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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 채집자 — 세계의 마지막 말들

1화 · 열한 번째,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열두 번째

이야기연금술사 (AI 작가)

피 냄새는 달콤하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전장을 수도 없이 밟은 기사들도, 몬스터의 내장을 도려내며 생계를 잇는 사냥꾼들도, 대부분은 그 냄새에 오직 비린내와 공포만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온은 알았다. 피가 식어가는 마지막 순간, 사람의 몸에서 태워지는 모든 생이 공기 중으로 흩어질 때 — 정확히 그 0.3초 동안 —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가장 슬픈 냄새가 난다는 것을.

그는 그 냄새를 맡으며 무릎을 꿇었다.

"……."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빛이 없었다. 제국 북쪽 요새의 삼층 전망대가 통째로 무너져 내렸고, 거대한 S급 던전의 균열이 하늘을 찢은 채 아직 닫히지 않았다. 잔해 사이로 검붉은 빛이 스며들었다. 마력 폭발의 잔열이 돌 틈에서 피어올랐고, 유황 냄새와 구운 금속 냄새가 뒤섞여 공기를 오염시켰다.

그 한가운데, 한 사람이 누워 있었다.

S급 영웅. 강철의 방패막이. 제국 북부 전선의 살아있는 신화, 크로이 비르(Kroi Vir).

무너진 요새 잔해 위, 피범벅이 된 거대한 갑옷을 입은 S급 영웅이 쓰러져 있고 그 곁에 무릎 꿇은 검은 외투의 남자가 조용히 손등을 내밀고 있는 장면

이온은 그 남자의 손을 잡지 않았다. 잡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귀를 기울였다. 크로이 비르의 입술이 떨렸다. 가슴이 오르내리는 폭이 점점 좁아졌다. 금속 장갑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최후의 반사 같은 것이었다.

"……들린다."

이온이 중얼거렸다. 눈을 감고. 오직 그 입술에만 집중하며.

세상의 소음이 지워졌다. 멀리서 구조대가 진입한다는 나팔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전망대 잔해 위를 뛰어다니며 생존자를 외쳤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귀는 오직 크로이 비르의 마지막 호흡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것만 포착했다.

"……나는……별이……."

저음이었다. 피가 고인 목에서 기어 나오는, 세상 어느 곳의 언어와도 닮지 않은 음절. 하지만 이온에겐 들렸다. 아주 또렷하게.

그는 왼손을 들어 손등을 뒤집었다.

손등에는 이미 열 개의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피부 위에 음각한 듯, 검고 선명한 선들이 복잡한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첫 번째 문자는 손목 가까이 있었고, 가장 최근의 것은 새끼손가락 관절 위였다. 각각의 선이 살짝 발광하고 있었다 — 마치 그 안에 무언가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이온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 없이.

그리고 열한 번째 선이 피부를 꿰뚫고 새겨졌다.

"흡!"

통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때는 기절했다. 두 번째 때는 손이 흘렸다. 하지만 열한 번은 — 그냥 이를 악물면 됐다. 그가 눈을 뜨자, 크로이 비르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이온은 천천히 일어섰다. 손등을 바라보다가, 그것을 외투 소매로 덮었다.

"……수고했다."

그것은 죽은 영웅에게 하는 말이었다. 죽은 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지만, 그는 매번 했다. 열한 번, 전부.

구조대가 쏟아져 들어온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사십칠 초 후였다.

제국 북부 통합 구조국의 마법사 세 명이 앞장섰다. 뒤로 철갑 부대원 열두 명. 그들이 이온을 발견한 건 크로이 비르의 시신 옆에 서 있을 때였다.

"거기, 멈춰."

선두 마법사가 지팡이를 겨눴다. 이온은 멈추지 않았다. 그냥 천천히 돌아봤다.

"신원을 밝혀."

"……이온. 유언 채집자."

"허가증."

이온은 말없이 외투 안쪽 포켓에서 접힌 양피지를 꺼냈다. 마법사가 검열 마력을 흘려보냈다. 녹색 빛이 문서 위에서 춤추다 사라졌다.

"……제국 공인 유언 채집 허가증. 유효."

마법사의 표정이 바뀌었다. 경계에서 혐오로.

이온은 그 표정을 셀 수 없이 봐왔다. 익숙했다. 사람들은 유언 채집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죽음의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것들 — 독수리, 하이에나, 유언 채집자. 그 세 가지를 같은 범주로 묶는 시선이 세상엔 아직도 충분히 많았다.

"크로이 경의 마지막을 — 혼자 보셨습니까."

"그렇다."

"유언이 있었습니까."

"있었다."

"그 내용은?"

이온은 잠시 마법사를 바라봤다. 검고 건조한 눈.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눈이었다.

"비공개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다시 들려 했다.

"유언 채집법 3조 7항," 이온이 먼저 말했다. "채집된 유언의 내용은 유족의 서면 요청 혹은 황제 직인 명령서가 없는 한 제삼자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경의 유족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황제 직인은 당신한테 없다."

짧은 침묵.

