들어가서 기록하고 나온다.
도시가 아직 그 도시일 때의 얼굴을. 시장이 열리고, 아이들이 뛰고, 광장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며 서 있는 평범한 얼굴을. 폭발이나 포성이 아니라, 그 전날의 정적을.
하은이 기록하는 것은 언제나 그 직전이다. 재난이 아니라 재난 직전의 숨결.
좌석 트레이를 내렸다. 기내식 쟁반을 올렸다. 하은은 기내식을 먹을 때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뭔가를 손에 잡고 있어야 편하기 때문에 먹는다. 포크를 집었다. 닭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모를 것을 한 입 떠서 씹으면서 다시 노트로 눈을 내렸다.
목록의 1번: 슬로베니아 국경 마을 B, 분리 협정 이후 폐쇄. 1번 옆에 작은 체크 표시. 끝났다는 뜻이다. 하은이 다녀왔다는 뜻이고, 기록이 완성됐다는 뜻이다. 글 세 편. 사진 열두 장. 그 마을에서 마지막 주민이었던 여든세 살 여성이 빈 광장에 서서 자기 집 창문을 올려다보던 장면. 그 여성의 이름. 그 여성이 가장 좋아했다고 말한 광장의 냄새. 빵 굽는 냄새와 젖은 돌 냄새가 섞인 것.
하은의 글에는 숫자보다 냄새가 많이 나온다.
2번: 이라크 접경 마을 K. 체크. 3번: 시리아 다마스쿠스 구도심 특정 골목. 체크. 목록이 내려갈수록 체크가 많다. 9번까지 중 일곱 개에 체크가 찍혀 있다. 남은 건 둘. 그리고 방금 추가된 10번.
하은은 목록을 읽을 때 표정이 없다. 슬프지도 않고 결연하지도 않고. 그냥 읽는다. 아이가 숙제 목록을 확인하듯이. 창밖이 구름이든 어둠이든 상관없이. 음식을 씹으면서. 입술을 조금 벌린 채로, 눈이 글자 위에 정박한 채로.
그런데 딱 한 군데서 멈췄다.
5번 항목 앞에서.
5번에는 체크가 없다. 다른 항목들과 달리, 5번 옆에는 아무 메모도 없다. 지명만 있다. N.
하은은 5번을 읽지 않았다. 읽은 척하고 넘어갔다. 눈이 6번으로 건너뛰는 속도가 다른 번호들보다 빨랐다. 0.3초 차이였다. 누군가 옆에 앉아 있었다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하은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노트를 덮었다. 창밖을 봤다. 어둠이었다.
입술을 닫았다.
세 시간 반짜리 비행이었다. 경유지인 이스탄불에서 두 시간 대기 후, 다시 한 시간 반짜리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로 갈아타야 한다. 하은은 이스탄불 환승 구역의 가장 구석진 커피숍에 자리를 잡고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일하는 건 아니다. 그냥 앉아 있는 것. 하은에게 기다림은 어렵지 않다. 움직임이 멈추면 무언가를 생각해야 하는데, 하은은 생각을 잘 멈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방법을 오래 연습했다.
그러니까 그 목소리가 들렸을 때 하은은 정말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Oye! 이거 혹시—이것 뉴라이트 어쩌고...? 아니 잠깐만, 이 책 제목 한국어잖아요."
남자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 하은의 트레이 위에 놓인 책을 가리키고 있었다.
류하은은 고개를 들었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정확히 '한국어잖아요'의 '어' 음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끄덕임이 동의인지 확인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삼십대 중반. 남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 밑에 피곤함이 상시 거주하는 것처럼 보이는 다크서클을 달고 있었다. 카메라 가방을 두 개 메고 있었다. 하나는 어깨에, 하나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 손을 얹고 있었다. 손이 카메라 가방을 놓지 않았다. 의식하지 못하는 동작처럼 보였는데, 그러나 절대로 무의식적인 동작이 아니었다.
"한국어 맞아요?" 남자가 다시 물었다. 영어와 스페인어 발음이 섞인 악센트. 한국어 문장인데 한국어 같지 않은 억양.
"네." 하은이 대답했다.
"오! Perfecto." 남자가 웃었다. 지나치게 크게. 커피숍 소음을 뚫고 들어오는 크기. "저도요. 반은요. 아니, 그러니까 — 부모님이, 그쪽이, 그러니까 — " 그는 영어로 전환했다. "I understand Korean but my mouth doesn't cooperate."
하은은 다시 끄덕였다.
"세바스티안 마레스."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손. 오른손. 카메라 가방에 올려놓았던 손이 아니라 반대쪽 손이었다.
하은은 악수를 했다. "류하은."
"류 하은." 세바스티안이 두 음절씩 떼어 발음했다. "하은. Lluvia."
"무슨 뜻이에요?"
"비." 그가 말했다. "스페인어로 비."
하은이 대답하지 않자 세바스티안은 머쓱한 것처럼 커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어디 가요?"