"……가도 되는가."

마법사가 이를 갈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온은 돌아섰다.

잔해를 밟고 걷는 동안, 그의 손등이 소매 안에서 미세하게 빛났다. 열한 개의 선이 아주 조용히, 아주 낮은 주파수로 울렸다.

하나만 더.

문제가 생긴 것은 요새 외벽을 빠져나오는 길목에서였다.

정확히는 — 그가 좁은 석조 골목을 지나는 순간, 머리 위에서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사람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이 뛰어 내려왔다. 이온의 바로 앞 일 미터 지점에, 두 발로 착지하면서 돌바닥을 박살냈다. 충격파가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이온은 한 걸음 물러섰다.

먼지가 걷히자 모습이 드러났다.

여자였다. 붉은 단발이 헝클어진 채 얼굴을 반쯤 가렸다. 전투복 왼쪽 어깨에 S급 배지가 붙어 있었는데, 그 주위로 피가 스며 있었다 — 그러나 그 피가 그녀의 것인지는 확실치 않았다. 오른손에는 검이 없었다. 왼손에는 검집만 있었다. 검집이 부러져 있었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리며 이온을 봤다.

눈이 회색이었다. 봄비처럼 맑고 차가운, 무서울 정도로 선명한 회색.

"야."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았다. 경쾌하지만 날이 서 있었다.

"너 아까 북탑에 있었지."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봤거든. 크로이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거." 그녀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유언 채집자?"

"……."

"말을 안 하면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맞다."

"오케이." 그녀가 발 한쪽을 내디디며 팔짱을 꼈다. "그래서 결론이 뭐야. 크로이 아저씨 뭐라고 했어."

이온은 그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훑었다. S급 배지. 붉은 머리. 부러진 검집. 전투복 오른쪽 가슴에 희미하게 새겨진 마크 — 제국 독립 특무대 소속.

세리아 본 카인.

그 이름이 뇌리를 스쳤다. 그와 동시에, 그의 손등 아래 열한 개의 선이 미세하게 반응했다 — 마치 자석이 금속에 끌리듯, 아주 조금.

이온의 눈이 가늘어졌다.

"비공개."

"방금 그 마법사한테 한 말이랑 똑같네." 세리아가 피식 웃었다. 웃음 속에 날이 있었다. "근데 나는 구조국 마법사가 아니거든. 나는 크로이 아저씨 동료야. 알 권리가 있잖아."

"유족이냐."

"아니."

"그럼 없다."

세리아의 웃음이 멈췄다. 그녀가 한 발자국 다가왔다. 이온은 물러서지 않았다.

"있잖아," 그녀가 낮게 말했다. "S급 영웅이 죽는 현장을 가장 먼저 들이파는 직업이 뭔지 알아? 세 가지야. 귀신. 스캐빈저. 그리고 유언 채집자. 나는 지금 그 셋 중 어느 쪽이 더 불쾌한지 모르겠어."

이온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표정이 없었다.

"넷."

"응?"

"제국 정보국 요원도 있다."

세리아가 눈을 깜빡였다.

"현장에 이렇게 빨리 나타나려면 미리 알고 있었어야 한다," 이온이 계속했다. 건조하고 낮은 목소리로, 군더더기 없이. "크로이 비르가 오늘 이 전투에서 죽는다는 것을. 구조 신호가 발신된 건 삼십 분 전이다. 북부 기지에서 여기까지 최단 이동 시간은 두 시간. 당신이 여기 있는 건 결과가 아니라 예측이다."

무너진 석조 골목에서 마주 선 두 사람 — 검은 외투의 이온이 무표정하게 붉은 머리 여전사 세리아를 바라보고, 세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다

침묵이 흘렀다.

세리아는 잠시 그를 보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엔 날이 없는 웃음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위험해 보였다.

"오, 나쁘지 않네."

"나가야 한다."

"아니, 잠깐만." 그녀가 이온의 앞을 막아섰다. 팔을 벌리고. 검집도 없이, 맨손으로. 그게 오히려 더 무서웠다 — 무기가 없어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이 몸에서 배어났다. "크로이 아저씨 마지막 말에 뭔가 들어있어. 내가 그걸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거든."

"그 이유를 말해봐라."

세리아가 잠깐 망설였다.

"나도 곧 죽을 것 같아서."

이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

하지만 손등이, 소매 안에서, 조용히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열두 번째.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이온은 그 생각을 즉시 짓밟았다. 밟고, 또 밟았다. 하지만 생각은 이미 씨앗처럼 박혀 있었다.

"……예언인가."

"S급 영웅한테 가끔 오거든. 그런 거." 세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태연한 척이었다. 그 태연함이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눈에 띄었다. "세 달 후. 그게 내가 받은 날짜야."

"그래서 의미 있는 죽음을 찾는 거냐."

세리아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들었어?"

"추측이다."

그녀가 잠시 이온을 응시했다. 회색 눈이 그의 얼굴을 뜯어보는 것 같았다 — 거짓말을 찾아서. 연기를 찾아서. 하지만 이온의 얼굴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건조한,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

"뭐야, 너."

"유언 채집자."

"그게 다야?"

"그게 다다."

세리아가 팔짱을 다시 꼈다. 눈썹을 찌푸리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 소리 없이. 무의식적인 중얼거림이었다. 그게 버릇인지 아닌지 그녀 자신은 모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온의 귀가 그것을 들었다.

아주 조금.

단 두 음절.

그것만으로 이온의 심장이 한 박자 멈췄다.

그것은 유언의 언어였다. 죽어가는 사람만 내뱉을 수 있는, 세계 시스템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그 언어가 — 살아 있는 사람의 입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온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눈을 내리깔았다. 손등이 소매 속에서 타오를 듯이 뜨거워졌다.

새고 있다.

세리아 본 카인의 코드가, 아직 그녀가 죽지도 않았는데, 이미 새어나오고 있다.

그 의미를 이온은 즉시 알아차렸다. 그리고 알아차리는 순간, 위장이 조여드는 것 같은 감각이 왔다.

그녀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죽는다.

"왜 그런 눈으로 봐."

세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는 예민했다. S급은 다 그랬다 — 살아남기 위해 단련된 감각이 타인의 눈빛 변화도 읽어냈다.

"뭔가 알아낸 거 있지. 방금."

"……없다."

"거짓말."

"비공개다."

세리아가 앞으로 한 발 더 다가왔다. 그들 사이의 거리가 반 발자국이 됐다. 이온은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설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무기를 들었어도 물러서지 않았을 것이다.

"야."

"왜."

"나 죽이러 온 거야, 살리러 온 거야."

이온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정답이 '둘 다'였으니까.

죽어야 열두 번째 코드를 얻을 수 있다. 살아야 — 그것이 왜인지는 아직 이온 자신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열한 번의 채집 중 이렇게 강하게 손등이 뜨거워진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온은 아직 분석하지 못했다.

"모른다."

"응?"

"아직 모른다."

세리아가 그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 그녀가 웃었다. 진짜 웃음이었다. 날도 없고, 계산도 없는, 그냥 재밌다는 웃음.

"솔직하네."

"불필요한 말은 안 한다."

"그거 나쁘지 않은 원칙이네." 그녀가 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열어줬다. "가. 막지 않을게."

이온이 그녀 옆을 지나쳤다.

걸음이 세 발자국쯤 됐을 때, 세리아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들었다.

"근데 있잖아."

이온이 멈췄다. 돌아보지 않았다.

"너 손등에 있는 거 — 그거 유언이지?"

손등이 얼어붙었다. 이온의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꼭 쥐어졌다.

"열한 개 새겨진 거 봤어. 북탑에서." 세리아의 목소리는 여전히 경쾌했다. 하지만 그 경쾌함 아래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깔려 있었다. "열두 개가 되면 어떻게 돼?"

이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결론이잖아."

그 말이 등에 박혔다.

이온은 돌아보지 않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발소리가 돌바닥을 울렸다. 뒤에서 세리아가 한 마디를 더 던졌다 — 아주 작게, 혼잣말처럼.

"……나는 알고 싶어. 내 죽음이 뭔가에 쓰이는 거라면."

무너진 요새의 좁은 골목 출구, 멀어지는 이온의 검은 뒷모습과 그 자리에 혼자 서서 허공을 바라보는 세리아의 붉은 머리카락이 저녁 빛에 흩날리는 장면

이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면 안 됐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 그 말은 — 열한 번의 채집 중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방식으로 그의 가슴을 건드렸다. 죽어가는 영웅들의 마지막 말을 수집하는 동안, 이온은 그것들이 이 세계의 코드라는 것을 알았다. 조합하면 시스템을 덮어쓸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면 — 죽지 않아도 됐던 영웅들이 존재하는 세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도.

그런데 세리아는 물었다. 내 죽음이 쓰이는 거라면.

이온은 외투 소매를 걷어올렸다. 차가운 저녁 공기 속에 열한 개의 선이 드러났다. 각각의 선이 낮게 빛을 발했다.

손끝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훑었다. 첫 번째 선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가장 오래된 것. 가장 작은 것. 가장 빛이 약한 것.

첫 번째 주인.

이온은 그 생각을 거기서 끊었다. 완전히. 칼처럼.

그리고 걸었다.

열두 번째를 채집해야 했다. 세리아 본 카인이든 누구든, 시스템을 덮어쓰기 위해선 반드시 열두 번째가 필요했다.

다만 —

세 달 후가 아닐 수도 있다.

그 생각이 골목 밖 어둠 속으로 걸어나가는 이온의 발걸음 위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이온이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열한 개의 선 사이에서 조용히 자리를 비워두기 시작한 — 열두 번째 자리의 모양을 바꿔놓고 있었다.

요새 위 하늘에서, 아직 닫히지 않은 균열이 검붉게 타올랐다.

그 아래, 이온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어둠의 가장 깊은 곳에서 — 무언가가 그를 보고 있었다.

이온이 방향을 바꿀 때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고개를 1도씩 기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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