하은이 대답하기 전에, 세바스티안의 눈이 잠깐 바뀌었다. 아주 짧게. 0.3초. 하은이 5번 항목을 건너뛰던 것과 비슷한 속도로. 그의 시선이 하은의 손에 들린 노트 위를 스쳐 지나갔다.
노트의 표지. 그 위에 박힌 작은 스티커 하나. 하은이 기록을 완료한 현장들에서 모은 것들. 이스탄불 스티커, 베오그라드 스티커, 다마스쿠스 우표처럼 생긴 것. 그리고 발칸반도 지도 모양의 조그만 것 하나.
세바스티안의 눈이 그것을 읽었다.
하은도 세바스티안이 읽었다는 것을 읽었다.
"D 도시요." 하은이 먼저 말했다.
세바스티안은 웃음을 유지했다. 그런데 커피잔을 내려놓는 속도가 0.5초 늦었다.
"Ah. 나도요."
침묵이 테이블 위에 내려앉았다. 하은은 침묵에 익숙하다. 세바스티안은 익숙한 척한다. 둘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명확하다.
"종군기자예요?" 하은이 물었다.
"사진기자." 그가 정정했다. "종군은 아니에요. 전쟁만 찍는 게 아니라 — " 잠깐 멈췄다가, "뭐, 비슷한가." 그는 한국어로 마지막 문장을 말했다. 발음이 흔들렸지만 완성은 됐다.
"글 써요?" 그가 물었다.
"네."
"어떤 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글."
세바스티안이 하은을 봤다. 쾌활한 표정이 0.2초 동안 사라졌다가 돌아왔다. 그 0.2초 안에 그의 얼굴에 다른 얼굴이 있었다. 하은은 그것을 봤고, 세바스티안은 하은이 봤다는 것을 알았다.
"Curioso." 그가 천천히 말했다. "나도 그런 거 찍어요."
갈아탈 비행기 탑승구가 열린 건 그로부터 사십 분 후였다.
소형 프로펠러기. 좌석이 양쪽으로 스물두 개. 하은은 앞줄 창가. 세바스티안은 뒷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분리됐다. 하은은 그것이 자연스러운 척하기 위해 아무런 눈빛도 교환하지 않았다. 세바스티안은 자기 좌석에 앉으면서 앞줄 쪽을 한 번 봤지만, 하은이 이미 창밖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시선이 닿지 않았다.
비행기가 이륙했다.
하은은 노트를 다시 펼쳤다. 10번 항목 아래에 오늘 날짜를 썼다. 48시간을 뜻하는 두 자리 숫자를 썼다. 그리고 잠깐, 펜을 멈추고 생각했다.
사진기자.
하은은 그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뇌의 어딘가에서 그 단어가 짧게 울렸다.
자신이 기록하는 방식과 세바스티안이 기록하는 방식은 다르다. 하은의 기록은 지면에 남는다. 세바스티안의 기록은 이미지로 남는다. 하은의 글에는 시간이 걸린다. 세바스티안의 사진은 순간을 끊어낸다.
하은은 자신의 방식이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 글은 주관이 드러나니까. 주관이 드러나면 독자가 경계할 수 있으니까. 사진은 사실처럼 보인다. 사실처럼 보이는 것은 더 위험하다.
그런데 그 생각을 하다가 멈췄다. 글도 주관의 폭력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쓰는 것.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방식으로 기억을 편집하는 것.
하은이 왜 상담사를 그만뒀는지를 생각하면, 그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펜을 다시 움직였다.
착륙까지 한 시간 오 분.
D 도시의 공항은 공항이라기보다 활주로가 딸린 창고에 가까웠다. 입국 심사대가 두 개뿐이었고, 심사관이 한 명은 졸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은 하은과 세바스티안 포함 열일곱 명이었다. 대부분 기자들이거나, 기자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하은은 짐을 찾으러 벨트 컨베이어 앞에 섰다. 검은 캐리어. 20킬로그램. 짐이 많지 않다. 늘 기내 반입 가방 하나와 캐리어 하나다. 캐리어 안에는 옷과 세면도구, 그리고 노트 열 권이 들어 있다. 빈 것들. 언젠가 채워질 것들.
캐리어가 나왔다. 하은이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먼저 손잡이를 잡았다.
하은이 고개를 들었다.
세바스티안이 아니었다.
스무 살쯤 된 청년이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검은 머리카락이 귀 밑으로 쳐져 있었다. 눈이 크고, 그 눈이 당황한 것처럼 빠르게 깜빡였다. 청년은 하은과 하은의 캐리어를 번갈아 보더니, 러시아어로 무언가를 말했다.
하은은 러시아어를 모른다.
청년도 그것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더 어색하게, 그러나 분명히 한국어로 말했다.
"같은 것—아, 미안해요. 내 것 같아서."
그는 자기 캐리어를 가리켰다. 하은의 캐리어와 완전히 같은 모델, 같은 색이었다.
두 개가 나란히 벨트 위에 올라와 있었다.
하은이 자기 캐리어의 이름표를 확인했다. 맞다. 하은의 것이다. 청년이 자기 캐리어를 집어 들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런데 청년이 가지 않았다.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조그만 봉지. 투명 비닐에 담긴 쿠키 같은 것. 하은에게 내밀었다.
"이거..." 그는 잠깐 한국어를 찾는 것처럼 멈췄다가, "드세요. 비행기 음식 맛없으니까."
하은은 봉지를 받았다. 반사적으로. 왜 받았는지 자신도 몰랐다.
청년이 말했다. "이무진이에요." 그는 자기 이름을 발음할 때도 한국어인지 러시아어인지 알 수 없는 음절의 배합으로 발음했다. "여기 와본 적 있어요?"
"아니요." 하은이 말했다.
"나도." 이무진이 말했다. 그리고 잠깐 멈췄다가, 아주 조용하게 덧붙였다. "할머니는 있어봤는데."
그게 전부였다. 그 뒤를 잇는 말이 없었다. 이무진은 캐리어를 끌고 입국장 쪽으로 걸어갔다. 하은은 봉지를 손에 든 채 그의 뒷모습을 봤다.
큰 어깨. 그 어깨가 왠지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리적으로 기울어진 게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무게가 비대칭인 것처럼.
하은이 입술을 조금 벌렸다.
입국장을 나오자 D 도시의 공기가 하은의 얼굴을 쳤다.
차가웠다. 4월이었는데 아직 겨울 냄새가 남아 있었다. 젖은 아스팔트 냄새, 밑에서 올라오는 오래된 돌 냄새, 그리고 멀리서 흘러오는 무언가 타는 냄새. 불이 아니라 쇠 같은 냄새. 기계가 오래 달려온 것 같은 냄새.
하은은 공항 밖 택시 승강장 앞에 섰다. 미리 예약해 둔 숙소가 있다. 구시가지 외곽.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된 곳. 하은은 언제나 오래된 곳에 머문다. 없어질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뒤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규칙적이지 않았다. 셔터 소리와 셔터 소리 사이에 숨이 있었다. 잠깐 멈추고, 보고, 누르는. 하은은 그 리듬을 알았다. 상담사로 일할 때 동행했던 현장에서 자주 들었던 소리.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대신 노트를 꺼내서 아직 비어 있는 10번 항목 옆에 한 줄을 썼다.
도착. 냄새: 아스팔트 + 오래된 돌 + 쇠.
택시가 왔다. 하은이 탔다. 문이 닫혔다.
택시가 출발하려는 순간, 뒤쪽 창문으로 공항 출입구가 보였다. 이무진이 출입구 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것처럼 귀에 폰을 댔는데, 전화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서 있는 것 같았다. 폰을 귀에 댄 채, 공항 밖 도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거리였다.
그 옆으로 세바스티안이 걸어 나왔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그는 이무진 옆에서 잠깐 멈췄고, 이무진이 뭔가를 말했고, 세바스티안이 웃었다. 이무진이 웃지 않았다.
택시가 속도를 냈다. 창밖 풍경이 흘렀다.
하은은 다시 노트를 폈다.
두 명. 같은 방향.
그 아래에 단어 하나를 더 썼다가, 지웠다. 지워도 볼펜 자국이 남았다. 눌려 패인 자국. 빛 각도에 따라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자국.
지운 단어는 조심해였다.
누구한테 쓴 건지 하은도 몰랐다.
숙소에 체크인하고 배낭을 내려놓고 창을 열었다.
D 도시의 구시가지가 거기 있었다. 오래된 지붕들이 계단처럼 내려가는 언덕. 그 사이사이로 좁은 골목. 빨래가 창문 사이에 줄로 걸려 있었다. 저녁이 시작되고 있었고, 어디선가 요리 냄새가 올라왔다. 마늘과 기름과 오래된 나무 타는 냄새.
48시간 후에 이 풍경이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하은은 창틀에 팔꿈치를 올리고 그 도시를 봤다. 노을이 지붕 위로 번지고 있었다. 붉고 낮게. 연기 같기도 하고 빛 같기도 한 색으로.
입술을 조금 벌렸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메시지였다.
발신인: 모르는 번호.
내용: 단 한 줄.
류하은 씨. 당신 기록에서 빠진 게 하나 있어요. 5번.
하은의 손이 멈췄다.
핸드폰을 잡은 손가락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그러나 손은 떨리지 않았다. 훈련된 사람의 손처럼. 오래 연습한 사람의 손처럼.
5번.
노트 안의 그 번호. 체크도 없고 메모도 없고 지명만 있는. 하은이 0.3초 만에 눈으로 건너뛰었던 그것.
N.
하은은 발신인을 다시 봤다. 모르는 번호. 그런데 번호의 국가 코드가 보였다.
이 도시의 코드였다.
누군가 이미 이 도시 안에 있었다. 하은이 오기 전에. 하은이 이 도시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하은의 목록을 알고 있었다.
하은은 창문을 닫았다.
노을이 차단됐다.
방 안이 어두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